# 나만 아는 주인공들 207화
적당히 사태가 마무리되자, 강유라가 유현에게 말을 걸었다.
“오빠. 괜찮아?”
“응?”
“아니, 저 사람들. 딱 봐도 위험하고 무서워 보이는데…….”
강유라에게 있어서 양복 입은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 등 매체에서밖에 보지 못한 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험악하고 위험하거나 혹은 법에 저촉되는 일들을 주로 저질렀다.
유현은 그런 강유라의 걱정이 귀엽다는 듯 피식 웃었다.
“됐다. 어차피 저런 녀석들 입으로만 떠들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야. 무시해도 돼.”
“맞아 유라야. 정 아닌 거 같으면, 내가 혼쭐을 내줄게.”
서수민까지 나서며 그렇게 말하자, 강유라는 그제야 걱정을 누그러뜨렸다.
“아이고. 욕봤네.”
임건우가 셋에게 다가오며 그렇게 말했다. 경박한 아저씨가 이 쪽에게 친근하게 대하며 다가오자 강유라는 경계했고, 서수민은 눈을 가늘게 떴다.
서수민은 임건우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한눈에 알아봤다. 강유라가 겁에 질린 강아지처럼 물었다.
“아저씨는 누구예요?”
“아, 아저씨?”
그 한마디에 임건우가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저기, 나 아직 그렇게 안 늙었거든? 아저씨 아니거든? 부를 거면 오빠라 불러 주지 않을래?”
“네?”
강유라는 이게 무슨 소리냐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임건우는 학생의 솔직한 감상을 마주하자,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시무룩해진 그는 어깨를 툭 떨어뜨리며 말했다.
“어, 그래. 아저씨는 임건우라는 사람이야. 그냥 평범한 컬렉터지.”
“어, 어어? 임건우요?”
놀랍게도 강유라는 임건우를 알아봤다. 그녀는 컬렉터에 관심이 아주 많았기 때문에 상급 컬렉터에 대한 이름은 전부 외우고 있었다.
임건우는 강유라가 자신을 알아보자, 다시 기가 살아서 으스댔다.
“역시! 알아볼 줄 알았어. 어때? 이제 좀 오빠라 부르고 싶어졌지?”
“아, 아뇨.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강유라는 기겁하며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저분과 아는 사이였어? 오빠?”
“오늘 처음 만난 거야. 그래도 금방 친해졌지. 나쁜 사람은 아니더라고.”
“와. 쩐다.”
강유라가 순수하게 감탄했다. 당연히 그 대상은 유현이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임건우는 왜 친해진 건 자신인데, 유현이 칭찬을 듣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역시 외모인가? 역시 잘생긴 게 최고인가?’
임건우는 턱을 쓰다듬으며 ‘그래도 나 정도는 잘생기지 않았나?’ 하고 진지하게 고찰했다.
옆에서 그 모습을 한심하게 쳐다보던 최예리가 일침을 가했다.
“나이 먹고 그러는 거 엄청 추하니까, 그냥 가만히 있으세요.”
“……응.”
주위에서 수군거리며 이쪽을 곁눈질했다. 조금 전 사건 때문에 관심이 지나치게 몰리는 중이었다. 서수민은 별로 개의치 않았지만, 강유라는 그것이 불편했다. 그녀는 화제를 전환할 겸 유현에게 물었다.
“오빠. 다음 테스트는 뭔지 알아?”
“대충은. 아마 한다면 이번엔 대련이 될 거야.”
“어, 대련?”
대련이라는 말에 강유라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불안감이 들었다. 그래도 1차 테스트인 합성수를 쓰러뜨리는 건 어떻게든 했지만, 같은 생도끼리의 대련은 막막하게 느껴졌다.
“아마 대련을 하게 된다면, 같은 랭크끼리 시키겠지. 그 중에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 줄 경우에는, 운이 좋으면 다음 랭크로 올려줄 지도 모르고.”
유현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 대련 테스트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A랭크 생도 중에서 최고를 뽑으려는 것.’
여전히 객석에 앉아 있는 엉덩이가 무거우신 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머리를 조금이라도 쓴다면 모르지 않으리라.
저들은 이번에 입학하는 생도들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얼마나 대단한지는 별로 관심 없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투자한 생도가 이번 입학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이는 가다.
생도들에게 있어서 꿈을 실천하기 위한 공간조차, 저들에겐 이득과 계산을 아우르는 주판에 불과했다.
‘다들 자신이 데려온 생도들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일부는 서수민이 보여 준 힘이 범상치 않다는 걸 눈치챘는지 이쪽을 은근히 주시하고 있었지만, 아직 경계의 단계까지는 아니었다.
유현은 딱히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수민. 유라. 두 사람 다 걱정하지 마.”
이 두 사람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잘할 테니까.
“하게 된다면, 자신이 당장 보여줄 수 있는 것 중에서 최선을 다하면 돼. 그거면 충분하다. 알았지?”
“아, 응!”
“알았어요.”
두 사람은 힘차게 대답했다. 유현은 그러다 문득 궁금한 게 떠올라 임건우에게 물었다.
“근데, 건우 씨네 생도는 어디 있습니까? 누군지 궁금하던데.”
“그건 나도 모르겠다. 그 녀석이 원체 별종이어야지. 내가 찾아와도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녀석이라 찾으려고 하면 오히려 숨을걸?”
“특이한 사람이나 보네요.”
그쪽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굳이 억지로 찾을 생각은 없었다.
어느덧 휴식 시간이 끝나고, 2차 테스트가 시작됐다. 유현은 서수민과 강유라에게 힘내라는 응원을 남기고 다시 객석으로 물러났다.
“이번 테스트는 생도 간의 대련이다.”
교관의 말에 생도들의 희비가 갈렸다. 설마하니, 대련을 하게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생도들은 벌써부터 큰일 났다는 듯 표정이 어두워졌다.
“각 생도들은 자신과 같은 등급끼리 매칭이 될 거다. 기본적인 랭크는 1차 테스트에서 고정이지만, 이번 대련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주면 더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있으니, 열심히 하도록.”
첫 시작은 가장 낮은 F랭크 생도들 간의 대련이었다.
대부분 전투와 관련이 없는 특성을 지녔거나 혹은 특성조차 없는 생도들.
F랭크 생도들의 대련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없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이번 테스트의 메인 이벤트, A랭크 생도들 간의 대련이었으니까.
그렇게 E랭크부터 C랭크 생도들 간의 대련이 끝났고.
어느덧 B랭크의 차례가 왔다.
“유라야 파이팅!”
“으, 응.”
B랭크 생도도 숫자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강유라의 차례가 금방 다가왔다. 그녀는 처음 지급받은 장창을 쥐고 시험장의 위로 올랐다.
맞은편에는 이미 그녀의 대련 상대가 올라와 있었다. 그녀와 같은 복장을 입고 있는 여생도였다. 그녀는 벌써부터 주눅이 든 강유라를 보더니, 입술을 말아 올리며 기고만장한 미소를 지었다.
“뭐야. 창 들고 나한테 덤비겠다고? 찌를 수나 있겠어?”
그녀는 강유라에게 들리게끔 말하며 자세를 잡았다.
손에 쥔 것은 자그마한 지팡이. 그것이 그녀가 원거리 특화이며,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최대한 빨리 끝내 줄게.”
그 말과 동시에 대련이 시작됐다. 여생도는 지팡이를 허공에 흔들며 붓처럼 글을 썼다. 허공에 새하얀 글자가 맺혔다. 그 속도가 너무나도 신속해서 시작과 동시에 글자가 생겨나는 것처럼 보였다.
“어?”
그러나 글자로 스킬을 쓰려던 여생도는 앞에 서 있던 강유라가 사라진 것을 알아차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분명 조금 전까지 있었는데, 대체 어디에?
그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퍼억!
“꺄악!”
옆구리에 가해지는 거대한 충격에 그녀는 그대로 시험장 바깥으로 튕겨 나갔으니까.
가까스로 맺은 글자는 그대로 와해 됐고, 창대를 휘두른 강유라만 어리둥절한 채 자리에 멀뚱멀뚱 서 있었다.
그녀는 안전 요원에게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저, 이긴 건가요?”
“가, 강유라 생도 승리!”
강유라는 승리의 기쁨에 자리에서 토끼처럼 폴짝폴짝 뛰었다.
“와! 이겼다!”
강유라는 첫 생도간의 대련이라 해서 무섭거나 어려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쉬워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모습을 지켜보단 다른 생도들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
“야. 방금 그 움직임 봤어?”
“아니. 엄청 빠르던데. 대체 뭐야?”
“창 휘두르기 한 방에 장외로 날아갔어. 힘도 미쳤다는 소리잖아.”
“미친. 저 정도면 그냥 A랭크 아니야? 아니 신체 능력만 놓고 보면, A보다 더 센 거 같은데? 왜 B랭크인 건데.”
특히, 보는 눈이 있는 B랭크 이상 생도들은 강유라의 괴물적인 신체 능력에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겉모습은 순박하고 명랑한 소녀인데, 그 힘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저렇게 천진난만하게 구는 태도도 상대방의 방심을 부르기 위한 연기일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이 들자, 생도들은 모두 몸을 바르르 떨며 강유라를 다시 보게 됐다.
‘절대로 건드리면 안 되겠다.’
‘역시, 아까 그 A랭크 생도와 괜히 친한 게 아니었어. 끼리끼리 논다더니, 둘 다 미친 괴수였잖아.’
강유라는 시험장에서 내려왔다. 아쉬운 점이라면 랭크는 여전히 B로 남았다는 점이었다. 강유라는 그래도 불평하지 않았다. 그녀에겐 B랭크라는 타이틀조차 차고 넘칠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B랭크 생도들의 대련이 전부 끝나고, 대망의 A랭크 생도 차례가 됐다.
이전까지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객석에서 그 모습을 보던 유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역시, 다들 지금이 메인 이벤트라는 걸 다 알고 있군.’
생도들도 마찬가지고, 그들의 후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최상위권 생도 10명의 사이에서 순위를 결정짓는 싸움이다. 관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리라.
그래서인지, 이번 대련은 단순히 2명씩 짝을 지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토너먼트 형식이었다.
“역시 A랭크라 그런 건가?”
“순위 제대로 정할 생각인 거 같은데?”
“와. 재미있겠다.”
생도들도 눈을 빛냈다. 이번 입학생 중에서 누가 가장 강하고 누가 최고일지에 대한 이야기는 이전부터 꾸준히 나오던 것이었다. 그 결과를 곧 보게 된다고 하니, 들뜨지 않는 게 이상했다.
“넌 누가 할 거 같아? 나는 이평원. 걔 싸가지없어도 세긴 하잖아.”
“이평원이 뭐냐? 나는 당연히 구서윤이 1등이라 생각하는데. 이전부터 소문났잖아.”
“이번에 해외에서 대단한 얘들 더 왔다면서. 러시아의 라리나 레브게예나도 그렇다던데.”
“중국에서 온 진신은 어떻고? 듣기로는 그쪽에서 무쌍 찍고 왔다던데.”
생도들은 서로 누가 1등을 차지할지에 대해 갑론을박을 펼쳤다.
간혹 서수민에 대한 이름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녀가 보여 준 것이 너무 적다 보니 그녀의 우승을 점치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객석의 큰손들도 반응은 비슷했다.
“흐음. 거 이 회장네 아들이 그렇게 대단한가?”
“그래 봤자, 우리 아가씨에 비교할 순 없지.”
“쯧쯧. 어릴 때부터 하드한 트레이닝을 받은 라리나한테 지겠구만 무슨.”
“영국의 제임스 왕세자는 어떻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 같지만, 그 기저에 깔린 것은 자신의 생도가 반드시 이길 거라는 확신이었다.
보이지 않는 창과 칼이 혓바닥을 통해 수차례 충돌했다.
그 광경에 임건우는 고개를 저었다.
“진짜 저 자리에 안 있길 잘했다니까. 저기 있었으면, 10년 전에 먹었던 치킨도 토했을 거야.”
“표현이 천박하게 대체 뭡니까? 제발 좀 입 좀 다무세요.”
“아, 왜. 예리야. 솔직히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그래서 유현 씨. 그쪽은 누가 이길 거 같아?”
난데없이 질문의 화살이 날아왔지만, 유현은 대답하지 않고 말없이 웃었다.
“어어? 웃었어? 이거, 유현 씨 말은 안 해도 내심 그 서수민이라는 아가씨가 우승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네?”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러면 건우 씨는 누가 이길 거라 생각합니까?”
“나? 나야 그…….”
임건우는 대답을 하려다가 말고 입을 다물었다.
상급 컬렉터로서의 안목은 이미 A랭크 생도들이 어느 정도인지 전부 분석한 뒤였다.
누가 이길 거냐고?
그거야 답은 정해지지 않았는가?
그는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알면서도 묻다니. 그쪽도 성격 참 나쁘단 말이지.”
“이게 제 천성이라 서요.”
어느덧 대망의 첫 번째 토너먼트가 시작됐다.
“이거, 참.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네. 인연이라면 인연인가?”
“별로.”
운명의 장난인지, 혹은 누군가의 농간인지.
첫 토너먼트부터 서수민이 맞닥뜨린 상대는 이평원이었다.
이평원은 조금 전 수모를 갚을 기회가 생긴 것에 기뻐하며 무기를 고쳐 쥐었다.
“잘못했다고 울어도, 안 봐줄 거다. 그러게 적당히 튕겼어야지. 왜 귀찮게 굴고 그래?”
서수민은 한심하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넌 말로만 싸우니? 됐고, 어서 덤벼. 빨리 끝내 줄게.”
그 말에 이평원이 발끈했다. 앞으로 나서려는 그를 안전 요원이 팔을 들어 제지했다.
“정지. 아직 시작 안 했다. 두 생도 다 자기 자리에 서도록.”
이평원은 불만을 삭이며 자리에 섰다. 서수민도 마찬가지였다. 그 광경을 보던 교관이 고개를 끄덕였고, 안내 요원은 신호를 받고 곧바로 외쳤다.
“두 사람 다 정정당당하게 임하도록. 대련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