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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206화 (206/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206화

1차 테스트의 결과는 등급으로 매기며, 각 등급은 해외 유학생을 고려해서 알파벳을 기준으로 삼았다.

최대 A부터 가장 낮은 F까지. 평가는 절대 평가로.

채점의 기준은 얼마나 빠르게 환상체를 쓰러뜨렸느냐, 환상체를 앞에 두고 겁을 먹지 않았는가, 전투실력이 어느 정도인가 등등. 다수의 교관들이 직접 보고, 객관적으로 판단을 내렸다.

생도들은 1차 테스트에서 자신의 등급을 확인하며 누군가는 탄식을, 누군가는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아자! C랭크! 이 정도면 평타지!”

“하 씨. E랭크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싸울걸.”

“그래도, F는 안 나와서 다행이네.”

F랭크가 뜬 생도는 거의 죽을 상이었다.

강유라와 서수민도 자신의 이름을 발견했다.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녀들의 이름이 워낙 고랭크에 있어서 눈에 띄었으니까.

[서수민: A랭크]

[강유라: B랭크]

아직 1차 테스트였을 뿐이지만, 두 사람은 상당한 고점을 받았다. 강유라의 경우에는 가진 힘에 비해서 과감성이나 움직임이 완벽하지 않아 한 단계 낮은 B를 받았지만, 그녀는 거기에 불만을 품지 않았다.

A랭크는 그 숫자가 채 10명밖에 되지 않는 걸 생각하면, 그 바로 아래인 B도 절대 낮은 게 아니었다.

2차 테스트를 앞두고,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생도들은 각기 자신의 후견자들, 혹은 안면을 익힌 사람끼리 모여서 저마다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개중에서는 나름의 목적을 갖고 움직이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안녕? 혹시, 너희 어디 소속이야?”

“와. 창 내지르는 거 엄청 세더라. 혹시 누구 유명한 스승님을 뒀어?”

강유라와 서수민을 향해 주변 생도들이 다가오며 친근하게 굴었다. 1차 테스트에서부터 두각을 드러낸 두 사람과 친분을 만들어서 나쁠 건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 이상으로 그녀들의 뒤에 있는 사람에게 목적이 있는 것에 가까웠다.

그녀들에게 말을 거는 생도들도 대부분 C랭크 아래를 받은 사람들이었다.

“야. 비켜.”

“아씨 누구……어, 어?”

그런 인파를 헤치며, 한 무리의 생도들이 강유라와 서수민에게 다가왔다. 숫자는 총 5명으로 전부 남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선두에 선 남자는 일부러 자신을 과시하듯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움직였는데, 그를 알아본 주위 생도가 알아서 길을 비켜 줬다.

서수민은 그 모습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벌써부터 패거리를 만든 건가?’

주위에서 중얼거리는 말을 들어 보니, 선두에 선 남자, 그러니까 저들의 리더가 꽤나 이름 있는 집안의 자제인 것 같았다.

“너, A랭크라며?”

그는 서수민의 앞에 서더니, 불쑥 그렇게 물었다.

서수민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가 아무 말도 없자, 그는 서수민의 모습을 눈으로 훑었다. 마치 그녀를 평가하려는 모습 같았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게 아닌 깔보는 눈빛에 강유라가 발끈하며 나섰다.

“그러는 넌 누군데, 자기소개도 없이 대뜸 그러니?”

“날 몰라?”

역으로 그렇게 묻는 녀석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강유라는 뭐 저런 게 다 있냐는 표정을 지었고, 서수민은 그 뜻을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네가 누군데?”

“이평원. 들어는 봤지?”

이평원은 대기업 대정 기업 회장을 아버지로 둔 부잣집 자식이었다.

그리고, 이평원은 이번 1차 테스트에서 10명밖에 없는 A랭크를 받은 생도 중 하나였다.

“그래서?”

서수민은 그게 어쨌다는 듯 심드렁하게 물었다.

어디 귀한집 도련님이고 A랭크고 자시고, 그녀에게는 전혀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래서라니. 나 이평원이라니까?”

“네가 이평원인지 뭔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무슨 볼일이 있어서 나한테 접근했냐는 거지.”

“…….”

설마 서수민이 저렇게 답할 줄 몰랐는지, 이평원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보통 대부분 사람들은 그가 말을 걸기만 해도, 알아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왔다. 어른도 다를 바 없었다.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날 때부터 부족한 것이 없이 자라왔다. 모두가 그를 보면, 알아서 고개를 숙였다. 그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서수민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이평원은 묘하게 분노가 일어나면서도, 동시에 역시 저래야 나와 같은 A랭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나처럼 A랭크를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서 얼굴 좀 보러 와 봤다.”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이 더 있을 텐데?”

“다른 녀석들은 이미 얼굴을 익히고 있거든.”

실제로 서수민을 제외한 A랭크를 받은 9명의 생도는 서로의 기본적인 신상명세에 대해서 꿰차고 있었다.

입학하기 전부터 유력한 라이벌이 될지도 모르니, 견제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그들에게 예상 밖의 복병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서수민이었다.

“흐음. 그래서?”

“그래서라니. 여기까지 말했으면 모르겠어?”

“난 모르겠는데.”

“긴 말 안할게. 너, 우리 쪽에 들어와라.”

이평원은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그에게 있어서 서수민은 참 매력적인 생도였다. 예쁘기만 한 게 다가 아니었다. A랭크를 받았으니,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자격이 충분했다.

그래서 당당하게 자신에게 오라고 말을 꺼낸 것이었다.

정작 옆에서 듣고 있던 강유라는 이게 대체 무슨 참신한 개소리인지 의아해했다.

‘얘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이 전까지 일반인의 삶을 영위했던 그녀에게, 오랫동안 컬렉터가 되기 위해 교육받고 자라 온 부잣집 도련님의 행동은 정신이상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니면, 컬렉터가 원래 다 이런가?’

강유라에게 다행이라면, 실제로 이평원은 이쪽 분야에서도 별난 케이스라는 점이었다.

만약 이평원이 생도 평균이었다면, 강유라는 자신의 아카데미 입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강유라는 우선 이 상황을 어쩌면 좋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사이에 끼어들어서 말려야 하나. 아니면, 적당히 맞장구를 쳐 줘야 하나.

그 순간, 서수민이 먼저 선수를 치듯 입을 열었다.

“싫은데?”

허억! 주위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거절에 이평원의 표정은 보기 좋게 구겨졌고, 그의 뒤에 있는 패거리들의 안색도 좋지 않았다.

정작 서수민은 여전히 감흥이 없는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내가 왜 들어가야 하는데?”

“그야 네가 A랭크니까…….”

“내가 A랭크여서 그게 뭐? 너희 파벌에 들어가면 뭐가 좋은데?”

“아니, 그러니까…….”

이평원은 당혹스러웠다. 그의 삶에서 또래 여자아이들은 말만 걸어도 좋다고 달라붙어 귀찮게 구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극소수의 사람들, 가령 그와 아카데미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 몇몇 사람이 있었지만, 적어도 이평원이 알기에는 그랬다.

그런데, 서수민은 그런 이평원의 면전에다 대놓고 싫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것도 이전까지 이름조차 듣지 못했던 사람에게 말이다.

이평원의 얼굴이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다.

“네가 뭘 몰라서 그러는 거 같은데…….”

“아니. 난 충분히 알겠는데? 지금 네가 하는 거 결국 파벌 놀이잖아. 결국 내가 탐나니까 오라는 거 아니었어? 미안한데, 난 전혀 그런 애들 장난에 낄 생각이 없거든.”

“애, 애들 장난이라고?”

이평원에겐 모욕처럼 느껴지겠지만, 서수민은 진지했다.

그녀가 누구인가?

한때 중원 무림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 천마신교의 교주였다. 그녀에겐 이평원의 파벌이나 다른 생도의 파벌은 그저 어린아이들의 귀여운 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무림맹의 건방진 후기지수들도 그보단 나았으니까.

그녀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아카데미에서 빠르게 자격을 증명하고, 특혜를 얻어 유현과 함께 사상세계에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아카데미는 그녀의 목적이 아닌, 그저 밟고 지나갈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너, 내가 누구인지는…….”

“아직 내 말 안 끝났거든? 내가 뭐, 이전까진 이름도 안 알려져서 조금 얕잡아 보는 거 같은데. 네가 말 걸어 주면 뭐 좋아하면서 고맙다고 해 줘야 하니?”

이평원의 얼굴이 삶은 문어처럼 완전히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가 살면서 이런 모욕을 대체 얼마나 받았을까? 서수민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소리였지만, 자존감이 넘치는 이평원에겐 이보다 더한 모욕이 없었다.

대단하다 해도, 결국 그는 갓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위한 생도였고 미성년자였다.

화를 참는 법은 터득하지 못했다.

“반반해서 말 좀 걸어 줬더니, 어딜 감히……!”

이평원이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이대로라면 그는 서수민을 후려칠 기세였다. 실제로 이평원은 자신에게 건방지게 군 서수민을 때릴 생각으로 가득했다.

숨죽인 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생도들이 눈을 크게 떴고, 이평원의 손이 휘둘러지려는 순간이었다.

“저런. 그러면 안 되지.”

누군가가 그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누가 감히……!”

이평원은 자신이 방해받았다는 생각에 목에 핏대를 세우며 뒤를 돌아봤다.

그는 볼 수 있었다.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검은 슈트를 입은 남자가 자신을 빤히 주시하고 있는 것을.

그의 호박색 눈동자를 보는 순간, 이평원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벌써부터 소란을 피우면 안 되지. 안 그래?”

“이, 이거 놔! 이익!”

이평원은 남자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팔에 힘을 줘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평원은 그제야 이 남자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너, 너. 누구야. 내가 누구인지 알아? 나 함부로 만지면…….”

“내가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할까? 네가 먼저 우리 아가씨를 때리려는 걸 먼저 본 사람이 여기에 얼마나 많은데.”

“뭐?”

이평원의 물음에 유현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서수민에게 시선을 보내며 물었다.

“수민아. 괜찮아?”

“네. 전 괜찮아요.”

두 사람은 이평원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대화를 나눴다. 그때 사태를 지켜보던 이평원의 후견자들도 나서기 시작했다.

“그쯤 해 주시죠.”

“손속이 과하십니다.”

검은 양복에 검은 선글라스. 복장을 통일한 여러 사람이 유현에게 다가오며 경고했다. 말은 정중했지만 그 목소리에 깔려 있는 건, 조금이라도 수틀리면 이쪽도 무력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지였다.

유현은 어깨를 으쓱이며 이평원의 팔을 놔줬다.

겨우 풀린 이평원은 유현이 쥔 자신의 팔을 매만졌다. 별로 아프게 쥔 것 같지도 않은데, 팔이 욱신거렸다. 그가 뭐라고 외치기도 전에 양복들이 앞을 가로막듯 섰다. 전부 이평원 쪽 사람이었다.

“아이들끼리 잠시 말다툼이 있었는데, 조금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유현이 그게 무슨 소리냐며 대꾸했다.

“말다툼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손찌검까지 가는데 그럼 안 말립니까? 그리고 그쪽은 오히려 제게 감사해야 할 겁니다.”

“뭐라고요?”

“제가 말리지 않았다면 거기 그 생도, 오늘 집에 걸어서 못 갔습니다.”

울컥!

유현의 도발적인 말에 양복들의 이마에 주름이 패였지만, 유현은 그 말을 정정할 생각이 없었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만약 그가 중간에 끼어들지 않았다면, 서수민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평원을 개박살 내줬을 거다. 오히려 그가 끼어들었기에 신사적으로 끝나게 된 것이었다.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그쪽 생도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다고 그러십니까?”

“적어도 말 몇 마디에 욱해서 달려들려는 그쪽보단 나을 거라 생각하네요.”

“……지금 시비 거는 겁니까?”

“그렇게 들렸다면 어쩔 수 없고요.”

묘하게 이쪽의 속을 긁는 유현의 말에 양복의 대표로 보이는 남자가 살짝 짜증을 담아 말했다.

“적당히 하시죠. 그러지 않으면 저희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 뭐 어쩌실 건데요?”

“아니, 이 사람이…….”

대표의 옆에서 누군가 욱해서 외치려는 순간이었다.

“이 사람이 뭐요.”

어느덧 유현은 그의 앞에 섰다.

유현의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한 양복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빠, 빠르다.’

‘움직임을 보지 못했어.’

그들은 본능적으로 이 자리에서 누가 가장 강한지 깨닫고 말았다.

유현은 앞으로 나서려던 사람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제가 정중하게 대하니 우습게 보였습니까? 웃으면서 말하니 만만합니까?”

유현은 항거할 수 없는 압박감을 풍겼다.

“이거 하나만 알아 두세요. 이쪽이 가만히 있는 건 주변에 보는 눈이 있는 것도 있지만, 저희 쪽 아가씨들이 괜한 구설수에 휘말리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

거기까지 말한 유현은 피식 웃으며, 잔뜩 긴장한 양복 남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그렇다고 너무 얼어붙진 마시고. 누가 보면 제가 뭐 죽이려고 그러는 줄 아시겠다.”

“…….”

대표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말없이 유현을 노려봤다. 한쪽 눈에 커다란 흉터가 있는 그의 눈빛은 야생의 짐승처럼 살벌했다.

유현도 지지 않고,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이쪽을 죽일 듯 노려보는 대표와 다르게 그의 시선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윽.”

시선을 피한 것은 오히려 대표였다.

대표는 유현을 들여다보는 순간, 마치 끝없는 어둠 속에 빠져드는 환각을 봤다.

식은땀을 흘리며 한발 물러나는 양복 대표를 보며 유현은 피식 웃었다.

“정 그러면, 이따 2차 테스트에서 제대로 보여 주던가요.”

“……후회하게 될 겁니다.”

“그거참 반가운 말이네요.”

유현의 호박석 눈동자 안쪽을 비집고, 붉은 안광이 흘러나왔다.

“나한테 그런 말 한 사람치고는 멀쩡한 녀석 못 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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