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205화
서수민의 외모에 홀려 아직도 그녀를 주시하던 생도들은 그녀가 무기를 고르는 것을 보는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야구 방망이를 골랐다고? 실화야?”
“저거 진심으로 저러는 거면 좀 깨는데.”
“시험이 우습나?”
살상력이 넘치는 무기를 골라도 모자랄 판에 야구 배트 같은 걸 고르니, 생도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대부분 서수민이 테스트를 장난스럽게 여긴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겉모습에 혹해서 호의를 품었던 사람들도 그녀에게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서수민은 그런 시선을 무시하며 시험장의 위에 섰다.
“어, 유현 씨. 저거 괜찮겠어? 아무리 그래도 무기가 영…….”
임건우도 그 모습을 보며, 걱정스러운지 조심스레 물었다. 유현은 굳이 그 말에 대답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여기서 무슨 말을 해도, 사람들은 잘 듣지 않을 거다.
그러면 뭐 어쩌겠는가?
‘결과로 보여 줘야지.’
임건우도 그 이상 유현을 보채거나 하지 않았다. 상급 컬렉터로서의 직감인지, 그는 다시 시선을 돌려 서수민을 빤히 주시했다.
삐익!
귓가에 울리는 알림음과 함께 서수민의 맞은편에 새하얀 활자들이 뭉치며, 하나의 환상체를 만들어 냈다.
누더기를 기워서 만든 것 같은 괴물이었다. 몸통은 사람의 몸이지만, 목 위로 산양의 뿔이 자라난 들개의 머리를 하고 있었고, 양팔은 문어의 다리처럼 각기 3개의 촉수가 매달려 있었다.
유현은 턱을 쓰다듬었다.
‘합성수(合成獸)인가?’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기워서 만들어 낸 인조 생명체였다.
흔히들 키메라라고 착각하고는 하는데, 키메라는 원전이 명확한 신화 속의 생명체다. 저 합성수는 그런 키메라와 비교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열화 버전이었다.
‘하지만, 외모 하나만큼은 아주 흉악하지.’
양팔에 촉수와 침을 질질 흘리는 광견의 머리라니. 심지어 뿔이 자라 있어서 그런지, 마치 악마를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시험장에 바깥에서 지켜보던 생도들도 그 모습에 벌써부터 질렸다는 반응이었다.
실제로 위협적이지 않겠지만, 저 흉악한 겉모습에 겁먹지 않을 생도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오. 이게 그 환상체인가 그거구나?”
정작 합성수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마주하는 서수민은 전혀 무서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생도들은 그녀가 허세를 부리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시작해라.”
안내 요원의 말과 동시에 합성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양팔에 각기 3개씩, 총 6개의 촉수가 파도치듯 흔들렸다. 합성수는 서수민을 향해 침을 흘리며 천천히 다가왔다.
서수민은 그 모습을 보더니, 손에 쥔 야구 배트를 정면에 세웠다.
다들 그 모습에 대체 뭘 하려는지, 의아해하는 순간이었다.
파앗.
서수민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어?”
“뭐야?”
보는 눈이 없는 생도들의 입장에선 서수민의 모습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다만, 개중 눈썰미가 있는 생도들과 객석에 있는 일부 컬렉터들은 경악에 차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사라졌던 서수민은 어느덧 합성수의 지척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퍼억!
깔끔한 스윙 한 방에 머리를 터뜨려 버렸다.
그 광경에 멍 때리던 안전 요원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서, 서수민 생도 기록 1.32초입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 중에서 그 외침을 듣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모두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 아이는 누구냐. 저 생도의 후견자는 누구냐. 벌써부터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허. 이거, 참.”
그것은 유현의 옆에 앉아 있는 임건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서수민이 보여 준 그 움직임을 떠올리더니, 이내 유현에게 넌지시 물었다.
“대체, 저 아이 정체가 뭐지?”
“신기합니까?”
“아니, 신기하다는 수준이 아니잖아. 저렇게 겁 없이 달려드는 거야, 이전부터 훈련을 열심히 받았으면, 그러려니 하지. 그런데 방금 그 움직임은 도저히 갓 입학하는 생도라고 볼 수 없을 정도라고. 그래서 진짜 정체가 뭐야?”
“비밀입니다.”
장난스럽게 말하는 유현을 보며, 임건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의 시선이 멀리 떨어진 객석을 향했다.
“저 양반들도 어지간히도 놀란 모양이네. 뭐, 그럴 만도 하겠네. 자기가 데려온 애가 최고라 생각하고 서로 견제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막강한 경쟁자가 등장했으니까. 속이 타겠어. 킬킬.”
“덕분에 이쪽에도 시선이 몰리게 됐지만요.”
“뭐, 어때? 원래 이럴 때는 그냥 저런 시선을 즐기면 되는 거야.”
“건우 씨네 생도도 있을 텐데. 괜찮겠어요?”
“내 생도가 아니라, 우리 클랜 생도겠지. 내 일 아니면, 난 딱히 상관없어. 걔가 좀 싸가지가 없기도 했고.”
과연, 국내 최고 힘순찐 컬렉터의 답변다웠다.
합성수의 머리를 날린 서수민은 손에 쥔 배트의 감촉을 상기하며, 시험장에서 내려왔다. 머리가 날아간 합성수는 시체조차 남기지 않고, 텍스트로 변해 흩어졌다.
그녀가 다가오자, 생도들이 하나같이 길을 비켜주었다. 무기를 고를 때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라고 생각했는데, 움직임을 눈으로 좇지 못할 정도로 아득한 강자라는 걸 깨달은 것이었다.
자리로 돌아오자, 유라가 반겨 줬다.
“수민아 되게 멋있었어! 힘들진 않았고?”
“별거 아니었어.”
“으잉. 나도 저거랑 싸워야 하는데, 어떡하지.”
“겉모습만 무섭고 별거 아니니까, 유라 너도 침착하게 싸우면 쉽게 이길 수 있을 거야.”
“정말?”
적당히 유라를 위로하기 위한 말이었지만, 그것을 엿들은 다른 생도들은 희망을 품었다.
‘그래. 단순히 겉모습만 무섭지, 별거 아닌 환상체였을 거야.’
‘사실, 이거 엄청 쉬운 거 아니야?’
‘나도 할 수 있어!’
이 자리에 모인 생도들은 아직 자신이 최고라는 근자감이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서수민의 승리에 반신반의하다 결국 그녀가 대단하다기보다는 환상체가 약했다는 쪽으로 의견을 굳혔다.
일종의 현실도피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용기를 심어 줬다.
“다음 생도. 올라가라.”
“예!”
서수민의 다음 타자가 우렁차게 대답하며, 시험장의 위로 올라갔다. 그는 곧바로 진열대에서 무기 하나를 골랐다.
‘역시, 무기는 만병지왕인 검이지. 창이나 활, 둔기 같은 걸 누가 써? 멋도 없는 거.’
소년 생도는 검을 쥐자, 상대가 누구라도 썰어 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는 검에서 오러를 쭉쭉 뽑아내는 미래의 자신을 상상하며 히죽 웃었다.
여기서 멋진 모습을 보여 줘서 아까 눈여겨보던 예쁜 애들이 자신을 다시 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삐익!
알림음과 함께 새하얀 텍스트가 뭉치며 환상체를 만들었다. 조금 전 보았던 합성수였다.
‘할 수 있다. 나도 할 수 있어. 나는 다른 녀석들과 달라. 나는 주인공이 될 거야.’
스스로 다짐을 하듯 중얼거린 생도는 합성수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그런데.
“어, 어어?”
이쪽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합성수를 보는 순간, 조금 전의 다짐과 각오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온데간데없었다.
환상체를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갈 길을 잃었다. 침을 흘리며 촉수를 휘두르는 합성수는 안전한 벽 너머에서 지켜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으으으으!”
도망치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무서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의 이성은 합성수의 촉수가 자신의 코앞까지 넘실거리는 것을 보는 순간, 망치에 맞은 유리마냥 산산조각 났다.
“으아아아악!”
소년은 비명을 지르며, 등을 돌리며 도망치려 했다. 손에 쥔 검은 진작 바닥에 버린 뒤였다. 눈물을 질질 흘리는 그 모습은 본 안전 요원은 한숨을 내쉬며, 그사이에 끼어들었다.
요원은 순식간에 환상체를 없애 버렸다.
“박동성 생도. 실패.”
그 모습을 보며 일부 비웃는 생도들이 있었지만, 그들 또한 별 다를 바 없었다.
“으아아악!”
“사, 살려 줘!”
“꺄아악! 저, 저리 가! 괴물!”
뒤를 이은 생도들이 하나같이 합성수 하나를 쓰러뜨리지 못하고 도망치거나, 주저앉거나, 심각한 경우에는 소변을 지리기까지 했다. 특히 소변을 지린 남성 생도는 고개를 푹 숙이며, 화장실로 도망쳤다.
연이어 실패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생도들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들도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것이었다.
“역시, 이럴 줄 알았다니까?”
그 모습을 빼지 않고 지켜보던 임건우는 속내를 숨길 생각이 전혀 없었다.
“새파란 녀석들이 컬렉터로 막 각성하면, 자기가 뭐라도 된 것마냥 굴지.”
그의 시선은 아직도 합성수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해 질질 짜는 생도를 향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훨씬 더 가혹하지. 남들이 우습게 봤던 싸움조차 막상 정면에서 시도하면, 그렇지 않거든. 자기보다 훨씬 작은 치와와 하나가 이빨 들이밀며 달려들어도 어찌할 줄 모르는 녀석들이, 제 덩치보다 더 큰 괴물과 어떻게 싸우겠어?”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었다.
유현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첫 시작부터 저런 험악한 녀석을 꺼내나 싶었는데, 현실을 보여 주려고 그랬던 거군요.”
“그렇지. 또 어중간히 만만한 녀석을 꺼내면, 기고만장해 하는 놈들도 있거든. 그러니 초창기에 기를 확 꺾어 놔야 해. 컬렉터란 생각하는 것만큼 만만치 않으니까. 뭐, 그래도 특수 부대 군인처럼 막 굴릴 수는 없지. 저래도 결국엔 미성년자잖아?”
물론, 모든 생도가 다 실패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중에는 이미 충분한 각오를 한 생도들도 더러 있었다. 특히, 든든한 후견자를 지닌 생도들은 이전부터 훈련을 받아 온 덕분에 합성수를 상대로도 무난히 승점을 따냈다.
하지만, 서수민처럼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 준 생도는 아직까진 없었다.
“강유라 생도.”
“아, 네!”
다음은 강유라 차례였다. 일부 생도들은 강유라를 예의주시했다. 조금 전 압도적인 포스를 보여 준 서수민과 아는 사이이니, 그녀도 분명 무언가를 보여 줄 거라고 생각했다.
“무기는?”
“어, 없습니닷.”
“그럼, 저기서 하나 고르도록.”
강유라는 알겠다며 진열대로 쪼르르 다가가더니, 이내 적당한 무기를 하나 골랐다.
그녀의 키보다 약간 더 큰 장창이었다.
준비가 되자, 합성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으엑.”
강유라는 합성수를 정면에서 마주하자, 이루 말하기 힘든 혐오감을 느꼈다. 그 반응에 다른 생도들은 오히려 기뻐했다. 강유라는 서수민과 다르게, 자신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생도였던 것이다. 이미 망해 버린 그들에겐 경쟁자가 줄어드는 것만 한 희소식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별로 무섭진 않네.’
강유라는 합성수가 징그러울지언정 딱히 무섭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하계에 강림했던 출라판타카의 모습을 일부나마 엿봤다.
그 거대한 존재감. 하늘에서 직접 내려온 성령의 위압감은 의도치 않게 강유라의 정신력을 몇 단계나 더 위로 끌어올렸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미쳐 버렸을지도 모를 것을 목도했음에도 멀쩡한 강철같은 멘탈.
강유라는 지금 출라판타카와 합성수를 비교하며 분석하고 있었다.
‘그때 본 환상체와 비교하면, 엄청 약해 보이는데.’
강유라는 출라판타카가 성령이라는 걸 몰랐다. 그저 아주 강력한 환상체라고만 생각했을 뿐. 유현과 서수민이 그녀에게 비밀로 했기에 벌어진 착각이었다.
‘해 볼 만할지도?’
강유라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합성수를 향해 창을 내질렀다.
“에잇.”
진지함이 별로 담겨 있지 않은 맥없는 목소리. 어떻게 보면 귀엽게나마 느껴질 정도였지만, 그 결과물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퍼엉!
“엥?”
강유라가 내지른 창은 그대로 합성수의 몸에 닿더니, 상반신 채로 날려 버렸다.
창을 내지른 강유라도 놀랐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아무리 일부러 약하게 만든 합성수라 하더라도, 무슨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종이 인형 수준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런데 정작 강유라는 찌르기 한 방으로 상반신을 통째로 날렸으니, 보는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만도 했다.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시험장에서 내려온 유라가 서수민에게 물었다.
“수민아. 나 잘했어? 나 엄청 떨지 않았지?”
“안 떨고, 잘하던데? 나도 깜짝 놀랐어.”
“헤헤. 다행이다. 생각보다 쉽더라고. 아. 저기 오빠다.”
강유라는 유현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유현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1차 테스트가 끝났다.
“이제 1차 테스트 결과가 나오겠군.”
임건우의 말과 동시에 벽과 천장에 달린 전광판에서 시험의 결과를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