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204화
유현의 물음에 임건우는 재밌다는 듯 웃었다.
“하하하. 그냥 개인적인 호기심 때문에 온 겁니다. 그쪽도 꽤나 유명하지 않습니까? 강유현 텔러. 제가 봐 온 텔러 중에서 제일 괴짜라고 하던데.”
“임건우 컬렉터님. 무례한 짓은 적당히 하세요.”
말을 받은 것은 임건우의 뒤에 선 사람이었다.
정장을 입고 안경을 쓴 날카로운 인상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임건우를 무섭게 쏘아보고 있었다. 그녀는 임건우를 보좌하는 비서 최예리였다.
임건우가 넉살스레 웃었다.
“아이고, 예리야. 좀 융통성 있게 가자. 뭘 굳이 그런 걸 가지고 그래.”
“초면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실례입니다. 그리고 임건우 컬렉터님이 그 융통성을 중요시해서 저지른 일이 얼마나 많은지, 지금 여기서 하나씩 조목조목 읊어 줄까요? 저는 아직도 다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치가 떨리고요.”
“아,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고.”
최예리의 시선을 받은 임건우가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눈을 피했다.
상급 컬렉터나 되는 남자가 자기 비서에게 구박받는 진귀한 광경.
그러나 유현은 그 모습을 보면서도 임건우를 우습게 여기지 않았다. 저 남자가 저렇게 못 미더운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이 바닥에서도 유명했다.
‘모르고 봤다면, 속아 넘어가기 쉬웠겠어.’
왜냐하면 임건우는 일부러 상대방에게 방심을 유도하게 만드는, 일종의 ‘힘순찐’ 콘셉트를 가진 컬렉터였기 때문이다.
전생에서도 그는 유명했다. 그의 경박한 태도와 허물없는 말투 때문에 친해질 사람은 아주 쉽게 친해지지만, 싫어하는 사람은 정말로 싫어했다. 그러다 보니 물리적인 충돌도 곧 잘 벌어졌다.
상급 컬렉터에 어울리지 않는 경박한 태도를 질타하며, 그에게 대련을 신청하는 자들의 숫자는 두 자릿수를 넘어갔을 정도.
그런데, 임건우는 그 모든 대결에서 한 번의 패배도 겪지 않고 전부 승리했다.
거기에 운이라는 요소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전부 그의 실력으로 쟁취한 승리였다.
유현은 임건우의 책을 살폈다.
‘표지부터 황금빛을 품은 책. 지금도 강한데, 앞으로 더 성장 할 가능성이 있다는 건가?’
상급 컬렉터부터는 자신만의 확고한 이야기나 콘셉트가 있다. 흔히들 대중이 임건우를 평가하는 ‘힘순찐’도 바로 그 중 하나였다.
일부러 약해 보이게끔 모습을 보이고, 상대방의 방심을 유도한다. 그러다 중요한 순간에는 본 실력을 보이며, 자신의 능력을 더욱 부각시키는 것. 그게 임건우가 지닌 힘이었다.
물론, 유현은 굳이 그 점을 언급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쪽에 적의를 지니지 않은 사람과 척을 질 생각이 없었으니까.
한동안 임건우를 구박하는 최예리는 헛기침을 하며, 유현에게 대신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강유현 텔러님. 저희 컬렉터가 워낙 못 미더운 사람이라서. 양해 바랍니다.”
“아니, 예리야. 그래도 내가 네 상관인데, 못 미덥다니.”
“저렇게 겉은 썩어 문드러지게 보여도 속까지 나쁜 사람은 아니니, 이해해 주시길.”
“예리야. 어째 말이 좀 심하다? 나 상처 받아.”
“쯧.”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상급 컬렉터를 물어뜯는 최예리를 보면, 이쪽도 보통은 아니구나 싶었다. 유현은 웃으면서 손을 내저어 보였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뭐,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해해 주셔서 다행입니다.”
“휘유. 거 봐. 예리야. 내가 뭐랬어? 이 사람……이 아니라 텔러라면, 관대하게 넘어가 줄 거라고 말했지? 난 이럴 거라 생각했다니까? 내가 계약한 텔러랑은 완전 딴판이야.”
“……강유현 텔러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최예리는 마지막으로 주책을 부리는 임건우를 죽일 듯 노려보더니, 입을 꾹 다물었다.
임건우는 히죽 웃으며, 유현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이야. 고마워. 덕분에 잔소리를 피해 갈 수 있어서.”
“……그렇게 말해도 괜찮습니까?”
유현은 임건우의 어깨 너머에서 악귀마냥 얼굴이 일그러지는 최예리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이 남자, 콘셉트에 먹히기라도 한 것인지. 아니면, 천성부터 저런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뭐, 나중에 둘만 따로 남을 때 까이건 말건 거기까진 유현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지만.
“그래서, 댁이 보기엔 어때 보여?”
“뭐가 말입니까?”
“저기 모인 생도들.”
임건우의 턱짓에 유현은 잠시 시간을 두고 답했다.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이전 아카데미 입학생도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재능 있는 아이들이 많더군요.”
“크핫! 역시 그렇지? 하긴. 보는 눈이 있으니까, 벌써 유명한 컬렉터 둘이나 영입했던 거겠지.”
“셋입니다.”
“응?”
“제가 여기에 왜 왔겠습니까?”
유현이 씨익 웃었다.
“이번 입학식에 저희 백화 매니지먼트의 세 번째가 입학했거든요. 그래서 온 겁니다.”
“오. 그랬었군. 난 또 여기서 있어 보이는 녀석 중 하나 집어 가려는 줄 알았지.”
“그런 생각도 했었지만, 다들 임자가 있는 사람들 아닙니까?”
뼈가 있는 유현의 말에 임건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여기 입학한 녀석들 중 태반은 벌써부터 남들이 침 묻힌 녀석들이 대다수니까.”
“저기 모여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후견자들이겠죠?”
“맞아. 세계적인 대기업, 대형 클랜, 킹 메이커 매니지먼트, 정재계의 거물 등등. 하나같이 숨이 턱 막히는 놈들뿐이지. 나도 원래 저 사이에 껴 있었는데, 어후 도저히 사람 있을 곳이 아니더라고.”
떠올리기만 해도 진절머리가 나는지, 임건우는 몸을 떨었다.
유현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봐 온 임건우의 성격이라면, 저런 딱딱하고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는 지옥보다 더 끔찍한 곳일 것이다.
“그래서, 때마침 혼자 있기도 해서 호기심 차에 와 본 거야. 그런데 여기에 그쪽의 후견생도도 왔을 줄은 몰랐는데.”
임건우가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다.
그때 유현이 먼저 선수를 쳤다.
“곧 있을 비밀 입학 테스트 때문입니까?”
“엇?”
임건우가 허를 찔렸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혹시, 어디서 들었어?”
“아니요.”
“그러면…….”
“추측한 겁니다.”
유현은 별거 아니라는 듯 설명을 이었다.
“생도들의 친인척을 전부 내보냈으면서 후견자들은 따로 남긴 것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게다가 저기 모여 있는 사람들. 겉으로는 티내지 않고 가만히 입학식을 지켜보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기대감이 서려 있어요.”
“기대감이라면 어떤 거?”
“이 입학식 다음에 펼쳐질, 일반 대중들은 모르는 그들만의 이벤트 같은 것. 하지만 그렇다고 비인도적인 그런 것은 아니겠죠. 굳이 꼽자면 입학생도들의 수준을 평가하기 위한 간단한 시험이 유력. 등수 매기는 거,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중 하나잖아요.”
“흠.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물어도 될까?”
“여기 모인 사람들은 전부 다 어디 가서도 콧방귀 뀔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존심과 에고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자신이 후원해 주는 생도가 그냥 입학하는 것만 보려고 왔을까요?”
그들에겐 자신이 후원해 주는 생도가 더 높은 등급을 받는 것부터가 일종의 경쟁이었다.
유현은 굳이 뒷말을 꺼내지 않았다. 임건우는 그것만으로 충분한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네, 아주 정확해. 진짜 안목이 감탄이 나올 정도로 대단하구만.”
“과찬입니다.”
“그쪽 말대로야. 유현 씨라고 편하게 불러도 되지?”
“편하신 대로 부르세요. 저도 건우 씨라 부르죠.”
“하하하. 시원해서 좋네. 유현 씨 말마따나, 저 사람들이 모인 것도 이 이후에 벌어질 이벤트 때문이 맞아. 아, 저기 봐. 때마침 시작하네.”
[이상으로 입학식을 끝내겠습니다. 생도 여러분들은 잠시 자리에서 대기해 주시길 바랍니다.]
예정에 없던 뒷말이 나오자 일부 생도들은 당황했지만, 이미 상황을 넌지시 전해 들은 몇몇은 기다렸다는 듯 눈을 빛냈다.
뒤이어 교관들이 나서서 생도들은 안내했다.
“자, 우리도 일어나자고. 재미난 구경거리를 놓칠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보호자들 동의 없이 저렇게 해도 됩니까?”
“목숨 걸고 싸워야 할 컬렉터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의외의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 법. 어차피 소수 학부모가 따져 봤자, 저 사람들 입김보다 세겠어? 어서 가자고.”
임건우가 일어났고, 유현도 따라 일어났다. 최예리가 그 뒤를 따랐다.
셋은 강당과 연결된 옆 건물로 이동했다.
안쪽에는 입학생도들이 교관에게 상황을 전해 듣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정해진 입학 테스트에 당황하는 생도들도 있었지만, 나머지 대다수는 기대감에 의욕을 불태웠다.
다들 힘을 지닌 미성년자이기에 자신이 특별하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이 자리를 빌미로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뽐낼 기회가 저절로 찾아온 것이다.
임건우가 입을 열었다.
“테스트라 해도,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야. 크게 2가지가 전부니까. 첫 번째는 간이 환상체 사냥. 두 번째는 생도 간의 대련.”
“환상체라…….”
“환상체라 해도 실제 사상세계의 환상체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짜 올린 가짜에 불과하지. 생도들이 상대해야 할 녀석들이라 실제 환상체보다 아주 약화시켰어. 살상력도 거의 없지.”
“하지만, 모습은 같겠죠.”
“맞아.”
모습이 같다는 것은, 힘이 약하더라도 환상체가 내뿜는 압박감은 진짜와 흡사하다는 소리였다.
“여기서부터 깡이 좋은 녀석들과 그러지 못한 녀석들이 갈릴 거야. 그렇게 간단한 등급을 매긴 다음에 대련은 비슷한 녀석들끼리 붙이는 거지.”
“묘하게 주먹구구식이네요.”
“명확한 순위를 바라는 게 아니니까. 그냥 상급, 중급, 하급을 나누는 용도에 가까워. 뭐, 저쪽 꼰대 어르신들은 그래도 최소 탑10 정도는 뽑길 원하는 거 같지만.”
임건우가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이곳에 모인 대부분 후견자들은 자신의 생도가 순위권에 들길 바라는 눈치였다. 벌써부터 서로를 향해 우리 쪽 생도가 더 낫니 어쩌니 하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유현 씨는 괜찮겠어? 준비는 안 한 거 같은데.”
“네. 뭐, 저희 쪽 생도는 괜찮을 겁니다.”
“하긴. 그 검후와 광랑을 뽑았을 안목이니, 이번 세 번째도 범상치는 않겠네. 하지만 너무 쉽게 보는 것도 좋지 않을걸? 다른 생도들도 조기 교육을 빡세게 받아서 만만치 않을 테니까.”
“그건 안 봐도 알겠더군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뭐, 본인이 괜찮다고 하니. 내가 왈가왈부 할 처지는 아니겠네. 그래서 그 세 번째는 어떤 아이야?”
서수민이 어떤 사람이냐는 물음에 유현은 잠시 고민했다.
대답을 망설이기보다는, 워낙 그녀를 수식할 말이 너무 많다 보니, 뭐부터 꺼낼지 갈피가 잡히지 않은쪽에 가까웠다.
“그냥, 뭐. 대단합니다. 아주.”
“오. 꽤 자신이 있나봐? 흐하하. 뽑은 컬렉터마다 이명을 얻었을 정도니, 그럴 법도 하겠네. 혹시 그 세 번째도 나중에 컬렉터가 되면, 어떤 이명을 얻을지 생각해 둔 거라도 있어?”
“아. 그건 있습니다.”
“그래? 어떤 건데?”
임건우가 살짝 기대감을 담아 물어봤다.
유현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천마(天魔)요.”
* * *
‘흐음. 꽤나 재미난 짓을 벌이는구나.’
서수민은 입학 테스트를 할 거라는 교관들의 말을 듣고 주변 반응을 살폈다.
‘일부는 이미 알고 있는 거 같고, 일부는 모르는 거 같고. 정보의 차이인가? 아는 녀석들이 하나같이 나쁘지 않은 재능을 지닌 걸 보면 뒷배가 있는 것 같군.’
그녀는 애초에 이런 곳에서 정당함을 바라지 않았다. 전생에서도 느꼈고 현생에서도 느낀 것은, 이 세상은 절대 공평한 곳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수, 수민아. 우리 어쩌지?”
강유라는 갑자기 정해진 테스트라는 말에 잔뜩 긴장한 낌새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이런 게 있다고 듣지 못했다. 환상체와 싸우라니! 각성을 했다 하더라도, 강유라에게는 긴장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걱정하지 마. 어차피 테스트라 위험한 건 아닐 거야.”
“그렇겠지?”
“응. 그리고 유라 너 정도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거야.”
“그걸 어떻게 아는데?”
“으음. 그냥 감?”
감이라고 말했지만, 강유라의 수준은 갓 각성한 사람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지난번 출라판타카의 싸움에 휘말린 여파인지, 강유라 또한 막대한 텍스트의 보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직 의식하지 못했지만, 지금 강유라의 신체적 능력은 이곳에 모인 생도 중에서 최상위권에 속했다.
“다음. 서수민 생도, 앞으로.”
“아. 유라야 내 차례인가보다. 먼저 갈게.”
“수민아 힘내.”
“응.”
서수민은 교관의 안내에 따라 특수처리 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지나갈 때마다 대기하고 있던 생도들이 그녀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이곳에 백발을 지닌 것은 서수민이 유일했고, 그녀의 외모 또한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누구지? 저런 얘가 있었나?’
‘이름 들어본 적은 없으니, 듣보 같은데. 예쁘긴 하네.’
생도들, 그중에서 이미 테스트를 전해 들은 생도들은 저들끼리의 정보망이 형성된 뒤였다.
그런 정보망에서 서수민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별 볼 일 없는 상대라는 소리.
그들은 서수민에게서 관심을 껐다. 지금 중요한 것은 다른 경쟁자들이었다.
‘내겐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는 건가?’
서수민은 시선 안에 담긴 뜻을 읽으며, 작게 웃었다.
‘뭐,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안에 들어서자, 안전 요원이 다가오며 물었다.
“혹시, 사용하는 무기가 있나?”
“있긴 한데, 가져오지 않았어요.”
“없다면, 저곳에 있는 것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 하나 고르도록.”
서수민은 한쪽에 진열된 무기들을 살폈다. 온갖 다양한 냉병기가 있었고, 개중에는 서수민이 처음 보는 것들도 더러 섞여 있었다.
검, 창, 둔기류는 기본이며, 심지어 검도 종류별로 다양했다.
서수민은 본래 자신의 검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조금 색다른 걸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여기서 검을 쥐고 진지하게 하는 것도 우스운 꼴이기도 하고. 사실 다른 무기도 어떤지 흥미가 돋긴 했지.’
서수민은 잠시 무기들을 둘러보다가 마음에 드는 걸 하나 발견했는지, 그것을 손에 쥐었다.
“음? 아니 그건…….”
옆에서 지켜보던 안전 요원도 서수민이 든 무기를 보며 난색을 표했다.
“이게 좋아서요.”
서수민은 싱긋 눈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가 손에 쥔 것은 은색 야구 방망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