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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203화 (203/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203화

아카데미의 광활한 부지에는 사람들이 가득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1년에 한 번 있는 커다란 축제는 온갖 다양한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충분했다.

곳곳에 깔린 노점상에서 달콤한 음식 냄새가 풍겨 왔고, 입학생들과 친인척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시끄럽게 떠들었다. 미래의 유망주를 찾으려는 컬렉터들과 특종을 노리는 기자들과 방송국 사람들도 더러 보였다.

여러 인간군상이 한곳에 바글바글 모인 문전성시.

유현이 이와 비슷한 광경을 본 것은 권지아를 영입하기 위해 찾아갔던 컬렉터 훈련소 수료식 때가 유일했다.

인파에 살짝 질린 서수민이 입을 열었다.

“사람이 정말로 많네요.”

서수민이 가족의 배웅을 받아 아카데미 부지로 들어온 것이 조금 전이었다.

지금은 바깥, 그것도 주위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보니, 그녀는 시선을 의식해서 제 나이에 어울리는 말투를 사용하는 중이었다.

유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파 너머로 보이는 아카데미 건물을 바라봤다.

햇빛을 받아 눈부신 흰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건축물을 보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왜 그러는데?]

‘전생에서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이었으니까.’

전생의 유현은 컬렉터가 되고 싶었지만, 선택받지 못해 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컬렉터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확인하면서도, 이런 커다란 이벤트 축제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보면 마음이 꺾일 것 같아서. 자신은 갈 수 없는 곳을 가는 다른 또래를 보면, 질투심에 미쳐 버릴 것만 같아서.

[지금은 괜찮고?]

‘지금이야 멀쩡하지. 애초에 더는 아카데미에 집착할 필요가 없으니까.’

오히려 아카데미 생도가 유현을 보면 부러워한다. 그는 훌륭한 컬렉터를 키운 수완가이자, 어지간한 컬렉터보다 훨씬 더 강한 텔러였으니까.

실제로 주위에서 유현을 바라보는 시선은 굉장히 많았다.

‘헐. 저기 봐. 저 남자. 엄청 잘생겼다.’

‘누구지? 당연히 입학생도는 아닐 테고. 입학생도의 가족이나 후원자인가?’

‘입학 대상이 옆에 있는 백발 꼬마인가? 처음 보는 사람이네.’

‘아니, 잠깐만. 저 사람 강유현 텔러 아니야?’

이제 유현도 유명세를 많이 탄 덕분인지 유현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컬렉터와 관련된 것에 대해서는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유현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컬렉터와 함께 싸우는 텔러, 유현은 어떻게 보면 천연기념물보다 더 희귀했다.

[야. 사람들이 다 너 쳐다본다. 이러다 사인해 달라고 달라붙는 거 아니야?]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미 손은 써 놨으니까.’

유현은 일부러 기운을 흘리며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일반 사람들은 다가가고 싶어도 본능적으로 기운 때문에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왜 이러지?’ 하며 의아해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서수민이 유현을 힐끔 봤다.

“의도적으로 기운을 흘리고 계셨네요.”

“그야 당연하지. 이러지 않으면 귀찮게 달라붙을 사람들이 많으니까.”

“뭐, 덕분에 저도 편해서 좋긴 하지만…… 시선이 몰리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서수민은 자신에게도 관심이 쏠리는 것을 느꼈다.

유현이 어떤 의미로 워낙 유명인이라서 그가 데리고 온 입학생도인 서수민도 관심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 시선의 일부 중에는 그녀를 향한 질투도 섞여 있었다.

“그보다 두 언니는 데려오지 않아도 돼요?”

“두 사람은 지금 수련하느라 바쁘잖아. 게다가 여기에 그 두 사람까지 왔으면, 주변이 더 뒤집어졌을 걸?”

유현이 기운을 흩뿌려도 다가올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는 판국이다. 여기에 권지아나 강혜림 둘 중 하나만 나타나도 사람들은 길을 막아설 게 자명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서수민이 가르쳐 준 기술에 푹 빠져서 다른 것에 관심이 없는 형국이었다.

유현이 혼자 온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서수민은 그렇구나 싶으면서도, 유현과 단둘이라는 사실이 나쁘지 않았다.

“여기에 계속 서 있기도 뭣하니, 움직이자.”

“아, 네.”

유현이 서수민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몇 여성들이 자그마한 탄성을 터뜨렸지만, 두 사람은 신경 쓰지 않았다.

입학식이 준비된 강당의 안에 들어서자, 벌써부터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나 됐다.

“오.”

서수민은 자신의 또래 아이들을 보며 눈을 빛냈다.

각자 지정된 복장을 갖춘 저 아이들이야 말로 이번에 입학하게 된 그녀의 동기이자 라이벌. 세계의 미래를 짊어질 차기 컬렉터들이었다.

“나름 재미있는 사람이 많아 보이네요.”

“나도 그렇게 느꼈어.”

서수민의 말에 유현도 동의했다. 당장 유현의 시선에만 보이는 은빛 책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었다.

긴장하는 사람도 있고, 가족들과 떨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역시 가장 빛나는 생도는 자신의 능력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진 자들이다.

그들에겐 다른 사람들이 내뿜지 못하는 아우라가 있었다.

‘물론, 그것이 절대적인 지표는 아니지. 어떻게 교육을 하고 가능성을 다듬느냐에 따라서 원석이 보석이 될 수도 있고, 싸구려 돌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멀리서 누군가 이쪽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아! 오빠! 수민아!”

워낙 큰 목소리여서 그랬을까. 일순 강당 안쪽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모였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강유라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유현이 있는 곳으로 도도도 달려왔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무마하고 싶은지, 강유라가 책망하듯 물었다.

“왜 이제 왔어. 한참을 기다렸잖아.”

“미안. 사람들이 많아서 잠시 지체됐어.”

“아, 확실히. 밖에 사람들 어어어엄청 많더라. 나도 여기 와서 엄청 긴장했어. 수민이 너는 괜찮아?”

“나야 뭐, 딱히 긴장되지는 않으니까.”

“역시, 그럴 줄 알았어. 그래도 다행이다. 수민이 너 없었으면 나 진짜 울었을 듯.”

서로 반가워서 조잘대는 두 사람을 보며 가만히 있자니, 강유라의 보호자도 이쪽을 알아보고 다가왔다.

“오랜만이에요.”

“네. 오랜만입니다.”

유현은 유라의 어머니, 신은숙 여사에게 그리 대답하며, 옆에 선 남성에게 시선을 돌렸다.

똑 부러지는 신은숙과 다르게 분위기가 유하고, 어딘가 힘이 없어 보이는 남성이었다. 그는 유현을 보며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옆집 아저씨 같은 포근함이 가득한 인자함이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강준석이라고 합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문득, 유현은 과거 아버지와 함께 나들이를 갔던 풍경을 떠올렸다.

그때도 아버지는 자신에게 저렇게 웃어 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때보다 지금이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보였지만.

분명, 추억 속의 아버지가 맞았다.

“……강유현입니다.”

유현은 자신의 아버지, 강준석을 보며 그리움을 느꼈다.

그것은 오랜 세월에도 퇴색되지 않은 감정 중 하나였다.

강준석은 허허 웃었다.

“허어. 정말 우리 유라 말 대로네요. 저와 많이 닮았어요.”

“아빠. 내 말 맞지? 그치? 유현 오빠랑 울 아빠 닮았다니까? 다 그래서 오빠 처음 봤을 때 삼촌인 줄 알았어.”

강준석은 외동이라 당연히 위아래로 형제가 없었다. 그는 처음 딸인 유라의 말을 들었을 때는 마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으레 이 나이대 소녀가 흔히들 하는 과장이라고만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정말로 강유현을 직접 만나 보니, 유라의 말이 맞았다는 걸 느꼈다.

서수민도 신기하다는 듯 강준석과 유현을 번갈아 살폈다. 이전부터 유현이 유라와 닮아서 서로 남매지간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유라의 아버지와 유현의 모습은 형제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다만, 유현의 인상이 송골매처럼 날카롭고 꽤나 이지적이라면.

강준석은 타인에게 전혀 해를 끼칠 것 같지 않은 순한 양 그 자체였다.

외모를 제외하면 두 사람의 분위기는 말 그대로 천지 차이.

유현은 적당히 웃으며 맞장구쳐 주었다.

“세상에 닮은 사람이 많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저는 사람이 아니니까, 더더욱 그렇겠죠.”

변명하듯 말하는 유현을, 어머니인 신은숙은 어딘가 안타깝다는 듯 바라봤다. 유현은 그 걱정스러운 시선을 느끼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아버지와 마주하게 된 시점에서 미련 따윈 없었다.

오히려 더는 볼 수 없었던 사람을 다시 보게 된 지금에 감사함마저 느꼈다.

[곧 입학식이 시작되오니, 생도들은 강당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아. 이제 시작이네.”

“우리도 가서 줄 서자.”

유라가 서수민의 손을 잡아끌고 강당의 안쪽으로 사라졌다.

“저희도 이만 가 봐야겠습니다. 이제 가족들도 안에 머물 수 없으니까요. 유현 씨는 후견자 역할로 여기에 남으시죠?”

“네. 그렇습니다.”

“허허. 우리 유라가 항상 유현 씨 이야기를 많이 해서 조금 더 이야기 좀 나누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기회가 되면 다음에 또 만나죠.”

“네. 물론이죠. 오늘 만나 뵙게 돼서 반가웠습니다. 살펴 가세요.”

“예.”

이제 곧 입학식이 시작되면, 생도와 컬렉터 후견자를 제외한 사람들은 출입이 제한되기 때문에 두 사람은 아쉬워하면서 강당을 나갔다.

유현은 부모님이 사라질 때까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후견자’의 역할로 이곳에 남게 된 유현은 적당히 강당이 내려다보이는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컬렉터 아카데미라 그런지 강당도 천장을 가득 덮은 돔 경기장보다 훨씬 더 커다랬다. 빈자리를 찾는 건 쉬웠다.

좌석에 앉자 시야 아래로 보이는 광경은 질서정연했다. 제복을 입은 생도들이 오와 열을 맞춰 나열해 있었고, 그 주위를 아카데미 교관들이 절도 있게 지키듯 둘러싼 모습이었다.

유현은 서수민과 강유라를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그녀들의 책이 내뿜는 빛이 다른 생도들과 비교해서도 아주 찬란했다.

‘다른 생도들도 만만치는 않지만, 그래도 수준의 차이가 나는 건 명확하네.’

한국 컬렉터 아카데미는 최초의 아카데미라는 명성 때문에 세계에서 자질이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모이는 곳이다.

해외에서도 날고 긴다 하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서 경쟁하는 곳이라 컬렉터 아카데미에서 높은 순위를 얻는 것은 어지간하면 불가능할 정도다.

그걸 감안해도, 유현은 강유라와 서수민이 절대 꿀리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그 밖에 눈에 띄는 사람들이 더러 보이는군.’

유현의 시선이 일부 생도들에게 머물렀다.

외국에서 왔는지, 머리카락이 화려한 생도들이 은근히 많았다. 과연 컬렉터 후보생들답게 하나같이 개성이 가득했다.

‘게다가 후견자들도 나름 한가닥 하는 사람들이고.’

객석에는 유현처럼 후견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는데, 전부 다 매체에서 한 번 정도는 얼굴이나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사람들뿐이었다.

‘대기업 오너, 유명 컬렉터도 그렇고 해외 클랜 출신 사람들까지 와 있군.’

이곳 객석에 모인 사람들의 권력과 재력만 합쳐도, 작은 나라 하나 정도는 없앨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아카데미 요원들도 잔뜩 긴장한 기색이었다.

조금이라도 서로 간에 마찰을 빚으면, 보통 일로는 끝나지 않을 테니까.

‘단순한 아카데미라고 해서 마음 놓고만 있을 수는 없겠네.’

유현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누군가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유현은 옆에 앉은 사람을 바라봤다.

다른 빈자리도 많은데, 굳이 옆에 앉았다는 것은 이쪽에 볼일이 있다는 소리였다.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옆에 앉은 사람은 어딘가 경박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였다. 다만, 그것이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오히려 나른한 눈동자와 격식 없는 행동과 잘 어울렸다.

유현은 빠르게 남자의 모습을 살폈다.

머리를 길게 길러 목 언저리에 묶은 꽁지머리에 턱에는 제대로 다듬지 않은 수염이 자라나 있다. 눈동자는 나른하지만, 그 안에는 숨길 수 없는 형형한 빛이 있었다.

아직 날씨가 완전 더워진 것도 아닌데, 통이 큰 반바지에 반팔 티셔츠를 입은 모습은 아무리 봐도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저한테 용무 있으신가요?”

“아, 이거 내 정신 좀 봐. 제 이름은…….”

“압니다. 네메시스 클랜의 임건우 컬렉터님. 맞죠?”

“어? 저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까?”

“오히려 모르는 게 이상하죠. 유명하신 분인데.”

남자의 이름은 임건우.

네메시스 클랜에 소속된 컬렉터로서 국내에서도 그 수가 많지 않은 상급 컬렉터였다.

정확한 등급은 종2품. 상급 컬렉터 중에서도 최소 중간 이상은 가는 대단한 실력자였다.

“그래서, 네메시스 클랜에서 제게 무슨 볼일이라도?”

유현이 먼저 말을 가로채며 묻자, 임건우의 눈에 이채가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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