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202화
“수민 씨가 본 두 사람은 어떻습니까?”
“대단한 자질을 지닌 원석. 그 말밖에 안 떠오르는군.”
칭찬을 받는 것은 강혜림과 권지아인데, 유현은 괜히 자기가 뿌듯해졌다.
“혜림 언니는 말 그대로 재능을 타고났다. 검을 어떻게 휘두르면 가장 이상적일지, 어떻게 공격을 해야 상대방에게 가장 잘 먹히는지 알고 있어. 검로가 투박한 걸 보면 절대 누군가 가르쳐 준 게 아니야. 스스로 본능적으로 터득한 거지.”
“지아 씨는요?”
“지아 언니는……흠. 솔직히 말하면, 가장 평가를 내리기 힘들군. 분명, 검 자체는 완성이 돼 있어.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이질감이 느껴진단 말이지. 혜림 언니와 다르게 재능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야. 그보다는, 마치 아주 오랫동안 반복해서 수련을 한 사람에게서만 볼 수 있는 거에 가깝지.”
너무나도 날카로운 통찰에 유현은 내심 감탄했다.
그녀가 괜히 초월자에 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서수민은 안목만으로 상대방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명확하게 판단했다.
순수한 무(武)와 관련될 경우에는 그녀의 눈은 유현보다 훨씬 더 정확했다.
“한쪽은 타고난 재능을 본능적으로 펼치는 쪽. 다른 한쪽은 오랫동안 몸에 때려 박은 경험과 지식으로 상대하는 쪽. 말 그대로 재능과 노력, 양쪽에 극단적으로 치우친 사람들이야.”
서수민은 말을 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정정하겠다. 지아 언니는 특히 노력 수준이 아니야. 저건 단순한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지. 그보다 훨씬, 훨씬 더 치열하고 집요한 거에 가까워. 굳이 말하자면, 그래. 광기(狂氣)에 가깝겠지.”
광기.
서수민의 평가는 정확했다. 유현도 권지아를 보면서 간혹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으니까.
권지아의 행적을 담기엔 노력이라는 단어는 너무나도 작고 비루했다.
“그러면, 우리 천마님 입장에선 어떻습니까? 두 사람이 더 발전 할 여지가 있어 보입니까?”
“일단, 혜림 언니는 확실히 향후 발전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해 보인다. 그때 싸운 것을 얼핏 보니까 싸울 때 뇌기를 사용하는 것 같더군. 뇌기는 빠르고 강력하지. 성향과 아주 잘 어울려. 반대로 지아 언니는…….”
“지아 씨는?”
“흐음. 이건 잘 모르겠다. 나도 확실히 평가를 내리기 힘들어.”
서수민은 처음으로 잘 모르겠다고 실토했다.
권지아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다듬어진 존재였다. 서수민의 입장에선 20대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녀에게 수백 년의 관록이 들어가 있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것까진 파악하겠지만, 문제는 그 이후의 가능성이었다.
“분명, 지아 언니는…….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재능이라는 것이 없어 보인다. 순간 대처 능력이 떨어져. 센스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어. 그럼에도 혜림 언니와 동등하게 싸우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훈련을 거듭해서겠지. 하지만 거기엔 분명 한계가 있어.”
권지아가 지닌 강함이란 보통 사람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무수한 노력과 반복 행동의 결과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위기 상황을 직면하면, 저마다 타고난 센스에 따라 즉석에서 대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권지아에겐 그런 재능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된 건, 컴퓨터에 내재된 프로그램의 코드처럼 어떤 상황이 와도 그것을 받아칠 수 있도록 반복 학습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 한계라는 걸, 지아 씨가 극복이 가능할까요?”
“보통은 힘들지. 보통은.”
서수민은 말끝을 흐리더니, 뒷말을 덧붙였다.
“지아 언니가 그 보통이 아니라면, 충분히 바뀔 수 있다. 아니, 이미 그것을 보여 주고 있군. 저 말도 안 되는 재능으로 저 정도의 경지까지 도달했다는 건, 이루 말할 수 없는 광기의 산물이겠지.”
서수민은 유현의 곁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녀가 사용하는 화장품의 향기가 유현의 코를 간질였다.
“저 정도의 사람은 아무리 나라도 예상할 수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틀을 거부하고, 그것을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넓히는 자의 가능성은 감히 읽어 낼 수 없으니까. 그래서 놀란 거다. 그대도, 그리고 언니들도. 전부 다 예상하기 힘든 사람들뿐이라서.”
“천마님의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흥. 이 정도는 당연한 거다. 이 몸이 몸담고 있는 매니지먼트인데, 이렇게까지 해 주지 않으면 오히려 곤란하지.”
때마침 대련을 끝낸 두 사람이 땀을 닦으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후아. 힘들어라.”
“그래서, 평가는 어땠지?”
저 둘도 이쪽이 자신들을 평가하려는 걸 알았기에 꽤나 궁금한 눈치였다.
유현이 대신 답했다.
“나쁘지 않았다네요.”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서수민이 뒷말을 받았다.
“언니들은 분명 강하지만, 분명 그때의 싸움으로 느꼈겠지. 지금도 부족하다고.”
강혜림과 권지아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그녀들도 출라판타카와의 싸움 이후로 자신들의 나약함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모든 힘을 다해도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지는 암담함. 보통 사람이라면 그것을 마주하는 순간 마음이 꺾이고, 고개 숙여 그들을 숭배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자리의 그 누구도.
감히 함부로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도와주겠다.”
서수민이 씨익 웃었다.
그녀는 두 사람에게 각자 무엇을 가르치면 좋을지, 이미 생각을 끝낸 뒤였다.
“남은 일주일. 확실하게 할 테니, 기대하도록.”
전직 초월자의 가르침을 거절하는 사람은 없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6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다음날이면 컬렉터 아카데미의 편·입학식이 시작된다. 그것은 곧 강유라와 서수민이 아카데미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했던 고된 훈련은 오후가 저물어 갈 때가 돼서야 끝났다.
멤버들은 각자 휴식을 취하며 거실에 모였다. 최근 바빠서 얼굴을 잘 보이지 않던 백서련과 성유찬도 모였다.
“강유현 텔러님. 저희는 왜 모인 거예요?”
방에만 틀어박혀 있던 성유찬이 모처럼 전부 모인 것이 의아한지 물었다.
“내일 수민 씨 아카데미 입학인데, 그래도 전날 조촐하게 축하 파티라도 해야죠. 게다가 수민 씨가 저희 매니지먼트 들어왔을 때도 제대로 축하하지 못했었잖아요.”
“아. 그러긴 하네요.”
“흐음. 굳이 나한테 그러지 않아도 상관없거늘.”
서수민은 조금 부담스러운지 그렇게 말했지만, 그렇게 싫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 모여서 이렇게 축하해 주는 것이 조금 기쁘기까지 했다.
“그래서, 멤버는 여기 모인 사람들이 전부인가요?”
백서련의 물음에 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부른 사람은 더 있습니다. 아, 때마침 왔네요.”
“네?”
그녀가 뭐라 되묻기도 전이었다.
띵동.
벨 소리와 함께 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음? 뭐야. 다른 사람을 더 부른 게냐?”
“저희끼리만 하면, 아쉬워하는 사람이 더 있거든요.”
유현이 인터폰을 통해 문을 열어 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실로 두 사람이 들어왔다.
“야호! 수민아 나왔어!”
“어, 어? 유라야?”
소파에 몸을 파묻고 있던 서수민이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설마 자신의 친구인 강유라가 올 줄 몰랐는지, 살짝 허둥거렸다.
서수민은 그녀에게 늘어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늦었다.
“흐흐흥. 수민이 너 되게 편해 보인다? 학교에서는 맨날 단정하게 지냈잖아~.”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보다 여긴 왜……?”
“왜긴. 당연히 파티하러 왔지! 게다가 오늘은 나 여기서 묵고 갈 거야. 엄마도 허락해 줬거든. 못 들었어?”
“그, 그게…….”
서수민은 할 말이 궁해지자, 유현을 강하게 쏘아봤다. 왜 유라가 오는데, 미리 언질을 주지 않았냐는 무언의 항의였다.
유현은 그녀의 시선을 가볍게 무시하며, 다른 손님 한 명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랜만이네요. 경서 씨.”
“네. 유현 씨도 오랜만. 그보다 이사했네요? 너무해라. 집들이 할 때 불러 주시지 그러셨어요. 저 엄청 기다린 거 몰랐죠?”
“조금 급하게 이사한 거라서 그럴 겨를이 없었네요. 그래서 오늘 초대한 거예요. 혹시, 마음 상하지는 않으셨죠?”
“에이, 그냥 해 본 소리였죠.”
주경서는 깔깔거리며 웃더니,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주경서라고 합니다. 콜렉팅 매거진 팀장을 맡고 있어요.”
특히 권지아와 서수민을 향하는 그녀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그녀도 본능적으로 저 두 사람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주경서가 공과 사를 확실히 분류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
그녀는 묻고 싶은 것이 많지만, 모처럼 열린 파티의 분위기를 헤치고 싶지 않아 분위기에 가볍게 편승했다.
“만나서 반가워요. 그쪽은요?”
“어, 네? 아, 저, 저는 서, 성유찬이라고 합니다.”
성유찬은 명량하고 넉살 좋은 주경서의 모습에 멍때리다 뒤늦게 자기소개를 했다.
태생적인 아싸인 성유찬으로서는, 이런 미인이 자신에게 웃으면서 친근하게 말을 거는 것 자체가 꿈처럼 느껴졌다.
“유찬 씨도 여기 백화 매니지먼트 소속이죠? 담당하는 업무는 뭐에요?”
“아, 네. 저는 그러니까 해킹 전문이라서…….”
자기도 모르게 정체를 까발린 성유찬이었지만, 주경서는 그게 농담이라 생각했는지 자지러져라 웃었다.
“아하하하. 유찬 씨 되게 재밌으시다.”
“네, 네. 감사합니다.”
유현은 은근 어울리는 두 사람을 보며 피식 웃었다. 어느새 곁에 다가온 건지, 서수민이 유현을 툭툭 쳤다.
“……비겁한 녀석. 유라를 인질로 잡으려 들어?”
“그러게 평소에 저를 적당히 놀리셨어야죠.”
“이 원한은 잊지 않겠다.”
“유라야~ 수민이가 너한테 할 말 있데~!”
“어? 수민아 뭐라고?”
“어? 아, 아니 유라야 그게 아니라…….”
순식간에 다시 유라에게 끌려가는 서수민을 보며 유현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축제는 조촐하게 열렸다. 조촐하게라 하더라도 사람이 7명이다 보니, 필연적으로 시끄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꺄하핳. 아니, 그러니까 걔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세상에 네가 너무 부럽대!”
“아, 언니. 벌써 취했어?”
“아니 서련아. 언니가 벌써 취할 사람으로 보이니?”
특히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역시나 주경서였다. 그녀는 시작과 동시에 술병을 땄고, 벌써 그녀의 주위에는 빈 병이 쌓여있었다. 그럼에도 지치지 않는지, 술잔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보다 못한 백서련이 말릴 정도였다.
성유찬은 술이 약한지 소주 한 잔만 마셨는데, 뻗어서 구석에 누워 있었다.
‘흠. 시작부터 리타이어라니. 유찬 씨 뭔가 짠하네.’
유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술을 가볍게 홀짝였다. 옆에서 강혜림이 끼어들었다.
“앗! 유현 씨도 술 마신다!”
“……? 제가 뭐 마시면 안 됩니까?”
“유현 씨 미성년자잖아요! 1살도 안 된 아기!”
“또 그 소리. 혜림 씨 취했습니까?”
“에헤이. 제가 취하긴 뭘 취해요!”
아무리 봐도 취했다. 유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보통 컬렉터는 신진대사가 일반인보다 워낙 뛰어나서 어지간하면 취하지 않는다. 분위기라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강혜림이 취할 정도라면.
“대체, 얼마나 독한 걸 마신 겁니까?”
그녀가 말할 때마다 진한 알코올 향이 물씬 풍겨 왔다. 단순히 소주가 아니라 양주를 물처럼 들이킨 수준이었다.
“유현 씨가 1살? 뭐야. 재미있는 이야기 같은데. 나도 끼워 줘!”
심지어 재미있는 소식을 놓치지 않는 주경서까지 끼어들었다. 그녀의 한쪽 손에는 양주병이 쥐여 있었다. 범인이 여기 있었군. 유현은 머리가 아파졌다.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기는 무슨. 경서 씨. 그거 알아요? 유현 씨 텔러로 태어난 지, 아직 1년도 안 됐대요!”
“뭐? 꺄하핳! 뭐야. 그러면 우리 나중에 유현 씨 돌잔치 열어 줘야 해?”
“푸흐흫! 도, 돌잔치래……! 저도 그 생각 했었는데!”
서로 북 치고 장구 치는 강혜림과 주경서를 본 유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분위기 메이커 하나만 있을 뿐인데도, 파티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후끈 달아올랐다.
옆에서 주스만 홀짝이던 강유라가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오빠. 술 맛있어? 나 한 번만 먹어 봐도 돼?”
“어허. 유라 너, 미성년자가 무슨 술이야 술은. 음료수 있잖아. 그거나 마셔.”
“에이. 요즘 얘들 다 마실 사람은 다 마신다고. 게다가 뭐 어때. 보호자 있는데.”
“마시면 큰일 난다니까. 내일 너 입학하잖아. 컨디션 조절부터 해야지.”
“맞아, 유라야. 그런 거 마시면 안 돼.”
“수민이 뭐야. 오빠 편을 드는 거야?”
“어, 어?”
유라는 서수민을 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와. 완전 실망~. 수민이 너 그래도 내 편은 들어줄 줄 알았는데.”
“아, 아니. 그게 아니라……그래도 우린 미성년자잖아. 내일 입학식인데, 그러면 안 되지.”
“그래? 그러면 이것만 말해 줘. 수민이 너, 술 마신 적 있어 없어?”
“어, 어? 아니, 그야 전생에는…….”
“마셨네 마셨어! 여기서 나만 못 마셨네! 나만 못 마셨어!”
장난스럽게 외치는 강유라에게 서수민은 쩔쩔맸다.
권지아도 묵묵히 술을 홀짝이며 안주를 집어 먹는데, 주경서는 이번 타깃을 그녀로 잡았는지, 곁에서 이것저것 캐물었다. 강혜림은 재밌다는 듯 부추기고, 백서련은 필사적으로 말린다.
시끄럽지만 즐겁고, 경박하지만 따뜻하다.
즐겁고 평화로운 그 모습은 보기만 해도, 가슴 한쪽이 뭉클해졌다.
다시는 얻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평화였기에, 더더욱 그러는 걸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이 일상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기에 유현은 다시 한번 더 자신의 목적을 상기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리라고.
그리고, 다음날 화창한 아침.
유현은 아카데미의 입구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