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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200화 (200/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200화

[백련(白蓮)]

아주 오래전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던 거대한 살리오 제국에서 만들어 낸 무구입니다.

오랫동안 전해지는 이야기가 없어 차원 상점의 구석에서 썩어 가던 것을 한 실력 있는 각인사가 가치를 알아내고, 새로운 모습으로 이끌어 냈습니다.

마도 공학으로 정점을 찍었던 살리오 제국의 마도 공학의 정수가 담겨 있습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용자에게 막대한 힘을 주거나, 혹은 그를 위협하는 양날의 검이 될 것입니다.

………

……

…-사용자와 함께 성장합니다.

-[형상 변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유현이 기억하던 것과 비슷했다.

처음 각인을 막 새겼을 때는 이름도 살리오 제국 장검이었는데, 이름을 붙인 이후로는 시스템 또한 백련으로 인식하게 됐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다음. 백련의 특수 창이었다.

[특수 창]

-한계 초월

-(사용자의 수준이 낮아 잠겨 있습니다)

-(사용자의 수준이 낮아 잠겨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수준이 낮아서 잠금 되어 있던 3개의 창 중 하나가 열려 있었다.

유현은 [한계 초월]이라 적힌 부분을 확대해서 확인했다.

[한계 초월]

질량과 부피 변화의 한계가 대폭 증가합니다.

‘이런 거였군.’

백련은 신화급 장비로 주인과 함께 성장하는 무구다.

이전까지 유현의 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아서 기본적인 능력만 사용했지만, 생명의 열매와 과장 진급으로 격이 오른 덕분에 백련 또한 전보다 훨씬 더 강화됐다.

‘자체 내구도도 늘었지만, 특히 한계 초월이 마음에 드네.’

백련은 원래부터 형상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지만, 거기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검으로 바꿨다 해서 길이를 수십 미터 이상 늘릴 수는 없었으며, 늘어나는 질량도 적정선이 정해졌다.

한계 초월은 그러한 변화의 폭을 아주 넓혀 줬다.

‘마음만 먹으면 깃털처럼 가볍게 할 수도 있고, 집채만 한 바위처럼 무겁게 할 수도 있어. 심지어 부피나 모형의 변화도 더 자유로워져서 그물 같은 거로도 바꿀 수 있겠고, 창의 경우에는 수십 미터 바깥까지도 늘릴 수 있겠네.’

첫 해금된 능력치고는 기존에 있는 능력의 상위 호완에 가깝다.

어떻게 보면 다소 심심한 편이었지만, 유현은 단순한 위력의 측면보다는 범용성에 주목했다.

‘일격필살의 기술 같은 건 바라지 않아.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는 범용성이지.’

무엇이든 벨 수 있는 검이 있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검이 닿지 않는 곳에 있거나 혹은 검 한 자루로도 막을 수 없는 공격을 가한다면 의미가 없다.

반대로 아주 튼튼한 방패가 있다 하더라도, 적을 쓰러뜨릴 수 있는 결정력이 없다.

유현이 바라는 것은 능력이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 아닌 밸런스의 균등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해금된 백련의 특수 능력은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몸을 풀 필요는 없겠지?”

훈련장에 도착한 서수민은 손목을 돌리며 물었다.

유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명의 열매를 심장으로 대체한 이후로 유현의 육체는 말 그대로 한없이 궁극에 가까운 것으로 바뀌었다.

격한 운동 전에 스트레칭을 통해 긴장을 머금게 하는 과정조차 지금의 유현에겐 필요가 없었다.

그의 육체는 어떤 국면을 맞이해도 그것에 즉석으로 대응할 수 있게끔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정점 수준으로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이 정도면 모든 무인이 탐을 내는 육체였다.

“본래 시작하기에 앞서 조금 손대중을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지만, 지금 모습을 보니 전혀 그럴 필요가 없어 보이는군.”

“제가 과장으로 진급해서 그런 걸 겁니다.”

“그래. 설마하니, 직급이 올랐다고 본인의 수준이 높아지는 종족이 있을 줄이야. 뭐,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애초 목적으로 삼았던 것보다 수월해졌으니까. 빠르면 더 좋은 거지.”

“그래서, 어떤 식으로 가르칩니까? 일단 지식부터? 아니면, 대련을 통해서?”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첫 시작은 오히려 아주 단순할 테니까.”

“그러면 손목은 왜 푸시는 겁니까?”

“이거? 그냥 손목이 좀 결려서. 왜? 기대했나?”

서수민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최근 백화 매니지먼트에 온 이후로 유현에게 자주 보여 주는 얼굴이었다.

“아쉽게도 이 몸은 가녀린 하와와 여중생이라서 말이야.”

“하와와 여중생은 또 뭡니까?”

“뭐, 요즘 여중생 하면 딱 이런 말투라던데?”

“그런 거 아닙니다.”

어디서 이상한 걸 주워들었나 보다.

“지금 수준으로 그대와 정면으로 붙었다간 육체의 피지컬에서 밀리고 만다. 즉, 그대가 짐승처럼 나를 덮쳐도, 나는 제대로 반항하기 힘들다는 소리지.”

“무공이 있으시면서 엄살 부리시긴.”

“함부로 쓸 능력이 아니다. 내가 정말로 그대를 쓰러뜨리고 싶어 진심으로 의념을 일깨우면 모를까, 어찌 은인에게 그럴 수 있을까. 즉 당해 줄 수밖에 없다는 거다.”

“아까부터 자꾸 제가 덮친다는 전제로 말씀하시는데, 전혀 그럴 일 없으니 마음 놓으시죠?”

“허어. 이제 와서 그런 소리라니. 그때 내 턱을 잡아 올리면서 내 몸도 마음도 다 갈취해 가지 않았더냐.”

“아니, 그건…….”

어감이 이상했지만, 유현은 반박하지 못했다.

솔직히 그때는 본인도 제정신이 좀 아니었다고, 가면의 힘과 생명의 열매가 주는 과도한 에너지에 고취돼서 무의식적으로 나온 말이었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도 좀 꼴사나운 변명 같지 않은가.

유현의 동요를 읽어 낸 서수민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녀가 이쪽을 골리려는 것임을 깨닫고, 유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장난은 그만하고 빨리 시작이나 하죠. 그래서 뭐부터 하면 됩니까? 검으로 초식잡기? 아니면, 운기조식?”

“그럴 필요는 없다. 그대가 배울 이 기술은 무기에 구애되지 않으니까.”

“그런 것치고는 검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거야 내 손에 가장 잘 익은 거라서 그렇지. 그 성령 녀석을 상대할 때는 검을 사용할 정도로 다급했던 거고. 하지만 실제로 칠마흑천신공은 무기에 구애되지 않는 무공이다.”

서수민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손목과 함께 팔뚝 절반까지 드러난 새하얗고 가는 손이었다.

“그때 내가 선보였던 기술 기억하는가? 그때는 힘이 부족해서 검을 사용했지만, 전성기에는 이 손가락만으로도 펼칠 수 있었다. 맨손으로도 펼칠 수 있는 무공이 바로 칠마흑천신공이지.”

“기공과 비슷한 거로군요.”

“그렇다. 무기를 드는 것은 그러한 기술을 더 날렵하게 펼치는 것을 도와주지.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된다. 근본은 맨몸으로 싸우는 기술임을.”

유현은 천마였던 서수민의 환상체를 떠올렸다.

새까만 마기를 풀풀 풍기며 모습조차 보여 주지 않았던 그녀는, 생각해 보면 검을 뽑지도 않고 맨손으로 혈영대원들을 아무렇지 않게 상대했었다.

손을 휘두르면 공간이 찢겨 나갔고, 발을 찍으면 주위 땅이 움푹 가라앉았다.

심지어 그것은 그녀가 보여 줬던 기술에 비하면, 그야말로 기초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별의 존재에 근접했던 초월자의 힘이란 그런 거였지.’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바로 시작하죠. 뭐부터 하면 됩니까?”

“우선 모든 것을 다 비워라.”

“네?”

유현은 순간, 비우라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서수민이 설명을 이었다.

“그대의 몸은 매우 완벽하지만, 문제는 그 안쪽에 힘이 가득 차 있다는 거다. 그대가 내게 배울 것은 말 그대로 새로운 힘. 기존의 것을 내 것으로 바꿔야 하지만, 그것은 아주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릴 거다.”

“아. 뭔지 알 거 같군요. 기존의 힘에 익숙한 저니까, 우선 가진 것을 싹 다 비우고, 가르쳐 주는 것을 채우라는 거죠? 그래야 받아들이는 게 더 빠를 테니까요.”

물이 가득 찬 잔에 잉크를 부어도, 그것은 물과 섞여 희석된 잉크가 되고 만다.

반면에 물을 전부 비우고 잉크를 채우면, 안에 담기는 것은 순수한 잉크다.

두 힘이 서로 충돌하지는 않고 무난하게 섞이지만, 그럼에도 진짜 잉크의 색을 알고 느끼려면 기존의 물을 비울 필요가 있었다.

“바로 그거다. 이해가 아주 빨라서 좋군.”

눈에 확 뜨일 정도로 기뻐하는 서수민의 모습을 보며, 유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전생의 삶을 생각하면, 이 짬에 눈치를 못 채는 것이 더 이상했다. 다만 서수민은 아직 거기까지는 잘 모르니 좋아하는 거였고.

“곧바로 시작하면 될 거다. 가지고 있는 힘을 소모해라. 중요한 것은 몸에 어떠한 힘이 한 줌도 남지 않는 거다. 모든 것을 비우는(空) 것. 그것이 내 가르침의 기초다.”

“알겠습니다.”

유현은 힘을 어떻게 소모해야 하는지 묻지 않았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서수민이 멀쩡했다면, 혹은 지금의 유현보다 더 강했다면 그녀가 직접 대련으로 유현의 기운을 모조리 뺏을지도 몰랐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서수민은 아직 힘을 회복하지 못했고, 유현도 굳이 그런 거추장스러운 방법을 택할 정도로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힘은 치열한 싸움만으로 소모하는 것이 아니다.

강제로 힘을 일으키고 사용하지 않기만 해도, 힘은 빠르게 소모된다.

“…….”

유현은 자리에 편하게 앉아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츠츠츠츠.

유현의 몸 주위로 새하얀 활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서수민은 잠자코 그 광경을 지켜봤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동자에 이채가 가득했다.

‘호오. 역시나.’

그녀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저 정순한 힘. 내공과는 급이 다른 저 힘과 검은 슈트 위로도 느낄 수 있는 강건한 육체까지.

유현이야말로 그녀의 진전을 잇기 위해 세상이 만들어 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완벽한 인재였다.

무엇보다 눈을 감고 있는 유현의 얼굴을 볼 때마다 묘하게 빨려드는 기분이었다.

속눈썹도 길고 콧대도 오똑하다. 눈을 떴을 때와 감았을 때의 분위기가 또 사뭇 달랐다. 외모만 보면 이 세계에서 흔히 연예인이라 불리는 자들과 견줄 만도 했다.

묘하게 친구인 유라와 닮은 것 같기도 했고.

‘그런데…….’

서수민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어느덧 30분이나 지났는데, 유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힘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언제 끝나는 거지?’

저 정도의 힘을 끝없이 방출하며 30분을 보냈는데도, 여전히 힘이 넘쳤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것은 유현도 마찬가지인지, 감았던 눈을 뜨며 떨떠름하게 말했다.

“어, 음. 이거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뭔가.”

“힘이 안 줄어드는데요?”

“뭐라?”

“많이 소모하려고 하는데, 소모하는 족족 새로 차오르고 있어서요.”

“아니, 무슨 영약을 물처럼 마시기라도 한 건가?”

영약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심장 대신 바꾸긴 했다.

서수민도 유현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힘을 써야 하는데, 쓰는 즉시 빠르게 차오르니 방법이 턱 하니 막힌 것이다.

유현은 이걸 어쩌면 좋나 싶다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어쩌면 이거면 될지도 모르겠는데요.”

유현은 이제는 방법이 익숙해진 검은 가면을 만들었다.

그의 손목을 타고 흘러나오는 검은 활자가 손바닥 위에 모이는 광경은 본인이 봐도 신기했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유현조차도 이 ‘검은 활자’는 새로운 것이었는데, 심지어 이 가면은 오직 검은 활자로만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어째 변한 것 같은데?”

서수민의 뛰어난 눈썰미가 가면의 미묘한 변화를 잡아챘다.

실제로 그녀의 말마따나 가면의 외형이 아주 약간이지만 변했다. 뿔이 더 길어지고, 가면 자체가 조금 더 입체적으로 변해 있었다. 더욱 흉악해진 외형은 덤이었다.

유현의 양손에 생겨난 가죽 장갑도 변했다.

장갑의 손등 위로 재질 불명의 검은 징이 박혀 있었다.

‘과장으로 진급하며, 격이 오른 것 때문인가?’

유현은 아마 그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격이 오른 만큼, 그가 소지하고 있는 이야기의 수준 또한 함께 증가하니까.

설마 그것이 이렇게 외형의 변화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지만, 유현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걸로 뭘 어쩌게?”

“이 힘을 쓰려고요. 제가 가진 기술 중에서 이게 힘의 소모가 가장 크거든요.”

이것 말고는 노틸러스 소환이 있기는 한데, 70m가 넘는 거대 잠수함을 건물 안에서 소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유현은 곧바로 가면을 쓰고, 정신을 집중했다.

기왕 힘을 소모하는 김에 강화된 라플라스의 힘을 확인해 볼 참이었다.

본래라면 미래를 읽어 내기 위한 현재의 정보가 부족하기에, 라플라스의 힘을 사용해도 실제로 미래를 볼 수는 없었다. 굳이 이렇게 하는 것은 밑져야 본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음?’

가면을 쓴 유현의 눈동자 너머로,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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