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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99화 (199/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99화

데미알로스 부장을 본 유현이 처음으로 든 생각은 ‘이질적이다’였다.

그의 존재는 사진 위에 덧그려진 묵화(墨畫) 같았다. 이제는 한물간 특정 장르에서 나오는 악신의 추종자 같은 외형은 둘째치고서,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 주변 환경에 영향을 주는 것 같았으니까.

만약, 시꺼먼 어둠이 질량을 가지면 그런 느낌일까?

주위 풍경이 뒤틀리며, 데미알로스를 중심으로 빨려드는 착각이 일었다.

마치, 블랙홀처럼.

‘저자가…… 펜타그램 부서의 부장.’

시화실에 단 8명밖에 없다는 부장 중 하나.

셀레스티나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셀레스티나가 어딘가 부장에 어울리지 않게 허울 좋고 격식을 차리지 않지만, 그 내면에는 흉포한 야수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면.

데미알로스는 보기만 해도 끔찍한 수천 마리의 벌레를 한꺼번에 풀어놓은 것 같았다.

무엇보다 유현의 경계심을 일깨우는 것은 그가 등장했을 때 아무런 ‘전조’조차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유현은 표정을 관리했다.

“데미알로스 부장님이셨군요. 그래서 제게 무슨 볼일이신 거죠?”

유현의 질문에 데미알로스가 수염을 떨며 낮게 웃었다.

“볼일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라네. 단지 축하의 말을 전하려 그랬지. 강유현 과장. 오늘 승진했다고 했지? 아주 놀라워.”

데미알로스는 여전히 뒷짐을 쥔 채 말했다. 입이 없어서 촉수 부분을 진동시켜서 특정 주파수로 소리를 전달하는 것 같았다.

“보통 이렇게 빠르게 승진하는 텔러는 처음이지. 심지어 자네는 소속도 없다고 들었네만.”

“……네. 지금은 혼자인 것이 편해서요.”

“의지가 아주 충만하군. 혼자의 힘으로 거기까지 올라가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우리 부서의 녀석들도 그 기개를 보고 배웠으면 좋겠어.”

문어 얼굴에 박힌 두 개의 붉은 눈동자가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유현은 누군가의 미소가 이렇게나 소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유현은 데미알로스가 무슨 속셈으로 자신을 찾아온 건지 경계했다.

굳이 꼽자면, 둘 중 하나이리라. 그의 능력을 높이 사서 영입을 하거나, 혹은 지금까지 지구에서 벌인 방해 공작 때문에 경고를 하거나.

이미 척을 확실히 진 이상, 전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묘한 타이밍에 본인이 직접 찾아왔어. 그것도 남들 눈을 피해서 온 이곳까지 말이야.’

단순히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타이밍이 공교로웠다. 분명 데미알로스는 처음부터 이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정면에서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나 또한 펜타그램의 부장에 대해서는 궁금하던 차였고.’

펜타그램은 훗날 지구의 종말을 몰고 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부서다. 종말을 막으려는 유현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척을 질 수밖에 없는 관계였다. 그런 펜타그램의 수장이자 머리인 데미알로스가 직접 그를 보러 왔다.

유현은 저쪽에서 친히 찾아왔으니, 물러서기보다는 역으로 정보를 뽑아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차분해진 마음과 이성이 본능에서 기인한 불쾌감을 서서히 밀어냈다.

‘흠?’

유현의 변화를 감지한 데미알로스가 속으로 감탄사를 흘렸다.

유현의 경계심을 끌어올리게끔 한 것은 그가 의도한 바였다.

상대방의 가장 폭발적인 감정인 혐오감을 일부러 돌출시키게끔 만들어 이지를 흩트린 뒤, 상황을 이쪽에서 유리하게 이끌어 나가는 것.

그것이 데미알로스가 주로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곧바로 침착함을 되찾다니. 도저히 얼마 전까지 정사원이었던 텔러라고는 믿을 수 없는 정신력이로군. 단순히 운이 좋아서 과장을 단 게 아니야.’

데미알로스는 유현을 얕잡아보지 않았다. 유현은 충분히 사나운 맹수였다.

같은 부장들조차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그에게 충분히 송곳니를 박아 넣을 수 있었다.

‘재미있군.’

데미알로스는 유현의 평가를 더욱 상향시키기로 했다.

욕심이 난다. 저 정도의 재능을 지닌 녀석이 펜타그램 부서에 온다면, 어쩌면 자신의 뒤를 이어 부장을 달 수 있을지도 몰랐을 텐데.

데미알로스는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유현의 눈빛을 보는 순간, 둘의 사이에는 최소한의 타협점조차 없다는 것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깨닫고 말았다.

‘그렇기에 안타까워.’

저런 뛰어난 텔러를 자신의 손으로 끝내야 한다니.

그런 속마음을 숨기며, 데미알로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어떤가, 과장이 된 기분은?”

“좋습니다. 승진이 싫은 텔러는 없겠죠. 날아갈 거 같습니다.”

“흠. 내가 너무 당연한 걸 물었나 보군.”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게 느껴지더군요.”

“음?”

유현은 자신의 포부를 숨기지 않았다.

단순한 허세인가, 혹은 이쪽을 떠보기 위한 블러프인가.

데미알로스는 그것을 고민하다 이내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 꿈이란 크게 갖는 게 좋지.”

“데미알로스 부장님도 그렇습니까?”

“그렇다네. 나 또한 내가 아직 정정하다 믿고 있으니까.”

“부장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혹시 임원이 되고 싶으신 건가요?”

“그렇게 들릴 수도 있겠군.”

이쪽의 속내를 들여다보려는 유현의 태도에도 데미알로스는 웃었다.

유현을 비웃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 이 대화를 나누는 상황 자체가 즐거웠다.

유현과 데미알로스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수 싸움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리샤도 그것을 몰라볼 정도는 아니라서 숨죽인 채 둘을 지켜봤다.

“그러는 자네는, 임원직의 자리가 탐나나?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을 생각하면, 중앙실에서도 눈독을 들이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데미알로스는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깨달은 것이 있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그자의 성격을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말이란 곧 상대방의 의지를 대변하는 수단이다.

말에는 의지가 깃들어 있으며, 의지란 곧 그자가 지닌 사상이나 신념, 목적의 집합체다.

미숙한 자는 미묘한 어조, 사소한 동작, 시선의 방향 같은 것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단서를 제공한다. 본인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말이다.

“아직 과장의 자리조차 제게는 과분합니다.”

‘마치, 강철 같군.’

반면, 유현은 그런 미숙한 텔러와는 달랐다. 그는 능숙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표면적인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납득시키며 가장 중요한 것은 드러내지 않는다.

저 정도라면, 과장은커녕 차장급 텔러라 해도 믿을 정도다.

“하지만, 중앙실에서 특혜를 주겠다는 제안을 할 수도 있을 테지.”

“그렇다면 거절해야죠. 특혜는 본사의 공평한 경쟁이라는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자에게 어느 정도의 혜택을 주는 것은 조직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지. 한 가지 규정에만 매달리는 것은 쇠퇴를 부를 뿐이네.”

“그것은 부장님의 뜻입니까?”

“회장님이라도 그러셨을 걸세.”

쉼 없이 주고받는 공방을 본 아리샤의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수준이 달라.’

그녀가 지금까지 만나 온 텔러, 컬렉터들과 나누는 담화는 지금의 것과 비교하면 어린아이 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둘은 품 안에 단검을 숨긴 채 서로에게 먼저 숨기고 있는 것을 드러내라고 종용하며, 자신은 그런 게 없다고 잡아떼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절로 숨이 막혔다. 이 싸움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부장님은 규정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그것은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냐에 따라 다르겠지. 부당한 것을 응당 올바르게 고치는 것은 변화가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까.”

“설사, 그것을 위해서 다른 자들의 손을 빌린다 하더라도 말입니까?”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그럴 필요가 없겠지. 하지만 손이 부족하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네.”

“만약, 그 상대가 정말 구제할 도리가 없는 악인이라도 말인가요?”

“누군가에게 악인이라 불리는 자라도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면, 우리에겐 악인이 아니라네. 하나의 조직은 감정으로 돌아가지 않지. 필요하면 손을 잡는다. 그게 책임질 자리에 선 자의 태도일세.”

“그렇군요.”

둘은 그렇게 한동안 서로의 시선을 교차했다. 둘 중 그 누구도 눈동자를 돌리지 않았다.

아리샤는 이 숨 막힐 듯한 고요 속에서 끝없이 부풀어 오르는 긴장감을 느꼈다.

유현과 데미알로스의 사이에 끔찍한 괴물 하나가 서서히 몸집을 불리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뭐야. 여기서 뭐 하냐?”

제삼자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이게 누구인가?”

데미알로스는 불청객을 보면서 기분이 상했다는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셀레스티얼 빙 부서의 부장님 아니신가?”

“데미알로스.”

붉은 머리의 미녀, 셀레스티나가 가늘어진 눈동자로 데미알로스를 주시했다.

설마하니, 데미알로스 본인이 직접 움직여서 유현과 마주했을 줄이야.

어째 묘한 불안감이 느껴져서 유현을 찾아 돌아다녔는데, 그 행동이 정답이었다.

“평소라면 바깥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 양반이, 오늘따라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평화로운 공간에 모습을 드러냈을까? 댁네 과장 하나가 저지른 일 때문에 꼬리 자르느라 바쁘지 않나?”

“꼬리라니.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네만. 그리고 나는 꼭 이유가 있어야만 밖에 나오지는 않는다네.”

“과연 그럴까? 댁은 절대로 이유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지나가는 개도 아는 사실인데.”

“헛소문이로군. 나는 그저 대단한 텔러 하나가 나타났다는 소문에 확인 차 왔을 뿐이야.”

“그럼, 이제 확인했으니 된 거네?”

셀레스티나는 데미알로스를 향한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그녀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그에게 경고를 날렸다.

“됐으면 이제 꺼지시지? 이 후배는 나와 나눌 이야기가 있거든.”

비키지 않는다면, 폭력이라도 휘두를 기세였다. 데미알로스는 셀레스티나를 잠시 우묵한 시선으로 주시하더니, 이내 등을 돌렸다.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럴 생각이었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검은 연기처럼 자리에서 사라졌다.

유현은 데미알로스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식은땀을 잔뜩 흘리던 아리샤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려는 것을 겨우 면했다.

셀레스티나는 짜증 나는지 머리를 거칠게 긁었다.

“야. 괜찮냐?”

“네, 저는 괜찮습니다. 아리샤는…….”

“나, 나도 괜찮아.”

“후우. 저 빌어먹을 문어 새끼. 진짜 방심을 할 수 없게 만들고 있어요. 저 문어 새끼가 별말 안 했지?”

“예. 이쪽을 좀 떠보려고 하는 것 빼면요.”

“그 정도면 다행이네. 저 새끼랑 대화 나눴다가 정신 이상해진 신입 텔러들이 은근 많거든. 심약한 놈은 미쳐 버리기까지 했을 정도니까, 말 다 했지. 말 그대로 걸어 다니는 재앙이야. 대꾸하려 들지 말고, 다가오면 그냥 피해.”

“후우, 그러죠.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유현은 정신적으로 피곤해졌다.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유현은 문득, 자신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건지 깨달았다.

‘집이라니.’

백화 매니지먼트를 집이라고 부르게 되다니.

유현은 그 사실이 못내 웃겼다.

‘그래. 이젠 그곳이 나의 집이지.’

그가 돌아가야 할 곳.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곳.

가족과 함께, 다시는 입에 담을 수도 없다고 생각했던 단어를 다시 느낀다는 것이 이렇게나 다행이라는 걸.

유현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 * *

“늦었다.”

유현의 복귀를 기다리고 있던 서수민은 목소리에서부터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팔짱을 끼고 있던 그녀는 다리를 까닥였다. 반응을 보면 아무래도 유현이 돌아오길 오랫동안 기다린 것 같았다.

“진급식만 하고 일찍 돌아온다더니, 대체 지금이 몇 시인지는 아는 거냐?”

“죄송합니다. 잠시 일이 생겨서요.”

“혹시, 회식이나 뭐 그런 것이라도 있던 건가?”

“하하.”

유현은 어째서인지 회식하고 늦게 돌아와 마누라에게 바가지를 긁히는 남편의 기분을 맛보면서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도 의도치 않게 데미알로스에 이어 셀레스티나와 만나 시간이 지체됐으니까.

“그대는 오늘부터 내게 칠마흑천신공을 배우기로 했지. 그런데 해가 중천을 넘어서 오후가 다 지나갈 때 돌아오면 어쩌자는 거냐. 스승을 이토록 애타게 만들다니. 참으로 불충한 제자로다.”

“어…… 벌써 제자와 스승 관계입니까? 저 구배지례 합니까?”

“필요 없다! 어서 수련장으로 따라오너라!”

유현은 약속도 약속이거니와 자신이 늦은 것도 사실이라 별말 없이 서수민을 따라 훈련장으로 향했다.

“그보다.”

앞서가던 서수민은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조금 전부터 품고 있던 생각을 꺼냈다.

“떠나기 전과 지금, 꽤나 달라졌구나.”

유현은 그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았다.

유현은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했다. 즉 이는 텔러로서 유현의 격이 한층 더 높이 올랐다는 소리였다.

“네. 승진했으니까요.”

존재로서 격이 올라갔다는 것은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얻게 된 변화가 있었다. 유현이 품게 된 힘의 총량이 늘어난 것은 둘째 치고, 지니고 있는 이야기의 깊이 또한 이전보다 훨씬 더 심오해진 것이다.

‘그리고…… 백련의 새로운 기능이 해금됐지.’

유현은 여전히 브로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백련의 정보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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