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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98화 (198/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98화

“무, 무무무무무무슨.”

아리샤가 말을 더듬었다.

곧바로 차분함을 되찾은 그녀는 자신을 골리기 위한 거짓말이라 생각했는지, 깔보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흐흥, 뭐야. 그런 농담 하나도 재밌지 않거든? 솔직히 뭐, 인정해. 내가 밑에서 바로 치고 올라오는데, 조바심이 들만도 하지. 그래도 거짓말을 할 거면, 좀 그럴싸한 걸 해라. 대리 단지 얼마나 됐다고, 과장이야? 과장이.”

“뭐라는 거야. 진짜라니까.”

“아니, 그러니까…….”

“이걸 봐.”

유현은 아리샤에게 자신에게 날아온 공문을 보여 줬다. 진급식에서 새로 추가된 인원 1명이 생겼다는 안내였는데, 거기에 떡하니 강유현의 이름 세 글자가 찍혀 있었다.

유현의 이름을 본 아리샤의 동공이 점으로 수축했다. 세세하게 뜯어 보니, 분명 중앙실에서 내려온 공문이 맞았다.

‘대체, 언제?’

아리샤는 문득, 어젯밤 수정된 공문이 내려왔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냥 적당히 오탈자나 수정한 거라고 생각해서 확인을 안 했었는데, 설마 이런 중대한 변동 사항이 있었을 줄이야.

아리샤가 시선이 땅을 향했다. 고개를 푹 숙인 그녀는 주먹을 꽉 쥐고,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이.”

“이?”

“이걸로 이겼다 생각하지 마! 다음엔 내가 반드시 이길 거라고!!”

“어? 야, 야!”

유현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외친 아리샤는 그대로 도망치듯 자리를 떠나 버렸다.

유현은 멍하니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백련이 키득키득 웃었다.

[쟤도 참 한결같다. 너랑 둘이 있는 거 보면, 진짜 재밌다니까?]

‘놀리지 마.’

[뭐래. 자기가 제일 놀려 놓고.]

‘……크흠.’

유현은 딱히 반박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 * *

유현이 진급식을 위해 회장에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2번째였다.

구경하러 온 텔러들은 유현의 얼굴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최연소 대리를 단 유현은 이미 천체주식회사에서 아주 유명했고, 대부분이 얼굴을 알고 있었다.

인간의 형상을 한 텔러는 매우 소수였으니까.

그런 유현이 이번 진급식에서 얼굴을 들이민 것이다.

그것도 손님으로서가 아닌, 또다시 주역으로.

‘아니, 승진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과장? 그것도 무소속이? 그게 가능해? 회장님 자식이어도 안 될 거 같은데.’

‘어제인가 공문이 수정됐다고 하더니, 저 녀석 때문이었나?’

유현을 향하는 시선은 대부분 경외심이 가득했다.

이 자리에는 정사원을 제외하면 대리가 가장 많고, 과장급도 어느 정도 섞여 있었다.

과장급 텔러들은 유현의 성장을 경계했고, 대리급은 유현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했다.

유현은 그 시선을 받으면서도, 안색하나 변하지 않았다.

문득, 옆에서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만 살짝 돌려 확인해 보니, 아리샤가 뚱한 표정으로 유현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 자리에 와서야 정말로 유현이 과장 진급을 한다는 걸 실감했다.

‘이따가 나 좀 봐.’

아리샤는 눈빛으로 그렇게 말했다. 유현은 그녀가 정확히 뭘 말하고자 하는지 몰랐지만, 이상하게 뜻이 대충 이해 갔다.

곧이어 진급식이 시작됐고, 둘의 시선은 정면으로 향했다.

-과장으로 진급하는 강유현 외 다섯은 이 시각 부로 승진이 확실시되었으며, 앞으로도 본사의 무궁한 발전을 위한 노력을 기대하겠습니다.

이전에도 들었던 형식적인 말. 하지만 모든 것이 똑같지는 않았다.

진행자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당혹스러움이 서려 있었다. 그것은 당연히 규격 외의 성장세를 보인 유현을 향한 놀라움 때문이었다.

정작 유현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자신이 이런 자리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응당 마땅한 일이라는 듯,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모두 진급자들을 위해 박수.

짝짝짝짝.

회장이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유현은 자신이 처음 이 자리에 섰을 때를 떠올렸다. 약 3개월 전이었지만, 그 사이에 있던 일들을 생각하면 이상하게 먼 과거처럼 느껴졌다.

그때도 분명, 마음속으로 크게 다짐을 했었다.

지금 이 순간의 영광을 즐기되, 멈춰 서지 말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자고.

‘그렇게 다시 이 자리에 섰어.’

누구보다 빠르게 이곳에 섰다는 것은, 그의 지난 3개월의 삶이 절대 헛되지 않았다는 걸 의미했다. 전례가 없을 정도의 승진 속도가 그걸 증명했다.

어쩌면 앞으로는 조금은 천천히 해도 지장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달려온 속도만으로 칭찬받아 마땅했으니까.

하지만, 유현은 여기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 이 자리에 설 거야.’

예전보다 더 나은 지금을.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누군가가 이제 됐다고, 충분히 했다고 말하며 멈추라 해도 멈추지 않으리라.

지금, 이 순간조차도 그에게 있어서 이야기의 시작점에 불과하니까.

“감사합니다.”

유현은 박수를 쳐 주는 텔러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담담하게.

* * *

본사 직원의 휴식을 위해 만들어진 천체주식회사의 인조 공원.

유현은 그곳에 구비된 야외 테이블에서 아리샤와 마주 본 채 앉아 대화를 나눴다.

“이건 불공평해.”

“뭐가?”

아리샤가 볼멘소리로 중얼거렸고, 유현이 되물었다.

본래라면 진급이 확인된 이후 바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모처럼 함께 승진을 한 동기와 만났으니, 시간을 조금 정도 할애해 줄 수는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진급할 수 있는 거지? 그것도 과장 자리를?”

아리샤는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유현을 강하게 쏘아봤다.

그녀의 시선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의 진실을 촉구하고 있었다.

“그야 내가 잘나서 그런 거지.”

“아니야. 잘났다고 그렇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어. 게다가 너는 아직도 부서에 소속되지 않은 무소속이잖아. 그런 네가 다른 누구보다 빠르게 승진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

유현은 반박하지 못했다. 아리샤의 말이 백번 옳았으니까. 유현도 막 텔러가 됐을 때, 자신이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니 오죽할까?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현실이었다.

“난 네가 회장님의 숨겨진 핏줄이라 해도 믿을 거야.”

“텔러가 무슨 핏줄이야.”

“왜. 마음만 먹으면 솔직히 번식하는 거야 가능하잖아. 안 해서 그렇지. 혹시 알아? 회장님이나 높으신 분들이 하계의 누군가와 자식을 만들었을지.”

“그리고, 그게 나다?”

“그게 아니면, 이 상황이 말이 될 리가 없잖아.”

그런가?

너무 확신을 담아 말하는 아리샤의 말에 유현은 오히려 이쪽이 아리송해졌다.

[그럴 리가 없잖아.]

백련은 어이가 없는지,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무튼! 네가 회장님 핏줄이 아닌 이상 이럴 수 있을 리가 없어.”

“네가 당혹스러운 것도 이해는 하는데, 나는 누구와도 연관이 없는 평범한 텔러거든?”

“평범한 텔러는 승진을 그렇게 빨리 안 해.”

“알았어. 정정할게. 나는 누구와도 연관 없는 비범한 텔러거든?”

“지금 말장난하자는 거야?!”

“아니, 그렇게 따지면 너도 역대급으로 빠른 승진을 하고 있잖아.”

“그럼, 뭐 해! 너한테 또 뒤처졌는데!”

아무래도 아리샤는 유현이 과장이 된 것 보다, 유현이 과장이 됨으로서 뒤처진 자신의 처지를 가장 짜증 나 했다.

자존심이 강한 그녀이기에 이번 패배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무튼, 나는 너랑 동기에 같이 첫 미션까지 했던 텔러야. 회장님의 숨겨진 자식이니 뭐니, 그런 게 아니라고.”

“나도 알아. 그냥 너무 짜증 나서 한마디 해 봤어.”

아리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테이블 위로 엎어졌다. 허리까지 길게 내려오는 은발이 붉은 피부 위로 흐트러지자, 묘한 색상의 대조를 보였다.

유현은 그녀에게 무슨 위로의 말을 전할까 하다 입을 다물기로 했다. 여기서 그가 무슨 말을 해도 기만이 지나지 않았다.

아리샤가 손끝으로 자신의 양 뿔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제엔장. 대체 언제쯤이면 널 따라잡을 수 있을까?”

“그렇게 따라잡고 싶어?”

“당연하지! 나는 말이야, 태어났을 때부터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고. 나는 역대 최고의 천재 텔러이며, 그 누구에게도 뒤처지는 게 용납되지 않는 자신감의 화신이라고!”

“정말 대단한 자신감이네. 근데 뒤처졌잖아.”

“그, 그거야……네가 워낙 규격 외라서 그런 거고!”

“어허, 아리샤 대리. 상급자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이지?”

유현이 짐짓 꾸짖는 어조로 말하자, 아리샤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그녀도 모를 리가 없다. 동기라 하더라도, 승진의 차이에 따라 결국 급이 나뉘는 이 현실을.

대리를 단 유현을 따라잡아 같은 대리로 올라갔다 생각했지만, 유현은 어느새 과장의 자리를 차지했다.

명목상 유현은 아리샤보다 상급자라는 소리다.

“그으으으…….”

“강유현 과장님~ 하고 한 번만 부르면 용서해 주지.”

“……죽어도 싫어.”

“부르면, 내가 과장되는 팁 알려 줄게.”

“정말……?”

아리샤의 눈동자가 크게 떨렸다. 유현이 던진 미끼가 너무 컸다. 아리샤는 이게 함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말에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끄러움 때문인지, 아리샤의 불그스름한 피부가 훨씬 더 붉어졌다.

아리샤는 잘 익은 홍시마냥 달아오른 얼굴로,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억지로 움직였다.

“가, 강…….”

“강?”

“가앙유우혀언…….”

“똑바로 말해. 뭐라는지 모르겠다.”

“강유현…… 과, 과장님.”

수치스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 아리샤의 눈동자에는 미약하지만, 눈물마저 맺혀 있었다.

“제게…… 승진 팁 좀…… 알려 주세요.”

“흐음. 완전 만족스러운 대사는 아니지만, 뭐 못 알려 줄 건 없지. 나는 너보다 상급자니까. 자비를 베풀어 줄 수는 있잖아?”

“크흑.”

상급자라는 말이 그렇게 치욕스러웠던 걸까? 입술을 잘근잘근 깨무는 아리샤는 그야말로 폭발하기 직전의 화산 같았다.

그녀는 오늘 유현을 만나며 대리가 됐다고 자부하던 과거의 자신을 저주했다.

대체, 왜 그런 짓을 저질러서는!

“컬렉터들한테 잘해 줘.”

유현의 말에 아리샤가 고개를 들었다.

“뭐?”

“컬렉터들 잘해 주라고. 등쳐 먹을 생각 말고, 하나의 인격체로. 아니, 함께 나아가는 동료라 생각하고 대해. 그게 팁이야.”

“그게 무슨 팁이야!”

캬아아악! 결국, 아리샤가 폭발했다.

“네가 그렇게 말 안 해도, 나는 컬렉터랑 사이좋거든?!”

“그거 다행이네. 네가 계약을 맺은 컬렉터들, 듣기만 해도 확실히 재능 있는 사람들이야. 놓치지 말고 잘해 줘.”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그거면 됐어.”

유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리샤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즐거웠지만, 그에겐 오늘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아리샤. 너라면 분명 머지않아 빠르게 과장을 달 수 있을 거야. 그 성장세라면, 어쩌면 차장을 넘어 부장을 노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

“뭐래. 그렇게 말 안 해도 그럴 생각이었거든?”

말은 그렇게 해도, 칭찬이 싫은 건 아닌지 그녀의 입이 씰룩거렸다. 필사적으로 미소가 흘러나오려는 것을 참는 모양새였다. 그러다 문득, 아리샤는 유현의 말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뭐야. 꼭 자신은 부장을 달지 않을 것처럼 말하고.’

설마, 자신이 없는 건가? 그럴 리가 없었다. 그녀가 본 유현은 항상 여유가 있으면서도, 뜨거운 열정을 품고 있었다. 그런 그가 부장이 될 수 없다고 포기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 묘하게 거슬리는 말은 무엇일까?

아리샤는 문득 궁금해졌다.

“너…….”

‘애초에 목표가 뭐야?’라고 물으려던 순간이었다.

사아악!

인조 잔디가 바람에 흔들렸다.

유현과 아리샤는 어깨를 흠칫 떨었다. 둘은 바람을 타고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꺼림칙한 기운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아리샤는 하려던 말을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유현과 함께 불길한 기운의 발신지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한 텔러가 있었다.

어느 종교의 사제처럼 예복을 입고 있었는데, 색상 자체가 상당히 어둡고, 칙칙했다.

텔러는 뒷짐을 진 채 이쪽을 보고 있었는데, 서 있는 거리가 멀지 않았음에도 둘은 그가 거기에 서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유현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대체, 언제?’

생명의 열매로 강화된 그의 육체는 감각 또한 몇 단계는 강화됐다. 그런 유현의 기감으로도 저 텔러를 잡아채지 못했다.

보통 텔러가 아니었다.

‘게다가 저 모습은.’

유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두족류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 입은 보이지 않는 대신, 문어 다리와 같은 점액으로 점철된 촉수 수 가닥이 수염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비쩍 마른 인간의 몸 위에 얹어진 문어의 얼굴.

보통 텔러들이 다양한 종족의 모습을 취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 상대처럼 징그러운 외형은 유현도 많이 보지 못했다.

‘징그럽다의 수준이 아니야. 뭔가 훨씬 더 거슬리는 다른 무언가가 있어.’

이쪽과 시선이 마주치자, 해당 텔러가 입을 열었다.

“내가 방해했나?”

“……아니요. 안 그래도 바빠서 자리를 뜰 생각이었거든요.”

“그런가? 그거 다행이군. 내가 딱히 방해된 건 아니라서.”

“그…….”

아리샤가 뭘 말하려고 하는 걸 유현이 손으로 저지했다.

“그래서, 혹시 저희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음? 아, 그건 아니네. 정확히는 그쪽 하나에게만 볼일이 있지.”

“저 말입니까?”

이쪽을 지목하는 그의 행동에 유현은 더더욱 수상함을 느꼈다.

경계심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목소리에서 그를 향한 반감이 드러날 정도였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데미알로스.”

그는 뒷말을 덧붙였다.

“펜타그램 부서의 부장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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