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197화
“그게 무슨…….”
뜬금없는 과장 진급이라니.
유현은 이 말을 꺼낸 상대가 셀레스티나만 아니었다면, 그냥 이쪽을 놀리기 위해 한 농담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셀레스티나는 유현의 반응이 당연하다는 듯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보통 그런 반응이 정상이지. 사실, 이렇게 말을 꺼내는 나도 안 믿긴다. 강유현. 너 대리 단지 얼마나 됐지?”
“……그렇게 오래는 안 됐죠. 이제 3개월이 좀 지났나?”
“바로 그거야. 보통 텔러는 정사원에서 대리를 다는 데만 몇 년은 걸리지. 대리에서 과장은? 그중에서도 일부 소수만, 그것도 그전보다 몇 배나 더 긴 시간을 소모해야 해. 그런데 너는 최단기 대리에 이어서 최단기 과장을 달게 된 거야.”
유현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는 대리를 빨리 단 것까지는 그러려니 했지만, 과장부터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소속된 부서가 없는 유현에게는, 어느 정도 정치와 줄타기가 필요해야만 올라갈 수 있는 과장의 자리란 상당히 요원한 것이었으니까.
‘어차피 굳이 과장이라는 직책에 목을 맨 것도 아니기는 한데. 이건 너무 갑작스러운데.’
굳이 과장 승진을 노린다면, 준비 단계만 몇 개월은 소모할 거라고 예측했었다. 그런 걱정이 모두 쓸모가 없어졌으니, 이걸 기뻐해야 할지 안타까워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아니. 이건 기뻐해야 할 일이 맞겠지.’
승진을 해서 나쁠 것은 없다. 오히려 직위가 높아질수록 그를 다시 보는 텔러들이 훨씬 늘어날 테니까.
유현의 머리는 빠르게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바로 납득했다.
“놀라긴 했는데, 승진하면 저야 좋죠.”
“이야 받아들이는 게 빨라서 좋네. 역시 내가 눈여겨본 후배다워. 최연소, 최단기에 과장까지 단 데다가 역대 과장급 텔러 중에서 최초의 무소속이라는 소리잖아. 어지간한 백이 있어도 달기 힘든 게 과장인데.”
“그래도, 제가 이렇게까지 혜택을 받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죠?”
“그야 당연하지.”
모두가 귀를 열고, 셀레스티나의 말에 집중했다.
“솔직히 이번 하계불가침 위반 사태로 혼성계가 상당히 시끄러워졌어. 단순히 우리 천체주식회사가 주관하는 곳뿐만이 아니야. 다른 곳도 관심을 갖더라고.”
“다른 곳이라 하신다면…….”
“희극단패와 엑소도스. 원래부터 서로 경쟁 관계이기는 했는데, 그래도 사실상 노터치로 일관하던 녀석들조차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기 힘들어 보이더라고. 위법은 극락정토에서 저질렀는데, 샤마트 그 뱀새끼 때문에 우리에게도 불똥이 튄 셈이야.”
“그건 좀 큰일이겠네요.”
특히, 이번 일을 빌미로 희극단패와 엑소도스에서 걸고넘어진 것이 가장 컸다.
세 조직은 서로 선호하는 시화의 장르가 다르다 하더라도, 결국 혼성계를 놓고 보자면 시화를 두고 경쟁하는 사이다.
희극단패와 엑소도스 두 조직의 입장에서는 이 바닥에서 가장 큰 세력을 지닌 천체주식회사를 이 기회에 어떻게든 흔들어 놓을 생각이었다.
“그나마 희극단패 녀석들이야 정말로 흥미 때문에 확인하는 거라면, 그 빌어먹을 엑소도스 녀석들은 말 그대로 이쪽을 잡아먹으려고 잔뜩 벼르고 있어.”
“극락정토는 뭐랍니까? 이쪽은 잘못 없다, 이런 말은 없던가요?”
“그쪽이 무슨 낯짝이 있어서 말을 하겠냐? 자기들이 했다는 것도 잡아떼기 바쁘신 분들인데. 결국,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어떻게든 이미지 쇄신을 하려고, 이번에 큰 결정을 내렸어.”
“그게 바로 저의 승진과 관련된 일이군요.”
“이해가 빨라서 좋네. 아니,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었던 건가?”
“그럴 리가요.”
유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저었다. 그는 정말 이런 일을 예상한 적 없었다. 듣고 나서 앞뒤 상황을 토대로 때려 맞췄을 뿐.
소파 등받이에 더욱 몸을 실은 셀레스티나는 다리를 꼬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번 사태를 전부 녹화해서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 너였다는 거야. 나쁜 짓을 저지른 것도 천체주식회사지만, 그것을 막은 것도 우리 쪽 텔러였지. 이것 하나만으로 내부의 소수가 제멋대로 벌인 짓으로 넘길 수 있게 됐어.”
“이번 일이 조작이라고 할 가능성은요?”
“있을 리가. 등신도 아니고 성령 하나가 진짜로 하계에 내려갔다가 죽은 일인데, 의심을 하겠어? 뭐, 그걸 너희가 직접 쓰러뜨렸다는 것은 안 믿는 것 같더라. 사실, 나 같아도 그래. 아무리 불완전한 상태로 강림했다 해도 그래도 2세대 성령인데, 하계의 인간에게 당했다는 게 믿기지 않지. 대부분 페널티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렇습니까?”
“왜. 좀 아쉬워?”
“전혀요.”
유현은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서수민이 직접 출라판타카를 쓰러뜨렸다는 소문이 퍼졌다면 분명 엄청난 관심을 받을 수 있겠지만, 너무 과한 관심을 받게 됐을 거다.
서수민의 정체를 의심하는 자도 생길 테고, 이유 없이 이쪽의 트집을 잡으려는 자들도 생길 것이다.
조금 업적을 줄여도 좋으니, 차라리 이런 결과가 나온 거라면 대환영이었다.
“뭐, 그래도 이번 사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는 녀석들은 그래도 너희가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알겠지만.”
“그거면 됐습니다. 지나친 관심만 무마하면 딱히 상관없으니까요.”
“어찌 됐든 이쪽은 어떻게든 네가 한 영웅적인 행보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서 과감하게 승진을 결정했다는 거야. 그림이 되니까. 이제 곧 진급식 있는 거 알지? 그때 네가 주역으로 받을 거다. 이쪽도 일을 최대한 빠르게 처리할 수밖에 없어서 이제야 겨우 알려 주는 거고.”
“감사히 받죠.”
“보니까, 이미 시청령이 1만이 넘어갔다며? 서재 크기만 따지면, 차장급인 데다가 공헌도도 상당히 쌓았고. 사실 이번 일이 아니었어도 조만간 진급했을 거다. 그게 조금 더 앞으로 당겨졌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셀레스티나는 할 말을 다 끝냈는지, 손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니 앞으로도 잘해 보자고. 강유현 과장.”
* * *
유현은 천체주식회사로 향하는 우주 열차에 몸을 실었다.
진급식이 정확히 언제인지 몰라서 셀린에게 물어봤다니, 바로 다음 날이라는 대답이 나왔을 때는 얼마나 당황스러웠던가.
결국, 유현은 서수민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을 잠시 뒤로 미룬 채 곧바로 진급식을 위해 본사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백련이 말했다.
[이 열차도 이제 은근히 자주 타는 것 같단 말이지.]
‘나도 이렇게 다시 빨리 돌아가게 될 줄은 몰랐다.’
서재 수용 인원 확장 신청을 한 것이 바로 얼마 전이었던 것 같은데.
[야. 그래도 기분 좋겠어? 과장이라잖아, 과장. 어지간한 텔러는 과장도 못 단다며.]
‘그치. 과장부터는 진짜 전체 텔러 중에서 상위 10%만 가능한 거니까.’
[너는 누구보다 빠르게 그 상위 10% 안에 든 거고. 이 속도라면 차장은 물론이거니와 부장도 달 수 있는 거 아니야?]
‘그건 힘들지 않을까? 뭐, 나도 차장까지는 달았으면 좋긴 한데, 부장급은 솔직히 힘들어 보여서.’
부장은 말 그대로 부서의 장이다.
시화실에는 총 8개의 부서가 있으니, 당연히 부장의 숫자는 8명뿐.
시화실은 특히 다른 실에 비해서 부장의 숫자가 많은 편이었다. 감찰실이나 재정실 등 조금 비주류의 실의 경우에는 부장의 숫자가 4명도 채 안 됐다.
혼성계 전체에서도 수만 명이 넘는 텔러들 사이에서도, 부장은 정말로 극소수만 도달할 수 있는 직위였다.
[꿈은 클수록 좋지 않아?]
‘애초에 내 진짜 목표는 단순히 부장을 다는 게 아니거든.’
[그럼, 뭔데?]
‘그건…….’
유현은 무엇을 말하려다 말았다. 우주 열차가 목적지에 당도한 것이었다.
백련은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유현은 그런 백련을 브로치의 형태로 바꾼 다음 열차에서 내렸다.
평소라면 혼자서 길을 걸어야 했지만, 오늘은 의외의 인연인 있었는지 그러지 않았다.
“야! 강유현!”
저 멀리서 유현을 알아보고 뛰어오는 한 텔러가 있었다.
“아리샤?”
“이 자식. 오랜만이다?”
불그스름한 피부에 빛을 받아 빛나는 은발을 지닌 소녀. 유현의 동기인 아리샤가 유현에게 다가오더니, 주먹으로 팔뚝을 툭 쳤다. 보니, 뿔도 예전보다 더 커진 것 같았다.
이전이라면, 이쪽을 보며 도전 의식을 불태웠어야 할 그녀가 웬일로 살갑게 굴어서, 유현이 신기해하며 물었다.
“너 무슨 좋은 일 있냐?”
“키히힣. 뭐야. 티 났어?”
아리샤가 날카로운 이빨을 보이며 웃었다.
“어, 엄청. 그보다 웃음소리 뭔데?”
“힣. 뭐, 그야 당연할 수밖에. 너 오늘 진급식 열리는 날인 건 알고 있지?”
“알고야 있는데.”
유현은 설마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아리샤는 그 예상이 맞다는 듯 턱을 치켜세웠다.
“이 몸이 오늘 대리로 승진한다 이 말씀.”
“오. 정말이냐? 축하한다. 되게 빠르네?”
진심을 담아 그렇게 말하자 아리샤는 더욱 기가 살았는지, 쾌활하게 웃으며 유현의 팔을 툭툭 쳤다.
“이 자식. 말했지? 금방 따라간다고. 내가 너 따라잡는 것도 이제 멀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어.”
“그러냐. 그러고 보니, 이번 시화는 잘 되고 있어? 너도 슬슬 두 번째 컬렉터 정해야 하잖아.”
“물론이지. 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신박한 전개로 인기몰이하고 있거든?”
“신박한 전개라니.”
“안 그래도 이번에 2번째 컬렉터 하나를 건졌거든. 다른 세계 쪽인데 이전과 비슷하게 검과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야. 그런데 이전 녀석이랑은 확 다르거든?”
“어떤데?”
“검 잘 쓰는 명문가 막내야. 어우. 근데 이 가문이 텔러인 내가 봐도 참 비인도적인 그런 곳이더라고. 가주라는 녀석은 자식들 서로 잡아먹으며 죽고 죽여도 별말 안 하고, 가문 자체가 힘을 엄청 숭상하나 봐. 뭔 가문에 인성 파탄자들밖에 없어.”
유현은 신나서 조잘거리는 아리샤의 말을 경청했다.
어딘가 익숙한 배경과 설정들이 그녀의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왔다.
“근데, 그중에서 막내아들인 녀석이 눈에 확 띄는 거야. 아, 이 녀석이라면 되겠다 싶어서 곧바로 계약하자고 낚아챘지. 짜식. 보는 눈은 있는지 바로 알겠다고 하던데?”
기뻐서 말하는 아리샤를 보며, 유현은 ‘사실 그 녀석이 역으로 널 이용해 먹으려고 계약을 받아 준 거야’라는 말을 꾸욱 삼켰다.
대신, 유현은 다른 걸 물었다.
“그래서 그 막내아들이 막 처음에는 자기 윗 형제자매들한테 별로 신경도 안 쓰였다가 갑자기 두각을 드러내면서 관심을 끌고 있고?”
“어? 뭐야. 어떻게 알았냐? 이상하다. 내가 저번에 말해 줬던가?”
“막내아들 괴롭히는, 바로 막내 위쪽의 쌍둥이나 혹은 세쌍둥이가 있지?”
“어?! 맞아! 어떻게 알았냐? 되게 신기하네.”
“그런데 막내가 갑자기 힘 각성해서 걔네들 멋있게 손봐 주고, 아버지는 역으로 그런 막내한테 잘했다고 말하면서 눈빛으로는 ‘제법이군’이러고 있고? 사실 막내도 객관적으로 보면 인성 파탄자인데, 집안이 워낙 쓰레기라 좀 상대적으로 나아 보이고, 성령들도 사이다라고 좋아하고?”
여기까지 유현의 말이 나오니, 아리샤라도 무언가 이상한 걸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는 듯 닭살이 돋아난 팔뚝을 매만졌다.
“너, 너 뭐야.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야, 솔직하게 말해. 너 내 시화 몰래 훔쳐봤지?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봐준다.”
“뭔 소리야. 내가 몰래 어떻게 봐. 텔러가 서재 출입하면, 그 로그가 당연히 너한테 남는 거 몰라서 그래?”
“아, 아닌데에. 그러지 않으면 이걸 알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뭐, 네가 좀 뻔한 시화를 해서 그랬던 걸지도 모르지?”
“……!”
유현이 슬쩍 웃으면서 말하자, 아리샤는 입술을 깨물며 유현을 올려다보듯 노려봤다.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져서 조금 골려 줄까 생각했지만, 그보다 아리샤가 먼저 반응하는 것이 빨랐다.
하늘을 향해 치켜 올라간 그녀의 눈썹이 다시 안정을 되찾았고, 아리샤는 흥 하며 과장되게 코웃음을 쳤다.
“그래, 뭐. 됐다 됐어. 여기서 내가 열을 내 봤자 뭘 하겠냐.”
“오오. 대인배.”
“시꺼…… 크흠. 아무튼, 오늘은 내가 승진하는 날이잖아. 내가 주인공이 되는 날인데, 하루 정도는 관대해질 수 있지.”
마치, 이쪽이 선심을 썼다는 듯 말하는 아리샤에게 유현이 물었다.
“너 말고도 승진하는 텔러들 있지 않아?”
“그래 봤자, 다 똑같이 대리 승진이지. 그 위로는 없더라. 같은 대리 승진조차 기수는 나보다 높은 녀석들밖에 없고. 당연히 기수가 낮은 내가 사실상 주인공이 아니겠어? 내가 제일 잘났다는 소리잖아.”
“그건 그래.”
둘은 대화를 나누면서 진급식이 열리는 건물을 향해 걸었다.
그제야 아리샤도 뒤늦게 떠올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근데, 너 뭐 하러 온 거냐? 바쁜 거 아니야? 여기 진급식 열리는 곳인데? 배웅해 준 건 고마운데, 여기까지 안 와도 돼.”
“아니. 나도 여기에 볼일이 있어서 온 거야.”
“엉? 뭐야. 진급식 구경하러 온 거였어?”
아리샤가 묘한 기대감을 품으며 묻자, 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뭔 소리야? 나도 진급식 참여하려고 온 거지.”
“응?”
“아, 참. 최근에 결정된 일이라서 너 모르겠구나?”
유현은 여전히 어리둥절해 있는 아리샤를 보며 말했다.
“나 오늘 과장으로 승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