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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93화 (193/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93화

강혜림은 쉬는 날이면 주로 자신의 방 안에 틀어박히거나, 혹은 유현의 곁에 붙어 다녔다.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그거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자신은 이름 있는 컬렉터가 됐고, 검후라는 명성을 떨쳐 냈으니까.

그러나 이번 사상세계의 사건을 겪고, 출라판타카라는 성령의 힘을 목도하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모자랐는지 새삼 깨닫게 됐다.

어쩌면 그런 불안감이 그녀를 평소에 오지 않던 단련실로 이끌었을지도 모른다.

‘어? 사람이 있네.’

단련실 안쪽에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어, 음. 안……녕.”

목에 걸어 놓은 수건으로 땀을 닦던 권지아는 강혜림의 어색한 인사를 받아 줬다.

둘은 그 말을 끝으로 한동안 대화가 없었다. 이렇게 단둘이서 마주치니,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랐다.

강혜림의 눈동자가 조금 전까지 권지아가 사용하던 운동 기구를 향했다.

‘훈련, 열심히 하시는구나.’

강혜림은 문득 서성거리며 찾아온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웠다.

“그…… 여기, 사용할 건가?”

“네? 아, 네네!”

권지아가 먼저 묻자, 강혜림은 고개를 빠르게 끄덕이며 답했다. 꽉 막혔던 분위기가 아주 조금은 풀린 기분이었다.

이번에는 강혜림이 물었다.

“그, 어깨는…… 괜찮으세요?”

그녀가 폭주했을 때 싸우다 권지아는 어깨에 상처를 입었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분명 고통스러웠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강혜림은 미안함에 차마 눈을 마주하기 힘들었다.

“응? 아아, 괜찮다. 어차피 얕은 상처인 데다 지금은 완전히 회복됐으니까.”

“다행……이네요.”

“다행이지.”

“네…….”

강혜림은 이후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해야 할 말은 많은데, 막상 그녀를 마주하자니, 입에 접착제라도 발라 놓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권지아에게 우선 사과를 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그녀의 앞으로 무언가가 날아왔다.

탁.

강혜림은 본능적으로 날아온 것을 손으로 잡았다. 그것은 대련용으로 사용하기 위한 가검이었다. 강혜림은 대체 왜 이걸 자신에게 준 거냐는 시선을 보냈다.

“함께 대련이라도 하지 않겠나?”

“아…….”

강혜림은 저 말이 권지아 나름의 친분을 도모하자는 것이며, 더 넓게는 그녀의 모자람을 용서해 준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가검을 쥔 강혜림은 그것을 꽉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그거 다행이군. 안 그래도 몸이 근질거리던 참이었거든. 혼자서 벽 보고 훈련하는 것도 지루했고.”

“방식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자유 대련으로 하지. 참고로 살살해 달라고 해도, 봐주지 않을 거다.”

권지아가 강렬한 시선을 보냈다. 강혜림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저도 지지 않을 거예요.”

“좋다. 시작하지.”

두 사람은 넓은 훈련장에서 검을 나눴다.

* * *

“예. 아무쪼록, 뒤처리는 잘 부탁드립니다.”

-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보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치료를 받았으니, 괜찮습니다.”

유현은 최중모와 이번 사상세계 관련 후속처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최중모는 유현에게 고맙다고 전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희생자가 생겼을 것이고, 갑자기 생성된 사상세계 때문에 혼란이 빚어졌을 테니까.

유현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둘러댔다.

“그래도, 딱 하나 아쉽군요. 설마하니, 그 현장에서 도망친 사람이 있을 줄이야.”

-면목 없습니다.

“아니요. 최중모 씨를 탓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 도망자가 중국에서 유명한 백야회의 암살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지니까요.”

대부분 황혼의 장막의 끄나풀들은 현장에서 바로 검거했지만, 놓친 사람이 하나 있었다.

백야회의 암살자인 링 옌이었다.

그녀는 본래 사상세계에 들어갔어야 했지만, 인형술을 이용해 진신사리를 개방하는 순간, 그 여파로 인해 피를 흘리며 기절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그녀에게 행운으로 작용했다.

‘인형사. 사상세계 바깥에 사람들을 물리는 부적으로 결계를 친 것도 그녀다. 제 한 몸을 숨기고, 도주하는 것이야 당연히 가능했겠지.’

유현이 그 현장에 있었다면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타이밍이 엇갈렸다.

그녀는 유현이 나오기 전에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을 직감했는지, 바로 현장에서 도망쳤다.

눈치가 있다면 최대한 몸을 사릴 테니, 성유찬에게 부탁해도 찾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백야회의 나머지 암살자는 모두 정리했어. 그리고 그들을 움직이게 사주한 펜타그램의 텔러도 좋은 꼴을 보지는 않았겠지.’

그렇다면 링 옌 정도야 굳이 찾으려 들지 않아도 딱히 상관은 없을 것이다. 그녀가 알량한 복수심을 가지고서 백야회로 복귀해 더 많은 사람을 이끌고 쳐들어온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우선, 이번 사태로 인해 인천항 쪽의 경계가 훨씬 강해졌다. 저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몸을 사릴 것이다.

설사, 그 경계를 뚫고 온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지금 내 수준이라면, 전부 다 죽일 수 있으니까.’

그거면 됐다.

유현은 최중모와의 통화를 끝내고 소파에 앉았다. 이번 사태는 너무 기이할 정도로 이상해서 언론에 언급은 되지 않을 것이다. 유현도 그것을 바라지 않기도 했다.

‘이쪽이 무고한 시민을 지켰다는 소문이 퍼지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협회에서는 합당한 보상을 해 준다고 했으니까, 그걸로 만족하자. 어차피 사상세계 클리어 보상은 이쪽도 챙겼어.’

육신에 각인을 새기느라 20만 TP를 소모했지만, 클리어 보상으로 그 이상을 받았다.

사상세계 보상으로 55만 TP. 거기에 더해서 성령들의 후원으로 약 20만 TP. 순이익만 55만이 넘어서 유현의 보유 TP는 어느덧 100만을 넘었다.

‘이걸로도 부족하다는 거지만.’

무엇보다 이런 소문에서 강유라와 서수민을 말려들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기자들은 조금이라도 이상한 부분을 발견하면, 귀신같이 물어뜯을 테니까.

유현은 소파에 실은 몸에 힘을 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천장을 향해 손을 뻗던 유현은 손끝에 힘을 집중했다.

촤르르륵.

검은 활자가 유현의 손끝부터 가면 하나를 구성했다.

[불완전한 ■■■■의 가면]

날카로운 이빨. 마치 악마의 얼굴을 형상화한 것 같은 외형과 더불어 두 개의 뿔까지.

무엇보다 가면에는 눈으로 추정되는 구멍이 4개나 있었다. 유현이 가면을 쓸 때는 이 중 2개만 빛이 흘러나왔다.

‘눈이 총 4개라…… 그렇다는 것은 아직 나머지 2개의 힘을 얻지 못했다는 거겠지.’

그중 하나는 진신사리의 번뇌로부터 벗어날 때 스쳐 지나갔던 [TYPE: 데카르트]일 것이다.

유현은 천천히 가면을 착용했다. 무언가를 고정할 장치조차 필요 없었다. 가면은 처음부터 한 몸인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손으로 만지지 않으면, 쓰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라플라스의 힘 발동.’

유현은 라플라스의 파편을 사용했다.

[현재 수집한 정보가 부족합니다.]

‘음. 역시인가?’

미래를 보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당장 유현이 어떤 미래를 볼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라플라스는 미래를 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현재의 정보를 모을 필요가 있었다.

‘일종의 조건부 미래시라는 거지.’

하지만, 발동됐을 때의 효과는 엄청났다. 출라판타카를 상대로 살아남을 수 있었을 정도였으니까. 물론 거기에는 맥스웰의 힘이 더해진 영향도 있었고, 서수민이라는 히든카드까지 더해졌다.

유현은 이번엔 가면을 쓴 채 동전을 꺼냈다.

‘앞.’

그렇게 마음을 먹고 동전을 던졌다. 동전은 앞면이 나왔다.

‘다시 앞. 연속 5번.’

유현은 연달아 동전 5번을 던졌다. 전부 다 앞면이 나왔다. 유현은 동전 던지기를 멈추지 않았다. 동전은 계속 앞면만 나왔다.

그렇게 연달아 50번을 앞면만 뽑아낸 유현은 피곤해지는 걸 느꼈다.

‘단순히 동전의 반반 확률에 연속 개입을 했을 뿐인데도 피곤해지다니.’

맥스웰은 범용성 하나는 대단하지만, 라플라스 이상으로 제대로 활용하기 힘들었다.

거의 0에 수렴하던 승률을 일깨운 것은 죽음을 앞둬 잠재력이 순간 폭발했기 때문일까?

유현은 그것까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자신의 능력이지만, 가면의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딱 하나 의심이 가는 것은 사탄이었다.

‘그는 내게 라플라스의 악마 파편을 줬지. 무언가 알고 있는 걸까?’

거기까지 생각을 하려니, 피로감이 밀려왔다. 유현은 가면을 해제했다. 검은 가면이 가루처럼 흩어졌고, 유현의 손을 감싼 검은 장갑도 사라졌다.

유현은 팔을 들어 올려 눈가를 가렸다.

‘게다가 텍스트는 항상 하얀색이었어. 그런데 이것을 사용할 때만 검은색으로 변했지. 검은 텍스트는 들어 본 적이 없어.’

다른 색깔은 있기는 했지만, 검정이라니.

유현은 어쩌면 자신이 정말 위험한 힘에 손을 댄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현은 피식 웃었다. 위험한 힘이라니. 이제 와서 이것을 두려워하는 것도 웃겼다. 그는 이미 누구보다도 위험한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지금의 유현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현실에 안주하고 멈추는 것이었다.

‘피곤하네.’

과도한 능력 사용의 여파로 눈이 감겨 왔다. 본래라면 잠을 안 자도 되는 육신은 한계 이상의 피로감을 느끼는 순간, 그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했다.

어차피 지금은 남는 것도 시간이겠다.

유현은 눈을 감으며, 수마의 파도에 부드럽게 몸을 실었다.

………

……

…흥흥~????

부드러운 음색이 귓가를 간질였다.

아주 어릴 적에 듣는 자장가와 같은 향수가 느껴졌다.

사락. 사라락.

가늘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코끝을 간질였다.

유현은 감았던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이쪽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는 서수민의 얼굴이었다. 이쪽을 향해 떨어지듯 흐르는 머리카락은 백색의 폭포 같았다.

“수민 씨?”

“편하게 수민이라 불러도 돼요. 오빠.”

“지금은 여중생 모드입니까?”

“왜. 어색한가?”

순식간에 바뀌는 말투에 유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둘 다 너무 잘 어울려서 문제죠. 그보다 지금 뭘 하시는 겁니까? 아까부터 뒤통수에 닿는 건…….”

“아이, 참. 오빠는 변태. 여중생에게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거예요?”

“…….”

유현은 입을 다물었다. 서수민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은빛 머리칼 사이로 초승달처럼 휘어진 눈동자가 참 매력적이었다.

유현은 상반신을 일으키려고 했다. 잠에서 깬 이상 이런 상태를 계속 유지할 필요는 없었다.

“……무슨 짓입니까?”

그러나, 유현은 의도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서수민이 유현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툭 누르며, 그를 다시 눕혔기 때문이었다.

억지로 일어나자니, 손가락 하나에 담긴 묘리가 참으로 대단해서 유현은 일어나는 걸 포기하고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힘을 잃어도, 천마는 천마였다.

“글쎄~?”

“저 바쁜 몸입니다.”

“그렇게 바쁜 몸이 사람이 와도 나 몰라라 하고 잔 건가? 그리고 어지간한 일은 서련 언니가 모두 처리해 주고 있다는 것도 안다. 특히 언니들에게 이야기는 다 들었다. 일하는 것을 끔찍하게 좋아한다지? 워커 홀릭이라더구나.”

“모함입니다. 참고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람으로서 당연히 할 일을 하는 겁니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까지고 계속 달릴 수는 없지.”

스윽.

서수민의 보드라운 손이 유현의 뺨을 만졌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조금은 쉬도록.”

“못 당하겠군요.”

유현은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감내해라. 네가 자초한 일이다.”

서수민은 악동처럼 웃었다. 그것은 아주 예전부터, 그녀가 교인이었을 때 할아범에게만 보였던 순수한 미소였다.

“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으니, 책임을 져야지.”

“무거운 책임이로군요.”

“여중생에게 무겁다니, 내가 얼마나 가벼운데. 한번 직접 들어 볼 텐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둘이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순간, 문이 열리며 권지아와 강혜림이 들어왔다.

“아. 뭔가 오랜만에 땀 쭉 빼면서 운동하니 개운한 기분이에요.”

“음. 이런 식으로 단련하는 것도 대인전 감각을 키울 수 있어서 나쁘지 않군.”

“이따 저녁에…… 어?”

“음?”

시원하게 땀을 흘리고, 샤워를 끝마친 둘은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유현과 눈이 마주쳤다.

유현은 둘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보는 순간 ‘아, 이건 일 났군’이라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강혜림은 순간이지만, 마치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나간 사람처럼 동공이 축소됐다.

‘이쪽은 도와줄 거 같지는 않고.’

서수민은 벌써부터 장난기가 도졌는지, 미소를 주체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유현은 결국 어떻게든 혼자 힘으로 이 상황을 타개해야 했다.

“유, 유유유유 유현 씨 대체……?”

강혜림의 동공이 점으로 작게 수축했다. 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냈다.

“빠, 빨리 경찰에 신고해야…….”

“너무 현실적인 반응이네요. 잠시 진정 좀 하세요.”

“계속 누워 있는 상태에서 잘도 뻔뻔하게 말하는구나.”

권지아가 툭 쏘듯 말했다. 그녀는 강혜림과 다르게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조금 전부터 음영이 진 표정은 상당히 싸늘했다. 평소의 무표정함이 몇 배는 더 무겁게 보일 정도로.

“애초에 텔러인 저는 그런 나이니 뭐니, 법에 저촉되지 않습니다.”

“유현 씨 대체 몇 살인데요?”

불현듯 떠올랐다는 듯, 강혜림이 그렇게 물었다.

그녀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혼자 중얼거렸다.

“생각해 보면, 유현 씨 텔러라 외모만 그렇지, 실제 나이랑은 상당히 다를 텐데. 맞아, 그러고 보니 유현씨 막 정사원이었을 때, 저를 첫 계약자로 하셨다고 했었어. 그러면 실제 나이는…….”

옆에서 가만히 듣던 권지아가 덧붙였다.

“그 정도면 1살도 안 된 거지.”

“어, 어어?”

그 말을 들으니, 강혜림은 더욱 혼란스러운 표정이 됐다.

본래라면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유현이 여중생과 함께 있는 범죄스러운 모습이, 이제는 역으로 여중생이 귀여운 아기를 무릎에 올려놓고 둥가둥가 하는 것처럼 비친 것이었다.

그 기묘한 이질감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강혜림은 천심만고의 고민 끝에 한마디의 말을 도출했다.

“돌잔치 해 드릴까요?”

“돌로 맞으실래요?”

유현은 처음으로 정색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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