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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92화 (192/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92화

천체주식회사 펜타그램 부서 소속 아가엘 과장.

그녀는 지금 관조자의 방에서 초조함을 견디지 못하고 손톱을 깨물고 있었다.

샤마트가 자신이 일을 처리하겠다고 자처해서 나선 지 벌써 며칠이 흘렀다. 그의 부탁 아닌 부탁을 받으며 황혼의 장막 클랜까지 이용해 도움을 줬다.

‘뭐지? 왜 이렇게 조용하지? 녀석은 분명 같이 있기만 해도 짜증 나지만, 일 처리를 하는 실력 하나만큼은 진짜일 텐데. 그런데도 이렇게 조용하다고?’

아가엘은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자그마한 새장 안에 갇혀 있었다. 샤마트가 혹시라도 그녀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내놓은 조취였다.

아가엘은 자신을 가둔 은빛 새장의 차가운 곡선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이렇게 기다리게 할 거면서 날 왜 놔두는 건데!’

불현듯 불안한 상상이 들었다.

만약에 샤마트가 실패했다면? 녀석이 모종의 일을 당해서 오지 않는 거라면?

아가엘은 자신이 이 새장 안에서 영원토록 머물러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채앵.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은빛의 새장이 빛과 함께 사라진 것이다.

아가엘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요정의 날개를 펄럭이며 움직였다. 그녀를 억압하던 새장이 정말로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아가엘은 비로소 육신의 자유를 되찾았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다.

‘실패했어!’

그녀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실패했어! 그 멍청한 독사 새끼가 실패했다고! 그러지 않고서야, 이 새장이 사라졌을 리가 없어! 놈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실패한 거야!’

아가엘을 가둔 새장은 샤마트의 서재의 힘이 담긴 물건이었다. 그에게 서재의 권한을 일부 넘겨준 것 때문에 아가엘은 샤마트에게 저당을 잡히게 됐고,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처지였다.

그것이 끝났다는 것은 둘 중 하나였다.

샤마트가 정말 갑자기 미쳐서 그녀에게 다시 원래 권한을 돌려줬거나.

아니면, 무슨 사건이 터져서 권한을 소실했거나.

아가엘은 후자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망했다. 완전히 망했어. 나 혼자면 몰랐는데, 샤마트까지 실패했을 줄이야!’

아가엘은 샤마트가 얼마나 독한지 알았다. 녀석이 일 처리를 맡겠다고 했을 때, 짜증을 느꼈을지언정 동시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가 나서는 순간, 강유현이라는 눈엣가시를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치울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샤마트가 소식도 없다가 서재의 권한을 소실했다는 것은, 오히려 역으로 당했다는 걸 증명했다.

“세라간!!!”

“부르셨습니까. 아가엘님.”

샤마트가 찾아온 이후로 찾지 않았던 자신의 부관을 불렀다. 세라간은 곧장 모습을 드러냈다. 아가엘은 세라간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외쳤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 보고해!”

우선은 그녀가 갇혀 있는 동안 바깥에서 흘러간 상황을 알 필요가 있었다.

아가엘의 명령에 세라간은 식은땀을 흘렸다. 세라간도 샤마트가 무언가를 하는 걸 모르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망설였다. 이것을 정말 말해도 좋은지, 판단하기 힘들어서.

“그, 그것이…….”

“어서 말 안 해?!”

“그, 그러니까…….”

[여전히 우렁찬 목소리구나.]

아가엘과 세라간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오싹!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들은 죽음이 자신의 목을 희롱하듯 훑고 지나갔다는 착각을 느꼈다. 세라간과 아가엘이 동시에 손으로 자신의 목이 멀쩡한지 쓰다듬었다.

둘의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단지 목소리를 들었을 뿐인데도 오한이 몰려왔다.

제네시스의 가호로도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의 오한을.

“대, 대체 누구냐?!”

“…….”

세라간은 정체불명의 침입자에게 그렇게 외쳤고, 반대로 아가엘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자신의 양 팔뚝을 쓰다듬으며 몸을 덜덜 떨었다. 세라간이 황급히 다가갔다.

“아, 아가엘님? 괜찮으십니까?”

“오, 오오오오오오셨어.”

“네? 오셨다니, 누가 말입니까?”

“그분, 그분이…… 그분이 오셨다고!”

아가엘이 발작하듯 외쳤다. 세라간은 그 말에 의아함과 위기감을 동시에 느끼면서 뒤늦게 아가엘의 관조자 방에 생긴 이상을 눈치챘다.

‘방이 어두워?’

보통 관조자의 방은 순백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아주 밝다. 아가엘은 여기에 더해서 자신의 개인 입맛을 맞춰 데코레이션을 가했기 때문에 곳곳이 아기자기한 색상으로 가득했다.

화려한 빛과 깜찍한 문양들. 전부 아가엘이 취한 요정이라는 모습과 어울리는 것들이었다.

그런 관조자의 방의 한구석이 어두웠다.

그쪽만 새까만 먹물을 칠한 것처럼.

‘뭐, 뭐야?!’

세라간 또한 그제야 방의 구석에 도사린 어둠을 발견했다.

‘내가 대체 왜 저걸 몰랐지? 아니, 그보다 대체 언제부터 있던 거였지?’

등장의 전조도 없었다. 나타났음에도 목소리를 내기 전까지 그 흔적조차 느끼지 못했다. 세라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언제나 자신을 두렵게 만드는 아가엘이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떨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아가엘.]

목소리는 귓가에 쇠를 긁는 것처럼 듣기 괴로웠다. 물에 잠긴 사람의 목소리인 것 같기도 했고, 목이 가뭄의 밭처럼 바싹 갈라져서 나오는 소리 같기도 했다.

스멀거리던 어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 오오오오랜만입니다.”

아가엘은 애써 미소를 지으려 했지만, 뼛속까지 각인 된 공포 때문에 의도대로 하지 못했다. 울 것 같은 얼굴과 억지로 웃으려는 얼굴이 섞이며, 그녀는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표정이 됐다.

“부장님.”

“……!”

부장님이라는 말을 담는 순간, 세라간의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아가엘이 부장님이라고 부르는 자는 단 하나뿐이었다.

시화실에 단 8명밖에 없다는, 시화팔부의 여덟 주인공 중 하나.

펜타그램 부서의 부장이자 아가엘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사였다.

[아가엘. 안색 좋아 보이는구나.]

“가, 감사, 감사합니다. 부장님.”

[그래. 나의 충직한 부하 아가엘아.]

“네, 네 부장님.”

[내가 왜 널 찾아왔다고 생각하느냐?]

“……!”

아가엘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모양새가 됐다.

어느덧 그녀의 앞까지 다가온 어둠 속에서, 검고 길쭉한 촉수가 하나둘 뻗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히익!”

아가엘은 그것을 보고 몸이 굳었다. 검은 촉수는 아가엘이 가꾼 관조자의 방 곳곳을 누볐다. 그중 하나가 아가엘의 코앞까지 다가와, 그녀의 뺨 부분을 스르륵 훑었다.

소름 끼치는 어둠이 그녀의 뺨에 묻었다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내가 왜 이 바쁜 시기에, 없는 시간을 쪼개서 찾아왔다고 생각하느냐?]

‘아, 아아아아!!’

아가엘은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다 알고 있어! 부장님은 다 알고 오신 거야!’

아가엘은 오늘이 자신이 죽는 날임을 직감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동시에 입을 열며, 질문에 대한 답을 꺼내고 있었다. 오랫동안 반복해서 행동해 온 덕분에 버릇처럼 가까이 각인 된 행동이었다.

“샤마트의 임무 실패와 관련해서 확인하러 오신 겁니다!”

아가엘은 스스로가 말해 놓고, 참 장하다고 생각했다.

샤마트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는 큰일을 저질렀다. 세라간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가엘은 거기서 도박을 걸었다. 자신의 잘못을 빼고, 샤마트에게 전부 떠넘긴다는 도박을.

[그래.]

그리고, 그것은 제대로 성공했다.

[샤마트가, 성령들과 모종의 공모를 해서 아주 심각한 짓을 저질렀지.]

‘샤마트 이 머저리 새끼! 대체 뭘 한 거야!’

아가엘은 이 자리에 없는 샤마트를 욕하면서도 기회를 봤다.

[그런데, 아가엘. 최근 지구에서 우리 부서가 몰래 키워온 ‘말’들을 꽤나 소모했더구나.]

“히끅.”

아가엘은 딸꾹질을 했다. 부장은 모든 것을 알고서 찾아왔다. 자신이 머리를 굴리면서 떠올린 얄팍한 변명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가엘은 바닥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부장이 전부 알고 있다. 이제 끝이다.

[죽음이 두렵느냐?]

끄덕끄덕.

[그렇다면 이것 하나는 알아 둬라.]

어둠으로 이루어진 촉수가 다시 중심으로 빨려들 듯 돌아가기 시작했다.

[진정 두려운 것은, 성공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임을.]

방을 가득 채우는 농밀한 기운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아가엘은 턱 막혔던 숨이 다시 돌아온 것에 살았다는 생각보단 어째서라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부, 부장님?”

[실패를 했지만, 너의 직위에 비교하면 아주 작은 것일 뿐. 하지만 샤마트는 다르다. 녀석은 너무 크나큰 실패를 저질렀어. 나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런데 너마저 잃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

“그, 그 말씀은…….”

[너의 그 실패는 이번만은 그냥 넘어가 주마. 다음은 없다는 걸 명심해라.]

부장의 말에 아가엘은 눈물을 흘리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옆에서 그 살 떨리게 숨 막히는 광경을 지켜보던 세라간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너는 왜 안도하느냐?]

“네?”

세라간은 어둠 속에 떠오른 푸른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촤라락!

어둠 속에서 거대한 촉수가 폭발하듯 터져 나오며 세라간의 몸을 칭칭 휘감았다.

“아아아악! 자, 잠시만요! 왜, 대체 왜입니까!”

[제 상사를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녀석은 우리 부서에 쓸모가 없지. 내가 용서한 것은 아가엘이지, 네가 아니지 않느냐?]

“그, 그런……! 아가엘님! 아가엘님 제발 살려 주십시요! 아가엘님! 제가 지금까지 시키는 대로 다 하지 않았습니까! 아아악! 아가엘니이이이임!!”

[시끄럽다.]

뿌득. 빠드득! 콰직!

“아아아아아아아악!!!!”

압력은 전신의 뼈와 살을 순식간에 압착하고 부러뜨리며 터뜨렸다. 세라간은 눈물을 흘리며 처절하게 빌었지만, 아가엘은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없었다.

아가엘은 세라간에게 잘못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걸 알면서도, 몸을 떨며 고개를 숙이고 필사적으로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찌직! 찌이익! 촤악!

끔찍한 소리와 함께 붉은 피와 조각난 살점이 흩어졌다. 그것은 이내 그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새하얀 텍스트의 조각으로 변했다.

세라간이었던 존재를 구성하는 텍스트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가엘은 그 광경을 숨도 쉬지 못하고 바라만 봤다.

[기억하라. 아가엘. 반드시 기억해.]

부장은 웃었다. 푸른 눈동자가 초승달처럼 휘어지는 것이 그 증거였다.

[다음은 없다는 걸.]

* * *

“언니.”

매니지먼트 사무실에서 여전히 가면을 쓴 괴선이 흑철기사 황세은을 불렀다.

“그래서…… 어땠나요. 그분은…….”

“으음.”

황세은은 여전히 갑옷을 착용하고 있었지만, 얼굴 전체를 가리는 투구는 벗어 놓은 상태였다.

은은하게 청빛이 도는 머리카락을 가지런하게 정리하며, 황세은은 오늘 봤던 남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텔러면서 이질감이 없고, 이상할 정도로 인간적인 남자.

“괜찮……았던 거 같아. 응.”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묘한 친근감이 느껴지던 남자였다.

분명 직접 만난 것은 처음일 텐데,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내 왔던 사이처럼 느껴진 것은 왜일까?

“정말요……?”

괴선이 되물었다. 그녀가 아는 황세은은 매우 딱딱하고 격식을 차리며 예의가 바른 사람이지만, 사실 그 대상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황세은은 자신에게 아주 약간이라도 적의. 혹은 불온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황세은은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유현과 악수를 나누고 대화를 나눈 것부터 어지간한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보통 악수는커녕 그녀는 어지간하면 타인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으니까.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친근감? 그런 느낌이 들었지. 사이좋게 지내서 나쁠 사람은 아니야.”

“다행……이네요.”

“방상이 너도 이미 느끼고 있던 거 아니었어?”

끄덕.

괴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말도 제대로 하지 않고, 모습을 꽁꽁 감추는 그녀들이 컬렉터로서 원활하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은 타인을 보는 감각과 시선이 남들과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괴선은 황세은이 유현을 좋게 평가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가 키우는 귀여운 부엉이, 백효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하지만, 황세은이 그녀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가 내게 불온한 생각을 가지지 않은 건 맞아. 오히려 친근했던 것도 사실이었고.’

황세은은 그 이상으로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이 남자와 손을 잡지 않으면 절대로 안 될 거라는.

절대로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되는 자라는.

그런 확신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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