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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88화 (188/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88화

출라판타카는 몸의 시간의 폭풍을 맞이한 견고한 바위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서수민의 일격이 그의 가슴을 관통했다. 원래부터 불완전한 육체였지만, 가까스로 붕괴를 막아 내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그 균형이 무너졌다.

출라판타카는 자신의 최후를 직감했다. 이것은 단순한 죽음이나 윤회전생이 아니었다.

완전한 소멸.

그것이 그가 맞게 될 최후였다.

‘나는 죽는 거로군.’

애초에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다. 이번 일을 성공해도 그의 죽음은 기정사실이었으니까.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면, 결국 직접 나섰음에도 악의 씨앗을 제거하는 것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출라판타카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결국엔 옳은 결말로 향하게 될 거라 믿었었다.

스승님의 은덕을 입어 성령의 자리에 올랐을 때, 그의 이러한 신념은 비 온 뒤의 땅이 굳듯이 더욱 확고해졌다.

‘결국, 내가 틀렸던 걸까?’

악은 변하지 않는다. 악은 언제나 존재한다. 세상은 언제나 정의로 빚어져야만 한다.

출라판타카는 그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그 신념이 지금 이 순간 바뀌었다.

몸이 무너지고, 그의 육신은 빛을 잃었다.

하늘의 먹구름이 개고, 그 틈새를 비집고 빛이 쏟아졌다. 육신이 서서히 무너지는 출라판타카는 마지막에 하늘에 뜬 태양을 바라봤다.

언제나 빛을 잃지 않고, 찬란함을 보이는 태양을 보는 순간.

출라판타카의 눈가를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

그의 눈은 태양의 빛 너머에서 자신이 그토록 존경하던 자의 모습을 비춰 봤다.

-주리반디야. 너는 아무것도 외우지 않아도 된다. 그저 이 천 조각으로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닦아 주는 일에 전념하거라.

지금 와서 스승님의 말씀이 떠오르는 것은 어째서일까?

-주리반디야. 이 천 조각만 더러운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마음속 번뇌를 없애는 것이 더 중요하단다.

이미 통달했다 생각한 그 가르침이 갑자기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출라판타카는 너무나도 우둔했다. 무슨 일을 해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간단한 게송조차 제대로 외우지 못했다. 그 때문에 형에게 구박을 받았고, 좌절을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스승님이 길을 가르쳐 줬다.

천으로 더러운 것을 닦고, 또 닦다 보면 천이 검게 물들 듯.

세상의 때와 먼지를 닦아야 하는 것이 어느덧 그의 사명이 되었다.

나도 무언가를 하고 싶다. 이 부족한 나라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고 그러길 바랐다.

‘그런가.’

사명이라 생각했던 그것은, 어느덧 자신을 옭아매는 족쇄가 되고 말았다.

출라판타카는 자신이 그릇된 신념에 눈이 멀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작 별거 아닌 가르침을 받았다고 해서, 그것을 조금 깨달았다고 해서 모든 것을 알았다고 착각했다.

‘우둔한 내게는 참으로 어울리는 결말이구나.’

출라판타카는 소멸하는 와중에 과거에 겪었던 깨달음을 다시 떠올렸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세상의 모든 것들은 결국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악이라 생각했던 존재 또한, 결국은 변한다.

변하지 않은 것은, 그리고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진정 바뀌지 않은 것은, 검게 물든 것은 바로 나였구나.’

검게 물든 순백의 천.

그는 세상의 모든 때와 먼지를 닦아 내는 천이었고, 세상의 모든 더러움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역설적이게도 더러워진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었다.

가르침이란 끝이 없고, 성령의 자리에 올라가서도 언제나 바뀌기 위해서 노력을 했어야 하는 거였는데.

단지, 그것을 일찍이 깨우치고서 행하기만 했으면 그만이었는데.

‘그저, 빠르게 인정했으면 그만이었을 것을.’

어째서 그걸 몰랐던 걸까? 왜 이제야 그걸 깨달은 걸까.

출라판타카는 눈을 감았다.

어둡게 변한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한 존재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별의 자리에 오르고 그 힘마저 얻었으면서, 그럼에도 허름한 복장과 함께 여전히 깨달음을 얻고자 고행을 자처하는 자.

‘스승님.’

출라판타카는 웃었다. 슬프지만, 기뻐서 웃었다.

자신은 소멸하고 스승님을 만날 수 없었지만, 마지막의 마지막에 스승님의 가르침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이보다 기쁜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서서히 잠겨 가는 의식 속에서 출라판타카는 유현과 서수민을 떠올렸다.

‘부디, 그대들은 나처럼 되지 말기를.’

미안함과 감사함을 담아 출라판타카는 자신이 지닌 최후의 ‘이야기’를 떼어 냈다.

이제 이것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다. 그러니 자신과 함께 사라질 필요도 없었다.

모든 빛을 잃어버린 그는 마지막에 빛에 휘감겼다.

그는 그 속에서 자신을 안아 주는 따스한 손길을 느꼈다. 본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가자.

마음과 뜻이 향하는 곳.

나의 낙원이자 고향으로.

출라판타카는 그렇게 세상에서 사라졌다.

* * *

“끝……난 거야?”

빛과 함께 사라지는 출라판타카를 본 서수민이 중얼거렸다.

“정말로, 끝났구나.”

그 괴물 같던 성령과 싸워서 승리했다.

그녀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지 않으려 해도, 이미 전신에 탈력감이 가득해서 제대로 설 힘조차 없었다.

서수민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자신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검었던 그녀의 머리카락은, 하얗게 변해 있었다.

어떠한 속세의 때가 묻어 있지 않은 순백으로.

“아, 하하.”

하얗게 탈색된 머리카락을 보자, 그녀는 헛웃음이 나왔다. 동시에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손을 들어 올려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닦아도 닦아도 눈물은 계속 흘렀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기뻐해야 할 일인데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수민아……?”

“아.”

그녀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수민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대체 언제 정신을 차린 것일까. 강유라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 유라야. 그, 그러니까 이건…….”

서수민은 허둥지둥하며 뭐라 대답해야 할지 망설였다. 유라의 반응을 보건대 그녀가 힘을 사용한 것을 본 것이 틀림없었다. 거짓말로 둘러댈 수도 없었고, 하얗게 변해 버린 그녀의 머리카락도 마찬가지였다.

서수민은 문득 불안감이 몰려왔다. 그녀가 천마라는 사실은 가족에게도 숨겨 왔다. 그런데 가장 친한 친구인 유라에게 들키고 말았다.

지금까지 속여 왔다고 화를 내지 않을까. 자신을 기만하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것은 전부 기우에 불과했다.

“수민아 괜찮아?”

“화…… 안 내?”

“내가 왜 화를 내. 날 지켜 줬는데.”

강유라가 정신을 막 차렸을 때는 서수민이 힘을 사용했을 때였다. 그녀는 그때 서수민이 정말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세상이 부서질 것 같은 빛 속에서 전력을 다해 맞서 싸우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순간.

강유라는 마음속 어딘가에서 감동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비록 힘을 숨겨도, 서수민은 결국 그녀의 친구였다. 위기에 처한 자신을 지켜 주고, 필사적으로 싸워 주는 친구.

“그리고, 사실 예전부터 느끼고는 있었어. 네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어, 어떻게?”

“당연히 알지. 수민이 너 본인은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애초에 체육 시간 때부터 말도 안 되는 신체 능력 보여 주고 그랬잖아. 나는 그래서 각성한 사람인가 했었지.”

“어…….”

서수민은 유라의 말에 얼굴이 붉어졌다. 필사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다 알고 있었구나.

강유라는 그런 서수민을 보며 소리 내서 웃었다. 본인은 괜찮다고 생각했겠지만, 서수민은 예전부터 어딘가 엉성한 면이 있었다. 아직 완벽하게 현실에 적응하지 못해 벌어진 묘한 괴리감 때문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잘 몰랐다. 서수민과 가까이 지낸 강유라나 몇몇 친구들만 알고 있는 사실일 뿐.

“그래도 놀랐어. 수민이 네가 다른 세상에서 살던 사람이었다니.”

“……숨겨서 미안해.”

“아니야.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그리고 덕분에 살았잖아?”

“응.”

서수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에게 다가온 유라를 껴안았다. 유라는 그런 서수민의 등을 쓰다듬어 줬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유현은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권지아가 유현의 곁에 다가가 그의 팔뚝을 툭 쳤다.

“평범한 학생이라 하더니?”

그녀의 시선은 조금 전 서수민이 선보였던 그 고강한 무공에 대한 진실을 촉구하고 있었다. 그 말에 강혜림도 막 떠올랐다는 듯, 권지아의 곁에 서서 책망의 시선을 보탰다.

유현은 살짝 당황했다.

‘둘이 나 없는 사이에 무슨 일 있었나? 어째 전보다 사이가 더 돈독해진 것 같은…….’

착각이 아니었다. 평소에 서로에게 어느 정도 심적인 거리감이 있던 둘은 친구라 불릴 정도로 친해져 있었다.

달라진 것은 자신만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유현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설명해 드리려고 했죠.”

“아주 자세히 설명해야 할 거다.”

“맞아요. 그 죽었다 다시 살아났다는 부분도.”

“알았습니다, 알았어요.”

죽다 살아나서 그런지, 두 사람의 이런 잔소리조차 반갑게 느껴졌다.

* * *

모든 결말까지 지켜보던 셀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현이 죽을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가슴이 철렁했었다. 심장이 뚫리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을 정도였다.

다행히도 유현은 죽지 않았다. 정확히는 죽기 직전 다시 부활했다.

그 이후로도, 연달아 위기 상황의 연속이었다. 설마하니 극락정토의 출라판타카가 직접 현신할 줄은 몰랐다.

‘심지어, 저 소녀가 쓰러뜨릴 줄이야.’

셀린의 시선이 백발로 변한 서수민을 향했다.

유현의 반응을 보건대, 아마 저 소녀가 3번째로 계약을 맺을 컬렉터가 될 것이다.

대단한 잠재력을 지닌 사람만 찾아내는 유현의 안목에 감탄을 하면서도 셀린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극락정토 성령이 현신한 것을 너무 많은 자가 봤어. 여파가 아주 커질 거야.’

벌써부터 메시지 창에서는 결과적으로 잘됐다는 의견과 함께, 극락정토의 도를 넘어선 하계의 개입에 분노하는 성령들이 있었다.

[찬란한 빛을 닮은 자가 극락정토를 향해 강렬하게 항의합니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웃는 자가 극락정토를 유심히 주시합니다.]

특히, 에덴과 판데모니엄의 두 성령은 자신들의 불편한 마음을 숨기려 들지 않았다.

이번 일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길 수 없었다. 아마 보다 더 큰, 어떻게 보면 혼성계 전역에 퍼진 대성군 전체를 뒤흔드는 중대사가 될 일이었으니까.

‘할 일이…… 엄청나게 늘겠네.’

소문을 듣고 서재에 새로 몰려올 시청령과 이번 사태와 관련된 다른 텔러의 견제, 본사에 제출해야 할 경위서의 제출까지.

셀린은 거대한 업무의 서류가 해일처럼 몰려오는 착각을 느꼈다.

‘그래도.’

지금은 저들의 승리를 소소하게 축복해 주자.

셀린은 미미하게 웃으며, 화면 속 유현을 바라봤다.

* * *

“도, 도망쳐야 해.”

샤마트는 초췌해진 몰골로 우주 공간을 누볐다.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옷 여기저기가 찢어져 있었고, 언제나 당당하던 모습은 없고 신경 쇠약에 걸린 뱀만 있었다.

그는 가호를 통해 우주열차 정거장으로 이동하며 도망쳐야 한다고만 중얼거렸다.

출라판타카가 당했다. 그것만으로도 믿기지 않는데, 문제는 더 있었다.

‘이대로 내가 극락정토와 모종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들키면, 전부 끝나고 말아.’

심지어 샤마트의 관조자의 방은 아주 박살이 나고 말았다. 동시에 그의 서재 또한 큰 타격을 입었다.

출라판타카가 하계에 강림하면서 벌인 짓이었다.

‘이런 빌어먹을! 제길! 대체 왜 내 서재에서 그딴 짓을……!’

출라판타카가 눈앞에 있었다면, 상대방이 성령이고 뭐고 상관하지 않고 욕설을 퍼붓고 싶었다.

그것은 출라판타카가 중계에 속하는 샤마트의 관조자의 방을, 하계에 현신하기 위한 일종의 징검다리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시스템의 눈을 피해, 자신의 서재를 일종의 우회 통로로 이용한 셈이다.

성령들이 머무는 상계는 하계에 제대로 개입할 수 없다. 그곳을 향한 통로는 너무나도 작아서, 당장에는 자신들이 소소하게 후원할 수 있는 포인트가 전부였다.

강제로 구멍을 비집고 내려가려면, 존재의 소멸을 각오해야 한다. 내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태의 이상을 눈치챈 제네시스 시스템이 징벌을 가한다.

출라판타카는 여기서 다른 방법을 썼다.

상계와 하계를 이어주는 중계, 즉 텔러들이 머무는 공간을 이용한 것이다.

상계에서 중계에 속하는 곳으로 가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샤마트처럼 관조자의 방에 머물 수 있게 출입을 허락하면 됐으니까.

출라판타카는 거기서 바로 하계로 현신했다. 그 여파 때문인지 샤마트의 관조자의 방은 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의도치 않게 샤마트는 브로커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었다.

한도 이상의 존재를 하계로 보낸 통로는 부서질 수밖에 없다.

관조자의 방이 부서졌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샤마트가 지니고 있는 개인 서재마저도 처참하게 부서졌다.

텔러로서 지니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권리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이다.

복구를 바라진 않는다.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출라판타카의 출입을 허락한 것은 결국 자신이었다.

그래놓고, 극락정토가 저 정도의 짓을 벌여 놓고 실패했다는 게 가장 문제였다.

‘일단, 몸을 숨기자. 남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아주 먼 곳으로 숨자.’

샤마트는 이대로 가면 감찰실 녀석들에게 붙잡혀 사내 재판에 처하게 될 거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도망부터 치기로 했다.

우주 정거장에 도착한 그의 어깨에 누군가 어깨동무를 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야. 요 새끼 이거. 오랜만이다?”

“세, 셀레스티나 부장님?”

이쪽을 보는 붉은 머리 미녀를 본 샤마트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가장 만나고 싶지 않았던 숙적을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친 격이었다.

셀레스트리얼 빙 부서의 셀레스티나 부장은 샤마트를 향해 덧니를 보이며 미소 지었다.

“오올, 샤마트 과장. 못 보던 사이에 예의가 많이 발라졌어? 가장 최근에 봤을 때는 좀 뭣같이 웃고 있었으면서. 그쪽 부장님이 없어서 그런가? 아니면, 혹시 찔리는 거라도 있어?”

“그, 그럴 리가요. 그보다 셀레스티나 부장님은 여기에 어쩐 일로…….”

“어쩐 일이긴 어쩐 일이야.”

그의 목을 휘감은 셀레스티나의 팔뚝에 가해지는 힘이 강해졌다.

“꽤나 성대하게 저질러 줬더라. 펜타그램 부서의 샤마트 과장.”

“저, 저는…… 그, 그러니까…….”

“극락정토와 내통하여 성령을 하계로 보낸, 하계 불가침 조약 위반 공조 혐의 및 시화 조작 현행범으로 널 체포한다.”

그것은 샤마트의 최후를 알리는 선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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