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187화
[……!]
출라판타카는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유현의 뒤에서 맥동하는 거대한 힘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평온했던 그의 눈동자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커졌다.
그의 시선이 검을 쥔 서수민을 향했다.
‘그 상황에서 다시 일어났단 말인가?’
극락정토는 서수민의 능력을 위험하다고 여겼다. 그들이 이야기의 씨앗과 진신사리까지 사용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무력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녀의 유일한 약점인 정신적인 부분을 통해 그녀를 절망에 빠뜨렸다.
그들의 계획은 절반은 성공적이었다. 실제로 서수민은 죽기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본래의 역사와 다르게 이곳에는 유현이 있었다.
그의 존재 하나가 본래 죽었어야 할 중원의 절대자를 일깨우는 데 일조했다.
고작 텔러 하나. 대성군의 고고하고 거대한 시점에서 보면 벌레만도 못한 존재였다.
그런데, 그가 모든 것을 망쳤다.
무너져야 할 악은 모든 역경을 견뎌 내고 일어섰다. 이전보다 더욱 강해진 채로.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이것이 정녕 세계의 운명이란 말인가?’
출라판타카는 악이 준동하게 되는 이 세계의 운명을 한탄했다.
온건했던 그의 이마에 주름이 파였고, 눈썹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속에서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출라판타카는 자신의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악이란!]
그의 목소리가 의지를 담았다. 흐려졌다고 생각한 빛이 더욱 강해졌다.
출라판타카가 타고 있는 연꽃이 활짝 펼쳐지며 만개했다.
[반드시 없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들의 계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가 끝내게 하지 않을 것이다.
출라판타카는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것에 안도했다. 모든 것이 실패하고, 그런 실패를 뛰어넘어 자신이 하계에 현신을 했다는 것을 다행이라 여겼다.
그러지 않았다면, 극락정토는 이 자리에서 부화하는 악의 씨앗을 막지 못했을 테니까.
[이제 와서 마음을 바로잡았다고 한들, 아무런 소용없다!]
출라판타카가 합장과 동시에 빠르게 입을 움직이며 게송을 읊었다.
「냄새가 향기로운 붉은 연꽃이
새벽에 피어 향기 풍기는 것처럼」
두 개의 구절이 빛의 힘으로 세계 전체를 짓눌렀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에 세계를 서서히 압착시켰다. 으지직! 숲의 나무들이 끝부터 서서히 바스러졌다. 붕괴는 서서히 지면을 향했다. 세계가 거대한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출라판타카는 전부 다 무엇조차 남기지 않고, 사상세계채로 없애 버릴 생각이었다.
“아니.”
세상이 떠나가라 울리는 굉음 속에서 서수민의 목소리는 나직하게 울려 퍼졌다.
고요한 그 목소리는 기이할 정도로 귓가에 선명하게 들렸다.
“소용없지 않다.”
일검(一劍)
서수민이 위에서 아래로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세상을 짓누르는 거대한 압력이 반으로 갈라졌다. 검게 물든 강기가 하늘과 땅을 정확히 반으로 갈랐다.
콰칭!
세계를 가르는 일검이 출라판타카가 머무는 빛의 기둥을 후려쳤다. 강혜림의 전력이 담긴 번개에도 아주 순간 주춤했던 빛이 산산조각 나며 흩어졌다.
세상을 짓누르던 압력이 사라졌다.
출라판타카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모든 기운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빠직! 빠지직!
겨우 형체를 유지하는 육신에 더 많은 금이 새겨졌다. 출라판타카는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서수민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 가면서까지 쓰러뜨려야만 했다.
[어찌 모든 것을 버렸다고 주장했으면서, 이제 와서 발악하는 것이냐!]
「두루 비치는 앙기라사를 보라」
촤아악!
출라판타카가 타고 있는 연꽃잎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전부 서수민을 향했다. 꽃잎 하나가 어지간한 도시 하나를 통째로 날려 버릴 위력이었다.
모두가 기겁하며 서수민을 바라봤다. 아무리 그녀라도 저 연꽃은 막기 힘들었다.
그래서, 서수민은 그들에게 보여 주기로 했다.
자신이 어째서 고금제일이자 천마라 불리는지.
그 ‘진짜’ 힘을.
“칠마흑천신공(七魔黑天神功).”
그것은 그녀가 천마의 자리에 오르면서 정립한 그녀만의 고유의 무공.
모든 무림인이 두려움에 떨었으며, 천마신교의 소교주마저 그 앞에 무릎을 꿇게 해 절대자로 군림케 만든 그녀만의 신공절학.
“일마(一魔).”
재화(災花)
서수민의 주위로 검은 꽃이 피어났다. 순식간에 봉오리에서 찬란한 꽃잎을 피워 낸 강기의 꽃은 그대로 폭발하듯 터졌다. 순식간에 세계를 검은 꽃잎이 물들였다.
수만 개가 넘는 검은 꽃잎들은 의지를 품고, 연꽃잎과 충돌했다.
별의 의지를 품은 연꽃잎과 강기의 꽃잎이 부딪치며, 눈 부신 빛을 자아내며 흩어졌다.
“……세상에.”
“이 무슨 위력이란 말인가?”
눈을 멀게 만드는 섬광과 함께 폭풍이 몰아쳤다. 그 광경을 보던 강혜림과 권지아는 나지막이 감탄했다. 유현은 묵묵히 팔짱을 낀 채 서수민의 싸움을 주시했다.
출라판타카는 서수민의 힘을 보며 이를 악물고 외쳤다.
[어찌 저항하느냐! 그대의 죄악을 돌아보고, 얌전히 사라지는 것이 세상을 위한 것임을 모르는가!]
“그딴 거 알 바 아니야!”
서수민은 지금까지 참아 왔던 모든 분노를 터뜨렸다.
“나는 날 억압하는 것과 맞서 싸울 뿐이다!”
그것을 일깨워 준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 주길 바라는 친구도 있었다.
오랜 후회 속에서 그녀는 하나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이 깨달음이 얼마나 크냐는 것이 아니었다.
이 자그마한 깨달음이 그녀를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가.
단지 그뿐.
[악의 씨앗이 끝까지 저항하려 하는가!]
“나는 악이 아니야!”
서수민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 질렀다.
“나는 천마다!”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요동치는 의념이 칼끝에서 타올랐다. 그녀는 먼 과거의 환상을 봤다.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 바보 같지만, 참으로 좋아했던 부하들을.
그녀의 손으로 죽여 버린 후회의 결정체들을.
그녀의 세계는 변했다. 흑과 백으로만 존재했던 무미건조하면서도, 괴로웠던 세계는 이제 없다.
그녀는 빛을 봤다. 이 어둡기만 했던 세계가 사실, 얼마나 다양한 색채로 가득 차 있는지 알았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었다고 생각했던 악몽은.
그녀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다.
“나는 본교의 지고한 존재이며!”
발걸음마다 땅이 갈라졌다. 땅에서 벽력이 몰아쳤고,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숭배를 표했다.
“고금제일의 무인이자!”
천지를 가득 채우는 마기에 세상이 울부짖었다.
그녀가 지나가는 길에 검은 마기가 일렁였다.
“모든 무인이 갈망하는 자!”
출라판타카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부릅떠진 그의 눈동자가 서수민의 모습을 담았다.
“내가 바로 천마다!”
그녀는 피를 토할 것처럼 외쳤다.
“내가 천마 서수민이다!”
휘몰아치는 검은 강기가 그녀의 검에 휘감겼다. 서수민은 2번째 신공을 사용했다.
칠마흑천신공(七魔黑天神功)
이마(二魔) 흑사뢰(黑絲牢)
촤아아악!
내질러진 검을 타고, 무수한 검은 실선이 출라판타카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실 한 줄기 한 줄기가 극한까지 압축된 강기의 다발이었다.
출라판타카는 합장을 풀지 않았다. 꽃잎이 사라진 연꽃이 그를 태운 채 인지를 초월한 속도로 움직였다. 그는 이를 악물고 서수민이 뿌린 강기의 실로부터 벗어났다.
가부좌를 튼 채 합장을 하는 자세라고는 믿을 수 없는 기예였다.
파직.
출라판타카의 몸에 새겨진 금이 점점 더 길게 그어졌다. 출라판타카는 자신의 최후가 서서히 옥죄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생각했다.
계획은 완벽했다. 천마의 정신을 망가뜨리고, 하계의 존재를 이용해 확실하게 끝낼 방법을 강구했다.
그런데, 계획은 실패했다. 저들로부터 믿을 수 없을 극악의 확률이 연속으로 펼쳐졌다. 방심 따위 하지 않았음에도 그랬다.
정녕 운명의 농간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으득!
출라판타카는 이를 악물었다.
각성한 서수민은 강했다. 그녀가 괜히 초월자의 자리를 넘보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 또한 완벽하지 못하다지만, 서수민 또한 전성기의 힘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약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제대로 단련조차 하지 않은 육신으로 그만한 공격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까?’
당장 서수민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팔다리는 안쓰러울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인지를 초월한 의념으로 자신의 한계마저 넘어선 무공을 펼친 대가였다.
그녀의 각성을 놀라웠지만, 그게 전부다. 서수민은 이미 한계였다.
‘아니.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가?’
출라판타카는 자신의 육신을 보며, 이번이 마지막임을 직감했다.
그것은 서수민 또한 마찬가지였다.
서로가 불완전한 상태에서 전력으로 부딪혔다.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은 싸움이 오래 지속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촤르륵!
뻗어진 강기의 다발이 서수민의 의지를 받아 다시 그녀의 검으로 회전하듯 빨려 들어갔다. 키이이잉. 칼에 머문 묵빛 강기가 엄청난 속도로 회전했다. 서수민은 전력을 다해 검에 맺힌 강기를 다스렸다.
스윽.
출라판타카는 합장을 하던 손을 풀었다. 그의 양손이 자신의 양 무릎 위로 천천히 내려왔다.
전신에서 힘을 뺀 출라판타카의로부터 흘러나오는 빛이 이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그는 도저히 마주할 수 없는 태양처럼 빛났다.
「냄새가 향기로운 붉은 연꽃이
새벽에 피어 향기 풍기는 것처럼
두루 비치는 앙기라사를 보라」
출라판타카의 입이 게송의 세 번째 구절까지 읊었다. 평소라면 거기서 끝나야 할 그의 목소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촤아아! 출라판타카는 자신의 모든 힘을 끌어올렸다.
별의 힘을 지닌 존재인 그는 지금 순간이지만, 항성의 내핵에 버금가는 열을 내뿜었다.
출라판타카는 마지막 네 번째 구절을 읊었다.
「허공에 빛나는 해와 같으니」
전력으로 방출된 빛이 물방울이 떨어진 잔잔한 수면처럼 거대한 파문을 그리며 서수민을 집어삼켰다.
거기에 닿는 것들은 전부 재도 남기지 않고 타올랐다. 장원의 벽이 무너져 가루처럼 흩어졌고, 나무는 잔뿌리 하나도 남지 못했다.
그 파괴의 빛은 세상을 집어삼키고, 이윽고 모든 환상체들을 없애 버리려고 했다.
동시에 서수민 또한 자신이 지금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절기를 선보였다.
칠마흑천신공(七魔黑天神功)
일마(一魔) 재화(災花) 화점천(花點穿)
9개로 갈라진 아홉 줄기의 소용돌이가 이내 하나로 뭉쳤다.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며 압축된 강기가 천원(天元)을 노렸다.
세상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태양빛과 한 줄기의 새까만 소용돌이가 충돌했다.
콰아아아앙────!!!!
“크윽!”
서수민의 입가를 타고 한 줄기 피가 흘렀다. 힘과 힘의 충돌에 그녀의 속이 진탕됐다. 연약한 근육이 비명을 질렀고, 머리가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극한까지 압축한 공격은 출라판타카의 마지막 공격을 뚫지 못했다. 힘은 서로 충돌하며 힘겨루기를 계속했다.
여기서 물러나는 순간, 모두가 죽는다는 것을 알기에 서수민은 이를 악물고 견뎌 냈다.
모자랐던 그녀를 지켜 주기 위해 유현이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러니, 이번에는 자신이 그를 지켜 줄 차례였다.
“끄으으으!!”
파앗!
검을 쥔 왼손이 반발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서수민은 남은 오른손에 힘을 주며, 필사적으로 밀려나는 것에 저항했다. 지면에 고정한 두 다리가 서서히 밀려났다.
전신을 가로지르는 아득한 통증이 시야를 하얗게 물들였다. 망막에 맺힌 풍경이 몇 번이나 명멸했다.
힘의 차이는 명백했다.
서수민은 이 싸움에서 서서히 밀리고 있었다.
‘끝……이라고?’
겨우 깨달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너무 늦었던 걸까?
아주 조금이라도 더 빨리 깨달았더라면.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조금이라도 더 수련을 했더라면.
사소하게 스쳐 지나갔던 순간이 전부 아쉽게 다가왔다.
거대한 압박감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눈조차 뜨기 힘든 빛을 주시하면서 서수민은 무언가 환각을 봤다.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아 주는 것 같은.
“버티세요.”
“너……!”
환각이 아니었다.
유현이 어느새 자신의 곁에 와 검을 함께 잡아 줬다. 그 또한 힘이 다했던 걸까? 유현은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유현이 라플라스의 눈으로 지금을 봤다. 그러나 이 이후 어떻게 될지 유현도 모른다.
다만 지금이야말로, 그가 그토록 바라던 유일한 승리의 길이라는 것에 모든 것을 걸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일격이 출라판타카에게 닿기까지 필요한 것은 대단하지 않았다.
단 한 걸음.
그것이면 충분했다.
“단 한 걸음만 내디디면 됩니다. 할 수 있죠?”
“……나를 뭐로 보는 거냐.”
서수민은 망설이던 이전과는 다른 대답을 꺼냈다. 자신감으로 가득 찬 미소와 함께.
“나는 천마다.”
“좋네요.”
유현 또한 그 대답에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그러면 갑시다.”
검을 쥔 손에 힘을 실었다. 두 사람은 젖 먹던 힘까지 써 가며 앞을 향해 나아갔다.
카가가가각!
새하얀 빛과 어둠이 쉼 없이 충돌했다. 천지를 뒤흔드는 폭발음 속에서 유현과 서수민, 그리고 출라판타카는 봤다.
빛과 어둠이 맞닿은 격류의 극점에서 일어나는 자그마한 변화를.
빠직!
빛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주 작고 사소한 금은 서서히 그 크기를 불려 나갔다.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찬란한 빛 속에서 출라판타카는 두 사람의 모습을 주시했다.
하늘의 별빛보다 찬란한 광원을 눈동자에 품고 있는 자들을. 그들이 자신이라는 벽을 뚫고 나아가게 될 미래를.
출라판타카는 생각했다.
흔들림이 없는 올곧은 신념으로, 끝없이 나아가는 자들은.
‘이 얼마나 아름답단 말인가?’
출라판타카는 눈을 감았다.
동시에 그를 감싸던 빛이 무너졌다. 한 줄기 소용돌이는 흐름을 거스르는 숭어처럼 빛의 파동을 가로질렀다.
푸욱!
유현과 서수민이 내지른 최후의 일격이 출라판타카의 가슴을 관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