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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84화 (184/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84화

권지아와 강혜림은 서로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았다.

전류를 머금은 검이 권지아의 미간을 정확히 노리고 찔러 들어왔다.

권지아는 명도를 아래에서 위로 쳐올려 검로를 틀었고, 동시에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칼끝에 서린 뇌기가 조금 전까지 권지아의 머리가 있던 허공을 태웠다.

뒤이어 날아오는 무수한 칼날이 잔상처럼 펼쳐졌다. 권지아는 입술을 깨물며, 몸을 뒤로 뺄 수밖에 없었다.

‘힘들다.’

그녀는 입 밖으로 내지 않았지만, 솔직한 심정을 담아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것은 아직도 부족한 자신을 향한 자책과 동시에 검을 나누는 대상을 향한 경탄이었다.

권지아는 여전히 눈의 초점이 맞지 않는 강혜림을 봤다.

이성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인데도, 도저히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저것이 정해진 역사에서 언제나 똑같은 칭호를 얻은 사람의 힘.’

강혜림은 어느 회차에서도 항상 검후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녀가 기억하기론 어떤 사람이라도, 회차마다 미래가 뒤틀리면 칭호도 바뀌고, 하는 일도 바뀌었었다.

하지만, 강혜림은 예외.

그녀에게 주어진 칭호는 항상 고정되어 있었다.

그것은 검후라는 칭호가 오직 그녀에게만 허락된 것이며, 그녀가 아니면 누구도 검후라고 입에 담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검을 쥐는 순간부터 변모하는 압도적인 무력.

심지어, 이번 회차는 유현에 의해서 천뢰검이라는 무지막지한 능력까지 얻게 됐다.

‘뚫을 수가 없어.’

권지아는 강혜림과 붙게 되더라도 자신이 있었다. 강혜림이 본래 역사보다 더 빠르게 자신의 능력을 깨우쳤지만, 근본적으로 경험이 모자랐다.

반대로 권지아는 경험이 넘쳤다. 수많은 사선을 넘어온 경험의 양만큼은 절대로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빠르게 제압할 생각으로 덤볐는데.

‘재능이라는 것은 과연 무섭군.’

처음에는 이쪽이 압도하는가 싶었지만, 상황은 금방 바뀌었다. 강혜림은 이성이 완전치 않은 상태에서도 쭉쭉 성장했다.

검을 나누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그녀는 권지아가 어떤 기술을 썼는지 몸으로 읽고 분석해, 역으로 파훼하거나 펼쳐 보인 것이다.

이쪽이 3번이나 죽어서 깨닫게 된 기술을 저쪽은 단 3초 만에 깨닫는다.

전생에서 수년이 걸려 겨우 익힌 싸움 기술이 단 몇 합 만에 파훼 된다.

그것에 끔찍한 부조리함을 느끼면서도 권지아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애초에 내가 재능이 부족하다는 건 안다. 나는 언제나 모자라고 부족하고, 그러면서도 깨닫는 것조차 늦었으니까.’

그렇기에 수백 번이 넘는 실패한 삶을 반복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그녀는 달라질 수 있었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개척로를 향해 나아가기로 다짐한 순간부터 불안하게 흔들리던 그녀의 마음은 다시 먼 과거의 견고함을 되찾아 갔다.

그것을 깨닫게 해 준 것은 한 명의 남자.

“그 녀석을 위해서라도, 나는 여기서 쓰러질 수 없어.”

“…….”

강혜림은 입술을 앙다문 채 공허한 망막으로 권지아를 노려봤다.

강제로 폭주하는 번뇌로 인해 그녀는 권지아를 향한 거대한 질투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해치우기 위한 살의까지.

권지아는 강혜림이 자신에게 보내는 감정이 무엇인지 깨닫고, 쓴웃음을 머금었다.

“나를 질투하는가? 의외로 마음이 맞았군.”

“…….”

“나도 너를 질투했다. 너의 재능이 정말로 눈부시다고 생각했지. 이런 나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고 말이야.”

“…….”

“하지만, 틀렸어. 우린 겉으로는 아닌 척하면서도 서로를 인정하고 있었던 거야.”

파지지직!

강혜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감정을 고스란히 실은 뇌기가 검을 타고 강하게 흘렀다. 강혜림의 전신에 푸른 전류가 휘감겼다.

“그러니, 서로 끝을 보자.”

권지아는 조금 전부터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느껴지는 힘의 파동이 심상치 않음을 알았다. 유현이 아직도 살아있는 것 같았지만, 흐름을 보자니 그것도 길게 이어질 거 같지는 않았다.

저 먼 곳의 하늘 위에 무언가가 나타나려는 듯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었으니까.

“최대한 빠르게 끝내 주지. 혹여나 다쳤다고 원망하지 마라.”

권지아 또한 지지 않고, 기운을 최대한 끌어올리며 방출했다.

그녀의 전신을 타고 보랏빛 오라가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이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 상태로는 고작 한번이 전부지만, 그렇기에 가장 효과적이지. 방심하면 죽게 되는 것은 그쪽일 거다.”

권지아가 이런 경고를 날리는 것은 강혜림이 이런 공격에 죽지 않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처음 강혜림에게 별생각이 없던 그녀지만, 이제는 달랐다.

강혜림 또한 그녀의 동료였다. 등을 믿고 맡길 수 있는 훌륭한 동료. 그렇기에 그녀를 인정했고, 그녀를 질투했었다.

그랬던 그녀도 자신을 질투했다는 사실에, 어느 정도 위안이 됐다.

“으아아아아!!”

강혜림이 번개를 휘감은 채 질주했다.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는 그녀의 모습이 여러 개로 갈라졌다. 뇌기를 머금은 잔상이 사방으로 퍼지며 눈을 어지럽혔다.

잔상이 권지아를 주위를 흩날리는 꽃잎처럼 화려하게 누볐다.

어느덧 강혜림의 모습은 사라지고, 거대한 전류의 고리가 권지아를 둘러쌌다.

파지지지직!

전류의 고리에서 날카로운 검이 돋아났다. 스무 자루가 넘는 뇌검이 팔방에서 권지아를 노리고 찔러 들어왔다. 빠르고 날카롭다.

권지아는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성령들이 조마조마하며 싸움을 지켜봅니다.]

이 상황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일부 성령들이 권지아의 행동에 안타까움을 토했다.

그들의 시선에 권지아의 패배가 확실하게 그려졌다.

“그것이 네가 할 수 있는 지금의 전부인가?”

권지아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다행이야.”

아직은 내가 더 강한 거 같아서.

동시에 그녀의 전신을 두른 보랏빛 아우라가 변하기 시작했다.

콰득! 콰드득!

아우라가 짐승의 입으로 변했다. 하나가 아닌 수십 개나.

권지아의 전신에 입이 돋아난 것처럼 보였다. 날카로운 이빨은 끝없이 무엇을 갈구하듯 열렸다 닫혔다.

입은 권지아를 노리고 찔러 들어오는 뇌검을 삼켰다.

짐승의 입이 뇌검을 그대로 물어뜯었다. 강철 같은 이빨로 뇌기를 끊고, 씹으며 고스란히 삼켰다. 자신을 물어뜯는 입과 한차례 씨름하던 뇌검들은 하나둘 파편을 뿌리며 부서졌다.

“아직 완전하지 못한 3형이지만.”

챙그랑!

뇌검과 함께 뇌륜이 거울처럼 산산 조각나며 깨졌다.

강혜림이 펼친 분신들이 모두 사라지고, 진짜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격이 파훼 된 강혜림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밀려났다. 권지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은 이걸로도 충분하지.”

그녀의 몸을 두른 보랏빛 오라는 뇌륜을 삼키며 함께 사라졌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권지아는 강혜림을 향해 달려들었다. 강혜림은 본능적으로 검을 뻗었다. 무너지는 자세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날카로운 일격이었다.

권지아는 명도를 세워 그것을 막아 냈다.

촤악!

“큭!”

완전히 막아 내지 못해 어깨에 자상을 입었지만, 이 정도는 견딜 수 있었다.

둘의 무기가 충돌하며, 서로 완벽하게 빈틈이 드러난 순간이 바로 권지아가 그토록 노리던 기회였다.

“정신 차려라!”

쾅!

권지아가 강혜림의 이마에 박치기를 날렸다. 강혜림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권지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만약에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제정신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아으으. 머리야.”

“휴우.”

다행히도 그럴 일은 없어 보였다.

권지아는 겨우 긴장이 풀리며, 어깨의 힘을 뺐다.

“이제 정신이 드는가?”

“네, 네? 어라?”

강혜림이 벌겋게 부어오른 이마를 매만지더니,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는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 지아 씨! 어깨의 상처가……!”

“……아니. 됐다.”

권지아는 무엇을 말하려다가 그냥 넘기기로 했다. 당장 기억을 못 하는 걸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어서 유현에게 가라. 저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위험한 거 같으니까.”

“지아 씨는요?”

“나는…… 아무래도 힘이 다 빠져서 말이지.”

권지아는 쓰게 웃었다. 조금 전 사용했던 불완전한 3형 때문에 전신에 탈력감이 밀려왔다. 설마하니, 힘의 배분도 제대로 하지 못해 이런 곳에서 주저앉게 될 줄이야. 그녀는 자조했다.

권지아는 강혜림이라도 유현에게 보내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그 순간, 강혜림이 그녀의 어깨를 빌려주며 그녀를 부축했다.

“가시죠.”

“어, 어?”

“유현 씨가 위험하다면서요. 어서 가야죠.”

“아니. 나는 됐으니까, 너 혼자라도…….”

“아니요. 지아 씨도 같이 가야죠. 같이 일하는 선배로서 두고 볼 수 없어요.”

권지아는 강혜림의 단호한 목소리와 더불어, 이제는 망설임이 사라진 그녀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짓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등을 잠시 빌리지, 선배.”

“물론이죠!”

강혜림은 선배라는 말에 기쁨을 숨기지 못했다.

등 뒤에 업힌 권지아가 물었다.

“괜찮겠나? 제시간 안에 가기 힘들 텐데.”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이상할 정도로 컨디션이 좋거든요.”

파스스.

강혜림은 등에 업은 권지아와 더불어 전신에 뇌기를 둘렀다.

“지금이라면 뭐든지 가능할 거 같아요.”

[천둥걸음]

천뢰검에서 파생된 섬전보법보다 훨씬 더 상위의 기술이 강혜림의 두 다리로 펼쳐졌다.

권지아를 등에 업은 강혜림은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며, 한 줄기의 번개처럼 공간을 질주했다.

* * *

하늘의 빛과 함께 내려오는 성령의 모습에 유현은 이 빌어먹을 현실을 저주하고 싶었다.

‘죽을 위기를 겨우 넘겨 가면서 백야회의 암살자들을 정리하고, 진신사리 때문에 폭주하는 천마까지 겨우 진정시키나 했더니, 이제는 극락정토의 성령이 직접 내려오는 거냐?’

절대로 일어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이 눈앞에서 연달아 벌어지고 있었다.

만의 하나라는 가능성도 염두에 두는 유현이라고 하지만, 지금 사태는 아무리 봐도 정도를 넘어섰다.

‘저 미친 성령은 대체 뭐지? 이대로 하계에 억지로 힘을 쓰면, 자신이 소멸하는 걸 모르진 않을 텐데?’

서방백룡 오흠이 강제로 쫓겨난 서재에 들어간 것만으로도 상당한 제재를 당했다.

제네시스 시스템은 성령이 사는 상계와 인간이 사는 하계의 경계를 명확하게 나누고 있다.

그것을 무시하려는 순간, 제네시스 시스템은 거대한 강제력과 함께 규칙을 어긴 성령을 단죄한다.

1세대 성령이 하계에 개입을 하지 않는 것은 못 해서가 아니다.

혼성계를 아우르는 전 우주적인 거대한 시스템, 제네시스의 공분을 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눈앞의 성령은 그 미친 짓을 저질렀다.

‘자신의 목숨을 태우면서까지, 그녀를 죽이려고 한다고?’

그는 성령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 다만 대부분의 성령이 아주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는 것만 알았다.

‘내가 틀렸어. 녀석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미친놈이다.’

모든 성령이 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중에서는 제네시스 시스템으로도 막을 수 없는 확고한 신념과 목적의식을 지닌 성령도 있었다.

설사, 그것이 자신의 존재를 없앨지라도.

목적을 위해서라면, 존재의 소멸조차 각오한 성령이 이 혼성계에는 존재했다.

[세상을 검게 물들일 악이여.]

빛이 서서히 옅어지며 성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노승이 은은한 금빛을 내며 연꽃의 위에서 가부좌를 한 채 앉아 있었다.

[나 출라판타카가 여기서 네 번뇌의 종언을 고하노라.]

‘출라판타카!’

유현은 경악의 감정을 가까스로 다스렸다.

스스로 진명을 밝힌 성령의 행동에 의아함을 품을 틈도 없었다. 출라판타카라면 그 선각자의 제자 중 하나다.

본인의 재능이 우둔하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끝없는 수행으로 아라한이 된 자.

[스스로의 죄악을 깨닫고, 거기에 짓밟혀 무너져라.]

출라판타카로부터 흘러나오는 빛이 일순 강해졌다.

그것은 진신사리를 해방했을 때와 비슷한 빛이었다. 출라판타카 또한 사리를 지녔던 자로서,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하계의 사람들에게 강렬한 정신적인 압박감을 심어 주었다.

“누구 맘대로!”

유현은 즉시 검은 가면을 착용했다.

그의 양손에 검은 가죽 장갑이 생겨났고, 유현은 양팔을 펼치며 기운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검은 활자가 거대한 방벽이 되어 출라판타카의 빛을 막아 냈다.

하지만.

“큭!”

방벽은 빛에 닿는 순간 와해됐다. 유현은 침음성을 흘리며 뒤로 밀려났다. 양팔을 교차한 유현은 아려 오는 팔뚝에 눈살을 찌푸렸다.

단순히 존재감을 내비쳤을 뿐인데, 이 정도의 위력이라니.

‘가면을 쓰고 이렇게나 강해졌는데도, 내가 밀리다니.’

심지어 출라판타카는 관무 연합 고수들의 이야기를 분해해 억지로 자신의 육신을 구성했다. 누더기를 기워서 만들어 낸 비루한 몸뚱이로 불완전한 현신을 한 셈이었다.

본신의 힘을 생각하면, 지금 출라판타카는 그 반의반도 되지 않을 터.

그럼에도 유현이 밀렸다.

‘저것이…… 별의 힘을 지닌 천상의 존재.’

유현의 가면을 쓴 오른쪽 눈, 라플라스의 힘을 지닌 눈동자가 강하게 타올랐다.

[경고! 경고! 최고 위험도를 지닌 적대 존재 감지!]

[승리확률 0.00021%. 조정 개시.]

[승리확률 0.0000031%. 조정 개시.]

[승리확률 한없이 0에 수렴.]

미래를 보는 눈이 불가능을 점치기 시작했다.

심장이 뚫려 다시 부활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눈앞의 불완전한 현신을 한 성령은 그보다 훨씬 더 심했다.

유현은 왼쪽 눈, 가능성을 현실로 부르는 맥스웰의 힘을 발동했다.

[가능성이 너무 낮습니다.]

[실현화가 불가능합니다.]

연달아 터지는 불길한 소식들.

유현의 눈동자가 크게 떨렸다. 출라판타카는 그런 유현을 보며 무미건조한 시선을 보냈다.

[그런가. 그대가 바로 그 이야기꾼이로군. 그 불길한 가면과 힘. 참으로 놀랍고도 안타까운 일이다.]

출라판타카는 악을 벌하는 자였지만, 그렇기에 악을 동정했다.

그들이 사라져야만 하는 이 세상의 불완전함을 연민했다.

[그 힘은 위험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무질서의 악의가 그 가면에서 느껴진다. 오늘 이곳에서 악의 씨앗은 전부 사라지게 되리라.]

출라판타카로부터 흘러나오는 빛이 더욱 강해졌다.

[그게 바로 나, 출라판타카의 존재 의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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