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아는 주인공들-177화 (177/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77화

“무림맹과의 전쟁은 본교가 우세했었다. 물론, 그들 또한 만만치 않았지. 저항은 격렬했고, 관군까지 중간에 끼어들게 되면서 상황은 더욱 난전을 방불케 했다.”

서수민은 아직도 그때를 기억한다.

빠르고 신속하게 끝내야 할 싸움은 지지부진하게 늘어졌고, 그것을 어떻게든 타파하고자 그녀는 직접 전선에 나서 적들에게 칼을 겨누며 싸웠다.

초월자를 코앞에 뒀던 그녀의 힘은 정파의 무인들로는 절대 막을 수 없었다. 무림맹이 자랑하던 고수들이 속절없이 쓰러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무림맹은 머리를 썼다.

그들이 천마와 정면에서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최대한 정면충돌을 피하며 전쟁을 길게 끌고 간 것이었다.

전투라면 모를까, 전쟁이란 단순히 1명이 강하다고 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무림맹은 천마를 막기 위한 특수한 자들을 차출했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가며 천마의 발걸음을 늦추기 위한 무인들을.

그들은 서수민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면, 목숨을 던져 그녀의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그러는 사이 나머지는 발을 빼며, 전열을 가다듬고 다음 전투를 준비했다.

싸움은 길어졌다.

그렇게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는 전쟁 속에서, 서수민은 서서히 회의감에 빠졌다.

“교주의 자리까지 올라가면서 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전쟁은 내 마음을 피폐하게 물들였으니까.”

서수민이 짓는 괴로운 표정이 그때의 감정을 여실히 보여 줬다.

그녀는 너무나도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다. 그 덕분에 무공은 높은 경지에 올랐지만, 그녀의 정신은 그러지 못했다.

깨달음과 마음의 나약함은 별개의 것.

그녀는 뛰어난 육체와 무공을 지녔지만, 반면 마음(心)은 너무 여리고 물렀다.

서수민은 할아범이 원했기에 천마의 자리에 올랐고, 할아범이 원했기에 본교의 위상을 드높이려고 했지만, 막상 전쟁을 겪어보는 순간, 현실은 그리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전쟁이 벌어지고 그녀가 일선에 서면, 적 중 일부는 자신을 희생해 가며 그녀를 막았다.

저마다의 신념을 가지고서 자신에게 부딪히는 자들. 죽을 걸 알면서도 목숨을 내던지는 정파 무인들의 용기.

처음에는 별 느낌이 없었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이 서서히 젖어 들어가듯, 시간이 지나자 그녀도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동요하는 걸 느꼈다.

저들은 어째서 저렇게 치열하게 싸우는가?

그들은 무엇을 지키기 위해 목숨마저 버리는가?

왜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데 웃을 수 있는가?

그녀의 마음은 천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자신은 지금까지 무엇을 해 왔는지 의심이 생겼다.

의심은 마음에 금을 만들었고, 금은 곧 균열을 이루었다.

부서지지 않을 듯 완고했던 그녀의 마음이 처음으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후회와 망설임을 얻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싸움에 열정적으로 임하지 않게 됐다. 당연히 교주를 따르는 교인들이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교주님이 이상하다.

소문은 소리 없이 내달렸다. 평소에 그녀에게 앙심을 품었던 자들이 거기에 부채질을 가했다.

‘쯧. 계집년이 교주의 자리에 오르더니, 역시 이렇게 되는군.’

‘그 자리에 오르고도 적대 파벌을 숙청하지 않고 놔두다니. 이 어찌 안일한 태도란 말인가?’

‘본교는 지고 불변의 힘이 필요하다. 사소한 것에 휘둘리는 힘은 필요 없다!’

서수민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것에 일일이 대응을 하자니, 그녀의 심마가 너무나도 깊었다.

정신적으로 내몰린 그녀는 거의 터지기 직전의 시한폭탄이었다.

그렇게 정마대전이 서서히 고착화되어 가던 어느 날.

할아범이 그녀를 찾아왔다.

“할아범은 내게 무언가를 말했다. 나는 그리고 무언가를 답했지.”

“무슨 말을 나눴습니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중요한 무언가를 나눈 것 같았는데, 기억이 나지 않아.”

그때의 서수민은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해진 상황이라서 할아범과의 대화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단지 그녀가 기억하는 것은 무언가를 결심한 할아범의 뚜렷한 눈동자와 또다시 싸워야 하는 내일이 온다는 것에 대한 괴로움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현 혈영대의 대주이자, 서수민을 교로 데리고 와 키워 준 황안준.

그가 혈영대 전원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천마를 해하고자 했다.

* * *

“뭔가 이상해.”

“지아 씨도 그렇게 느꼈죠? 저도에요.”

권지아와 강혜림의 표정이 굳어졌다. 혈영 대주가 반란을 일으킬 준비를 한다는 정보가 있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주위 흘러가는 분위기는 어딘가 이상했다.

“천마란 천마신교의 최고의 직책이 아닌가? 그자를 암살하려고 노리는데, 어째서 다른 녀석들은 이렇게 얌전하지?”

“이건, 마치 이뤄지길 바라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것도 이상하군. 혈영 대주 황안준은 현 천마를 등극시키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자라고 적혀 있다. 천마신교 출신이 아니었던 자를 데리고 온 것도 그였고, 가르침을 내리고 기회를 준 것도 그였지. 어떻게 보면 천마의 은인이며, 당연히 천마신교에서 남부럽지 않을 직위를 지니고 있는 자일 텐데.”

“심지어 이 혈영대의 전 주인은 지금의 천마네요. 둘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아마도. 아니, 확실할 거다.”

강혜림과 권지아가 정보부를 확인하며 알아낸 것은 여러 가지였다.

현재 천마를 해하려는 반란이 일어나려 하고 있으며, 그 주동 세력은 당대 천마를 등극시킬 때 가장 최측근인 자들이었다.

그 반대 세력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일부러 정보를 알리지 않았다.

그들로서는 현 천마에 대한 불만이 있었으며, 친 천마 세력이 알아서 반란을 일으킨다는 것에 반가움을 느끼는 중이었다.

“그래서였군. 이곳이 왜 이렇게 허술하나 했더니, 필요한 녀석들은 일부러 반대 파벌에서 다 빼간 것인가?”

반란에 대한 자료가 위로 올라가지 않게 하려면, 당연히 이런 정보부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전투원이 적은 것도, 그리고 일부러 이렇게 허술하게 사람들을 배치한 것도.

전부 내부 파벌 싸움에 의한 결과물이었다.

‘어처구니가 없군. 이게 그 악명을 떨친 천마신교란 말인가?’

아니, 이런 내분 상황에서도 무림맹과 관군 연합에 밀리지 않는 것을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도.

다만,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단순히 내부 분열도 쉽게 넘길 수 없는 일인데, 반대 파벌이 무림맹과 무언가를 결탁한 흔적이 보였다는 점이었다.

권지아는 깨달았다. 이 사상세계는 단순한 정마대전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어두운, 그녀로서는 아직도 모를 무언가가 담겨 있는 복잡한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우리는 성가신 사건에 휘말린 걸지도 모른다.”

“지아 씨. 그 반란이 정확히 언제 벌어지는 거죠?”

“문서에 적힌 바로는 내일 정오로군.”

“……엄청 큰일인데요? 금방이잖아요.”

“그래. 큰일이지.”

강혜림과 권지아는 지금, 이 순간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어서 이 사실을 유현에게 알려야 한다고.

* * *

“해가 높이 떠오를 무렵이었다. 아마 정오였겠지. 할아범이 나를 불렀다. 워낙 정신이 없을 때라서 나는 별생각 없이 나갔었지.”

서수민은 할아범이 부른 장소로 나갔다.

그때까지 그녀는 별생각이 없었다. 그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할아범이 자신의 불만을 조금 들어주고, 이 복잡한 감정의 해답을 내려 줄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녀의 목숨을 노리는 암기가 날아오기 전까지는.

숲 너머에서 가득 날아오는 암기들이 하늘을 가득 메웠다.

뛰어난 무력을 지닌 그녀는 별로 어렵지 않게 수천의 암기를 전부 쳐 냈다.

처음 그녀는 생각했다. 정파 녀석들의 기습이나, 혹은 내부 적대 세력의 소행이라고.

하지만,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 자들의 면면을 확인한 순간.

그녀의 얼굴은 사정없이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혈영대.

그녀가 한때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며 동고동락하던 동료들.

그녀의 목숨을 노리는 것은 바로 그들이었다.

‘……너희들, 지금 뭐 하는 거냐. 이게 무슨 짓인지 알고는 있는 거냐? 혈영대! 네놈들의 대주는 어디 있지! 내 그에게 책임을 묻겠다!’

‘무르실 필요 없습니다. 천마시여.’

‘……혈영 대주!’

혈영대원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녀가 애타게 찾던 할아범이었다.

할아범을 본 서수민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항상 자신을 향해 인자하게 웃어 보였던 할아범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를 짐승 보는 것처럼 싸늘하게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서수민이 떨리는 입술을 움직였다.

‘대체, 대체 왜 나를 그런 눈빛으로 보는 거냐?’

‘언젠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할아범은 손을 들어 올렸다.

‘죽어 주십시오. 천마시여.’

동시에 혈영대가 몸을 날렸다.

방심하던 차에 암기 하나가 그녀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피가 흘렀고, 고통이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피하지 않았다면, 미간 한복판에 박혔을 공격이었다. 그들은 정말로 그녀를 죽이려 했다.

‘왜.’

서수민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어째서 저들이 나를 배신했는가? 왜 할아범이 나를 죽이려 드는가?

‘대체, 왜!?’

유일하게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던 자가 배신을 했다.

전쟁으로 인해 극한까지 피폐해진 그녀의 정신은 거기서 한계를 맞이했다.

콰직.

그녀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부서졌다.

그것은 이성이었을까. 가까스로 참아 왔던 인내심이었을까.

아니, 어쩌면.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소중한 추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사라졌다.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됐다.’

이제 뭐가 어찌 되든 다 좋았다.

그냥.

그냥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렇게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괴물이 되었다.

“그 뒤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나는 내 손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전부 죽인 뒤였더군. 주변은 완전히 폐허가 됐고, 생존자는 없었지. 나는 그렇게 영혼 없는 사람처럼 정처 없이 떠돌았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 아주 깊고 깊은 산속으로.”

“…….”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 다만, 내 재능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강력해서, 단순히 심신의 안정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성장을 이뤘지.”

초월자의 영역에 발을 들이밀고 있던 그녀는 그 초월자마저도 넘어섰다.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지고한 격을 손에 넣은 것이다.

그 효과로 그녀는 다른 존재로 탈바꿈할 기회를 얻었다.

선택받은 자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별(星)의 자리에 오를 기회를.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그것을 탈마(脫魔), 혹은 우화등선(羽化登仙)이라 불렀다.

“그런데, 왜 지금은…….”

“왜겠는가?”

서수민의 씁쓸한 목소리에 유현은 깨닫고 말았다.

그녀의 재능을 두려워한 자들이 과연 인간만 있었을까?

하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자들이 과연 인간이면서도 말도 안 되는 힘을 지닌 그녀를 가만히 놔뒀을까?

극락정토. 그들이 손을 쓴 것이다.

격을 초월해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하는 그 순간만큼은 역설적으로 가장 약할 때였으니까.

대성군의 견제의 결과 서수민은 또다시 하계로 영락해 버렸다.

그렇게 그녀의 혼은 지구라는 차원으로 흘러 들어가, 또 다른 삶을 얻게 됐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이야기이며, 서수민이 겪어 온 삶이었다.

“이곳은 그 시절 내 악몽과 괴로움이 결정화된 세계다. 그리고 분명, 내일…… 똑같은 일이 벌어지겠지.”

“막으면 되지 않습니까?”

“대체 어떻게?”

“…….”

“나는 두렵다.”

서수민은 솔직하게 말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더 이상 숨길 것도 없었다.

“그들의 얼굴을 다시 보는 것도 폭주한 내가 그들을 다시 죽이는 것도 전부. 너무 무서워서 꼼짝도 할 수 없어.”

그녀는 소중하게 생각했던 자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결국 그 손으로 그들의 목숨을 취했다.

서수민의 손에는 아직도 피가 묻어 있었다.

남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에게는 보였다.

씻어도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피가 족쇄처럼 남아 그녀의 두 손을 무겁게 만들었다.

똑.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나는…… 어쩌면 좋지?”

“…….”

유현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 * *

슬픔에 지친 서수민이 잠들자 유현은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중원 무림의 밤은 서울과는 확연히 달랐다. 세상 모든 것이 짙은 어둠에 물들어 있었다. 마치 거대한 접시 위에 먹물을 담은 것 같았다.

하지만, 서울의 야경과 다르게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은 무엇보다 찬란하게 빛났다.

눈을 어지럽게 만드는 총천연 한 별빛의 향연과 밤벌레의 우는 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밤벌레의 울음소리가 파편처럼 부서져 하늘에 새겨진 것이 저 이정표들 같았다.

이곳은 정말 아름다운 세계다.

동시에 참으로 잔혹한 세계다.

‘한 소녀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세계가 보여 주는 이 풍경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다니. 정말 끔찍할 정도로 모순적이군.’

서수민의 이야기를 다 들은 유현은 심란해졌다.

만약에 자신에게 담배가 있었다면, 이때 처음으로 피웠을지도 모를 정도로.

[나는 이해가 안 가.]

브로치 형태의 백련이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그녀는 천마잖아. 당대 최고의 무인이었잖아. 내가 기억이 애매해서 잘 모르는데, 초월자라 하면 보통 그 자리까지 올라가는 데 많은 노력을 했고, 그 때문에 어지간한 일에는 내성이 있는 거 아니야? 고작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한 거로 저런 반응이라니.]

백련의 지적은 어떻게 보면 타당했다.

그냥 일반 사람도 아니다. 서수민은 천마였었다.

그녀가 가진 힘. 성령들조차 두려워하는 초월자로서의 격은 절대 허투루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사에서 많은 영웅이 존재했지만, 서수민은 그중에서도 아주 돋보이는 수준이었다.

그런 자의 마음이 저렇게나 나약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가 그렇게 바라는 걸지도 모르지.”

[뭘?]

“천마라면 완벽해야 한다고 말이야.”

유현은 일전에 최중모와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그들은 타인에게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을 본다.

본인이 이루지 못한, 그런 모습을.

“초월자라면 강해야 한다. 천마라면 강해야 한다. 그들은 구부러질 줄 모르고, 부러지는 것도 모른다. 마음은 언제나 강건하며,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흔들려서도 안 된다.”

영웅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세간의 인식.

그리고, 영웅에게 바라는

사람들의 욕망.

“천마뿐만이 아니야. 이야기의 주인공. 신화 속의 영웅들. 역사의 증인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생각하지. 그들은 완벽해야 한다고.”

주인공은 완벽해야 한다. 그들은 패배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인공’이니까.

영웅이니까.

하지만, 그게 사실일까?

과연, 영웅에게 고뇌가 없을까? 그들이 모든 괴로움을 가볍게 털어 낼 수 있을까?

“세상에 그런 게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아무리 강한 사람이어도 마음이 부러지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없어. 백련, 네가 그녀를 보면서 느꼈듯이 우린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는 걸지도 몰라.”

모두가 강할 수는 없다. 세상에 완벽한 존재는 없다.

서수민의 괴로움에 이해하지 못하고 왜 괴로워하냐고 묻는 것은 그녀에게 이상적인 완벽함을 투영했기 때문이다.

타인이 씌운 그 껍질을 한 꺼풀만 벗기면 드러나는 것은, 그저 눈물을 흘리는 한 명의 소녀일 뿐인데.

그들은 자신의 나약함을 숨기며, 애써 강한 척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그리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지.”

[……미안. 내 생각이 짧았어.]

백련은 자신의 태도를 반성했다. 유현의 말은 공감한 것 이상으로, 그의 목소리가 어딘가 슬프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이제 어쩔 거야?]

“그러게.”

유현은 뒤를 살짝 돌아봤다.

허름한 집 안에서 잠든 두 소녀를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서수민의 과거를 듣는 순간, 그의 마음은 더욱 확고해졌다.

“싸워야지.”

유현은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그러했듯.”

앞으로도 그러하듯.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