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172화
유현은 주변을 살폈다.
하늘은 맑았고, 그 아래 옛 중국 양식으로 지어진 목제 건축물들과 돌담이 보였다.
사람은 없었다. 주변 분위기 자체가 어딘가 이상했다.
‘뭐지? 도시는 이렇게나 큰데, 사람들이 없다니.’
자세히 보니, 건물들도 여러 곳 손상되고 무너져 있었다.
유현은 커다란 싸움이 이곳을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음을 직감했다.
‘전쟁이라도 터진 건가? 무림 세계에서 정파와 사파끼리 크게 싸우는 일이야 많이 들어 봤었으니.’
전혀 생소한 세계에 온 것도 그렇지만,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함께 들어왔다고 생각한 권지아와 강혜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입장과 동시에 뿔뿔이 흩어지는 유형의 사상세계였나? 귀찮게 됐어.’
간혹, 이런 곳이 있다.
들어온 입구가 사라진다거나, 혹은 함께 들어온 사람들이 흩어진다거나.
지난번 모비딕 사상세계도 입장한 뒤, 입구가 사라졌었다.
당연히 그것은 사상세계의 난이도가 다른 곳보다 높다는 것을 의미했다.
‘골치 아프군. 지구의 이야기가 아니라서 어떤 조건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곳인데. 최우선적으로 서수민과 강유라를 구하는 것에 신경 써야겠어.’
강혜림과 권지아라면 어딜 가서도 쉽게 당할 사람이 아니니, 일단 믿어 볼 수밖에.
불행 중 다행으로 유현의 근처에는 들어왔을 때의 입구가 남아 있었다.
일단, 찾기만 하면 바깥으로 나갈 수단은 있는 셈.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협회에서 특수 제작한 무전기가 없으면, 연락이 안 되지만. 텔러인 나는 다르지.’
계약으로 묶인 그들이기에 염화를 통한 대화는 국가 단위로 멀리 떨어지지 않는 이상 충분히 가능했다. 유현은 곧바로 두 사람에게 염화를 보냈다.
‘두 분 모두. 괜찮으십니까?’
-앗! 유현 씨! 네네, 전 괜찮아요.
-나도 그렇다.
‘다들 위치는 어디입니까?’
-어, 음. 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주위에 후줄근한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골목길 같은데. 악취나 그런 게 엄청 심해요.
-나는 대나무 숲이로군. 저 멀리 도시 하나가 보이는데, 검은 연기가 나고 있다. 싸움이라도 난 것 같군.
‘검은 연기요?’
유현은 주위를 둘러봤다. 무너진 건물은 보여도, 연기는 나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권지아는 다른 도시를 보고 있다는 소리였다.
유현은 이 사상세계가 생각보다 훨씬 더 넓은 곳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두 사람을 찾는 일이 생각보다 더 오래 걸릴지도 몰랐다.
‘그나마 나는 책을 통해 가까이만 있으면 바로 알아낼 수 있다지만, 이렇게 넓으면 곤란한데.’
서수민이나 강유라가 어디 가서 객사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서수민이 강유라와 함께 있다면, 두 사람은 어느 정도 버틸 수는 있으리라.
‘아무래도 지형도 모르고 서로의 위치도 잘 모르다 보니, 합류하려면 시간이 꽤나 걸릴 거 같네요.’
-으으. 그러면 어쩌죠?
‘우선, 휘말린 민간인을 찾는 데 주력해 주세요. 저희가 합류하는 것은 그다음입니다. 부탁합니다.’
-알았어요.
-알겠다.
강혜림과 권지아도 지금 사태가 상당히 심각하다는 걸 알았기에 유현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염화를 끝낸 유현은 팔짱을 낀 채 고민에 들어갔다. 이제부터 뭘 해야 할지, 그 순서를 정하고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서재가 개방되고 성령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아, 성령님들. 안녕하십니까?”
순식간에 시청령의 숫자가 9천 명에 도달했다. 단순히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지금도 조금씩이지만 시청령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아마 이번 사상세계가 또 특이한 곳이라고 소문이 나면, 곧 1만의 벽을 돌파하게 될 것이다.
[성령들이 새로운 사상세계에 대해 흥미를 품습니다.]
[성령들이 3개로 갈라진 화면에 의아해합니다.]
[일부 성령들이 낯이 익은 곳이라고 고개를 주억거립니다.]
‘낯이 익은 곳이라고?’
유현은 해당 성령에게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성령들은 항상 지켜보는 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후원해 줄 수 있는 것은 약간의 포인트가 전부였다.
하계의 인간이 궁금한 걸 물어도 성령들은 그것을 들을 수는 있을지언정 알려 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시스템이 엄격하게 막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허점이 없는 것은 아니야.’
이쪽이 궁금해하지도 않았는데, 성령이 멋대로 떠벌리는 것 정도야 가능은 하다.
다만, 해당 정보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제네시스 시스템이 자체적으로 제재를 가할지, 말지를 판단하기 때문에 성령들은 괜한 구설수에 휘말리기 싫어서 별말을 하지 않을 뿐이다.
조금 정보를 얻을 수 있나 싶었는데, 아쉽게 됐군.
유현은 일단 성령들에게 이게 어찌 된 일인지, 간략하게 설명했다.
“성령님들. 이번 사상세계는 조금 특이해서 그런지, 입장과 동시에 다들 흩어지게 됐더라고요. 다 뭉쳐있지 못한 것에 대해서 양해를 바랍니다.”
유현의 서재에 와도 권지아를 보고 싶어서 온 성령도 있고, 강혜림을 보고 싶어서 온 성령이 있다.
셀린이 알아서 나누듯 보여 주게끔 처리를 했겠지만, 불편하다는 말이 나올 수 있어서 미리 선수를 쳤다.
‘셀린. 뒤는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유현은 셀린과의 통신을 끝내고, 백효를 소환했다.
처음 봤을 때의 자그마한 솜뭉치 같던 백효는 어느덧 일반 성체 부엉이 정도로 성장했다. 다만, 커진 덩치와 다르게 초롱초롱한 눈동자는 여전했다.
“백효야. 이 근방 수색을 부탁한다.”
부엉.
조금 굵어진 울음을 토한 백효가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백효와 시야 공유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이 부근의 대략적인 지형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백효의 시선이 닿지 않는 건물 안의 경우에는 직접 확인해야 했기에 유현 또한 움직였다.
* * *
샤마트는 유현 일행이 사상세계에 들어간 것을 확인했다.
그는 갈라진 혀를 날름거리며, 이제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웠다.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벌써부터 뒤를 쫓을 필요는 없었다.
‘라오 첸. 들립니까?’
-네, 샤마트님. 하명하십시오.
‘우선은 근방에서 대기하도록 하세요. 바로 들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부하들에게도 그렇게 일러두고요.’
-알겠습니다.
라오 첸은 토를 달지 않고, 샤마트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항상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에게 샤마트란 반드시 믿고 따라야만 하는 신의 사도였다.
샤마트도 그것을 알기에 라오 첸을 자주 이용해 먹었다. 토를 달지 않는 장기 말 치고는 우수한 남자였으니까.
샤마트는 유현이 사라진 사상세계 입구를 보며, 손바닥 위의 자그마한 구슬을 굴렸다.
‘개인적으로 이것까지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의 손에 쥐어진 구슬은 새하얀 빛을 머금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영롱한 진주 같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하얀 조약돌 같기도 했다.
그러나, 겉보기와 다르게 구슬에 담긴 힘은 감히 샤마트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귀중한 물건을 고장 하계의 인간 하나와 대리급 텔러를 죽일 때 써야 하는 건 좀 손해 같단 말이지.’
구슬을 향한 샤마트의 눈동자에 물욕이 차올랐다.
대성군 극락정토가 이야기의 씨앗과 함께 제공한 이 2번째 물건의 이름은 [진신사리(眞身舍利)]였다.
사리는 고승(高僧)의 시체를 화장할 때 나오는 자그마한 구슬처럼 생긴 흔적이며 성유물(聖遺物)급 아이템이었다.
법력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사리는 대단한 승려의 시체를 화장해도 잘 나오지 않을 정도로 희귀하다.
결국, 이 사리의 존재 자체가 존재의 격을 증명하는 부산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사리의 등급 또한 원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갈린다.
샤마트가 쥐고 있는 것은 그런 사리 중에서도 단연코 최상급.
평소의 그였다면, 만질 수도 없는 귀중품이었다.
‘아무렴. 무려, 그 선각자(先覺者)의 사리라니.’
선각자 석가모니.
후천적으로 별의 자리에 올랐으면서 4세대 성령을 넘어 1세대의 자리까지 오른, 한때는 하계의 인간이었던 자.
모두가 1세대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4세대 성령인 그가 별의 자리에 오르기 전 남긴 흔적이 바로 진신사리였다.
진신사리는 이 우주, 전 혼성계를 통틀어도 8섬 4말밖에 존재하지 않는 희귀한 물건.
그 가치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샤마트에게 주어진 새끼손가락 마디보다 작은 진신사리도 마찬가지였다.
‘이걸 차원 상점에 팔기만 해도, 천체주식회사에서 독립할 수 있는 포인트를 받게 될 텐데.’
진신사리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문제는 극락정토가 이 정도의 물건을 고작 하계의 인간 하나를 죽일 때 쓰라고 준 것이었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 수준이 아니라 용 검을 준 셈이었다.
‘그냥, 따로 빼돌릴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샤마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아니야. 그래선 안 되지.’
샤마트는 자신의 욕망을 억눌렀다. 그는 교활한 자였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의 욕망을 억제할 줄 알았다.
샤마트는 자신의 욕심대로 행동하다 신세를 망친 자들을 많이 봐 왔다.
그는 그것을 반면교사 삼아 항상 자신의 욕망을 숨기고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욕망에 휩쓸리는 것 자체를 경멸했으니까.
샤마트는 극락정토에서 자신에게 이걸 넘기며 임무를 맡긴 것은 그런 자신의 성향을 알아서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아마, 그럴 확률이 높겠지. 대성군이 지시한 일이다. 물건 하나에 눈이 돌아가서 그르칠 수는 없어. 어차피 이번 일을 성공하기만 해도 극락정토에서 알아서 큰 보상을 해 주는데,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비록 진신사리와 비교하면 보상은 부족하겠지만, 샤마트는 그걸로도 만족하기로 했다.
‘큰일 날 뻔했어. 과연 진신사리란 건가? 모든 번뇌의 근원이 되는 결정체라더니. 소문을 무시할 건 아니나 보군.’
장갑을 낀 손에 쥐고만 있을 뿐인데도, 진신사리에 이성이 잡아먹히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그는 정신적인 공격까지 막아 주는 [제네시스의 가호]를 받고 있음에도 그랬다.
만약에 이것을 하계의 인간에게 사용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가호조차 받지 못한 그 나약한 존재가 과연, 성령의 자리까지 올라간 자의 번뇌를 이겨 낼 수 있을까?
‘대체 왜 이걸 사용하라 주셨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사용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군.’
샤마트는 그 광경이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기다림은 별로 오래 걸리지 않으리라.
* * *
유현은 도시를 탐색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집은 전부 다 텅 비어 있었다. 남아 있는 물건이 없는 걸 보아 아무래도 전부 피난을 간 것 같았다.
‘이 도시 사람들은 싸움이 벌어지기 전 대피를 끝냈다는 소린데.’
강혜림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녀의 주위에는 허름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장소마다 차이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 뒤로 도시 전체를 이 잡듯 샅샅이 뒤진 결과, 유현은 이곳이 꽝이라고 판단했다.
아무래도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할 거 같았다.
그렇다면 지리도 아직 잘 모르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순간이었다.
사삭.
귓가에 자그마한 소리가 들렸다.
너무도 작아서 쥐새끼 하나가 지나갔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미비한 소리였지만.
유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유현아.]
‘나도 알아.’
백련이 경고를 날렸다.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각을 집중했다. 지금 그가 있는 건물의 바깥에서 인기척이 하나둘 느껴지기 시작했다.
유현은 곧바로 백효와 시야를 공유했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지붕 위에서 검은 옷의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수준이 상당히 높군.’
다수가 움직이고 있는데도, 그 발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못 보던 사이에 유현이 있는 집을 포위한 검은 옷의 숫자가 어느덧 50이 넘었다.
상대는 이곳 사상세계에 구현된 환상체였다. 그리고 무림인 이곳의 환상체라면 당연히 무인이리라.
유현은 짐짓 모르는 척, 집 밖으로 나왔다.
눈 앞에 펼쳐진 장원의 한 가운데에 한 노인이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주위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담벼락의 너머나 지붕의 위, 우거진 풀숲에서 다수의 사람이 유현을 주시하는 게 느껴졌다.
“이거 참.”
노인은 유현 혼자만 있는걸 보더니, 괜히 긴장했다는 듯 콧바람을 내뱉었다.
유현도 노인의 모습을 세세히 살폈다. 평범한 노인이었다. 키는 작고, 허리도 살짝 구부정하고, 머리는 하얗게 셌다.
하지만, 유현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마치, 보란 듯이 선량한 사람의 느낌을 풍기는군.’
노인은 인상이 좋았다. 아마 저 얼굴로 웃기까지 하면, 정말로 사람이 착하게 보이는 느낌을 강하게 줄 것이다.
유현은 그것에 이질감을 느꼈다.
노인의 모습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누군가에게 일부러 그렇게 보이기 위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것이었다.
‘그래도, 굳이 그걸 지적할 필요도 없겠지.’
지금 상황에서는 어지간하면 충돌은 피해야 했다.
유현은 노인의 앞에 서서 공손히 물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강유현이라고 합니다. 귀인께서는 누구신지요?”
“노부는 황안준이라고 한다네. 그보다 자네는 나를 아는가?”
“아니요. 하지만 주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이끄는 자라면, 딱 봐도 높으신 분일 거라 생각했죠.”
“그것도 그렇군.”
황안준은 유현이 주위에 숨은 자들을 지적했음에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 또한 유현이 범상치 않은 자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강대협은 어쩌다 여기로 오게 된 건가?”
강대협이라니.
유현은 그 이질적인 호칭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 세계에는 이 세계만의 법칙이 있는 것을.
“저는 사람 둘을 찾고 있습니다.”
“흐음, 사람이라. 누구를?”
“네. 혹시 독특한 복식을 한 소저 둘을 본 적 있으십니까? 나이는 열여섯 정도 됩니다.”
“갓 파과지년(破瓜之年)에 독특한 복식을 한 소저 둘이라. 아쉽게도 노부는 본 기억이 없다네.”
“그렇습니까?”
유현은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 대답으로 이 도시는 깔끔하게 포기할 수 있었으니까.
황 노인이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자네는 노부를 경계하지 않는군?”
“그러는 어르신도 그러지 않으십니까?”
“뭐, 나야 처음에는 자네가 정파에서 보낸 밀정이 아닐까 생각했네만. 그 복장이나 이쪽을 대하는 서슴없는 태도를 보고, 그냥 이번 일에 무관한 제삼자라는 것을 알았지. 정파 놈들은 항상 말투가 딱딱하고, 격식을 차리거든.”
“칭찬 감사합니다.”
“그걸 칭찬으로 받아들이다니, 자네도 참 독특한 사람이로군 그래. 그 성격만큼 독특한 복색은 어디서 난 건가?”
“서역에서 직접 가져온 물건입니다. 연이 닿아서 얻을 수 있었죠.”
“호오. 멀리도 나갔었군.”
“낭인이라서 그렇습니다. 발길 닿는 대로만 움직였죠. 그보다 주변에 무슨 일 생겼습니까? 혹시, 전쟁이라도 벌어진 겁니까?”
“낭인치고는 풍문은 제대로 듣지 못했나 보구려.”
“사람을 찾는 데 정신이 팔려서 말이죠.”
서로 떠보는 것도 이제 끝났다. 황 노부는 유현이 적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며, 유현 또한 그가 자신을 적대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능력 있는 자들은 서로를 알아보는 법.
유현은 이번 사상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을 단서를 눈앞의 노인에게 찾았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제게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뭐, 굳이 숨길 것도 없으니 알려 줘도 상관은 없네만. 다만, 이곳에는 혹시 모를 보는 눈이 있을지 모르니 장소를 옮기 세나.”
황 노부는 자신의 수염을 한차례 쓸더니, 등을 돌렸다.
동시에 유현을 둘러싼 기척들이 빠르게 멀어졌다.
유현은 황 노부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