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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70화 (170/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70화

[야, 야! 쟤 왜 저래? 따라가야 하는 거 아니야?]

이 상황을 몰래 지켜보던 백련이 소리쳤다. 현재 백련은 검의 형태가 아닌, 자그마한 브로치로 변해 유현의 주머니 안에 있었다.

그녀는 난데없이 도망치는 서수민을 보며 유현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 따라가 봤자 소용없어.’

[그게 무슨 소린데?]

‘내가 싫어서 도망치는 게 아니야. 조금 전까지 그녀는 아무렇지 않았어. 그런데 내가 손을 내밀며 제안을 하는 순간, 갑자기 눈빛이 확 변했지.’

유현은 자신의 태도에서 그녀가 무언가 과거를 겹쳐 봤다고 판단했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일종의 트리거(trigger)를 당기고 말았다. 그것이 서수민이 전생부터 지니고 있던 하나의 감정을 제대로 건드리고 만 것이다.

유현도 몇 번 같은 것을 본 적이 있어서 알 수 있었다.

‘대체 뭘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환각을 봤을 정도로 심각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안고 있던 거야. 그게 지금 터진 거고. 그래서 지금 따라가 봤자 소용없어. 저런 상태에 빠진 사람은 쉽게 진정하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가만히 놔둬도 돼?]

‘무엇보다 그녀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만든 것은 나야. 아마 내가 따라간다 하더라도 그녀는 나를 보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조금 전의 일을 떠올릴걸. 후우. 내 실책이야. 조금 더 차분히 다가갔어야 하는 건데.’

유현은 쯧 하고 혀를 찼다.

대성군을 상대로 일을 처리해야 하다 보니, 조금 성급해진 감도 없잖아 있었다. 그 이상으로 그가 서수민의 과거를 모르는 것이 큰 결점이었다.

그녀가 무엇 때문에 저런 반응을 보인 걸까?

그래도 명색의 초월자였던 사람인데, 어쩌다 저렇게 망가진 걸까?

‘그녀의 과거를 모르는 이상 상황은 쉽게 진정될 수 없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야. 본인은 한사코 입을 다물 테니까.’

[……와. 진짜 상황 쉬운 게 하나도 없네. 그러면 이제 어쩌게?]

‘일단 매니지먼트로 돌아가서 지아 씨와 혜림 씨에게 이 상황을 알려야지. 극락정토가 움직인다는 걸 알았지만, 놈들이 언제 나설지 모르니까. 준비를 할 필요가 있어.’

유현은 조금 전까지 서수민이 서 있던 자리를 아쉬움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봤다.

‘어쩌면, 지금 녀석들이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르지.’

* * *

인천항의 부두.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은 곳에서 한 척의 선박이 소리 없이 들어왔다.

배가 정착하고, 그 위에서 몇몇 사람들이 내렸다. 대기하고 있던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그들을 맞이해 줬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황혼의 장막 클랜의 1지부장 전민혁이라고 합니다.”

“…….”

전민혁이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예의를 갖췄음에도, 상대의 반응은 냉랭했다. 고개를 숙인 전민혁이 이를 악물었다.

‘이런 제길. 이 빌어먹을 중국인들에게 내가 왜 고개를 숙여야 하는 거야.’

지금 부두를 통해 들어온 사람들은 한국인이 아니다. 그들은 중국 백야회라고 불리는 중국계 마피아에 소속된 컬렉터들이었다.

전민혁도 백야회에 대해서는 들어 봤다. 그들은 상당히 위험한 조직이라는 것 정도야 듣는 귀가 있으면 누구라도 안다.

하지만, 이곳은 한국이다. 그리고 그는 이 한국에서도 손꼽히는 거대 클랜 황혼의 장막의 1지부장이다.

‘지금은 우리 클랜의 상태가 많이 안 좋다 해도, 어디 가서 꿀릴 정도는 아닌데.’

정작 클랜장이 그를 이곳으로 보내면서 저들을 깍듯이 모시라고 했다.

전민혁은 그것이 채 납득할 수 없으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가엘 텔러님이 그렇다고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토를 달아?’

그가 잘나가는 컬렉터라 하더라도 아가엘을 무시할 정도는 아니다.

결국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고, 전민혁은 이 불합리한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디로 모실까요. 일단 식사부터 하시겠습니까? 좋은 곳을 예약해 뒀습니다.”

“아니.”

그렇게 대답한 것은 얼굴에 기묘한 문신을 한 반삭 머리의 남자였다.

그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전민혁은 온몸에 벌레가 타고 올라오는 착각을 느꼈다.

‘어, 어?’

“우리는 이곳에 일을 하러 왔다. 괜한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지.”

“그, 그렇습니까? 그러면 어디로 안내를.”

“됐다. 너희의 도움은 필요 없다. 우리는 따로 움직인다.”

“네? 하, 하지만.”

“무슨 불만 있나?”

남자, 라오 첸의 눈빛에 전민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1지부장으로서 나름 권위를 지닌 그였지만, 눈앞의 중국인은 어딘가 상대하기 껄끄러운 자였다.

“알았으면 꺼져라. 방해하지 말고.”

“……그러죠.”

전민혁은 이를 악물고 그렇게 말했다. 그는 부하들과 함께 가져온 차를 가지고 떠났다.

부두에 남겨진 것은 라오 첸을 포함한 백야회 소속 컬렉터 5명이었다.

전민혁 일행이 사라지자, 부하 중 덩치가 크고 험악한 인상의 남자가 중국어로 물었다.

(두목. 저 녀석들 그냥 보내도 돼? 어디 가서 떠벌리면 위험하지 않아?)

(맞아. 차라리 이 자리에서 없애는 게 나았을걸?)

치렁치렁한 도복을 입은 마른 남자가 그 말을 받았다.

라오 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샤마트님의 명령이 있었다. 그들과 반목하지 말라더군.)

(샤마트님의 말씀이라면 어쩔 수 없지.)

섬뜩한 눈동자를 지닌 여인이 라오 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 1명의 자그마한 노인은 허리춤에 손을 얹은 채 묵묵히 서 있기만 했다.

도복의 남자가 물었다.

(그래도 이거 참 궁금하군. 우리 다섯을 이렇게 옆 나라로 부를 정도라면 얼마나 중요한 일이 있는 거지?)

(제거할 대상이 있다고 한다.)

라오 첸의 그 말에 나머지 네 명의 눈빛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라오 첸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어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따르는 부하 넷은 이런 자들이었다. 살인에 미쳐 있고, 또 누구보다도 이 일에 특화된 암살자들.

‘샤마트님. 이제 저희는 뭘 하면 되겠습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

펜타그램 부서의 샤마트 과장은 직속 계약 컬렉터 라오 첸의 물음에 그렇게 대답했다.

샤마트는 관조자의 방에서 혀를 날름거렸다.

우선 아가엘이 이끄는 황혼의 장막 클랜의 도움을 받아, 인터폴에서 수배를 받고 있는 그의 암살자들을 밀항하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이다음 목적은 당연히 2가지다.

‘하나는 우리 펜타그램에게 싸움을 건 그 시건방진 텔러를 죽이는 거지. 그런데…….’

문제는 높으신 분께 부탁을 받은 2번째였다.

‘한 소녀를 죽이라고? 컬렉터도 아닌?’

샤마트는 그것이 이해 가지 않았다. 애초에 2번째는 그가 꾸민 일이 아니었다.

‘이상한 일이야.’

샤마트는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자신의 개인 메시지를 통해 날아온 한 통의 편지. 그것을 읽은 순간, 샤마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려, 대성군에서 그에게 개인적인 제안을 하나 했기 때문이었다.

‘한 소녀를 죽여라. 그녀는 컬렉터가 아닌 평범한 소녀처럼 보이지만, 아주 위험한 존재다.라고 했었지. 그리고 그 말을 하면서 2개의 물건을 보냈었어.’

샤마트는 2개의 물건 중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아주 자그마한 씨앗이었다.

손가락의 사이에 겨우 들어갈 정도로 작은 물체.

‘설마, 이런 것을 주실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샤마트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씨앗이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과장이 되면 이전 직급과 비교해서 알고 싶지 않아도, 더 많은 사실을 들을 수 있게 된다.

샤마트가 과장이 돼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가 바로 이 씨앗의 존재였다.

‘이야기의 씨앗. 성령님들께서 하계에 자신의 이야기를 제공할 때 사용하던 물건이지. 그것도 하급이 아닌 중급이라니.’

그리고 이것은 마음만 먹는다면 하나의 ‘세계’를 구현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씨앗이란 그런 것이었다. 이 자그마한 물체 안에 얼마나 방대한 양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는 그도 추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누군가와 접촉하게 됐을 때 벌어지게 될 일조차도.

‘그런데, 왜 하필 씨앗이지?’

샤마트는 그것이 의문이었다. 이유는 알려주지 않았고, 그를 지원해 준 대성군은 자신들이 알려 준 소녀에게 이 씨앗을 쓰라고만 일러 줬을 뿐이었다.

그것도 어지간한 전설급 이야기를 구현시킬 수 있는 중급 씨앗을.

‘흐음. 이렇게 남이 시키는 대로만 얌전히 따르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지만, 그래도 대성군에서 모처럼 개인적으로 보낸 일이니까 실수 없이 처리해야겠어.’

샤마트는 자만하지 않았다.

대성군에서 이렇게까지 한다면,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과장까지 올라온 그가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샤마트는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씨앗을 사용하게 된다면, 2번째 물건은 그 안쪽에서 쓰라고 했었지.’

무엇보다 샤마트를 놀라게 만든 것은 바로 이 2번째였다.

‘설마, 이걸 주셨을 줄이야.’

이야기의 씨앗도 정말 대단한 물건이었지만.

‘이것’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상대가 국가 전력급인 상급 컬렉터라 하더라도 이거라면 아주 쉽겠는데.’

물건을 집어넣은 샤마트는 자신을 따르는 라오 첸들에게 현장에서 잠시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린 뒤 제네시스 네트워크에 접속했다.

우선, 유현에 관한 정보를 입수할 필요가 있었다.

‘딱히 찾는 건 어렵지는 않군.’

유현이 워낙 유명 인사라 그에 관한 것을 찾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하계에서도 유현을 주시하는 눈빛이 많다 보니, 그의 위치를 빠르게 특정 짓는 것도 쉬웠고.

‘지금 서재를 열지 않아서 정확히 염탐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제네시스의 가호]를 사용해서 몰래 지켜보는 것은 가능하리라.

샤마트는 곧바로 가호를 사용해 공간을 가로질러 이동했다. 하늘을 부유하던 그는 아주 멀리 떨어진 유현을 찾아냈다.

산의 높은 하늘에서 내려온 샤마트는 나무의 사이에 몸을 숨겼다.

‘저기 있군.’

유현은 한 여성과 함께 있었다. 여자애는 교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학생으로 추정됐다.

그 학생의 얼굴을 눈에 담는 순간, 샤마트는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아야만 했다.

‘설마, 두 목표가 서로 아는 사이였을 줄이야! 하늘이 돕는구나.’

유현과 함께 있던 저 소녀가 바로 대성군이 그에게 죽이라고 명령했던 그 목표물이었다.

샤마트에겐 따로 처리할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있게 되어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니까.

‘원래는 저 소녀를 죽이기 위해서만 써야 했지만,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게다가 보아하니, 둘의 관계가 심상치 않아 보이기도 하고.’

하나의 돌로 두 마리의 새를 잡는다.

샤마트의 머릿속에서 이 하계에 존재하는 하나의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일석이조. 이보다 더 어울릴 수는 없군.’

뱀의 머리를 한 그의 눈가가 교활하게 휘어졌다.

* * *

서수민은 도망쳤다.

그녀는 계속해서 달렸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필사적으로 멀어지려 했다.

그녀의 뒤를 쫓아오는 검은 그림자는 도저히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어디로 도망치고 얼마나 열심히 달려도, 그림자는 항상 그녀에게 달라붙어 쫓아왔다.

‘도망쳐야, 도망쳐야 해.’

하지만, 어디로?

그녀의 뒤를 쫓아오던 그림자는 어느덧 그녀의 앞까지 가로막고 있었다.

옆도 뒤도 전부 새까만 그림자에 막혔다.

눈에 닿는 모든 것들이 새까맣게 물들고, 세상이 그녀를 옥죄려고 들었다.

서수민은 달리는 걸 멈췄다. 나약해진 몸뚱이가 산소를 갈구했다.

서수민은 자리에 쪼그리듯 주저앉았다.

뒤늦게 이성이 돌아왔고, 그녀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깨달았다.

‘나는 또…… 도망만 치려고 했구나.’

뒤늦게 현실로 돌아온 그녀는 밀려오는 자괴감에 죽고만 싶어졌다.

그녀가 환각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예전부터 그녀는 몇 번이고 이와 비슷한 발작을 한 적이 있었다.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초등학교 때에는 이것 때문에 친구들을 제대로 사귀지도 못했다.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바뀐 것은 중학교에 올라온 뒤였다.

그녀는 한 아이를 만났다. 모두가 기피하던 자신에게 유일하게 웃으며 다가와 준, 생에 첫 유일한 친구라 할 수 있는 아이를.

‘유라야…….’

서수민은 그녀와 만나고 나서부터 환각을 보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녀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행복해져도 되지 않을까? 이제 다 잊어도 되지 않을까?

그냥, 이번 생은 평범하게.

아주 평범하게, 살 수 있을까?

그것이 욕심이라는 것은 알았다. 죄인에게 허락되지 않은 안식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도, 그녀는 처음으로 이 욕심이라는 것을 부려 보고 싶었다.

‘나는…….’

희망을 품는 것도 순간이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늘 위에서 누군가가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아주 오래전부터 말이다.

초월자였던 시절의 감각이 외쳤다. 저들은 적이고 또다시 자신을 노리고 있다고.

서수민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눈앞의 행복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 진실을 외면했다.

끝까지 모른 척하면 모든 것이 다 잘 풀릴 거라고 현실을 부정했다.

어리석게도.

터벅터벅.

자리에서 일어난 서수민은 정처 없이 걸었다.

사실, 그녀도 알았다. 진실은 외면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자신이 보려고 하지 않을 뿐이지, 진실은 언제나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저 하늘 위에 있는 존재는 그녀가 죽길 바랐고, 실제로 그럴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서수민은 그걸 알면서도 대항하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죽는 것이…….’

너무 괴로워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또 죽으면 편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이제 짊어지는 것은 지긋지긋하다.

그녀의 주위로 또다시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수민아!”

징그럽게 부풀어 오르던 어둠이 순식간에 씻겨 나갔다. 올곧게 뻗은 찬란한 빛이 모든 것을 찢어발겼다.

서수민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앞에 자신이 애타게 찾던 친구가 있었다.

“유……라야?”

“수민아. 여기서 뭐 해?”

“아니. 그보다 유라 너는…….”

“나? 나야 이제 아카데미 입학 수속 준비하고, 엄마 심부름 때문에 잠시 나왔지. 그보다 인적 드문 데서 뭐 해? 너 혹시, 몰래 담배 피는 거 아니지?”

이쪽을 걱정스럽게 보는 유라의 모습에 서수민의 흐릿했던 눈빛이 다시 돌아왔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거 아니야.”

서수민은 그저 조금 지쳐서 그랬을 뿐이라고 말하려고 했다.

하늘 위에서 작고 검은 물체 하나가 떨어지는 것은 그때였다.

톡.

씨앗처럼 생긴 그것은 정확히 서수민과 강유라의 사이에 안착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씨앗이 먼저 반응했다.

촤아아악!

씨앗이 바람을 넣은 풍선처럼 급격하게 팽창했다.

씨앗의 껍질을 비집고 새하얀 활자들이 튀어나왔다. 기다란 코드처럼 나열된 글자들이 무수한 촉수처럼 늘어났고 주변을 서서히 잠식했다.

“어, 어?”

“유라야!”

위기감을 느낀 서수민이 강유라의 손을 잡았다. 그와 동시에 새하얀 활자가 회전하듯 움직이며, 두 사람의 몸을 집어삼켰다.

서수민과 강유라가 활자에 먹혀 사라지고.

조금 전까지 두 사람이 있던 곳에는 새로운 사상세계 입구만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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