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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68화 (168/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68화

[아! 나도 그 이름 들어 봤어!]

제천대성 손오공은 지구에서 가장 대중적인 이야기를 꼽으라고 한다면, 항상 순위권에 나올 정도로 유명하다.

현대에 와서도 다양한 매체로 재탄생된 손오공이라는 존재는 사람들에게 잊기 힘들 정도로 깊게 각인될 정도.

실제로 혼성계 내에서도 제천대성이 갖는 이름값과 그 힘은 대단했다.

마왕 연합은 그런 제천대성 손오공을 필두로 한 그의 여섯 형제자매의 모임이다.

서유기에서 나오는 칠대성(七大聖)이 바로 마왕 연합의 주축 돌이었다.

[그런 마왕이 천계 뭐시기 에서 나온 거라고?]

‘천계삼십육천이 이런 부분에서는 좀 구설수가 있기는 했지. 당장 무시무시한 요괴들도 거기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았고. 산해경(山海經)만 봐도 나오잖아.’

유현이 천계삼십육천을 의심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다른 곳은 털어도 먼지가 조금 나오는 정도라면, 이곳만 유일하게 상당히 많은 문제를 달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지금 제일 경계하고 있는 곳이야. 가장 유력한 곳이기도 하고.’

[으음. 그래도 신기하긴 하네. 설마, 대성군에서 하나의 대성군이 떨어져 나올 줄이야.]

‘그렇게 따지면, 7대죄가 존재하는 판데모니엄도 정확히는 성경의 씨앗이 된 에덴에서 나온 곳이라고 할 수 있겠지. 이야기란 애초에 경계가 모호한 거야. 서로 같은 이야기에 나왔다고 같은 카테고리에 묶는 것은 성령들에게 실례라고.’

[그렇구나. 지식이 늘었네.]

유현은 돌아가는 우주 열차에서 창밖을 바라봤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단서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야.’

그나마 의심스러운 곳이 천계삼십육천이라는 소리지, 그쪽이 진짜 범인이라고 확정 난 것도 아니었다.

여기까지는 어떻게든 끼워 맞출 수 있겠지만, 아직 완벽한 하나의 그림이 그려지기엔 조각은 여전히 부족했다.

유현은 그 조각을 쥔 유일한 사람을 떠올렸다.

‘서수민. 그녀가 가장 큰 단서를 쥐고 있다.’

이건 서수민의 일이었고, 유현이 굳이 귀찮게 끼어들 필요까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현은 이번 일의 진상을 아주 조금이나마 파악하면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성군이 하계에 개입한 일이야. 그것도 지구에. 이런 일이 혼성계에서도 거의 일어나지 않는 걸 생각하면 보통 일이 아니지.’

무엇보다도 유현의 관심을 자극하는 것은 자신의 기억 속에 없는 숨겨진 ‘사건’에 관한 흥미와 호기심이었다.

‘만약 대성군이 지구에 개입한 일이 사실이라면, 이들이 지구의 종말과 어떤 부분에서 연관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이건 나로 인해 바뀌어서 나타난 사건이 아니야. 전생에서도 원래부터 있던 사건이지.’

무려, 대성군이다.

혼성계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집단 중 하나가 지구라는 하나의 세계에 개입한 일이 과연 단순한 우연일까?

미래에 펼쳐질 종말은 많은 것들이 엮이고 꼬이면서 발생했다. 그중에서 성령들의 입김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지구에 관한 자격 미달 평가를 내린 것은 그들이었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성령들이 무언가 개입을 한 흔적을 발견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미래에 벌어질 종말과 연관이 있는 일이라면.

그때는 유현이 직접 나서서 막아야 했다.

호기심이 아닌, 의무와 책임을 가지고.

* * *

유라가 전학을 가고 서수민은 조금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옛날과는 다르게 그녀는 유라 말고도 여러 친구를 사귀게 됐다. 전부 발이 넓은 유라의 덕분이었고, 서수민은 유라가 떠나도 조금 허전할 뿐 외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또 만날 수도 있으니까.

하교 시간이 되었고,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집으로 돌아갔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던 서수민은 학교 입구가 살짝이지만 소란스러운 것을 눈치챘다.

‘무슨 일이지?’

무슨 사고라도 벌어진 게 아닐까 걱정이 들었지만,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와, 대박. 저 오빠 봤어?”

“진짜 잘생겼다. 혹시 여친 있을까?”

“그런데, 왜 여기서 서 있지? 누구 기다리나?”

하나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수민은 교문에 당도하고 나서 왜 이렇게 됐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몸에 딱 맞는 검은 정장을 입은 미청년. 얼마 전에 봤던 유라의 친한 오빠인 강유현이 교문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설마?’

유라가 이미 전학을 간 뒤인데, 그가 왜 학교 앞에 찾아왔을까?

서수민은 괜한 불안감이 들어서 고개를 숙이고, 인파 사이에 섞여서 그를 피해 가려고 했다.

본능적으로 펼쳐진 은신이 그녀의 존재감을 죽이고 발소리를 없앴다.

“아, 수민아!”

불안한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유현은 곧바로 서수민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서수민은 자신의 은신을 꿰뚫어 본 유현의 안목에 경악했다.

그녀는 아무리 몸을 숨겨도, 머리 위의 찬란한 책은 숨길 수 없다는 걸 몰랐다.

“어? 둘이 아는 사이?”

“헐, 대박.”

주위에서 그런 소란이 벌어졌다. 서수민은 자신에게 쏠리는 여학생들의 시선에 얼굴이 화끈해졌다.

이미 들킨 이상 숨길 것도 없겠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유현을 노려봤다.

“여긴 왜 왔어요?”

“왜긴. 만나러 왔지.”

꺄아악.

유현의 말을 들은 몇몇 여학생들이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꺅꺅댔다. 하지만 일부는 성인 모습의 유현과 아직 중학생인 서수민의 만남에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유현은 혹시라도 무슨 말이 나올세라 먼저 선수를 쳤다.

“오빠한테 걱정 끼치면 안 되지. 왜 연락이 없어? 오랜만에 찾아왔는데. 이모도 걱정하시겠다.”

유현은 사람들에게 들으란 듯이 ‘이모’라는 말을 입에 담으며 그녀와의 관계가 가족, 혹은 친인척임을 명시했다.

때마침 지나가던 서수민의 친구들도 이곳에 끼어들었다.

“수민아. 저분 사촌 오빠였어?”

“와. 근데 되게 존잘이다. 수민이 부럽다. 저런 오빠도 있고.”

친구들의 말에 서수민은 자신이 주도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표정 관리를 하며 얼굴에 미소 지었다.

“으, 응. 사촌 오빠야. 아이, 참. 오빠도. 왜 갑자기 학교까지 찾아왔는데?”

“그냥 수민이 학교 잘 다니나 걱정돼서.”

“됐고. 사람 많으니까, 조금 조용한 데로 가자.”

서수민은 유현의 팔을 잡아 이끌었다. 당찬 그녀의 행동에 서수민의 친구들이 눈을 빛냈다.

“수민아 우리도 같이 가!”

“수민이 오빠 이름은 뭐예요? 나이는 몇 살이에요? 혹시 여친 있어요?”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여중생들의 행동에도 유현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아. 수민이 친구들이구나. 미안해서 어쩌지? 일 때문에 잠시 여기 들른 김에 수민이 보러 온 거라서, 시간이 별로 없거든. 양해 좀 구할 수 있을까?”

“아. 그러셨구나. 일이면 뭐 어쩔 수 없죠.”

“수민아. 사촌 오빠랑 재밌는 시간 보내고 와.”

“나중에 우리한테 알려 줘야 한다. 알았지?”

“으, 응.”

서수민은 고개를 끄덕였고, 친구들은 떠났다. 유현은 떠나가는 서수민의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며 배웅해 줬다.

서수민이 곧바로 친구들을 보내고, 유현을 찌릿 노려봤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 남자, 묘하게 인식을 뒤트는 힘을 다루고 있었다. 학생들이 그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것이 바로 그런 이유였다.

그녀는 턱짓으로 유현에게 따라오라고 지시했다.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자는 뜻이리라.

그것은 유현도 역시 바라던 바였다.

둘은 남들의 시선을 피해 조용히 이동했다.

학교 근처 카페는 하교 시간 이후 학생들로 가득해 가장 피해야 할 공간이었다.

결국, 서수민은 유현을 학교 뒤편의 산길 휴식터까지 끌고 왔다.

“이야기 나누기엔 꽤나 멀리도 왔네. 그래도 사람들은 없으니, 나쁜 것 같지는 않고.”

“하아. 됐고.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나 말해요.”

서수민은 학생의 신분으로 유현을 대했다.

이것은 일종의 선 긋기였다. 천마였던 자신과 유현은 전혀 관계가 없으며, 이 모든 것은 학생 서수민으로 대처하겠다는.

유현은 그녀의 걸어 잠근 마음을 느끼며, 유들유들하게 대답했다.

“우리 유라 친구인데, 만나러 오는 것도 안 되나?”

“지금 저랑 말장난하자는 거예요? 빨리 본론이나 말하라고요.”

슬슬 인내심에 한계가 오는지, 서수민의 목소리가 표독스러워졌다. 격해지는 감정 때문인지, 그녀의 몸 위로 스멀스멀 강렬한 기세가 나오기 시작했다.

새로운 삶을 살기로 작정을 한 그녀의 입장에서 자신의 과거를 아는 유현이 끼어드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서수민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소중하고, 새하얀 방에 검은 발자국이 찍히는 짜증 나는 기분이었다.

“알았어. 빠르게 본론부터 말할게. 너한테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찾아왔어.”

“……뭘 물어보려고요?”

“한 대성군에 관해서 정보를 찾고 있거든.”

“…….”

유현의 입에서 대성군이 나오자, 서수민의 얼굴에서 표정이 순간 사라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난 모르는 일이에요.”

“과연 그럴까? 어떻게 보면 너와 가장 많이 연관된 일일 텐데?”

“모른다고요!”

“네가 과거와 연관되는 걸 싫어하는 것은 나도 알아. 그래도 이렇게 물어보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야.”

“뭐가 중요한데요?”

“대성군이 너를 노리고 있어.”

유현은 그녀도 알아야 할 일이라 솔직하게 말했다.

서수민이 숨을 집어삼켰다. 그녀는 지금 유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너의 전생과 연관이 있는 대성군. 너도 알고 있지? 그곳이 너를 노리고 있어. 왜 그런지 이유는 나도 몰라. 이유는 너와 그쪽만이 알고 있겠지.”

“그러니까, 왜 나를…….”

“너는 과거를 끊고자 하겠지만, 상대방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보지.”

“…….”

“나는 솔직하게 말해 줬어. 그리고 이건 협박이나 단순한 거짓이 아니야. 나는 텔러야. 누구보다도 성령들의 움직임에 관해 민감하게 반응하지.”

서수민은 입술을 깨물었다. 꽉 쥔 그녀의 새하얀 손에 핏기가 가셨다.

그녀는 유현에게 진실을 들은 순간부터 어쩌면 좋을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런데, 최근에 이곳에 관심이 없던 대성군이 움직였어. 아무것도 몰랐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기겠지만, 네 과거를 생각하니 뭔가 이상하더라고. 그 많은 세계 중에서 어떻게 네가 있는 이 지구에 그 대성군이 접근하려고 한 걸까?”

유현은 서수민을 계속해서 자극했다.

일부러 자신이 해당 대성군에 관해서 알고 있다고 말하며, 그녀의 반응을 떠봤다.

“그, 그건…….”

서수민의 고개가 아래로 향했다.

그녀는 대답을 망설였다. 아직 유현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기에 그의 말을 믿지 않는 것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이제는 잊었을 거라 생각했던 악연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사실에 절망감 비슷한 걸 느꼈다.

“처음 내가 너에 관해 알아봤을 때, 너는 과민하게 반응했었지. 어디서 보냈었냐고. 그 반응을 보면, 너도 알고 있다는 거 아니야? 그쪽이 너를 노린다는 것 정도는.”

“…….”

“입을 다물어도 진실은 변하지 않아. 녀석들이 움직이고 있어. 그리고 목표는 당연히 너겠지. 다른 세계로 환생한 너를 쫓아오는 놈들이야. 과연 적당히 하고 넘어갈 거라고 생각해? 숨어도 소용없어.”

독종.

유현이 판단하건대, 서수민을 노리는 대성군은 상당히 지독한 집단이었다.

천마이며 초월자였던 그녀와 전생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과거의 삶을 청산하려는 그녀를 집요하게 쫓아와서 죽이려고 하다니.

‘그렇다면, 정말로 천계삼십육천이 맞는 건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유현은 서수민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아직 부족하다.’

서수민은 쉽게 반응하지 않았다.

자극이 부족한 걸까. 아니면, 믿지 않아서? 어쩌면 현실 도피를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유현은 적당히 그녀를 설득하려는 걸 포기했다.

다급한 것은 유현도 마찬가지였다. 하계에 개입하려는 대성군의 목적을 빨리 알아내야만, 어떻게든 대처를 할 수 있었으니까.

‘가족을 건드리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겠지.

“가족.”

“……!”

“녀석들이 너를 찾아낸다면, 과연 너 하나로 끝낼까? 가족까지 건드릴 거다. 그리고 어쩌면 친구들까지 건드릴지도 모르지. 일가친척은 물론이거니와 핏줄도 남기지 않으려고 할 거야. 대성군은 그런 곳이야.”

그것이 결정타였다.

여태까지 망설였던 서수민의 눈동자가 세차게 떨리는 것을 보고 유현은 씁쓸하게 웃었다.

“말했지만, 유라는 내게도 소중한 아이야. 나는 유라가 무슨 일을 당하길 바라지 않아. 그리고 너도 마찬가지지.”

“너는……아니, 오빠는…….”

서수민은 유현을 노려보며, 그렇게 뇌까렸다.

“정말로 지독한 사람이네요.”

그녀의 눈동자에는 미약하지만, 눈물이 고여 있었다.

유현은 변명하지 않았다. 팔짱을 낀 채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알았어요. 말할게요. 저를 괴롭히려는 녀석들은 저도 대충 눈치채고 있었으니까요.”

“정확히 언제부터지?”

“자세한 시기 같은 건 몰라요. 다만, 최근에 부쩍 그런 느낌이 들긴 했었어요. 누군가가 저를 주시하는 것 같은 그런 기분.”

“그렇군.”

유현은 턱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정말로 심각한 일이었다.

“그래서, 거기가 어디지?”

“……극락정토.”

그녀의 입에서 나온 대성군의 이름에 유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름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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