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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60화 (160/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60화

기자 회견장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지금 박철오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침묵할 때, 질문을 던졌던 기자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컬렉터 협회는 황혼의 장막이 벌인 추악한 행위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내릴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 그게…….

화면이 조금 전 질문을 던진 기자의 모습을 비췄다.

안색이 창백해지고, 식은땀을 흘리는 기자는 지금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눈치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서, 설마 내부에서 무슨 짓을 벌인 거야?’

기자인 그가 황혼의 장막이 몰래 벌인 일까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그저 돈을 받았을 뿐이다.

회견 때 날이 선 질문을 가해 저쪽을 난처하게 해 주고, 협회를 향한 여론을 부정적으로만 만들면 된다고 했다.

보수도 괜찮았고, 어렵지도 않은 일이라 하겠다고 나섰는데.

‘망했다. 그냥 돈도 아니고, 가장 위험한 부류의 돈을 받고 말았어.’

박철오의 말을 받아들이자니, 이미 자신은 질문을 한 뒤였다.

기자는 최대한 머리를 굴렸다. 이제 와서 ‘아, 그렇군요’ 하고 넘어가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어떻게든 아득바득 우길 수밖에 없었다. 돈을 받은 것도 받은 거지만, 자신의 이미지와도 관련된 일이었다.

-그 말, 확신할 수 있습니까?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관해서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저희는 진실만 말하는 겁니다. 이번 사상세계에서, 황혼의 장막 클랜은 간악하게도 탐사대를 보낸 것이 아니라 스파이를 보냈습니다. 이번 사상세계가 실패하길 바라며, 혹시라도 성공하려 하면 일을 망치려고 했었죠.]

-그, 그런!

-뭐야. 진짜야?

조용해야 할 공간이 경악으로 물든다. 감정은 사람과 사람을 타고 전염병처럼 퍼졌다.

그 광경을 구경하는 유현은 즐거움을 참지 못했다.

‘저쪽에서 수작 부리려는 것을, 사전에 선빵을 쳐서 차단하다니. 머리를 굴렸어. 어차피 서로 증거도 없는 거, 먼저 선동하듯 말하는 사람이 유리한 거점을 차지하니까.’

협회는 은근슬쩍 항의하려고 밑밥을 까는 황혼의 장막에게 강렬한 낙인을 찍었다.

그것은 황혼의 장막에게만 유효한 것이 아니었다. 낙인은 희생자가 생긴 다른 클랜에도 보내는 협회의 경고이기도 했다.

‘여기서 괜히 협회에 왜 우리 쪽 컬렉터가 죽었냐고 따지는 순간, 그들은 황혼의 장막과 같은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

황혼의 장막의 범죄 행위를, 그것도 의심된다가 아니라 확신하듯 말했다.

난데없이 함께 비난을 가하던 같은 업계 사람이, 사실은 살인자였다는 말을 들은 클랜들은 과연 어떤 기분일까?

지금까지 서로 나쁜 짓을 해 온 것을 알면서도 묵인했겠지만, 지금처럼 도를 넘은 상황에서는 입을 쏙 다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눈치를 살피겠지. 우리는 쟤들 모른다. 우린 관계없다. 이렇게 발뺌을 할 거야.’

황혼의 장막은 기자에게 돈을 먹이고 다른 클랜에게 함께 항의하자고 제안을 했었다.

하지만, 이번 건으로 다른 클랜이 이쪽에 등을 돌리게 될 것이었다. 유현은 확신했다.

-그, 그걸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기자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그는 필사적으로 이성을 붙잡으며 어떻게든 박철오의 말에 흠을 잡아 물어뜯기 위해 혈안이었다.

[물론, 내부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확신은 금물이겠죠. 사상세계 내부에서는 기기 자체가 작용하지 않아 증거로 남기기도 힘드니까요.]

-그, 그러니…….

[하지만, 정황을 포착할 만한 증거가 있습니다. 바로 황혼의 장막 클랜에서 보내온 3명의 명단이죠. 그들은 중견급 컬렉터였지만, 과거 행적을 조사해 보니, 이상할 정도로 깨끗했습니다. 무슨 일로, 뭘 해서, 어떻게 중견급으로 올라왔는지 알 수 없었죠. 심지어, 세 명 전부 다 말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내부에서 사상세계 탐사를 망치기 위해 파견된 황혼의 장막의 암살자들.

그들의 불투명한 과거는 이 상황에서 협회의 발언에 힘을 실어 주는 물리적인 증거였다.

-그게 내부에서 사건을 일으킨 것과 대체 무슨 관계가…….

[관계가 왜 없습니까? 그렇다면 기자님께 묻고 싶군요. 과거의 행적이 불분명한 사람 셋을 대체, 어떻게 단 하나의 클랜에서 이렇게 딱딱 맞춰서 보냈다고 생각합니까?]

순식간에 법정 공방을 방불케 하는 반박에 기자가 입을 다물었다. 그의 눈동자가 거침없이 흔들렸다.

-그건……그거언…….

[이 자리에서 확실히 말하겠습니다. 황혼의 장막은 일부러 3차 탐사를 망치기 위해 스파이를 심었으며, 그로 인해 원래라면 살 수 있었던 생환자들의 숫자가 줄어들었습니다. 이는 제 직위를 걸고 말하는 겁니다.]

“하하하하!”

유현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설마하니 협회에서 알아서 황혼의 장막을 나서서 저렇게 쥐 잡듯 잡아 주니, 가려운 곳을 딱 맞춰 긁어 주는 기분이었다.

‘최중모 씨가 왜 기대하라는 말을 했나 했더니, 이거 때문이었구나.’

무엇보다 저 교묘하게 상대방을 자극하며 잘못을 넘기는 언변은, 유현이 박철오에게 미리 권했던 대본 중 하나였다.

황혼의 장막에서 보낸 암살자가 배를 망가뜨리려는 것을 실패하고 모두 처분당했을 때.

유현은 박철오에게만 따로 말을 권한 적이 있었다.

‘만약에 여기서 살아서 나가면, 저 녀석들에게 한 방 먹여 줄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뭐죠?’

박철오가 그때 했던 말을 귀 기울여 듣기는 했는데, 설마 나가자마자 하루 만에 실천할 정도일 줄은 몰랐다.

‘큭큭. 나중에 제대로 보답 한번 해야겠어.’

유현은 자신이 꾸민 방식의 마음에 들었다.

특히, 황혼의 장막을 완전히 공공의 적으로 만든 것이 그러했다.

-뭐야, 잠깐만. 그 셋 때문에 희생자가 늘어난 거라고?

-그러면, 살 사람이 원래 더 있었다는 말이잖아?

회견장에 모인 사람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황혼의 장막으로부터 돈을 받은 기자를 향했다.

유현은 사실을 교묘하게 비틀었다. 사실, 암살자 셋은 임무를 실패했다. 놈들은 뭘 해 보지도 못한 채, 죽고 말았다.

그들이 누구를 죽인 적은 없다. 모든 것이 미수에 그쳤을 뿐.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인가?

‘중요한 건, 저놈들이 아주 나쁜 놈들이라는 사실이지.’

그래서 교묘하게 진실을 왜곡하는 방법을 알려 줬다. 저 셋 때문에 희생자가 더 늘었다. 원래라면 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런 방법으로.

‘뭐, 틀린 말도 아니잖아? 만약에 저 3명이 모비딕과 싸울 때 함께 힘을 냈으면, 정말 누구 1명은 더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고.’

그래 봤자 ‘만약에’라는 가정에 지나지 않았지만, 진상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르게 비치는 법이다.

황혼의 장막이 사실 내부에 스파이를 심었고, 탐사를 망치려 들었다.

지금까지 협회의 안일했던 태도를 적대했던 클랜들도 이 순간부터 황혼의 장막의 적으로 돌아섰다.

“네놈 짓이군?”

권지아는 곧바로 저 방식이 어딘가 익숙한 걸 깨닫고, 유현에게 물었다.

“글쎄요오?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후우. 그때 따로 남아서 무슨 말을 전하나 싶더니, 이런 거였나? 재미있는 짓을 저질렀군.”

“당하고만은 못 사는 주의라서요.”

“우웅. 무슨 일이에요?”

유현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던 강혜림이 눈을 떴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가 유현이 가까운 것을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어어?”

그녀는 자신이 조금 전까지 유현의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잠을 취했다는 걸 깨달았다. 강혜림의 뽀얀 피부가 붉게 달아올랐다.

“아니, 저, 그, 그게 그러니까…….”

“혜림 씨. 피곤해서 그런 거 아니까, 부끄러워하지 않으셔도 돼요.”

“……네에.”

강혜림은 잠이 확 깨고 말았다. 그녀는 여전히 화끈거리는 얼굴을 손으로 슬쩍 식히며 유현을 힐끔 살폈다.

‘내, 내가 유현 씨 허벅지를…….’

꿀꺽.

강혜림은 자기도 모르게 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뒤늦게 그녀는 이게 무슨 남사스러운 짓이냐고 스스로 질책했다. 그래도 아쉬움은 어쩔 수 없어서 자꾸 유현에게 눈길이 갔다.

유현은 그런 강혜림의 원맨쇼를 무시하며, 기자 회견에 집중했다.

‘끝났군. 완전 체크메이트야.’

협회가 기자 회견 자리를 빌어서 저 발언을 한 것이 가장 컸다. 무엇보다 평소 이미지의 차이도 있었다. 황혼의 장막은 원래부터 업계 내에서 말이 많은 곳이었고, 실제로 이번 사상세계를 몰래 독차지한 사건 때문에 대중에게도 이미지가 나쁘게 박혔다.

박철오는 관짝에 대고 못질을 가한 것이다.

그야말로 부관참시의 훌륭한 예시였다.

-그, 그…….

기자는 더 이상 뭐라 말하지 못하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모든 것을 포기한 그 모습은 불쌍해 보였지만, 동정심은 들지 않았다.

돈을 받고 누군가를 깎아내리기 위한 글을 쓰거나 거짓된 정보를 퍼뜨리는 자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리고 다른 기자들에게 본보기가 돼야 했다.

펜으로 누군가를 해하려는 자는, 그 이상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유현은 태블릿을 슬쩍 살폈다.

기자 회견에서 벌어진 한 클랜을 향한 질타는 벌써부터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대부분 협회의 말을 믿고, 황혼의 장막을 비난하는 글이었다.

나라에 뿌리를 내리며 자리를 잡은 거목이

서서히 갉아 먹히며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 * *

어느덧 기자 회견이 끝났다.

“오, 지아 씨. 새로운 별명이 생겼네요.”

유현은 벌써부터 소문이 도는 권지아의 별명에 감탄했다.

“별명? 뭐지?”

“광랑(狂狼)이라 하더군요. 아무래도 모비딕과 싸울 때 보였던 모습이 꽤나 인상 깊게 남았나 봅니다.”

유현은 광랑이라는 별명이 권지아에게 꽤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피를 흘리면서도 이를 악물고, 짐승의 아가리를 들이밀며 모비딕을 쉬지 않고 물어뜯었던 그녀의 모습은 말 그대로 미친 늑대처럼 느껴졌다.

“두 분 다 등급도 올랐고, 저희 백화 매니지먼트의 이름값도 엄청 높아졌죠. 뭐, 사람들의 관심은 아쉽게도 황혼의 장막 클랜에게 집중된 거 같지만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황혼의 장막이 벌인 짓은 사건이 커도 너무 컸다. 역으로 유현네가 한 일이 묻히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래도 효과는 톡톡히 봤다.

“이젠 지아 씨도 국가에서 인정한 어엿한 중견급 컬렉터로군요. 이전까지는 그래도 반쪽짜리다 뭐, 이런 말도 나왔는데. 앞으로 그 누구도 지아 씨에게 이견을 달지 않을 겁니다.”

“흥. 당연한 결과였을 뿐이다.”

권지아는 코웃음을 쳤지만, 그녀를 자세히 살피면 귀가 약간이지만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유현 씨! 저는요?”

“혜림 씨야 이미 검후라는 이명 있지 않았습니까?”

“아.”

“중요한 건 이명이 아니죠. 이번 사상세계 클리어 보상으로 두 분 다 스탯도 엄청 오르고, 스킬도 새로 받으셨죠?”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확실히 강해졌다는 것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3개의 이야기가 뒤섞인 융합형 사상세계.

난이도는 말 그대로 극악이었지만, 클리어 보상 또한 지금까지 느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호화로웠다.

유현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다들 완전 정상궤도에 올랐으니, 슬슬 저도 다음 작업에 들어가야겠군요.”

“다음 작업이요?”

“그게 뭐지?”

가만히 듣고 있던 백서련도 궁금해하며 물었다.

“또 무슨 짓을 벌이시려고요?”

“별거 아닙니다. 이제 세 번째를 찾아야죠.”

* * *

“아저씨. 고생 많았어.”

“어, 성아냐?”

기자 회견을 끝낸 박철오는 대기실로 돌아오며 겨우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그는 뒤늦게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며 자리에 앉았다.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유성아는 이를 드러내며 킬킬 웃었다.

“요요요, 아저씨. 보니까 말 아주 잘하던데? 난 아저씨가 저런 말재주가 있을 줄 몰랐네. 오늘 처음 알았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보다 아저씨가 한 말. 누가 알려 준 거야? 응?”

“뭐가 말이냐?”

“회견장에서 했던 말 있잖아. 그거 아저씨의 방식은 아니고, 우리 협회 쪽에서 누가 알려 줄 만한 건 아니었어. 맞지?”

박철오는 못 속이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을 받았다. 내게 이렇게 하면 어떠냐고 제안을 하더군.”

“도움? 대체 누가?”

“강유현.”

“응?”

유성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유현 텔러가 알려 줬다. 이렇게 하면 효과적일 수 있다고 내게 말해 주더군.”

“허. 그 양반이?”

유성아는 강유현의 모습을 떠올리며 입을 다물었다. 유현이 여기에 끼어들었다고 생각해 보니, 어딘지 모르게 납득하고 마는 자신이 있었다.

“있잖아, 아저씨. 그 텔러 직접 보면서 같이 행동해 보니, 어땠어?”

“대단했다.”

박철오는 지체 없이 대답했다.

“처음에는 텔러라고 해서 미덥지 않았다. 싸우는 텔러라 해도, 컬렉터에게 업혀 가겠거니 하고 생각했지. 하지만 안쪽에서의 행동을 보고, 내가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단순한 텔러가 아니야. 다른 텔러와는 무언가가 다르다.”

박철오는 아직도 목숨을 다해 모비딕과 싸우던 유현의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모두가 포기하던 순간, 끝까지 전의를 잃지 않았던 그 뒷모습을.

이제는 차갑게 식어 가던 자신의 마음에 뜨거운 불꽃을 지피던 그 열의를.

유현이 없었다면, 그 또한 지금 이 자리에서 평탄하게 대화를 나눌 수 없었을 거다.

“아저씨가 그렇게 대놓고 누구 칭찬하는 건 또 처음 듣네.”

“뭐가 말이냐?”

“예전부터 그랬어. 나 막 신입으로 들어와서 가르쳐 줄 때도, 칭찬은 절대 입에 한마디도 안 달고 살았던 양반이. 많이 변했네, 변했어. 늙어서 그런가?”

“그럴지도 모르지.”

“재미있네. 아저씨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니.”

유성아는 강유현을 떠올렸다. 자신의 [특성]을 꿰뚫어 보고, 솔직하게 예쁘다고 칭찬해 줬던 그 남자의 얼굴을.

포옹.

그때의 일을 떠올리니, 유성아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생각해 보니, 그때 자신은 생얼이었던 기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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