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아는 주인공들-159화 (159/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59화

유현은 주거 층에서 내려와 사무 층으로 이동했다.

한 층 전체가 사무실 용도로 쓰이는 이곳은 매니지먼트 업무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무실에 아직 사람이 없었다. 유현은 아무도 없는 이 고요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적당히 옆으로 누울 수 있는 소파에 앉아 태블릿과 제네시스 네트워크 창을 동시에 펼쳤다.

‘사상세계를 클리어 하고 하루가 지났으니, 이미 인터넷은 뜨겁게 달아올라 있겠지.’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니, 예상대로 이번 모비딕 사상세계와 관련한 이야기가 우박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하루가 지났지만, 생존자들이 최우선적으로 휴식을 취하고 보고를 미루고 있던 탓인지, 하나같이 사상세계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궁금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흐음. 그나마 협회 측에서 정보를 최대한 뿌리기는 했는데, 정말 기본적인 것들만 추려서 말했군. 일부러 간을 보다가 한꺼번에 풀 생각인가?’

유현은 문득 주의를 받았던 것을 떠올렸다. 사상세계가 성공할 경우 협회의 허락이 없이는 함부로 정보 발설을 금지한다는 조항이었다.

엠바고가 걸려 있어서 그런지, 생존한 다른 클랜 컬렉터들도 함부로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커뮤니티 사이트들은 이번 사상세계 클리어 건으로 잔뜩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고 아ㅋㅋ

-1차 2차에서 대실패를 했다가 3차에서 뜬금없이 클리어? 중간 단계 어디 갔냐;;

-협회 ㅅㄲ들 정보 진짜 더럽게 안 푸네ㅋㅋ

-듣자하니, 이번에도 백화에서 일냈다고 하던데? ㄹㅇ임?

└엠바고인데, 뭘 듣자하니야 ㅋㅋ

-다른 건 모르겠고, 이따 기자회견 한다니까 그때 다 말할 거 같네요.

-그렇죠. 일단 안쪽에서 죽은 사람들 장례 치러 주고, 인선 정리도 해야 하고. 원래 사상세계 뒷정리가 더 복잡하거든요.

사람들의 격렬한 반응이 이해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3차 탐사대가 나름 인선을 화려하게 잡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정보가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파견하는 숫자만 늘린다는 건, 희생자를 늘리자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클랜에서 인원 차출을 최대한 미룬 것도, 협회에서도 골머리를 싸매면서 강제로 사람을 뽑은 것도 이러한 점에서 기인했다.

‘그게 당연하게 비쳤을 정도긴 해.’

위험이 가득한 미지의 세계를 향한 탐사란, 제삼자가 보기에는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3차 탐사대에게 바란 것은, 그래도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 정보를 뽑아 오는 것이었다.

그것만으로 족했다고 생각하던 차에 3차 탐사대가 사상세계 클리어라는 결과를 들고 온 것이다.

희생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파견된 30명 중에서 생환자는 13명. 과반수 이상이 죽은 것은 분명, 슬퍼할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혀 예상 밖의 결과물을 들고 온 생환자들에게 더 큰 관심이 갔다.

그들은 대체 안쪽에서 무엇을 봤고, 무엇을 했기에 사상세계를 클리어 한 걸까?

모두의 시선이 이 모든 정보를 쥐고 있는 협회에게 몰렸다.

“참 재미있게 흘러가네.”

유현은 벽에 걸린 TV로 뉴스를 틀었다. 지상파와 공중파 할 것 없이 모두 이번에 있을 협회의 기자 회견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었다.

[협회 측은 오늘 기자 회견을 통해 안쪽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관해서 상세하게 밝힐 것으로 말해…….]

[현재 사망자에 대한 추모가 진행되는 와중에, 일각에서는 앞으로 이런 새로운 사상세계 등장에 관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논란이…….]

[이번 사망자가 많았던 클랜에서는 특히 중요한 인재를 잃어 분노하는 와중에, 황혼의 장막 클랜은 협회가 대체 어떻게 행동했기에 사망자가 이러냐고 항의를…….]

뉴스를 차분히 살피는 와중 사무실의 문이 열리며 권지아가 들어왔다.

“음? 먼저 와 있었나?”

“아. 지아 씨 오셨어요? 푹 쉬셨나요?”

“피로는 다 풀렸다. 이제 곧 어떤 일이 벌어질까 확인 차 왔는데, 설마 벌써부터 와 있을 줄은 몰랐군.”

권지아는 그렇게 말하며 곁눈질로 유현을 슬쩍 살폈다.

한 손에는 태블릿으로 인터넷의 정보를, 다른 한 손으로는 제네시스 네트워크를 통해 혼성계의 정보를.

마지막으로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귀를 열어 듣는 유현은 그야말로 정보를 모으기 위한 귀신처럼 느껴졌다.

“적당히 해라.”

“이게 천성이라서요.”

유현은 부드럽게 웃었다. 권지아는 콧바람을 흥 하고 뀌더니, 유현과 멀지 않은 소파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안녕하세요오.”

“어? 두 분 다 와계셨네.”

곧이어 강혜림과 백서련이 들어왔다. 강혜림은 아직 피곤한지,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있었다. 그녀는 잠기운이 가득한 채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유현의 옆, 권지아의 반대편에 사뿐히 앉았다.

“흐에에에. 졸려어.”

“아직 피로가 덜 풀리셨나 봐요?”

“네에. 아무래도 너무 힘들어서 그랬나? 콘스탄티노폴리스 때도 안 이랬는데.”

“원래 그게 정상이에요.”

특히, 강혜림은 이번에 천뢰검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 남들보다 더 많은 휴식이 필요했다. 천뢰검은 위력이 강한 만큼 힘의 소모도 컸고, 아무리 체력이 많은 강혜림이라 하더라도 지치기 마련이었다.

“혜림 씨는 좀 피곤해 보이는데, 들어가서 더 쉬셔도 돼요.”

“괜찮아여. 그냥, 흐아아암. 여기서 있을게여.”

입맛을 쩝쩝 다시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을 본 유현은 이대로 괜찮나 싶은 걱정이 들었다.

사람이 늘어도 사무실의 분위기는 별 변화가 없었다. 백서련은 대표의 자리에 앉아 밀린 서류를 검토했고, 유현은 말없이 정보 수집에, 권지아 또한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꾸벅꾸벅 졸던 강혜림은 어느덧 고개가 옆으로 기울어지더니, 유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어깨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감각에 유현은 피식 웃더니, 강혜림의 머리를 허벅지 위로 올려 줬다.

“…….”

“지아 씨? 왜 갑자기 그렇게 저를 빤히 바라보시고…….”

“……아무것도 아니다.”

권지아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홱 돌렸다. 하지만 무언가 계속 걸리는지, 힐끔힐끔 유현과 그 허벅지를 베고 누운 강혜림을 자꾸만 살폈다.

“이제 슬슬 기자 회견 시간이 되 가네요.”

뉴스 채널 어디를 틀어도 마이크가 가득한 단상을 비추고 있었다. 앞으로 10분 뒤에 이번 사상세계에 대한 기자 회견이 시작된다.

기자 회견을 진행하는 사람은 놀랍게도 박철오였다. 사상세계에서 고생을 한 그가 설마 단상에 설 거라고는 유현도 몰랐다. 대충 대리인을 시켜도 됐을 텐데.

띠리링!

유현의 핸드폰이 울렸다. 유현은 최중모로부터 온 연락인 걸 확인하고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갑자기 어쩐 일이십니까?”

-이번 사상세계에 무사히 돌아왔다고 들었습니다. 원래 전날 연락을 드렸는데, 바쁘셨는지 받지 않으셔서 말이죠.

“아. 그랬군요. 안쪽에서 워낙 고생해서, 피곤해서 다들 뻗어 있었습니다.”

-그랬군요.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듣자 하니, 이번에도 백화 매니지먼트의 공이 크다고 하더군요.

“뭐,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저희가 좀 많이 고생하기는 했죠.”

유현은 점점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 기자 회견장을 보며 최중모에게 물었다.

“곧 기자 회견도 시작하는데, 최중모씨는 이렇게 연락해도 되는 겁니까?”

-어차피 엠바고도 곧 풀리고, 제가 회견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연락드린 것은 이번 기자 회견에서 백화 매니지먼트의 도움을 공식으로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혹시나 몰라서 미리 알려드리는 거죠.

최중모의 말에 유현은 재밌다며 웃었다.

“엄청난 서비스로군요.”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철오 녀석의 생명의 은인이니까요.

“박철오 팀장과 서로 아는 사이였습니까?”

-현장에서 일할 때 같은 동료였습니다. 저는 현장직에서 은퇴해서 여기로 왔지만, 철오는 아직도 일을 하고 있죠.

어느덧 기자회견이 시작되려고 하자, 최중모가 이만 끊겠다는 말을 전했다.

-아, 참. 이걸 안전했군요.

“뭐죠?”

-이번 기자 회견은, 꽤나 재미있으실 겁니다.

유현은 전화 너머 최중모가 미소 짓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거 흥미로운 소식이로군요.”

-이만, 수고하십시오.

“네. 최중모 씨도요.”

통화가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 단상 위로 한 사람이 올라왔다.

부리부리한 눈매와 각이 진 턱, 그리고 깔끔하게 차려입은 양복 위로도 도드라지는 단단해 보이는 육체.

반듯하게 선 박철오가 입을 열며 기자 회견의 시작을 알렸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선 이 자리를 빌어서 이번 탐사대에 지원한 희생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의 말씀부터 전합니다. 그들은 용감하게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고, 그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갔습니다.]

박철오의 목소리는 무겁고 엄숙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묵념 시간.

기자들은 바로 다음에 나올 정보에 눈을 불을 켠 채 노트북에 손가락을 올렸다.

[이번 사상세계는 그 어떠한 곳보다도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세계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융합형 사상세계가 바로 저희가 이번에 탐사했던 곳이기 때문이었죠.]

융합형 사상세계라는 말에 장내가 술렁였다.

[해당 사상세계의 이야기는 총 3개였습니다. 모비딕. 해저 2만 리. 그리고 피노키오. 3개의 이야기 중에서 단 하나라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클리어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이 될 정도로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안쪽은 끝을 모르는 대해로 이루어져 있었고, 사상세계에는 환상체가 단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전설 속의 거경(巨鯨) 모비딕이었죠. 클리어 조건은 바로 이 모비딕의 사냥이었습니다. 저희는 그것을 확인했지만, 곧바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사상세계 자체가 ‘조건’이 걸려 있었습니다.]

박철오는 흔들림이 없는 목소리로 이번 사상세계에 대한 정보를 하나씩 풀었다.

전설 속의 고래 모비딕의 존재와 녀석을 쓰러뜨리기 위해 모두가 힘을 합친 이야기를.

사람들은 모두 그 말에 빨려 들어가듯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특히, 사상세계 클리어에 지대한 도움을 준 백화 매니지먼트에게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번 3차 탐사 또한 실패했을 거고, 저 또한 이 자리에 서 있지 못했을 겁니다.]

웅성웅성.

전 국민이 보는 기자 회견에서 백화 매니지먼트의 이름이 나왔다.

사람들은 당황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감사를 표할 경우에 유명한 클랜의 이름이 나오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는데, 난데없이 소형 매니지먼트의 이름이 나온 것이다.

-질문 있습니다! 백화 매니지먼트가 정확히 뭘 한 거죠?

[사상세계의 중요한 정보를 발견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괴물을 상대로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싸웠죠. 저희 컬렉터 협회는 이번 탐사를 기점으로 검후 강혜림의 컬렉터 등급을 2단계 상승, 권지아 컬렉터의 등급을 3단계 상승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다 함께 기자 회견을 신청하던 사람들이 놀랐다.

“헐. 유현 씨. 들었어요? 등급 상승이래요.”

“서련 씨. 저도 들어서 알고 있으니, 진정하세요.”

회견은 어느덧 질문과 답변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협회의 준비성이 미흡해서 희생자가 생겼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이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누구는 살아남고, 누구는 죽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사실 제대로 안 싸운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옵니다.

기자들은 이때다 싶어서 날 선 질문과 함께 공격을 가했다.

희생자들을 들먹이면서 ‘사실 너희들은 대충 싸워서 살아온 게 아니냐’는 말을 돌려서 한 것이다.

“와, 어쩜. 죽은 사람을 들먹이면서 공격하는 거 봐.”

백서련이 기자들의 행태에 이를 갈았다. 듣기만 해도 화가 난다는 반응이었다.

“기레기가 기레기 했을 뿐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특히 몇몇 기자는, 뒤에 누군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군요.”

“뒤에 누가 있다고요?”

“이번 사상세계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이, 어떻게든 자신들의 이권을 주장하려고 기자에게 돈을 찔러 넣은 거죠.”

유현은 그런 곳을 한 군데 알고 있었다.

‘자. 과연, 어떻게 대처를 할까?’

유현은 기대 어린 눈빛으로 화면 속 박철오의 얼굴을 주시했다.

[안 그래도, 그 건에 관해서도 말씀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이번 사상세계에 희생자가 많았죠. 특히 저희 협회의 사람들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대 괴수용 무기인 천망과 천자총통도 대부분 상실했고, 소중한 동료들을 잃었죠.]

-그러니까 지금 중요한 건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을…….

[당신이 말한 그 희생자란 황혼의 장막 말입니까?]

그 이름이 나오자 질문을 하려던 기자는 입을 쏙 다물었다. 설마, 박철오의 입에서 자신이 돈을 받은 클랜의 이름이 정확하게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황혼의 장막. 이번에 무려 중견급 컬렉터 셋을 파견해 줬죠. 클랜의 입장에서도 상당히 큰 지출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 컬렉터 협회는 이 자리를 빌어서 황혼의 장막 클랜에 전합니다.]

화면 속 박철오는, 마치 눈앞에 상대가 있다는 듯 카메라를 강렬하게 쏘아봤다.

[황혼의 장막 클랜은, 이 시 각부로 사상세계 탐사를 의도적으로 방해한 행위의 책임을 물어 강렬한 처벌을 받게 될 겁니다.]

그것은 한 클랜을 무너뜨리기 위한

거대한 선전 포고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