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158화
사상세계의 바깥에서 3차 탐사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그들이 언제 돌아올지 몰라서 조바심을 내는 사람.
반드시 성공할 거라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사람.
이미 실패했다고 생각하며 다음을 준비하는 사람까지.
3차 탐사대는 구성이 화려하게 꾸며졌다. 실패해도 생존자는 있을 거라 판단한 언론은 이곳에 관심을 집중했다. 다른 나라의 언론도 관심을 갖기는 마찬가지였다.
협회에서 쳐 놓은 경계선 너머에서 기자들이 가득 깔렸다. 그들은 애타게 사상세계의 입구를 바라봤다. 그러던 기자 중 눈썰미가 좋은 누군가가 변화를 알아차렸다.
“어, 어어? 저기 봐!”
“뭔데?”
“지금 입구가, 움직인 거 같은데?”
“그럴리가……어?”
동료 기자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반응했다.
고요한 수면에 파문이 일었다. 사람들의 반응이 파도처럼 동심원을 그리며 번져 나갔다.
“사, 사상세계가!”
“설마, 클리어 한 건가?!”
사상세계 입구가 빛을 내며 생존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생존자가 돌아왔다는 사실에 모두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주위에서 잔뜩 대기하고 있던 취재진들과 그들을 막기 위해 파견된 협회의 사람들, 그밖에도 다른 클랜의 사람들은 모두 눈을 크게 뜨며 그 광경을 지켜봤다.
생존자들이 나온 이후, 사상세계의 입구가 강렬한 빛과 함께 사라졌다. 조금 전까지 사상세계가 있었다는 흔적만이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클리어 했어! 3차 탐사대가 클리어 했다고!”
“이, 이건 기적이야!”
모두가 기뻐하는 사이, 생존자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협회에서 파견된 사람들의 부축을 받았다.
“생존자들 모셔!”
“부상자는?! 혹시 모를 부상자는 이쪽으로!”
유현과 강혜림, 권지아는 셋이서 서로를 부축하며 움직였다. 다행히 치명적인 상처는 없어서 곧바로 치료가 가능했지만, 피로감은 어쩔 수 없었다.
유현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느끼며 살아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강혜림과 권지아도 마찬가지였다.
셋은 묘한 희열감을 느꼈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비슷한 감정이었다.
치료가 끝나고 셋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아직 일어나시면 안 됩니다!”
“됐네. 보네 주게.”
몸에 붕대를 감고 있는 박철오가 나서며 말하자, 현장 직원은 뭐라 말도 할 수 없었다.
부상자들을 모아 놓은 막사를 나서자,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사진을 찍었다.
“강유현 텔러님! 한 말씀 해 주십시오!”
“백화 매니지먼트 전원 생존에 비결이 있습니까?!”
“설마, 이번 클리어도 백화 매니지먼트가 한 건 아니겠죠!”
출입 금지 구역을 벗어나자, 기자들이 득달같이 달라붙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유현의 입에서 사실 하나라도 건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물었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SUV 한 대가 다가왔다. 클랙슨이 울리자, 기자들이 당황해하며 길을 터 줬다.
셋은 곧바로 차량에 탑승했다. 기자들이 달라붙으려 하자, 협회 사람들이 나서서 그들을 몸으로 막아 세웠다.
“강유현 텔러님!”
“대답 좀 해 주십시오!”
기자들은 필사적이었다. 유현을 태운 차량은 그런 기자들을 비웃듯 자리를 빠르게 벗어났다.
“혹시 몰라서 입구에서 대기하길 잘했네요. 다들 고생 많았어요.”
운전석에서 백미러로 뒷좌석에 앉은 3명을 보며, 백서련이 웃으며 반겨 줬다.
밝은 목소리와 다르게 그녀의 안색도 그렇게 좋지는 못했다. 혹시 잘못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차량을 대기시킨 채 온종일 계속 기다린 탓이었다.
결과적으로 전원 무사 귀환이라는 경사스러운 일 앞에서 그녀는 겨우 마음을 놓았다.
“오늘 저녁은 회로 할까 생각 중인데, 다들 어떠세요? 해산물이 먹고 싶은데.”
유현은 강혜림과 권지아와 시선을 교환하더니,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에요. 해산물은, 좀 지긋지긋하거든요.”
* * *
집으로 돌아온 셋은 곧바로 곯아떨어졌다. 잠을 안 자도 되는 유현마저도 잠을 취했을 정도로 정신적인 피로감이 대단했다.
그렇게 꼬박 하루가 지나서야 셋은 눈을 떴다.
“후아암. 진짜 오랜만에 푹 잔 느낌이네.”
유현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기지개를 켜며 동시에 메시지 창을 확인했다.
3개의 이야기가 뒤섞인 융합형 사상세계를 클리어 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덕분인지, 사상세계를 클리어 한 이후로 온갖 메시지들이 길게 나열되어 있었다.
‘엄청나게 많네. 무슨 영수증도 아니고.’
유현은 보상이 너무 많아서 종류별로 분류해서 살폈다.
우선은 칭호.
[사상세계의 이야기가 당신들에게 깃듭니다.]
[칭호 ‘대양의 정복자’를 획득했습니다.]
[보상으로 10,000TP를 획득했습니다.]
바다의 악마이자 지배자인 모비딕을 쓰러뜨린 덕분인지, 칭호에는 대양의 정복자가 새로 추가됐다. 아직 사용하지 않아서 모르지만, 이름만 보면 물과 관련된 것에서 상당한 추가 보정을 받는 효과로 추측됐다.
[바다의 악마 모비딕을 쓰러뜨렸습니다.]
[보상으로 ‘거수사냥’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네모 함장의 비원을 이뤄 줬습니다.]
[보상으로 ‘노틸러스 소환’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목각 인형 피노키오를 구원했습니다.]
[보상으로 ‘거짓탐지’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스킬을 확인한 유현이 눈을 크게 떴다. 보통 사상세계 하나를 클리어 하면 운이 좋아야 스킬 1개, 운이 없으면 스킬을 얻지도 못한다.
‘3개나 되는 이야기가 섞인 사상세계를 성공적으로 끝냈기 때문일까?’
얻은 이야기도 보면 전부 다 해당 사상세계의 이야기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유현은 스킬을 확인했다.
모비딕 이야기의 [거수사냥(Kill The Whale)]은 거대한 괴물을 상대로 엄청난 위력을 내는 공격형 스킬이었다. 위력도 위력이지만, 특히나 어지간한 공격은 먹히지 않는 거대한 녀석을 상대로 ‘반드시’ 타격을 입히는 게 가능했다.
‘미쳤군.’
이것 하나만으로도 대단한데, 나머지 둘도 만만치 않았다.
해저 2만리 이야기의 [노틸러스 소환(Summon Nautilus)].
말 그대로 노틸러스 호를 소환하는 스킬이다. 70m가 넘는 거대 잠수함의 위용을 떠올리면 정말 사기가 아닐 수 없지만, 소환을 위해서는 상당한 조건이 뒤를 따랐다.
‘노틸러스를 현세에서 이야기로 구현시키기 위해서는 그만큼 막대한 이야기가 필요하군.’
지금 유현이 지닌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훗날 사용할 수 있는 최저조건을 달성하게 된다면, 엄청난 전력이 될 것은 확실했다.
마지막으로 피노키오의 이야기 [거짓탐지]는 말 그대로 거짓말을 알려 주는 스킬이었다.
‘이건 어떻게 쓰는 거지? 거짓탐지.’
유현이 거짓탐지 스킬을 사용하자, 유현의 어깨 위로 자그마한 목각 인형 하나가 뿅 하고 나타났다.
아무것도 없는 밋밋한 생김새였다. 유일한 특이점은 얼굴 부분에 나 있는 코로 추정되는 돌출부였다.
유현은 녀석을 슬쩍 보고는 곧바로 스킬을 시험해 봤다.
“피노키오는 진실을 말하면 코가 길어진다.”
거짓말을 하자, 목각 인형의 코가 길어졌다. 유현은 이걸 어떻게 써먹는지 알아차렸다.
‘진실을 말하면 그대로,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짐으로서 거짓을 간파하는 건가? 범용성 하나만큼은 앞의 2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야. 그런데 내가 지닌 책을 보는 능력과 어느 정도 겹치는 게 아쉽네.’
무엇보다 이 거짓을 간파하는 것도 사용하기 위한 ‘대상’이 있어야만 제대로 발동하는 거로 추정됐다. 나름의 제약을 가진 스킬인 건 틀림없었지만, 유현은 개의치 않았다.
스킬을 3개나 얻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보상이 차고 넘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보상은 끝나지 않았다.
[‘바다의 종착지’ 이야기를 획득했습니다.]
[스탯이 상당히 상승합니다.]
[사상세계 부산물 ‘금은보화’를 획득했습니다.]
더불어 사상세계가 지닌 이야기와 함께 스탯이 ‘상당히’ 올랐다는 것도 중요했다. 유현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확실히 뭔가 이전보다 힘이 넘치는 느낌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내부 부산물로 추정되는 금은보화까지.
‘난파선 무덤에서 침몰한 배들이 지닌 보석들을 얻었구나.’
유현은 마지막으로 하나의 장비를 살폈다.
[백경골작(白鯨骨斫)]
수많은 배를 침몰시키고, 모든 해양 생물의 정점에 선 모비 딕의 뼈로 만들어진 작살이다. 신수에 버금가는 모비 딕의 뼈로 만들어져 매우 튼튼하며 절대 부러지지 않는다.
‘새하얀 작살이라.’
인벤토리 창에 들어간 그것을 꺼내자, 길이 2m가 넘는 작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색 자체는 모비딕을 보는 것처럼 새하얗다.
‘아닌 게 아니라, 이거…… 모비딕의 뼈로 만들어진 거잖아? 그립감도 좋고, 재질이 아주 단단해. 작살의 끝에는 고래의 힘줄로 이어진 줄이 걸려 있어서 던지고 나서 다시 회수가 가능하겠어.’
무엇보다 [거수사냥(Kill The Whale)] 스킬과 궁합이 아주 좋아 보였다.
‘스킬과 장비가 사실상 세트로군. 자세한 건 나중에 살펴봐야겠어.’
사상세계 클리어 보상과 성령들의 각종 후원까지 곁들어져서 TP(Text Point)도 어마어마하게 쌓였다.
단 하루 만에 쌓인 TP가 무려 30만이 넘었다.
[현재 보유TP: 621,780TP]
전생에서는 꿈이라고 생각했던 100만TP소유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후우. 뭔가 묘한 기분이네.”
유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신의 방에서 나왔다. 방이라고 했지만, 한 층 전체가 거주 구역으로 사람마다 방이 3개가 넘는 룸이 주어졌기에 사실상 집이라 해도 무방했다.
-일어나셨습니까?
“어, 그래. 셀린.”
-세상모르고 주무시더군요.
“흐아암. 너도 이짓 해 봐라. 안 지치나. 아무튼, 무슨 일로 불렀어?”
-보고할 것이 있어서 전해 드렸습니다.
“아. 그런가?”
유현은 이번 사상세계를 클리어 하면서 적잖은 성령들에게 호응을 이끌어 냈다. 당연히 셀린에게 일부 맡겼던 서재가 이전보다도 확실하게 커지는 것은 당연했다.
“안 그래도, 바로 확인하려던 참이었는데. 보고해 봐.”
-네.
셀린은 대답과 동시에 유현의 앞에서 공간을 가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몸에 딱 맞는 정장을 입은 찬란한 금발 미녀. 셀린은 등 뒤에 펼쳐진 기이한 날개는 최대한 몸에 붙이듯 접은 상태였다.
그녀는 곧바로 유현에게 정리해 놓은 자료를 제네시스 넷으로 보내며 구두 보고를 시작했다.
“우선, 선배님의 이번 시화 덕분에 시청령들은 엄청나게 상승했습니다. 저는 최대 9천 명까지 생각했었는데, 제 예상을 뛰어넘고 9,500명을 달성했습니다.”
“마의 벽이라 불리는 1만이 코앞이네.”
“네, 그렇죠. 그 건에 관해서 일단,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현재 서재 수용력이 한계에 달했습니다.”
“흐음. 역시 그런가? 보통 대리한테 시청령이 많아도 5천이 넘지 않은데, 나는 그 2배를 달성하게 생겼으니 말이야. 진풍의 서재를 흡수해서 한도가 늘어났는데도, 다 차다니.”
“과장급도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본사의 반응을 살피면, 또 승진을 시켜야 하는가에 관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하더군요.”
대리로 승진하는 것도 너무 빨라서 이례적인데, 거기에 더해서 과장 승진까지 논의가 나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유현은 그 말을 들어도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
“됐어. 대리야 뭐, 누구나 시간만 있으면 다는 거라 줬다 쳐도. 과장부터는 장난 아니니까.”
시청령은 과장급을 넘었지만, 아직 과장이 되기 위한 여러 가지 조건은 만족하지 못한 상태였다. 여기서부터는 사내 정치의 영역도 들어간다.
과장으로 승진하려면, 이전보다 시간이 더 필요했다.
“네. 일단 승진은 어떻게 넘어간다 해도, 아무래도 서재 확장은 필수로 보여집니다. 이번 시화를 통해 제네시스 넷에 한차례 또 소문이 퍼진 터라, 다음 시화를 선보일 때면 1만의 벽을 뚫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내 서재 최대 한도가 1만이었지? 확장 신청이라. 중앙실에서 바빠지겠군.”
“그 건 때문에 선배님도 조만간 본사에 방문해서 신청서를 제출하셔야 할 겁니다.”
“그런가? 뭐, 조만간 한번 들를 생각이기는 했지. 그 밖에는?”
“시청령 9,500을 넘은 시점에서 구독령의 숫자는 그 7할이 넘는 7천 명을 달성했습니다. 이 비율은 역대 서재 중에서도 이례적인 수준입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이번 달에 정산될 포인트는 엄청날 것으로 예측되고, 여러 차원 상점에서 광고 의뢰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광고를 다 달 수는 없으니, 알짜배기만 추려서 네가 직접 골라. 정 고르기 애매하면 자리가 얼마 없으니, 서로 경매하듯 경쟁 붙이면 될 거다. 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좋았어. 보고는 이걸로 끝. 너도 고생했다.”
“아닙니다. 저는 바로 후속 처리를 하러 가 보겠습니다.”
셀린은 한층 더 공손해진 태도로 유현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셀린은 이번 모비딕 사상세계를 통해 유현을 다시 보게 됐고, 그가 어째서 이른 시일에 이렇게 치고 올라올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배워야 한다.’
상대방이 능력도 없고 권위만 앞세우는 꼰대라면, 그녀는 끝까지 지지 않고 맞설 생각이었다.
하지만 능력도 있고, 권위보다 실적을 내세우는 유현을 모시게 됐다.
셀린은 전화위복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사내 정치에 밀려서 여기로 좌천된 것이 돌고 돌아 그녀를 성장시킬 원동력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능력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해.’
셀린의 눈이 열정으로 뜨겁게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