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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57화 (157/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57화

“어, 엇?!”

“지금 무슨……!”

유현의 돌발 행동을 본 사람들은 순간,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가까이 있던 권지아와 강혜림도 유현을 붙잡지 못했다.

“유현 씨!”

“강유현! 뭐하는 거냐!”

유현은 답하지 않았다. 한 손에는 백련을, 한 손에는 천자총통을 쥐고 모비딕의 벌어진 입을 향해 달렸다. 그것은 누가 보더라도 모든 것을 포기한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입안이 타오르는 모비딕은 고통 때문에 유현이 지척까지 접근한 걸 눈치채지 못했다.

‘칭호 발동!’

칭호 [무훈기사]가 발동하며 유현의 몸을 둘러쌌다. 유현은 자신이 지닌 이야기의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몸을 보호하고, 그 위에 각인을 새겼다.

더불어 백련을 전신을 가리는 커다란 방패로 만들어 정면을 향했다.

화아악!

타오르는 불길의 뜨거운 열기와 모비딕이 뱉어 내는 괴성의 충격이 유현의 몸을 흔들었다.

몇 중, 몇 겹의 보호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전신이 진탕되며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두 다리가 삐걱이며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

유현은 이를 악물고 모비딕의 목구멍 안쪽으로 넘어갔다.

등 뒤에서 이쪽을 애타게 부르는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유현은 거대한 짐승의 아가리의 깊고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 * *

‘역겹다.’

꾸물거리는 살점의 덩어리 사이에서 유현이 처음 느낀 감각은 코를 찌르는 악취였다.

소금 냄새와 함께 어패류가 부패해서 내는 냄새가 뒤섞였다. 시야가 어두웠기 때문에 냄새는 더욱 강렬하게 와 닿았다.

몸을 강하게 짓누르는 목구멍을 넘어가자, 넓은 공터가 나왔고 냄새는 더욱 심해졌다.

[유현! 정신 차려!]

“알아.”

유현은 그렇게 대답하며 한 번 사용했던 물의 자연석을 꺼냈다. 푸르스름한 빛이 흘러나오며 주위를 은은하게 밝혔다.

유현이 도착한 곳은 꿈틀거리는 살덩어리로 이루어진 모비딕의 위장이었다.

손에 쥔 백련을 넓은 라운드 쉴드 형태로 바꾸며 유현이 그 위에 올라탔다.

“백련. 버틸 수 있겠어?”

[고작, 이딴 위액으로 나를 녹일 수 있을 거 같아?]

“그거 다행이군.”

유현은 백련을 타고 위액 위를 살폈다. 실시간으로 분해되는 생선들의 사체가 가득했다. 단순히 생선뿐만이 아니다. 자그마한 생선부터 사람을 잡아먹는 거대한 상어까지 다양했다.

그 모든 것들이 한 짐승의 위장 안에서 함께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지옥의 아쿠아리움이로군.”

놀랍게도 유현은 몸이 성하게 모비딕의 위장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성령들이 당신의 생존에 경악합니다.]

[성령들이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지 궁금해합니다.]

“보시면 알 겁니다.”

유현은 성령들에게 가볍게 대꾸하며 눈동자를 굴렸다. 그의 분주한 시선은 무언가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분명, 있어야 한다.’

만약에 마지막 퍼즐이 그가 생각하고 있던 ‘그것’이 맞다면.

분명, 그 해답은 이 안쪽에 있을 것이다.

유현은 천장에서 떨어지는 위산을 최대한 조심스레 피하며, 거대한 위장 안쪽을 천천히 돌아다녔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설마, 저건가?’

저 멀리서 푸른빛을 받아 드러내는 희미하게 형체를 발견한 유현이 눈을 빛냈다.

선이 희끄무레한 그것은 자그마한 배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유현은 즉시 위산 위에 둥둥 떠 있는 널빤지 하나를 잡아 노처럼 저으며 이동했다.

‘도착했다.’

유현은 위액이 차오르지 않은 살덩어리를 밟았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반파된 자그마한 배였다.

대체 왜 저런 배가 아직까지 이곳에 형체를 유지하고 있나 했더니, 운이 좋게 위산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배는 이곳에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는지, 세월에 퇴색되어 있었다.

유현은 부서진 배의 중심에서 무언가를 찾았다.

‘내 예상이 맞다면 이건 분명…….’

유현은 반으로 부서진 배의 한구석에 놓인 ‘그것’을 발견했다.

나무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유일하게 사람의 형태를 한 그것.

딱 어린아이 크기의 목각 인형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유현의 입이 열렸다.

“피노키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메시지 창이 시끄러워졌다.

곧바로 관리하고 있던 셀린의 조치로 메시지 창들이 빠르게 내려갔지만, 성령들의 반응이 폭발적이라는 것은 확신했다.

[성령들이 이게 어찌 된 일이냐고 물어봅니다.]

“피노키오에 관해서는, 여기 계신 분들이라면 대다수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피노키오는 지구 전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동화다. 아무리 단순하고 어린아이를 위한 작품이지만, 이것이 세계구급으로 퍼진 ‘이야기’라면 성령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바로, 이 아이가 피노키오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방치되어 검게 풍화된 목각 인형.

지금까지 형체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이 목각 인형이, 마지막 3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피노키오는 이탈리아의 극작가, 카를로 콜로디의 동화의 주인공이죠. 목각 인형으로 만들어진 이 인형은 다들 알다시피,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진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피노키오가 대체 왜 모비딕의 배 속에 있는 건가?

그것은 피노키오의 이야기에서도 나온다.

“피노키오는 작중 상어에게 잡아먹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원작의 상어는 어느 순간, 고래로 바뀌었죠. 이야기 속 피노키오는 고래의 배에 삼켜졌고, 다시 탈출합니다.”

피노키오를 삼킨 모비딕의 또 다른 이름은 몬스트로. 그리고 그 이름은, 모비딕의 또 다른 이명이었다.

원래 이야기 속에서 피노키오는 자신의 가족과 만나며 탈출에 성공한다.

하지만, 이곳의 피노키오는 그러지 못했다.

“피노키오의 이야기에서, 고래의 배 속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하나뿐이었죠. 바로 녀석의 배 속에서 불을 지르는 것.”

그것이 유현이 찾던 3번째 이야기이자 마지막 퍼즐.

이 세상을 끝낼, 모비딕을 반드시 죽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유현이 천자총통을 가져온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다.

[라플라스의 악마 파편이 발동합니다.]

[정보 취합률 100% 달성]

[사상세계를 분석합니다.]

라플라스의 힘으로 알 필요도 없었다. 유현은 이제 뭘 해야 할지 알았다.

백련을 허리춤에 고정하고 한 손으로 바닥에 쓰러진 피노키오를 안아 들었다.

“가자. 꼬마야.”

너무나도 가벼운 목각 인형.

생명력이 존재하지 않는, 이제는 죽어 버린 소년의 잔재를 부드럽게 안았다.

“할아버지 뵈러 가야지.”

콰아앙!

천자총통이 불을 뿜었다.

* * *

“저, 저기 봐!”

모비딕의 입가에 맺힌 불도 거의 가라앉게 되었고, 녀석이 슬슬 활동하려고 할 때,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컬렉터가 모비딕을 가리키며 외쳤다.

대체, 왜 그런지 이유를 발견한 다른 사람들도 눈을 크게 뜨며 당황해했다.

“연기?”

모비딕은 입안에서 검은 매연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상 현상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퍼엉! 펑!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처음에 아주 멀리서 울려 퍼지는 메아리처럼 느껴졌지만, 자세히 들어 보니 그게 아니었다.

소리의 근원은 모비딕의 입안, 녀석의 배 속이었다.

크오오오오오오!!!

모비딕이 눈을 찡그리며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지금까지 녀석에게 많은 상처를 입혔지만, 모비딕이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에이허브가 눈을 찔렀을 때 말고는 한 번도 없었다.

“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박철오의 허망한 중얼거림 속에서 모두의 뇌리에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바로, 모비딕의 입안으로 뛰어든 한 텔러의 모습을.

* * *

콰앙! 콰과광!

화포가 불을 뿜고 살점이 불꽃과 함께 터져 나갔다. 유현은 멈추지 않았다. 천자총통의 발사 시간이 될 때마다 연속으로 계속 쏘았다.

이야기의 힘만 있으면 언제까지고 쏘아 댈 수 있는 물건이다. 한 번 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지만, 이렇게 방해 없는 곳에서라면 그런 단점도 없는 것이 되고 만다.

화르륵!

뜨거운 열기가 뺨을 스치듯 지나갔다. 곳곳에 불이 붙은 살점의 틈새로 붉은 피가 폭포수처럼 흘러나왔다. 위장은 불바다가 됐다.

모비딕의 배 속에 있기에 녀석이 겪는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유현은 문득, 에이허브가 작전 회의 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야. 고래의 심장은 이곳에 있어서 노릴 거면 확실히 이곳을 노리는 게 좋거든.

그가 알려 준 것은 고래의 해부도와 함께, 어디를 어떻게 노려야 확실하게 죽일 수 있는지에 관한 경험이 담긴 조언이었다.

-뭐, 솔직히 보통은 고래의 심장을 노릴 수 없지. 바다에 있으니까. 항상 작살을 꽂는다면, 등 말고 있겠어? 그래도 만약에, 아주 만약에 말이야. 녀석에게 이런 공격을 가할 기회가 생긴다면 내 말을 반드시 떠올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유현은 떠올렸다.

-잊지 마. 여기가 심장이야.

그는 그 말을 잊지 않았다.

‘저곳이, 심장.’

파헤쳐 드러난 살점들의 사이로 거칠게 맥동하는 심장이 보였다. 쉼 없이 꿈틀거리는 그것은 모든 악의를 뭉쳐서 만든 징그러운 살덩어리 그 자체였다.

이제는 죽어 버린, 에이허브가 알려 준 그 말을 마지막까지 기억한 유현은 최후의 목표를 향해 천자총통을 겨누다 이내 내렸다.

“아니. 마지막은 역시 이거겠지.”

유현은 천자총통을 버리고 백련을 쥐었다. 검이었던 백련의 형태가 점점 변했다.

그것은 작살이었다.

한 남자가, 바다를 품에 안았던 남자가 끝까지 손에 쥐고 놓지 않았던 것.

반드시 목표를 꿰뚫고 놓아 주지 않는 복수심의 상징.

유현은 모비딕의 심장을 향해 작살을 던졌다.

* * *

입에서 검은 연기와 함께 불길을 뿜어내던 모비딕이, 마지막에는 최후를 알리듯 남은 눈 한쪽을 부릅뜨며 고개를 하늘을 향해 짓쳐 들더니, 이내 힘없이 옆으로 꺾으며 쓰러졌다.

감긴 모비딕의 눈은 이전과는 달리 다시는 떠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주, 죽었어.”

“진짜야? 진짜 죽었다고?”

믿기지 않았다.

무슨 짓을 해도 죽지 않았던 저 새하얀 괴물이, 도저히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바다의 악마가.

죽었다.

투둑. 툭.

어느덧 먹구름이 개었다. 세상이 떠나가라 내리던 폭우가 그쳤다. 휘몰아치던 파도가 잔잔해졌고, 바람이 멈췄다.

악마를 쓰러뜨리는 순간, 찾아온 평화에 모두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저길 봐!”

누군가의 손가락이 힘없이 벌어진 모비딕의 입을 향했다.

그곳에서 유현이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사, 살아 있었어!”

“설마, 녀석의 배 속에 들어가서 죽인 거야?! 그게 말이 돼?!”

모두가 경악하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릴 때, 강혜림과 권지아만이 말없이 유현을 맞이해 주었다.

“유현 씨. 그건…….”

강혜림은 유현의 품 안에 안긴 목각 인형을 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유현은 대답 대신 피노키오를 안아 든 채 네모 함장의 시체를 향해 다가갔다.

평온하게 웃는 그의 시체는 이스마엘이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스마엘이 고개를 들어 올리며 유현을 마주 봤다.

“형.”

“고생했다. 이스마엘.”

“저는,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살아 있었잖아.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울먹이며 말하는 이스마엘에게 칭찬을 건네며, 유현은 네모 함장의 곁에 쪼그리고 앉았다.

“함장님도. 지금까지 고생 많았습니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유현은 피노키오를 조심스레 네모의 곁에 뉘였다.

그리고 두 사람의 손을 움직여 서로 겹치게 했다.

승리의 기쁨에 취할 틈도 없이.

모두가 그 애잔한 광경을 묵묵히 바라봤다.

“부디, 손주와 함께 좋은 곳으로 가세요.”

유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가볍게 목례했다.

“네모. 아니, 제페토 함장님.”

띠링!

[사상세계 ‘대양의 거대 괴수’를 클리어 했습니다!]

[100,000TP를 획득했습니다.]

[당신이 클리어 한 사상세계는 3개의 이야기가 뒤섞인 곳이었습니다.]

[추가로 50,000TP를 획득했습니다.]

모비딕을 죽이고, 원래 죽었어야 할 사람들을 살렸다.

이 세계의 이야기는, 이로써 끝맺음했다.

쏴아아아

밀려온 파도가 다시 쓸려 나가듯.

사상세계의 풍경이 서서히 새하얀 글자의 조각으로 흩어졌다.

악마의 섬 난파선 무덤도,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던 선원들도.

이쪽을 향해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어 준 이스마엘도.

‘해냈어.’

누구도 성공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이야기를 그의 손으로 끝냈다.

하지만, 기쁨보다는 먹먹한 감정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이 결말을 맞이하기까지 너무 많은 희생이 있었다.

네모 함장과 에이허브, 그리고 그들을 따르던 선원들과 다수의 컬렉터들.

그들이 없었다면, 과연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나는 아직도 부족해.’

유현은 자신의 나약함을 통감했다. 미래에서 돌아왔고 지금까지 많은 것을 이뤘지만, 그는 여전히 부족했다.

‘더 강해져야 해.’

누구도 잃지 않도록.

그 어떤 세계에도 짓눌리지 않도록.

파아앗!

사상세계가 완전히 흩어지기 직전, 유현의 시야가 밝게 빛나며 하나의 광경이 비췄다.

쏴아아!

그것은 바다를 가르는 한 척의 배였다. 선원들이 갑판 위에서 자신의 역할을 맡고 있었고, 신참으로 보이는 어리숙한 자들은 선임들의 모습을 보고 열심히 배웠다.

한 남자가 경쾌한 발걸음으로 갑판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하더니, 허리를 세우며 경례를 취했다. 그것은 선원들의 진심 어린 존경심에서 흘러나온 행동이었다.

“다들 선장님께 경례!”

누군가 그렇게 외쳤다.

선장이라는 사람은 자신감에 가득 차 있는 미소와 희망으로 가득 차 있는, 마치 밤하늘의 밝은 별빛을 담아 놓은 것 같은 눈동자를 지닌 남자였다.

지금 항해하는 뉴(New) 피쿼드호의 주인이자, 바다의 낭만가로 불리는 자.

대양의 너머 대륙을 탐험하고, 세상에 자신의 족적과 함께 미지의 세계를 알린 자.

그의 모습을 본 유현은 눈을 크게 떴다.

“선장이 아니다.”

어리숙했던 모습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이제는 한 배를 통솔하게 된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그리 말했다.

“모두, 나를 이스마엘이라 부르라.”

바다를 동경하고 세계에 꿈을 품었던 소년은.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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