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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56화 (156/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56화

네모 함장이 죽었다.

이 싸움을 담당하던 하나의 축이 무너진다는 것은 생존자들에게 매우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생존한 노틸러스 선원들이 슬픔에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자신들 선장의 죽음을 애도할 시간조차 없었다.

“이, 빌어먹을 노땅이. 뭘 멋대로 쳐 가고 있는데.”

에이허브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

“그리고, 또 뭐가 좋아서 그렇게 웃고 있는 거냐고.”

고통 속에서 죽어 가던 네모 함장의 표정은 매우 평온했다.

모든 고통과 마음의 짐을 덜어 낸 그 모습에, 에이허브는 부러움과 함께 막막함을 느꼈다.

복수를 끝내야 행복해지는 게 아니었나? 복수를 이루지도 못하고 죽었는데, 어떻게 웃을 수 있지?

그 기묘한 감정의 격류는 서로 화학 반응을 일으키며 결국, 단 하나의 감정으로 승화했다.

바로, 모비딕을 향한 끝 모를 분노로.

“좋아, 노땅. 저승에서 잘 지켜보라고. 이 에이허브가, 어떻게 저 고래를 사냥하는지!!!”

에이허브가 땅을 박차고 높게 점프했다. 목표는 이쪽을 향해 비웃음을 날리는 저 빌어먹을 고래였다. 양손에 잡힌 작살이 모비딕의 드러난 상처에 박히며 살점을 헤집었다.

“죽어! 이 악마 새끼야! 죽어! 죽으라고!”

그는 작살을 꽂은 뒤, 등 뒤의 새로운 작살을 뽑아 찔렀다.

찌르고. 찌르고. 찌르고.

모비딕의 붉은 피가 에이허브의 몸을 적셨다. 그가 흘린 피와 모비딕의 피가 한데 뒤섞였다.

에이허브의 모습은 복수심에 미친 악귀처럼 보였다.

악마의 피를 뒤집어쓴 악귀,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이 모두가 같은 생각을 품었다.

크오오오오오!!!

모비딕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녀석은 머리를 거칠게 흔들며 에이허브를 떨쳐 내려 했다. 에이허브는 작살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모비딕의 머리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 순간, 손과 작살이 맞잡는 부분에 피로 인해 미끄러졌다. 에이허브는 지상으로 떨어졌다.

모비딕이 입을 벌려 에이허브를 물어뜯으려고 했다.

파지지지직!

절체절명의 순간, 어디선가 푸른 전류가 날아와 모비딕의 머리에 박힌 에이허브의 작살에 빨려 들어갔다. 모비딕은 고통에 눈살을 찌푸리며 공격을 가한 자를 노려봤다.

“허억. 허억.”

상처투성이의 강혜림이 이쪽을 향해 검을 겨누는 것이 보였다. 그 녀석이다. 모비딕은 처음 공격 때 자신의 몸에 전류를 흘린 강혜림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고통을 떠올리는 순간, 모비딕의 목표는 강혜림으로 바뀌었다.

“혜림 씨! 위험합니다!”

유현이 그렇게 외치는 순간, 모비딕의 입이 벌어졌고.

“아직 나 안 죽었다! 이 고래 새끼야!”

에이허브의 작살이 모비딕의 한쪽 눈을 그대로 꿰뚫었다.

─────!!!!

숨을 삼키는 도중이라 소리 없는 비명이 흘러나왔다. 에이허브는 모비딕의 고통에 희열을 느꼈다.

그래! 더 괴로워해라! 더 고통스러워해라!

“내가 잃은 것처럼, 너도 그 괴로움을 느껴 봐!”

우오오오오오오───!!!

모비딕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에이허브를 뒤로 밀어냈다. 에이허브가 거리를 벌리는 순간, 벌려진 모비딕의 입에서 충격포가 쏘아졌다.

그 목표는 지면에 막 착지하려는 에이허브 선장이었다.

콰아앙!

“서, 선장님!”

“에이허브 선장님!”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아와 바위에 처박힌 에이허브를 보며 선원들이 소리 질렀다.

네모 함장에 이어 그까지 당한다면 남은 사람들은 더 이상 견딜 자신이 없었다.

“시끄럽다.”

에이허브가 파묻힌 바위에서 몸을 꺼내며 그렇게 말했다.

“난 아직 멀쩡해.”

형형한 눈빛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그의 몸 상태는 말하는 것과 다르게 매우 좋지 않았다. 내장은 파열됐고, 뼈가 부러졌다. 심지어 양팔을 교차해서 공격을 막으려고 했던 탓에 팔 근육이 전부 다 찢어졌다.

그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은 오직 일반인을 아득히 뛰어넘는 육체 덕분.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모비딕의 충격포를 견디기 힘들었고, 결과적으로 에이허브는 더 이상 싸움을 지속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야. 괴물 고래. 기분이 어떠냐?”

피투성이가 된 에이허브는 고통 속에서도 웃었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복수심으로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네가 그토록 무시했던 인간에게, 눈을 잃어버린 기분이 어때? 너도 느껴지지? 자신의 신체를 누군가에게 상실당했다는 그 고통을.”

모비딕은 에이허브의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그의 목소리만큼은 들을 수 있었다.

말뜻을 이해할 필요도 없었다. 그의 목소리에 담긴 절절한 감정만으로도 모비딕은 자신이 모욕당하고 있음을 알았다.

에이허브는 분노를 토하는 모비딕의 정면에 선 채로 기세를 잃지 않았다.

‘아. 이건 확실히 글렀군.’

자신의 몸 상태를 살피며, 에이허브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곧 다음 공격이 온다. 이것은 분명, 피할 수 없다.

부러진 갈비뼈가 내장을 찔렀고, 장기도 충격파에 손상을 입었다. 양팔의 뼈는 부러지고, 근육도 파열 상태. 이 대로는 작살을 쥐지도, 던지지도 못한다.

‘아니. 아직 하나 남아 있어.’

그는 자신의 잘린 다리를 내려다봤다. 그곳에는 의족으로 대체한 흉흉한 작살의 날이 보였다.

그는 아직 작살을 놓지 않았다.

계속. 모비딕에게 발을 잃은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는 작살을 쥐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마지막이로군. 그렇게 호언장담해 놓고 꼴이 말이 아니야.’

에이허브는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아도 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복수를 운운하고,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외친 거치고는 참으로 처참한 몰골이 아닌가?

그래도 기뻤다.

대체, 누가 저 괴물의 눈을 헤집었겠는가? 누가 저 괴물을 얕은 수면까지 끌고 올라와 이렇게 일방적으로 몰아세웠겠는가?

죽음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는 분명, 이 복수를 이루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고 각오하고 있었다.

그런데, 느껴지는 이 망설임은 대체 뭐란 말인가?

“아. 그런 거였군.”

에이허브는 선원들을 돌아봤다. 이쪽을 향해 간절하게 바라보는 선원들의 눈빛을 주시했다.

복수심에 미쳐 날뛰던 그와 다르게, 순수한 선망과 뜻을 품고 따라와 준 사람들.

이제는 사라져 버린, 그가 과거에 지녔던 그 모습을.

“나는 어쩌면, 이 복수 이후에 살아남는 것이 두려웠던 거야.”

복수가 끝나고 살아남으면 뭘 할까?

문득, 유현에게 받았던 질문이 떠올랐다.

그때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었다. 유현도 그럴 수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에이허브는 안다.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에이허브의 시선이 유현에게 머물렀고, 마지막으로 평온한 최후를 맞이한 네모 함장을 향했다.

‘이봐 함장님. 당신은 죽기 전에 뭘 봤지?’

그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기다린다 해도 죽은 그 남자가 갑자기 살아 돌아와서 알려 줄 리도 없었다.

뭐, 됐다. 잡념은 여기까지다.

에이허브는 모든 망설임을 떨쳐 냈다.

“잘 들어라!!”

에이허브가 목에 힘을 줬다.

“나 에이허브는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 몸을 묻겠다고 다짐했다! 그날이 오는 것은 아주 먼 미래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틀렸다. 오늘이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번개가 내려치고, 폭우가 쏟아지는 무덤 속에서.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당당히 선언했다.

“나는 곧 죽는다!”

“서, 선장님!”

평소에 나약한 소리를 하지 않는 에이허브가 스스로 죽음을 통감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에이허브는 웃었다.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 웃지 않겠는가?

“하지만, 너희들은 아니다! 이곳은 오직, 나와 저 고래의 무덤이어야만 한다! 이 바다 위의 복수와 모든 해묵은 감정은, 오늘 이 순간 나와 함께 수장된다! 그러니, 선원들이여 들어라! 이방인들도 들어라! 너희는 살아야 한다! 살아서 이 순간을 기억하고, 알리고,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라! 그리고 이 말을 기억해라!”

에이허브가 몸을 숙이며 무릎을 굽혔다. 그의 모습은 위태로워서 마치 쓰러질 것만 같았다.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에이허브는 고통 속에서 웃으며 발을 내디뎠다.

한 걸음. 한 걸음.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내달렸다.

“이 난파선들의 무덤이야말로, 나 에이허브의 최종 정착지이자 끝이다!”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

나는 너를 향해 달려들어 죽을 때까지 너와 맞붙으리라.

지옥의 한복판에서라도 네게 작살을 던지고.

이 가눌 수 없는 증오를 담아 내 마지막 숨을 너에게 뱉어 주마.

쩌어억!

모비딕의 입이 벌어졌다. 그곳에 종착점이 보였다.

벌어진 심연 속에서 거대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에이허브는 그것을 정면으로 보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으하하하하하하하!!!”

광기 어린 웃음을 토해 내며 에이허브는 충격파를 거스르며 내달렸다.

콰직!

그의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갔다. 에이허브는 몸의 균형이 무너지는 걸 느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멀쩡하던 한쪽 다리마저 충격파에 찢겨 어디론가 날아갔다.

상처에서 끝없이 피를 흘리면서도, 에이허브는 의족에 힘을 줘 도약했다.

공중에 뜬 에이허브가 모비딕의 벌려진 입안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의 작살로 이루어진 의족이 모비딕의 입안을 찔렀다.

크오오오오!!

모비딕이 에이허브를 떨쳐내려 했지만, 작살로 고정된 그의 몸은 입천장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에이허브는 허리춤에서 마지막 한쪽 팔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화약을 뭉쳐서 만든 일종의 폭탄이었다.

바깥에서 공격이 통하지 않으면, 이건 어떠냐!

“선장님!”

“안 돼!”

선원들이 불렀지만, 이미 늦었다.

에이허브는 마지막으로 유현을 향해 맡긴다는 시선을 보내며.

콰아앙!

그대로 폭발에 휘말렸다.

입안에서 터진 폭발에 모비딕이 고통스러워했다. 심지어 에이허브는 허리춤에 고래기름을 매달고 있었다. 기름과 닿아 더욱 들끓는 불길이 모비딕의 입을 꺼지지 않고 계속 태웠다.

우워어어어!!

그럼에도

에이허브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모비딕은 아직 살아 있었다. 비명을 내지르고, 고통에 몸을 흔들며 발버둥을 칠 뿐.

그 모습에 선원들이 겁에 질렸다. 컬렉터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공격을 퍼부었는데도, 죽지 않는 환상체를 대체 어떻게 잡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런 생각에 모두가 공포에 얼어붙었다. 모비딕이 재차 고함을 토해 냈다.

이전에 날린 충격파와 다른 입안의 불길을 끄기 위한 외침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생존자들이 종이 인형처럼 바닥을 굴렀다.

으득!

쓰러진 유현이 이를 악물었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움직여.’

유현은 떨리는 두 다리에 힘을 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이 여기까지 길을 열어 줬잖아. 어서 일어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지금의 절망은 마치 전생의 종말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처절했다.

지옥.

폭풍우가 몰아치는 암초의 섬에서 악마와 싸우는 이곳은 지옥이었다.

‘검을 쥐어.’

그런데, 어째서일까?

유현은 가슴이 세차게 뛰는 걸 느꼈다.

더 많은 고난.

더 심각한 절망.

그것이 새벽녘의 안개처럼 전신에 내려앉았다.

이 상황 속에서도 유현은, 자기도 모르게 그리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종말에서 항상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양분 삼아, 그는 더욱 강해진다.

유현의 시선이 문득 네모 함장이 떨어뜨린 펜던트의 사진을 향했다. 그다음에는 입안에서 불길을 뿜으며 괴로워하는 모비딕을 향했다.

유현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잊고 있었던 퍼즐이 짜 맞춰졌다.

[일부 성령들이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일부 성령들이 당신의 행동이 기대감을 품습니다.]

[일부 성령들이 무의미한 저항이라고 고개를 젓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일어서는 유현의 모습에 성령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그들의 반응은 다 달랐다.

누군가는 기대를, 또 누군가는 연민을, 또 누군가는 안타까움을.

이 자그마한 필멸자가 대체 뭘 할 수 있냐는 시선이 쏟아진다.

‘이제 어쩌면 좋냐고?’

유현은 자신의 곁에 널브러진 천자총통의 화포를 쥐었다.

‘답은 정해져 있잖아.’

이 빌어먹을 싸움을 끝낸다.

오직 그것뿐.

“백련. 부탁한다.”

[……그래. 알았어.]

백련은 아무 말 없이 유현의 뜻을 존중했다.

“유현…… 씨?”

“너…….”

권지아와 강혜림이 이쪽을 본다. 다른 컬렉터들도 마찬가지였다. 생존자들 모두가 유현의 등을 봤다.

이방인들의 대표. 마지막까지 남은 유현을 향해 모두가 기대를 품었다. 그러지 않으면 포기할 것만 같았다.

부담스러운 일방적인 기대감. 유현은 겨우 일어난 어깨가 짓눌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그래. 너희들의 그 마음. 내가 짊어져 주마.’

유현은 언제나 앞서간 적이 없었다. 그는 항상 한 남자의 등 뒤만 바라보며 쫓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모두가 유현의 등을 보고 있었다. 이제는 그의 차례였다. 그가 앞서 나가서 보여 줄 순간이었다.

언젠가 나도 저 사람처럼 될지 모른다는 기대감은.

이 순간, 현실이 되었다.

“간다. 이 빌어먹을 고래야.”

유현은 그 말과 함께, 모비딕의 벌어진 입안을 향해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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