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155화
콰과광!
거대한 불꽃이 모비딕의 몸속에서 연달아 터졌다. 고열의 화염이 살점을 태우고 내장과 근육까지 열기를 전달했다. 노틸러스가 박힌 상처로부터 불꽃과 함께 불타는 잔해가 튀어나왔다.
모비딕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녀석이 고개를 한 차례 치켜들더니, 이내 땅에 쿵 하고 머리를 박았다.
노틸러스호도 멀쩡하지 못했다.
함께 폭발시킬 각오로 터트린 어뢰다. 불꽃과 폭발의 위력은 모비딕과 함께 노틸러스까지 집어삼켰다.
“함장니이이임!!”
“안 돼! 이스마엘! 다가가면 위험해!”
망연한 표정으로 노틸러스를 향해 뛰어가려던 이스마엘을, 동료 퀴케그가 붙잡았다.
불길에 휩싸인 노틸러스를 보며, 승무원들이 눈물을 흘렸다. 그들의 눈물은 쏟아지는 폭우에 순식간에 쓸려 나갔다.
불타 무너져 반파되어 버린 노틸러스와 움직임이 멈춘 모비딕.
마치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멈추기라도 한 듯, 모두가 무슨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그때 노틸러스의 불타는 철문이 열리더니, 한 남자가 비틀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어, 어어? 저거!”
“함장님이다! 함장님이야!”
바깥으로 나온 것은 네모 함장이었다. 컬렉터들과 선원들이 놀라 외쳤다.
네모 함장의 모습은 상당히 처참했다. 언제나 단정하게 입었던 제복은 여기저기 불길에 그을리고 찢어져 있었으며, 모자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뒤로 넘겼던 백발은 비바람을 맞아 산발이 되었다.
네모 함장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한 손에 사브르를 쥔 채 잠수함에서 나왔다.
선원들이 네모 함장을 부축해 줬다. 그중에서는 이스마엘도 있었다.
“하, 함장님! 무사하셨군요!”
“이스마엘. 살아 있었구나.”
이스마엘은 눈물이 핑 도는 걸 느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에이허브가 성큼 다가왔다.
조금 전 걱정했다는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그는 반갑게 웃었다.
“크하하! 노땅! 살아 있었잖아! 깜짝 놀랐다고!”
“시끄럽다. 미개한 놈.”
에이허브는 오랜 친구가 살아 돌아온 것처럼 기뻐했지만, 정작 생존한 네모 함장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모두가 그 이유를 알았다.
“다른 승무원들은…….”
“그들은 제 역할을 다 했네.”
네모 함장은 무거운 목소리에 모두가 탄식했다. 그를 제외한 내부 생존자가 없다는 소리였으니까.
네모 함장이 살아 돌아온 것은 전부 마지막 남은 승무원들의 희생 덕분이었다.
‘함장님! 꼭 살아남으십시오!’
‘함장님이 희망입니다!’
모비딕의 내부에서부터 터져 나온 어뢰의 폭염이 그들을 집어삼키기 전, 마지막 남은 승무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몸을 던져서 네모 함장의 몸을 지켰다.
자신의 명령이 아닌 부하들의 자발적인 희생.
이미 모든 결과를 초연하게 받아들이던 네모 함장은, 부하들의 돌발 행동에 어떠한 반응도 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웃는 얼굴로 불길에 휩싸인 승무원들.
네모 함장은 주먹을 꽉 쥐었다.
‘바보 같은 놈들. 누가 그런다고 기뻐해 준다 더냐.’
네모 함장은 부하들의 희생으로 목숨을 부지한 자신이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그 이상으로 이 상황을 초래하게 만든 저 가증스러운 괴물이 너무나도 증오스러웠다.
하지만, 이로써 저 괴물을 쓰러뜨렸으니, 이걸로…….
번뜩!
모비딕이 감았던 눈을 뜬 것은 그때였다.
우오오오오오!!
쓰러지기 전보다도 더 거대한 고함을 터뜨리는 그 모습에 생존자들이 경악을 토했다.
“이런 미친. 방금 그 공격에도 살아 있다고?!”
“어떻게 돼 먹은 생명력이야!”
노틸러스로 옆구리를 꿰뚫고, 그 상처에 수십 정의 어뢰를 연속으로 폭발시켰다. 바닥의 악마는 물론이거니와 그 할아버지가 와도 살아남을 수 없는 공격이었는데.
모비딕은 그 말도 안 되는 공격을 맞고도 살아 있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이것이 현실이었다.
“트, 틀렸어.”
“저걸, 어떻게 잡아.”
마음이 약한 몇몇 선원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저건 고래 따위가 아니었다. 녀석은 정말로 이 바다를 지배하는 악마였던 것이다.
인간이 어찌 감히 악마를 죽일 수 있을까?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를 마주한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둘 꺾여 갔다. 그들의 눈동자가 어둠으로 물들었다.
“정신 차려! 이 멍청한 새끼들아!”
그런 사람들의 정신을 일깨우는 것은 에이허브의 일갈이었다.
“저 괴물을 봐라! 녀석을 봐! 상처가 가득하다! 피를 흘리고 있어! 아직도 너희들 눈에는 저 녀석이 악마로 보이냐?!”
에이허브는 작살을 강하게 쥐었다. 까드득! 손아귀와 마찰한 작살에서 기이한 소리가 났다.
“녀석도 결국, 생명체야! 우리처럼 피를 흘리고, 다치면 죽는 그저 더럽게 큰 고래일 뿐이라고! 놈은 지쳤다! 더 이상 도망갈 여력도 없어! 그러니, 다들 무기를 들어라! 다 잡은 먹잇감을 놓칠 생각이냐! 그래도 너희들이 바다의 사나이라 할 수 있냐?!”
숨을 들이마셔라. 작살을 쥐어라.
바다 위를 거니는 사람이라면, 절대 바다의 생명체에게 겁을 먹어서는 안 된다.
이 남자는 모두가 절망에 빠진 그 순간에서도, 결코 마음을 굽히지 않았다.
“싸워, 이 새끼들아!”
이성적인 설득 따윈 필요 없었다.
마음을 울리는 연설도 필요 없었다.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선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하나둘 일어났다.
신기한 일이었다. 마음이 아니라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손님들! 댁들도 반성 좀 해야겠어!”
에이허브는 선원들의 모습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숨을 헉헉거리는 권지아를 가리켰다.
“여기 이 아가씨보다 못한 놈들이 이렇게 많아서야 원! 댁들 수준은 고작 그거밖에 안 됐나 보지? 차라리 나 몰라라 도망이라도 치지 그래! 저 고래에게 밥이 될 바에는 그게 낫겠어!”
그 말에 울컥한 컬렉터들이 아픈 몸을 다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이허브의 말은 그들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다.
이 자리에 모인 컬렉터들은 모두가 중견급 컬렉터다. 그것은 곧, 자존심 하나만큼은 남들 못지않게 똘똘 뭉친 자들이라는 소리였다.
검후도 아니고, 아직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권지아에게 밀렸다고?
“제길! 고작 이야기로 구성된 녀석이 멋대로 떠들기는!”
“웃기지 말라고 그래! 저 고래는 반드시 내가 조지고 만다!”
모두가 전투의 의지를 불태우는 사이 정신을 차린 모비딕이 이쪽을 주시했다. 모비딕은 더 이상 도망치는 것을 포기했다. 상처가 너무 깊었다. 이대로 도망치려 했다가는 정말로 저 인간들에게 당할지도 몰랐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놈들을 모두 죽인다.
그들에게 보여 주리라. 누가 진짜 사냥꾼이고, 누가 사냥감인지.
때마침 모비딕의 눈에, 뾰족하게 솟은 바위 더미들이 보였다.
모비딕의 교활한 머리가 돌아갔다. 저들은 저 바위를 터뜨려 자신을 깔아뭉갰다. 도망치지 못하게 거대한 질량으로 짓눌리는 것은 썩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이 순간, 모비딕은 이 자리에서 한 가지 방법을 학습했다.
당한 대로, 똑같이 돌려준다는 것을.
우오오오오오오!!
모비딕이 재차 소리를 토했다. 모두가 잔뜩 긴장한 채 녀석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준비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모비딕의 공격은 이쪽을 향하지 않았다.
녀석이 노리는 것은 그보다 더 위.
고슴도치의 뿔처럼 날카롭게 솟아있는 바위 더미였다.
콰드득!
거대한 소리의 폭탄이 바위 더미를 가격했다. 순식간에 바위에 금이 가더니, 무수한 파편이 되어 지상으로 떨어졌다.
“미친! 여기가 아니라 위다! 다들 피해!”
“도, 도망쳐!”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선원들은 혼비백산하며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크악!”
“커헉!”
일부 선원들이 떨어지는 잔해에 얻어맞고 쓰러지거나 꿰뚫렸다. 바깥에 꺼내 놓은 화약 더미 위로 낙석이 충돌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앙! 뜨거운 열기와 함께 재차 잔해가 사방으로 터져 나왔다.
“모두 내 뒤로 물러나게!”
박철오가 그렇게 외치며 전신을 금속으로 바꿨다. 직후 그의 몸을 무수한 파편들이 때렸다.
티티티티팅!
“크으윽!”
피부가 단단해져도 거대한 질량이 갖는 운동 에너지는 그대로 그의 몸에 스며들었다. 박철오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삼키며 최대한 사람들을 지키고자 했다.
컬렉터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은 각자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들을 사용하며 떨어지는 잔해를 쳐 내거나 없애며 자신의 몸을 보호했다.
그러지 못하는 것은 선원들뿐이었다.
“다, 다리가…….”
이스마엘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어리숙한 이스마엘은 갑작스러운 낙석에 당황하며 어디로 도망갈지 몰랐다. 죽음의 공포가 그의 발목을 붙잡고 놓아 주지 않았다.
그런 이스마엘의 머리 위로 날카로운 낙석이 떨어졌다.
“안 돼! 이스마엘!”
뒤늦게 알아차린 단짝 퀴퀘그가 외쳤다. 이스마엘은 고개를 들어 올려 떨어지는 낙석을 발견했다. 이스마엘의 동공이 축소됐다.
‘죽…….’
콰득!
살을 꿰뚫는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스마엘의 손끝이 잘게 떨렸다.
“어, 어째서…….”
이스마엘은 그 참상에서 살짝 떨어진 자리에 쓰러져 있었다. 그의 몸은 멀쩡했다.
“왜, 왜 함장님이…….”
대신 꿰뚫린 것은 네모 함장이었다.
이스마엘이 낙석에 부딪히기 직전, 네모 함장이 뛰어들어 이스마엘의 몸을 밀쳐 냈다.
쿨럭!
피를 토한 네모 함장은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등부터 뚫고 들어온 바위가 그의 복부에 튀어나와 있었다. 내장이 진탕되었다. 안 그래도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건 결정타였다.
“함장님!”
이스마엘이 황급히 네모 함장에게 다가갔다. 그는 울먹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저 거대한 파편을 뽑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놔두면 네모 함장이 죽을 것만 같았다.
에이허브가 황급히 다가왔다.
“노땅! 이런 미친! 겨우 살았는데, 왜 또 이러는데! 진짜 자살하고 싶어서 안달이라도 난 거냐!”
“쿨럭! 시……끄럽다. 미개한 놈.”
“지금 그런 말 할 때냐고! 조금만 참아 봐! 지금 바로 의료진을……!”
“됐다.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난 끝이다. 이미…… 늦었어.”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이런 제길!”
사실, 에이허브도 알고 있었다. 그를 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이 미친 노땅아. 대체, 대체 왜 그런 건데.”
에이허브가 이를 악 물었다.
만날 때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폭언을 퍼부으며 만날 때마다 싸웠지만, 그들은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자신과 정반대의 자리에 선 저 남자야말로, 바로 자신의 이 삶의 유일한 이해자라고.
하지만, 둘은 그 말을 애써 하지 않았다. 굳이 입 밖으로 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남자들이란 그런 것이었으니까.
그것은 죽음을 앞둔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스마엘…… 거기 있느냐?”
“네, 네! 함장님. 저 여기 있어요.”
“그래.”
이스마엘은 울먹였다. 자신이 모자라고 부족해서 존경하는 네모 함장을 이렇게 만들어 버렸다고, 그는 속으로 그렇게 자책했다.
“네 잘못이 아니다.”
네모 함장은 이스마엘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며 그렇게 말했다.
“이건, 내가 한 행동의 결말이었어.”
“하, 하지만!”
“만약에 이 자리에서, 우리 둘 중 하나가 살아야 한다면…… 분명, 그것은 복수심에 물든 노인이 아닌 꿈이 많은 청년이어야 한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느덧 그의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상반신 전체를 적셨다. 네모 함장의 안색이 창백해졌고, 시야가 흐릿해 눈의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네모 함장은 자신의 마지막을 직감하고, 모든 힘을 쥐어짜 입을 움직였다.
“승무원들의 희생으로 부지한 목숨이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죽는다면, 이보다 값질 수는 없겠지.”
이스마엘은 눈물을 흘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평생,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지닌 채 살았다.”
네모 함장은 이스마엘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이스마엘의 모습에 먼 과거의 그림자를 겹쳐 봤다.
“하지만, 지금은 드디어 지켰구나.”
“함장님…….”
이스마엘도 더 이상 목소리를 떨지 않았다.
결국, 그 또한 깨달은 것이다. 이 남자가 떠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웃는 얼굴로, 최선을 다해 그를 배웅해 줘야 한다.
한평생 바다를 살아온 바다의 자유자, 그가 난파선 무덤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다.
슬퍼하면 안 된다. 그것은, 자신을 살리기 위해 희생한 이 남자를 모욕하는 짓이었다.
이스마엘은 주먹을 꽉 쥐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동안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그 감사에 네모 함장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의 뿌연 시야 속에서, 아주 머나먼 과거의 추억이 떠올랐다.
‘할아버지!’
쏴아아.
자신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하나뿐인 손자가 파도가 치는 부두 위를 뛰어놀고 있었다. 따개비를 구경하고, 불가사리를 손으로 잡아 보며 꺄르륵 웃는 모습에 절로 가슴이 따스해졌다.
네모 함장은 의자에 앉아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손자가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이제는 볼 수 없는 그때의 광경이.
손을 뻗기만 해도 닿을 것처럼 가깝게.
‘그래.’
네모 함장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손을 움직여 펜던트를 쥐어뜯었다.
‘드디어 지킨 거야.’
그걸로 좋았다고.
핏기가 가셔 차갑게 식은 그의 손 위로, 따스한 손길이 다가왔다.
어느덧 부두에서 돌아온 손자가 그의 손을 붙잡고 바다로 이끌었다.
‘할아버지 어서!’
‘허허! 녀석! 그래 알았다.’
네모 함장은 손자를 따라 바다로 향했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손자와 손을 잡고 부두를 거니는 그의 발걸음은.
그 무엇보다도 가벼워 보였다.
딸칵.
축 늘어진 손 아래로 펜던트가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충격으로 펜던트가 열리며, 그 안에 담긴 자그마한 사진을 바깥으로 드러냈다.
사진 속에서 네모 함장은 한 소년을 품 안에 안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평소의 모습에서 절대로 떠올릴 수 없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