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153화
촤아악!
세 척의 배가 바다를 가르며 나아갔다. 선두로 앞서는 것은 범기선 피쿼드호였다. 그 뒤를 두 척의 범선이 바짝 붙어 따라왔다.
갑판 위의 모두가 긴장 어린 표정으로 정면만 바라봤다. 작전이 시작된 이후로 말을 꺼내기만 해도 부정이라도 타지 않을까 걱정하며, 그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지 않았다.
-선배님.
‘어. 셀린.’
유현도 묵묵히 배가 나아가는 방향을 보고 있을 때, 관조자의 방에 있던 셀린에게서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이지?’
-딱히 일은 아닙니다. 다만, 시화의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서 그런지 시청령들이 꽤나 많이 들어와 있어서 말씀드린 겁니다.
‘벌써 그렇게 됐나? 너무 바빠서 확인을 못 했네. 얼마나 됐지?’
-현재 시청령의 숫자가 8천을 넘었습니다. 심지어 실시간으로 증가하는 중입니다. 아무래도 이전 시화를 보이던 서재 몇 개가 폐기된 것 때문이 아닐지?
‘아. 그거 때문인가?’
30명의 컬렉터 중에서 11명이 죽었다. 당연히 그들의 담당 텔러들은 시화를 더는 선보일 수 없었고, 서재를 닫았다. 당연히 해당 서재에 상주하던 성령들은 이번 이야기의 끝을 보기 위해 유현의 서재로 몰려왔다.
-제 계산상, 이번 시화를 성공적으로 끝마치면 9천까지는 도달할 수 있을 거로 보입니다. 최대 9천, 이후에는 상시 8천을 유지할 수 있어 보입니다.
‘성공적으로 끝내면, 말이지.’
-죽지 않기를 빌죠. 선배님이 죽으면 저도 곤란하니까요.
‘네가 죽으라고 고사를 지낸다고 해도 난 살 거다.’
유현은 그걸로 셀린과의 통화를 끝냈다.
기분 탓인지, 불어오는 바람이 조금 전보다 훨씬 더 강해진 것 같았다.
아니, 기분 탓이 아니었다.
“선장님! 바람이 점점 강해집니다!”
긴장 어린 침묵을 고수하던 선원들도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는지 입을 열었다.
어느덧 바람이 강하게 불었고, 맑은 하늘에는 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나름 잔잔하던 바다가 점차 거칠게 뒤엉키며 들끓었다.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전진해라!”
“하, 하지만!”
누군가 토를 달려고 하는 순간, 함미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모, 모비딕이다! 선장님! 녀석이 쫓아옵니다!”
뒤를 돌아볼 필요도 없었다. 등 뒤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접근하는 것이 피부로 저릿하게 느껴졌다.
저승사자가 쫓아온다는 말을 들은 선원들은 모두 침을 꿀꺽 삼키고 항해를 속행할 수밖에 없었다. 유현은 백효의 시야를 통해 모비딕의 위치를 확인했다.
‘무서운 기세로 쫓아오는군.’
모비딕은 이전과 다르게 해수면 위로 거대한 덩치를 드러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바다로 잠수해서 이쪽을 살필 여력 따윈 없다는 듯, 거대한 꼬리로 미친 듯이 해수면을 휘저으며 쫓아왔다.
모비딕이 육중한 꼬리를 한 번 휘저을 때마다 녀석의 뒤로 해수면이 하얗게 부서졌다.
‘저 꼬리에 맞으면 어떤 배도 성치 못하겠어.’
모비딕과 배의 거리가 조금씩이지만, 좁혀지는 것이 보였다.
유현은 거리가 좁혀지는 속도를 가늠해서 얼마 뒤에 따라잡힐지 계산을 하려다가 백효의 시야가 순간이지만, 뒤집히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바람이 강해졌다.’
이제는 피부로도 확연히 느껴질 정도로 강풍이 몰아쳤다. 점점 높아지는 파도가 배를 때렸다.
“백효야. 돌아와.”
유현은 결국, 백효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아직 새끼라서 백효는 풍랑에서 오래 날 수 없었다.
백효는 곧바로 유현의 어깨 위로 내려왔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던 괴선 방상씨가 백효를 향해 슬쩍 손을 뻗었다.
부엉!
백효는 화들짝 놀라며, 유현의 반대편 어깨로 갈아탔다. 괴선은 애처롭게 손을 뻗으며 백효를 아쉽게 바라보기만 했다.
‘이 사람은 긴장도 안 되나?’
괜히 괴선이라 불리는 게 아닌지, 그녀는 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여유로워 보였다. 그야말로 4차원이로군.
유현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팀원을 살폈다. 강혜림과 권지아, 둘 또한 동시에 유현을 보는 중이라 시선이 마주쳤다.
서로에게 이 이상 말은 필요 없었다. 그저 이번 작전이 잘 되길 빌며 고개를 끄덕이며 각오를 다졌다.
투둑. 툭.
어느덧 하늘에 먹구름이 꼈고,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졌다.
순식간에 소나기가 내렸다. 강풍을 동반한 그것은 폭풍이라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촤아악! 쏴아!
배가 한 차례 크게 출렁이더니, 바닥 물이 크게 튀었다. 어느덧 파도는 10m 이상을 넘나드는 거대한 괴물처럼 변했다. 선원들이 이를 악물고 돛 줄을 당기며 돌아다녔다.
“선장님! 앞에!”
“알아! 나도 보인다!”
항해사의 외침에 에이허브가 답했다. 모두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먹구름 속에서 천둥이 쳤다. 천둥이 향하는 곳의 끝이 하얗게 빛났다. 그 끝에서 악마의 뿔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는 바위섬이 보였다.
섬 주위에는 날카로운 암초가 즐비했고, 해류가 이리저리 뒤섞여 뒤죽박죽이었다. 암초 곳곳에는 오래전 침몰한 배들의 잔재가 가득했다.
저곳이 모든 뱃사람의 종착지인 난파선 무덤.
어느덧 목적지가 육안으로 확인이 될 정도로 가까워지자, 선원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순간, 실시간으로 모비딕의 위치를 중계해 주던 선원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이봐! 왜 아무 말도 없나! 녀석은 어디 있지?!”
“그, 그게 파도가 너무 높아서 잘 보이지 않습니다!”
마스트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파도의 크기는 어느덧 십 수 미터 이상을 방불케 했다.
모비딕, 모비딕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선원들의 눈이 분주하게 굴러갔다.
그 순간이었다.
푸화학!
뒤에서 다가오는 거대한 해일 같은 파도의 중심을 뚫고 거대한 고래가 뛰쳐나왔다.
“모, 모비딕이다! 녀석이 가까이 다가왔어!”
“이런 미친 어느 틈에?!”
파도를 뚫고 나온 모비딕이 다시 바다로 추락했다. 녀석의 거대한 몸이 태풍이 몰아치는 파도와 정면에서 충돌했다. 대형선도 가라앉힐 파도는 모비딕의 몸을 반도 삼키지 못했다.
“모두 반격 준비! 저 섬에 도달하기 전까지 절대로 녀석에게 따라잡혀서는 안 된다!”
박철오의 외침에 따라 각 배의 함미에서 대기하던 컬렉터들이 움직였다.
“천자총통! 발사!”
미리 대기하고 있던 협회 소속 컬렉터들이 천자총통을 불을 뿜었다.
투콰앙!
생긴 것은 옛 대포의 포신에서 눈부신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해수면 위로 드러난 모비딕의 등을 강하게 후려쳤다.
새빨간 불꽃이 폭죽처럼 터졌다.
우워어어어어──!!!
모비딕이 고통스러운지 비명을 내질렀다. 거대 환상체 전용 화포라 그런지, 위력이 남달랐다. 폭풍우 속에서도 주홍빛 불길이 강하게 일어나며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배마다 한 정씩, 총 3발의 화포는 모비딕에게 타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놈이 가라앉습니다!”
“서, 설마 죽은 건가?!”
천자총통의 위력이 너무 강해서 선원들이 자기도 모르게 그런 희망을 품었다. 조금 전까지 죽어라 쫓아오던 모비딕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일부 선원들은 안도감을 품었다.
어느덧 섬과의 거리가 상당히 가까워졌고, 해류가 점차 불안정해졌다.
그 순간이었다.
“……이런!”
에이허브는 자신의 코를 강렬하게 뚫고 올라오는 악취를 바로 밑에서 느꼈다. 그가 뭐라고 외치며 반응하기도 전, 녀석이 다시 나타났다.
콰지직!
해수면 깊게 잠수했던 모비딕이 위로 치솟아 오르며 3호선을 들이받았다.
모두의 경악 어린 시선이 3호선이 있던 자리를 향했다. 조금 전까지 화포를 쏘던 커다란 배가 순식간에 모래 조각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까지 전부다.
흩어지는 파편과 물보라, 그 중심에 이글거리는 눈빛을 한 모비딕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 이런 미친.”
경험이 많은 박철오도 그 모습을 보며 두려움에 차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피해 상황은 보고할 필요도 없었다. 3호선에 있던 사람들 전원 전멸이었다.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면 일부러 2호선과 3호선에는 선원과 컬렉터들의 배치를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희생이 뼈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혜림 씨! 지아 씨! 우리가 시간을 법니다!”
“네!”
“알겠다!”
여기서 따라잡히면, 죽도 밥도 안 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모비딕을 저지해야 했다.
조금 전의 일격으로 모비딕은 다시 해수면의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천자총통을 재차 쏘려고 했지만, 녀석은 영리하게도 파도의 너울 속에 슬쩍 몸을 숨기며 타이밍을 어긋나게 했다.
“쏘, 쏠 수가 없습니다!”
“제길, 고래 주제에 머리를 썼군!”
함미에서 선원들과 컬렉터들이 당황해하는 것이 보였다. 천자총통은 위력이 뛰어났지만, 한 발 쏘는 데만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모비딕은 그 점을 노렸다.
컬렉터들은 이를 악물고 자신의 힘을 끌어 올렸다.
“모두 비키세요!”
강혜림이 그렇게 외치며 칼끝에 번개를 담아 모비딕을 향해 쐈다. 벽력은 그대로 모비딕의 등을 가격하더니, 이내 등 표면을 타고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 강혜림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전과 다르게 공격이 잘 먹히지 않아요.”
작살이 박혀 있을 때는 작살이 피뢰침 역할을 해 줬지만, 폭풍우 치는 지금은 그것을 전혀 바랄 수가 없었다. 권지아도 손바닥에서 힘을 방출하는 원거리 공격을 취했지만, 별다른 타격을 줄 수 없었다.
그 순간, 배가 크게 흔들리더니 아래로 훅 떨어졌다.
“유, 유현 씨 무슨 일이죠?!”
“소용돌이 지대에 돌입한 겁니다!”
비바람 속에서 유현이 그렇게 외쳤다. 동시에 뒤에서 쫓아오던 모비딕이 멈칫하는 것이 보였다. 녀석도 알아차렸다. 지금 유현 일행이 섬을 향해 도망치고 있다는 것을.
소용돌이 지대는 다른 곳보다 수심이 얕다. 모비딕은 본능적으로 섬에 거부감을 느꼈다.
하지만.
우오오오오오오───!!!
모비딕은 분노에 찬 외침을 토하더니, 이내 소용돌이 지대로 몸을 날렸다. 200m가 넘는 거대한 짐승이 물보라를 좌우로 일으키며 다가오는 모습은 꿈에 나올까 두려울 정도였다.
입으로 바다를 삼키고, 숨 쉴 때 바다를 토한다.
그것은 세상에서 살아 있는 것 중 가장 거대한 악몽이었다.
선원들이 사색이 되었다.
“선장님! 놈이 소용돌이 지대로 쫓아옵니다!”
“계획대로다!”
에이허브는 그렇게 외치더니, 이내 조타수의 키를 빼앗았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움직인다! 속도를 올리고 활대를 세워라! 소용돌이의 급살을 타고, 더 빠르게 움직일 거다!”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 정도의 폭우 속에서도, 에이허브의 쩌렁쩌렁한 외침은 가감 없이 들려왔다. 피쿼드호와 2호선이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일렬로 거대한 소용돌이의 틈새로 돌입했다.
선원들은 모두 난간을 꽉 쥐며 곧 있을 충돌에 대비했다.
콰앙!
거대한 2개의 소용돌이, 그 사이로 난 자그마한 하나의 길.
그곳으로 들어가는 순간, 피쿼드호가 크게 흔들렸다. 양쪽에서 때리는 격류는 배에 구멍이라도 낼 것처럼 거칠고 강력했다. 일부 선원들이 비명 지르며 난간에서 튕겨 나와 갑판 위를 굴렀다.
“으아아악! 살려 줘!”
“아악!”
“크하하하! 그래! 이래야지! 이래야 최후의 전투에 어울리지!”
에이허브 선장은 오히려 이 비명을 즐기며 광소를 터뜨렸다.
단순무식한 모습을 자주 보여 준 선장은 전력을 다해 키를 움직였다. 그는 해도만으로 대충 파악한 해류를 실시간으로 읽으며, 와류의 틈새 속에서 극한의 줄다리기를 했다.
오토바이로 외줄 타기를 하라 해도, 이보다는 쉬울 일이었다.
[성령들이 에이허브의 배를 모는 실력에 경악합니다.]
[성령들이 에이허브의 의외의 모습에 눈을 빛냅니다.]
오죽했으면 사상세계의 이야기로 구성된 존재임을 알면서도 성령들이 그에게 관심을 품었을 정도.
“됐다! 이대로만 가면 돼!”
피쿼드호를 쫓아 2호선도 곧바로 와류의 틈새로 돌입했다. 뒤에서 맹렬히 이쪽을 쫓는 모비딕은 그것을 보고 다급해졌는지, 잘 드러내지 않던 얼굴을 해수면 위로 꺼냈다.
유현은 그 모습을 보이며 얼굴을 굳혔다.
“에이허브 선장님! 모비딕이 뭔가 하려고 합니다!”
“뭐?”
바로, 그 순간.
─────!!!
모비딕이 입을 벌리더니, 포효했다.
거대한 향유고래의 입에서 터져 나온 소리는 물리력을 갖는 충격파로 화했다.
촤아악! 모비딕을 중심으로 쏟아지던 빗방울들이 전부 돔 형태로 밀려났다. 순식간에 확장된 소리의 파동은 와류의 틈새로 돌입한 2호선의 뒤를 강타했다.
“어, 어어?!”
“아, 안 돼!”
2호선이 충격파에 맞고 크게 휘청였다. 거리가 멀었음에도 모비딕의 외침에 배가 흔들린 것이다. 다행이 함미 부분이 약간 손상된 걸 제외하면 배는 멀쩡했다.
문제는 2호선이 균형을 잃었다는 점이다.
가까스로 와류의 사이에서 힘 씨름을 하던 2호선은 실 끊어진 인형처럼 왼쪽으로 기울더니,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우지끈! 빠드득!
아아아악!
“살려 줘!”
비바람 속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애처롭게 울려 퍼지다가 거대한 소용돌이의 아가리 속으로 사라졌다. 유현은 그 섬뜩함에 주먹을 꽉 쥐었다. 그것은 다른 생존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설마하니, 입으로 소리를 토해 내는 공격까지 있었을 줄이야.
‘저런 기술을 지금까지 숨기고 있었다고? 저 덩치에 저런 행동은 솔직히 반칙 아닌가?’
어느덧 2척의 배를 잃었다. 남은 것은 피쿼드호 한 척뿐!
모비딕은 여전히 만족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여기까지 들어온 이상 더는 돌이킬 수 없다. 놈도 끝장을 보려는지, 소용돌이의 틈새로 몸을 들이밀었다.
모비딕은 놀랍게도 힘으로 소용돌이를 거스르며 추격에 박차를 가했다.
멀어졌다고 생각했던 거리는 어느덧 100m 안팎으로 좁혀졌다.
유현이 다급하게 외쳤다.
“선장님!”
“거의 다 도착했다!”
피쿼드호가 소용돌이를 벗어나 마지막으로 속력을 냈다. 돛이 활짝 펼쳐지며 폭풍의 바람마저 이용해 암초 더미의 틈새로 돌입했다. 유일하게 안쪽으로 접근할 수 있는 좁은 길이었다.
카가가각!
배 측면이 협소한 공간의 암초와 충돌하며 긁혔다.
모비딕이 바짝 붙어서 쫓아왔다. 뒤쫓아 오던 모비딕은 좁은 암초를 맨몸으로 박살 냈다. 시간 벌이조차 되지 못했다
어느덧 남은 거리는 50m.
“거의 다 왔다!”
정면에 높게 튀어나온 바위들이 보였다. 본격적으로 난파선 무덤의 육상 지점에 돌입한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뒤에서 쫓아오던 모비딕이 최후의 힘을 쥐어짜며 피쿼드호를 향해 점프했다.
“이런 미친!”
“저 덩치로?!”
모비딕은 최후에 얕은 수심에서 과감하게 몸을 던지는 걸 선택했다.
피쿼드호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선원들과 컬렉터 모두가 아연한 기색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직.
오직 유현만이 다급하게 인벤토리에서 물건 하나를 꺼냈다.
푸른색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물의 자연석이었다.
“여기서 이걸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거대한 소용돌이 지대라면 몰라도, 이런 좁은 물길이라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으리라.
여기까지는 예상치 못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과감한 투자는 피할 수 없었다.
콰르르르!
물의 자연석에서 강렬한 빛이 흘러나오나 싶더니, 불안정하던 해류가 안정화되며 오히려 피쿼드호를 더욱 강하게 밀어 줬다. 순식간에 늘어난 가속에 포기하고 있던 선원들이 갑판 위를 굴렀다.
유현이 순간적으로 내린 판단은 아슬아슬했지만, 빛을 발했다. 피쿼드호는 모비딕에게 깔리기 직전, 가까스로 녀석의 사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드득!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는지, 마스트가 모비딕의 턱에 짓눌리며 부러졌다. 단순히 스쳤을 뿐인데도, 모비딕과 닿은 부분을 기점으로 배가 부서지는 것이 보였다.
함선을 파괴하는 미지의 힘. 그것이 발동된 것이었다.
“모두 꽉 잡아라!”
에이허브의 외침과 동시에.
콰아앙!
거대한 충격이 배를 뒤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