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151화
“허?”
누군가가 자기도 모르게 그런 소리를 내뱉었다.
[성령들이 당신이 대체 무슨 말을 한 건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대화를 유심히 경청하던 성령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비딕을 어떻게 사냥할지 계획을 짜야 하는 자리에서 유현은 싸움보다 도주를 외쳤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너무 당당하게 튀어나온 말이라 순간적으로 ‘그럽시다!’ 하고 외칠 뻔한 사람마저 있었다.
모두가 당혹스러운 상황 속에서 오직 두 사람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런 건가.”
에이허브 선장과 네모 함장.
오직 두 사람만이 유현의 의도를 알아차린 것이다.
네모 함장은 모비딕이 사라진 먼 바다를 보며 말했다.
“우리를 사냥하는 녀석의 성향을 이용해서 우리 쪽에서 먼저 유인을 하자는 소리로군.”
“바로 그겁니다, 네모 함장님.”
모비딕은 깊은 심연의 사냥꾼이다.
녀석은 자신이 정한 사냥감을 놓칠 생각이 절대로 없었다. 처음에는 의외의 저항에 피해를 입어서 물러났다지만, 녀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찾아올 것이다.
이쪽이 기를 쓰고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모비딕은 끝까지 쫓아오리라.
“하지만, 어디로 유인을 할 생각이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수심이 얕은 물입니다.”
모비딕은 덩치가 너무 커서 수심이 깊은 대양이 아닌 이상 함부로 움직이기 힘들다.
바다 위에서는 두려울 것이 없는 재앙의 악마지만, 그 몸을 가누기 힘든 얕은 물에서는 어떨까?
“말이 얕은 물이지. 그래도 수심이 몇 미터는 넘고, 뭐 그런 곳이겠지만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래도 육지와 가까운 곳이겠죠. 놈이 끝까지 따라올 수 있는 협곡이 가장 이상적이고요. 혹시, 이 근방에 가까운 섬이나 육지가 있습니까?”
유현이 확인 차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썩 긍정적이지 않았다.
“그럴 리가?”
“이곳은 망망대해라고. 다른 섬이나 육지가 있더라도, 가는 데만 몇 주는 걸릴 텐데.”
“그동안 저 괴물이 우릴 가만히 놔둘까?”
이곳은 대륙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였다. 가장 가까운 육지의 위치를 안다고 해서 거기까지 멀쩡하게 갈 거라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유현은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황하지도 않았다.
이 모든 상황에는 반드시 해답이 있기 마련이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의 참전으로 얻게 된 그의 스킬 [전장의 승리자]가 발동했으니까.
그 순간, 가만히 듣고 있던 네모 함장이 나섰다.
“하나 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네가 말한 적합한 장소가.”
“그게 정말인가요?”
“함장님, 설마?”
“그걸 말하는 건가?”
노틸러스호 선원들은 네모 말에 서로의 시선을 교환하며 난처함을 드러냈다. 반대편에서 터져 나온 반응에 다른 사람들이 궁금해하자, 네모 함장이 부관을 시켜 가져온 지도를 펼쳤다.
“여기 이곳. 지도에는 아직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이곳에 거대한 바위섬이 하나 있다.”
“어, 어어?”
“여기는?”
에이허브의 몇몇 선원들도 지도에 찍힌 장소를 알아봤다.
네모 함장의 손가락이 가리킨 지도에는 절대로 가지 말라는 해골이 그려져 있었다.
“난파선 무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두렵다는 듯 선원들은 이름조차 내뱉기를 꺼렸다.
여기서 전혀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는 것은 컬렉터들이었다. 유현은 네모 함장의 설명이 더 필요함을 느꼈다.
“난파선 무덤이 뭐죠? 이름만 들으면 배가 많이 침몰하는 곳인 거 같은데.”
“그 말 그대로다. 이곳은 말 그대로 바다를 떠다니는 배들의 무덤이지. 근방에 해류가 불규칙적이고, 거대한 소용돌이가 항상 몰아치는 암초 지대니까.”
“……이 미친 노땅이. 지금 거기로 가자고? 그 악마의 섬을?”
에이허브가 더는 못 들어주겠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소용돌이가 가득 치는 암초 지대로 도망치자는 것은 호랑이를 피해 늑대 소굴로 들어가자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특히나 배를 모는 바닷사람에게는 난파선 무덤은 모비딕과 매한가지로 두려운 곳이었다.
대양의 악마냐, 암초의 악마냐?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차라리 이곳에 남아서 그 빌어먹을 고래와 싸우는 게 더 낫겠어. 싸우지도 못하고 도망치다가 침몰만 하는 건 개죽음이지. 나는 사양이야.”
“뭘 모르고 하는 소리군. 누가 침몰한다고 했지?”
“이봐 노땅. 방금 자기가 한 말도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그곳은 난파선 무덤이야. 근방을 지나가는 배는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침몰한 금역이라고.”
“지금까지는 그랬지. 하지만 잘 모르는 게 있나 보군. 이곳이 뱃사람에게 위험한 것은, 그 섬에 악마가 살아서가 아닐세. 바로, 정보가 부족해서지.”
“뭐?”
“말로 듣는 것보다는 직접 보는 것이 훨씬 더 빠르겠지. 부관, 새로운 해도를 가져오게.”
“네!”
네모 함장의 명령이 곁에서 대기하던 건장한 선원이 곧바로 또 하나의 해도를 꺼내 펼쳤다.
해도의 내용물을 본 에이허브 선장의 눈썹이 하늘을 향해 치켜 올라갔다. 그것은 보는 눈이 있는 몇몇 선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저, 저건 난파선 무덤의 해도!”
“암초의 위치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해류 표시까지 완벽하게 돼 있다고?”
그 모습에 초짜 선원인 이스마엘은 왜 다들 저런 반응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작살잡이 친구인 퀴케그에게 물었다.
“퀴케그. 저 해도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이스마엘. 지금 그걸 진심으로 묻는 거야? 저건 그냥 대단한 게 아니야. 이 세상에서 억만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보물이라고!”
아직 꿈만 많고 실제로 아는 것이 적은 초짜 이스마엘은 당황하며 물었다.
“그, 그 정도야?”
“당연하지. 저 난파선 무덤은 선원들에게 있어서 지옥이나 마찬가지인 공포의 상징이야. 생존자가 없어서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 채 소문만 무성하던 곳이라고. 그런데 그런 곳의 해도를, 심지어 해류 표시까지 돼 있는 해도가 있다면 어떨 거 같아?”
퀴케그의 말을 엿들은 몇몇 사람들도 그제야 해도의 가치를 알아차렸다.
네모 함장은 퀴케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퀴케그의 옆에 서 있는 순박한 소년, 이스마엘을 보더니, 눈을 잠시 크게 떴다.
그것은 아주 순간이었고, 네모 함장은 다시 원래 표정으로 돌아왔지만. 유현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미개한 놈. 너라면 알겠지. 이 해도가 있으면, 이 섬은 두렵지 않다는 걸.”
“……허. 이거, 참. 재미있는 짓을 했군. 여태 누구도 탐험하지 못했던 곳의 해도가 있다라.”
“우린 그게 가능하니까.”
네모 함장은 노틸러스호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보통 배는 암초에 부딪히거나 당하기 십상이지만, 잠수함인 노틸러스호는 달랐다. 그들은 바다 안쪽을 돌아다니기에 암초의 존재를 알 수 있었고, 다른 배처럼 침몰당하지 않고 섬을 살피는 게 가능했다.
네모 함장은 잠수함이라는 이점을 이용해 난파선 무덤의 구조를 파악하고, 해당 해도를 완성한 것이다.
“이거, 참. 눈을 뜨고 있는데도, 꿈을 꾸는 기분이야.”
“그래서 어쩔 거지?”
“뭐, 이미 해도까지 나왔으면 더 말할 것도 없지. 세세한 것을 보아하니, 거짓말도 아닌 것 같고. 목표는 난파선 무덤으로 정해졌군.”
선원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가지 못해 소문만 무성했던 난파선 무덤을 향한다!
그것은 두려움과 더불어 미지의 세계를 향한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 중 대부분은 바다에 모든 것을 건 사나이들이다. 새로운 탐험을 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사기가 오르기 충분했다.
유현은 분위기가 변한 것을 느끼며 속으로 웃었다.
‘다행이야.’
시작도 전에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을까 고민했는데, 오히려 기대 이상으로 흐름이 좋았다.
‘그보다 난파선 무덤에 소용돌이라. 그렇다면 그게 해저 2만 리에 나오던 마엘스트롬(maelstrom)인가?’
마엘스트롬은 해저 2만 리에서도 나오지만, 실제로는 현실의 노르웨이해에서 발생하는 모스크스트라우멘(Moskstraumen)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를 뜻한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바다의 소용돌이이며, 대양의 구멍.
이곳에 휘말리면, 그 어떤 배도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
‘뭐가 어찌 됐든 모비딕을 유인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아주 다행인 일이야.’
중요한 건 그다음이었다.
“과연 녀석이 우리들의 뜻대로 순순히 따라올지, 그게 가장 큰 관건인가?”
유현의 중얼거림을 들은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듣고 보니 그랬다. 녀석이 단순무식한 짐승이었다면 그냥 유인만 하면 그만이지만, 모비딕은 달랐다.
그 교활한 백색 악마는 이쪽이 노골적으로 유인하려 든다면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챌 것이다.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고 있어? 당연히 녀석은 올 거다.”
그때 호언장담하며 나선 것은 에이허브였다.
“왜요?”
“그야 그럴 것이, 녀석은 어제부터 계속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거든.”
에이허브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이었다.
우우우우우우웅───!!!
바다의 먼 지평선 너머에서 그런 소리가 수면을 타고 배 아래를 잘게 흔들었다.
이것이 어디서, 누가 내는 소리인지 알아낸 선원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에이허브는 살짝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이를 드러내며 미소 지었다.
“녀석은 지금 안달이 나 있어. 어제부터 계속, 냄새가 날 듯 말 듯 한 거리를 유지한 채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게 그 증거다.”
“녀석은 지금 우리에게 덤비지 않는 겁니까?”
“눈치를 보고 있는 거겠지. 어제 의외로 반격을 강하게 맞아서 나름 경계심을 품는 모양이야. 하지만 그럼에도 우릴 포기하지 않는 것을 보면, 녀석도 나름대로 자존심이 상했을지도 모르지. 사냥감에게 도리어 당한 것이 여간 억울한 게 아니었나 보군.”
사냥감에게 당한 사냥꾼은 과연 어떤 심정일까?
그것도 백색의 악마, 바다의 재앙이라 불리는 모비딕이라면?
이 바다에 두려울 것이 없는 지고의 왕의 자존심이 과연 낮을까?
‘아주 수치스럽겠지.’
모비딕은 거리를 유지한 채 이쪽을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모비딕에게 지성이 있고, 생각이 있음을 고려하면 녀석은 분명 분노하고 있을 것이다.
감히,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건방진 사냥감을 반드시 죽이겠다는 살의.
그와 동시에 함부로 달려들면 자기도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경계심.
“그렇군요. 녀석이 오지 않을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 같습니다.”
“그렇지? 놈은 반드시 온다. 올 수밖에 없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으니까. 지금은 참고 있겠지만, 이쪽이 도망치려는 행동만 취해도 눈이 뒤집혀서 쫓아올 거다.”
그 괴물이 앞뒤 안 재고 이쪽을 쫓아온다고?
단순한 가정일 뿐이었음에도 모비딕을 떠올린 사람들은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육중한 몸에 스친 배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는 모두가 기억하는 바였으니까.
“그러면 대충 정해졌군요. 이 난파선 무덤으로 놈을 유인해서 쓰러뜨려야 합니다.”
“가는 길목은 해도에 정해진 대로만 하면 된다. 하지만 보통 어려운 게 아니지.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아주 약간의 실수만 있어도 배는 해류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될 거야.”
“핫! 이쪽을 너무 우습게 보는 거 같은데! 해도만 있다면 이딴 암초 지대 섬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고!”
작전은 성벽을 쌓듯 차근차근 이루어졌다. 중간마다 생기는 부족한 부분은 집단 지성의 힘으로 그 틈을 완벽하게 끼워 맞췄다.
“그렇다면 이걸로 작전은 완성인가? 뭐, 열심히 짠 거치고는 여전히 엉성하지만.”
“싸우면 ‘무조건’ 죽는다는 것을 이길 확률을 최대한 끌어 올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적이라 불러 마땅한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역시, 이후의 일이겠죠.”
인제 와서 작전의 효용성을 주장하려 해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
남은 것은 모든 일이 차근차근 계획대로 흘러가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작전은 정오가 지난 뒤다. 우리가 바로 도망치면 녀석이 경계할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모르는 척해야 해. 알겠지, 노땅?”
“멍청한 녀석. 그 사이에 놈이 다시 기습을 가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고 확신하나?”
“없을 거다. 녀석도 보통 신중해야지. 우리가 움직이지 않는 걸 보고, 놈도 일단 지켜보고만 있겠지. 확신해.”
“그렇다면 이걸로 정해졌군.”
작전명
작전을 시작하는 것은 태양이 가장 높게 뜬 정오가 막 지날 때다.
“각자 움직이기 전까지 모두 마음의 준비나 하고 있어라!”
에이허브는 그렇게 외치며 회의를 끝냈다. 선원들은 모두 각자 아는 사람끼리 뭉치며 앞으로 있을 일을 의논하거나, 혹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신이시여. 부디, 이 어린양을 구원하소서.”
“재수 없는 소리 마. 우린 살 거야. 반드시 살아서 떵떵거리며 지낼 거라고.”
누군가는 자그마한 십자가를 쥐고 신께 빌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절대 죽지 않겠다며 전의를 태우기도 했다.
그중에는 서로의 용기를 북돋아 주는 퀴케그와 이스마엘의 모습도 보였다.
유현은 그 모습을 보면서 일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본 광경이 떠올렸다.
이야기에 묶여 버린 존재들. 어떻게 보면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지만, 유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실존이란 무엇이지?’
저들이 피와 육신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니, 실존하지 않는 자들인가?
‘그렇다면 나는?’
유현은 텔러가 됐다. 텔러는 보통 생명체가 아니다. 그들 또한 얼핏 보면 육체를 지닌 것 같지만, 이것은 전부 이야기로 구성된 것들이었다.
‘이야기로 구성된 존재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이야기로 만들어진 생명체는 살아 있는 생명이라 볼 수 있는가?’
그것에 대한 의문은 이내 눈 녹듯이 사라진다.
유현은 자기 자신, 그리고 삶을 갈망하는 선원들의 모습을 통해 깨달았다.
저들도 전부 살아 있는 사람들이라고.
‘모두가 삶을 원해.’
여기서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남은 삶이 얼마나 화려하고 멋질지 아무도 모른다.
잘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쩌면 누군가는 지금보다 더한 끔찍한 인생을 구가할 수도 있다.
미래란 결국, 미지의 것이다. 앞으로 누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사람들은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죽음보다 더한 삶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면서 계속 걷는 거다.
그게 ‘살아 있는 인간’이니까.
“이보게.”
“아. 네모 함장님.”
바로 배로 돌아가야 할 네모 함장이 아직 떠나지 않고 유현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시죠?”
“작전이 시작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그랬네. 혹시 시간 되나?”
네모 함장은 노틸러스호를 눈짓하며 그렇게 말했다.
“내 함. 노틸러스에서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