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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50화 (150/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50화

-어떡하죠?

‘……어쩔 수 없죠. 기다려 달라고 하세요. 그쪽으로 갈 테니.’

강혜림과 연락을 끝낸 유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왜 그러세요……?”

“아뇨. 그쪽 때문에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다만, 일이 좀 귀찮게 돼서요.”

“아…….”

방상씨는 김준배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작게 탄성을 흘렸다. 그녀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난데없는 배반에 당혹스러워하는 중이었다.

머리로는 상황을 채 납득하지 못한 채 손도끼를 집어던진 것은 그녀가 나름 치열한 싸움의 능선을 넘어왔다는 증거였다.

“원래라면 저희끼리 처리해야 할 일이었는데, 사태가 조금 번지고 말았어요.”

“저도…… 같이 갈까요……?”

“뭐, 서영씨도 이미 이 모습을 보셨으니. 어쩔 수 없죠.”

“네?”

“예?”

깜짝 놀라 되묻는 방상씨를 보며 유현은 왜 그러냐고 물으려다가 뒤늦게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아. 그러고 보니, 이름을 밝히지 않았었지.’

괴선은 자신의 정체를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다. 보통 사람은 그녀가 여자인 것도 몰라야 했다. 유현은 책으로 그녀의 이름과 정체를 알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별명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고 만 것이었다.

“…….”

“…….”

둘의 사이에 기묘한 침묵이 맴돌았다.

괴선은 유현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가면을 쓰고 있어서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시선만큼은 제대로 느껴졌다.

-당신은 대체, 어떻게 제 이름을 알고 있는 거죠?

괴선의 눈빛은 그렇게 묻고 있었다.

유현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망설였다. 그가 타인의 정보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은 같은 동료들 사이에서도 극구 비밀로 한 사항이었다.

[성령들도 당신의 능력을 궁금해합니다.]

심지어 평소에 유현을 눈여겨본 시청령들까지 이때다 싶어서 궁금함을 드러냈다.

유현은 전생한 이후 처음으로 궁지에 제대로 몰렸다는 감각을 느꼈다.

‘나도 참 풀어졌군.’

답지 않게 사소한 부분에서 실수를 벌이고 말았다. 평화로운 세상에 평화로운 삶에 적응을 한 결과가 이거라니. 유현은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다.

우선은, 이 상황부터 타개해야 했다.

“음.”

유현이 뭐라고 말하려고 하자, 성령들과 괴선이 유현의 입에 잔뜩 집중했다.

“그냥요.”

“……네?”

[성령들이 당신의 대답에 어처구니없어 합니다.]

유현의 단순한 대답에 잔뜩 긴장하던 괴선도, 어떤 말이 나올지 기대하던 성령들이 맥이 빠지고 말았다.

“아뇨. 그게 그러니까, 딱 보면 그런 느낌 있잖아요. 아, 저 사람의 이름은 철수겠다. 아, 저 사람의 이름은 반드시 영희겠다. 뭐, 이런 거. 괴선 씨도 처음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어요. 아, 저 사람의 이름은 왠지 그럴 거다.”

“그 말을…… 믿을 거라 생각하셨나요……?”

“역시, 그렇죠?”

유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숨겨 왔던 패 하나를 꺼내기로 했다.

“뭐, 성령님들도 궁금해하시는 거 같으니까, 조금은 말해 주죠. 이건 제 특수 능력 중 하나입니다. 정확히는 제가 지니고 있는 이야기거든요.”

“지니고 있는…… 이야기……?”

[성령들이 어떤 이야기인지 궁금해합니다.]

“자세한 건 비밀입니다. 이것까지 밝히면 너무 밑천을 드러내는 거니까요. 그래도 딱 하나, 힌트를 주자면.”

유현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며 씨익 웃었다.

“아주 대단하신 분께 받은 선물이라고 해 두죠.”

“선물……?”

괴선 손서영은 대체 어떤 선물인지 궁금해했다. 성령들도 그 선물의 정체를 궁금해했지만, 그들은 모두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웃는 자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지금, 이 서재에서 선물을 해 준 가장 유력한 존재가 뿌듯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으니까.

사탄은 자신이 선물로 준 ‘라플라스의 악마 파편’을 유현이 제대로 흡수했음을 깨닫고, 기뻐하고 있었다.

성령들은 사탄이 유현에게 선물을 줬고, 그것이 무언가 정보를 얻어 내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만 유추할 수 있었다.

‘그 이상은 허락되지 않지.’

일부 성령들이 궁금함을 못 참고 날뛴다면 곤란해지겠지만, 유현은 거기서 사탄의 이름을 넌지시 꺼냈다.

이분이 준 이야기라 함부로 못 밝힌다. 양해해 달라.

당연히 성령들로서는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사탄이 준 거라면 그럴 수 있다고.

‘안 할 거면, 어쩔 건데?’

사탄은 대성군 판데모니움의 일곱 군주 중 하나다.

성령의 급으로 치면 최상급. 무려 1세대 성령이라, 그와 견줄 자는 어지간한 대성군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다.

어지간한 성령이 미치지 않고서야, 사탄의 뜻을 거스르거나 그 뒤를 캐려고 구는 일을 벌일 리가 없었다.

“그러니, 양해 바랍니다. 물론, 괴선 씨의 개인 정보를 멋대로 남들에게 퍼트리고 다닌다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정 걱정이 된다면 계약서를 작성해도 됩니다.”

“아뇨…… 괜찮아요. 대신…… 부엉이를 더 만지게 해 주세요…….”

“원하신다면야.”

가볍게 상황 정리를 끝낸 유현은 곧바로 강혜림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두운 밤. 배와 배의 간격이 가까이 잡힌 지금 다른 배로 넘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 유현…… 씨.”

강혜림은 유현을 반갑게 맞이하려다, 그 뒤에서 함께 따라오는 괴선을 보며 말끝을 흐렸다.

“혜림 씨. 기다렸죠?”

“아뇨. 그건 아닌데, 뒤에 그분은…….”

“이분은 괴선 방상씨입니다. 제가 싸우던 도중에 도움을 주셨거든요.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같이 왔죠.”

강혜림은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녀의 뒤에서 팔짱을 낀 채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지 눈으로 묻고 있는 에이허브였으니까.

“그래서.”

가만히 있던 사자가 으르렁거렸다.

“내 배에서 이게 대체, 무슨 수작질이지?”

“……아무래도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요.”

유현은 에이허브가 최대한 성을 내지 않도록 조심스레 이번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요약하자면, 자신들은 손님이지만. 모두 다 같은 곳에서 오지 않고 다른 곳에서 왔으며, 서로 이권 다툼을 벌이는 관계라 한 것이다.

“그래. 대충 그렇다 치지. 그런데 이 셋이 자기 목숨 던져 가며 배를 침몰시키려는 것은 전혀 이권과는 어울리지 않는데?”

“우리가 여기서 죽는다면 본토에서 기다리던 범인들의 조직이 기뻐하거든요.”

“오호라. 목숨을 던져 가면서 함께 죽자 이건가? 그야말로 충성심이 지극한 녀석들이군. 그런데 내 배에 수작질을 벌이려고 하다니, 보통 간이 큰 게 아니야.”

에이허브는 입으로는 웃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이번 일을 벌인 황혼의 장막 클랜이 눈앞에 있으면 맨손으로 찢어 죽이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엿보였다.

“선장님이 붙잡은 녀석은 어떻게 됐죠?”

“어떻게 됐을 거 같나?”

“……음. 묻지 않도록 하죠.”

유현은 에이허브의 등 너머에서 손짓으로 어떻게 했는지 알려 주는 강혜림을 슬쩍 보며 그렇게 말했다.

강혜림의 손동작은 마치, 사람의 목과 머리를 양쪽으로 붙잡은 뒤 병뚜껑을 따듯이 뽑아 버리는 모양이었다. 보이지 않는 시체는 바다에 버려졌으리라.

유현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그나마 다행이죠. 놈들이 무슨 짓을 벌이기 전에 미리 막아 내서.”

“어차피 도움도 되지 않는 세 놈 정도 사라진다고 해서 딱히 변하는 것도 없고 말이지. 뭐, 됐다. 이번 일은 결과적으로 잘 됐으니, 그냥 넘어가도록 하지. 지금 중요한 건 고작 이런 게 아니니까.”

내부 인원 때문에 배가 침몰할 뻔한 상황을 따위라고 넘겨도 되는 것은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 이쪽을 노리는 괴물을 생각하면 납득 못할 것도 아니었다.

때마침 저쪽에서도 일을 끝냈는지, 권지아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는 무거운 표정의 박철오가 함께였다.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군.”

“여기까지 와서 과도진압이니, 뭐니. 그런 말을 하지는 않으시겠죠?”

“그럴 리가.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최우선으로 다 죽였을 거네.”

“요는 그게 아니지.”

에이허브가 끼어들었다.

“그 빌어먹을 고래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닌가?”

“선장님이 그 말을 먼저 꺼낼 줄은 몰랐네요. 그보다 선장님은 예전에 본 적 있지 않았어요? 크기가 어느 정도 되는지, 미리 말씀이라도 해 주셨으면…….”

“아. 그건 나도 몰랐어.”

“네?”

“그 녀석. 예전에 봤을 때도 보통 고래보다 더 큰 건 알았는데, 지금은 그때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졌더군. 뭐, 보아하니, 지금이 최종적으로 성장한 모습 같기는 하지만. 그 크기는 나에게도 예상 밖이었어.”

“……그런가요. 그보다 녀석을 상대하기 위해 방법을 고안하자니,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네요.”

유현도 머리를 굴리려고 해 봤지만, 모비딕의 200m가 넘는 거체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갈피가 쉽게 잡히지 않았다.

이런 망망대해에서 녀석을 상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곳은 놈의 앞마당이나 다름없었다.

심지어 단순무식한 짐승이 아니라는 점도 컸다. 녀석은 위험하면 도망칠 줄 아는 교활한 환상체였다.

‘노틸러스호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승기가 그나마 잡힐 법했는데, 이 정도라면 천자총통도 제대로 먹히지 않을 수도 있어.’

여러모로 상당히 난제인 상황.

유현은 이 상황을 타개할 활로가, 아직 자신이 밝히지 못한 나머지 이야기의 파편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은 모비딕과 해저 2만 리가 섞인 사상세계. 거기에 더불어 1개의 이야기가 더 있다. 그것을 찾아내야 해.’

이건 단순히 그의 목숨만 달린 일이 아니었다. 강혜림과 권지아를 포함한 나머지 사람들의 목숨도 달려 있었다.

전생하고 나서 그가 여기까지 오며 이룩해 온 모든 것들.

이번 사상세계의 클리어 성공 관건이, 그의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는 위기였다.

‘역으로 성공할 경우, 지금까지 쌓아 온 것보다도 훨씬 더 든든한 탑을 유지할 수 있다.’

퇴로 따위는 없었다. 이 거대한 해양 세계 자체가 마치, 자신을 잡아먹기 위해 존재하는 괴물의 아가리처럼 느껴졌다.

그 위기감, 그 궁지에 몰린 상황.

‘재미있어.’

그것이 전생에 자신을 10년 동안 몰아세운 지옥과도 같은 종말과 같음을 인지하는 순간, 유현은 여태까지 억눌렀던 자신의 감각이 날카롭게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절망이란, 타인을 망가뜨리기 위해서 존재하는 운명의 시련.

그것을 겪고 견디며, 뛰어넘는 순간.

사람은 더욱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아, 참. 박철오 씨.”

유현은 자리를 뜨기 전, 박철오에게 무언가 말을 건넸다.

* * *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회의가 시작됐다.

선원들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언제 어디서 모비딕이 다시 기습을 가할지 몰라, 뜬눈으로 잠을 설쳤다.

“제길. 피곤해 죽겠어.”

“이게 뭐냐고, 젠장. 그 괴물 고래 자식, 대체 언제 올지 모르잖아.”

피곤한 것은 이스마엘도 마찬가지였다.

“후우. 퀴케그. 우리가 과연, 그 괴물을 잡을 수 있을까?”

“그건 모르는 일이야. 이스마엘.”

“하지만, 봤잖아? 그 거대한 고래. 작살을 맞아도 꿈쩍도 하지 않은 그 튼튼함. 나는 아직도 어제의 일이 꿈처럼 느껴져.”

이스마엘은 눈을 감기만 해도 배를 가루로 만들어 버린 모비딕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라 몸을 떨었다. 그와 같은 방을 쓰는 작살잡이 퀴케그도 아닌 척했지만, 비슷한 심정이었다.

자신이 날린 작살은 꿈쩍도 하지 않은 그 모습.

일반적인 고래를 일격에 죽이는 에이허브 선장의 작살에도 별 타격이 없는 괴물을 상대로 그가 뭘 할 수 있을까?

“다들 조용! 회의 시간이다!”

지난날의 심각성을 인지한 선원들은 피쿼드호에 모여서 회의에 참석했다. 네모 함장은 이전처럼 부하들을 이끌고 왔다. 컬렉터들도 모두 빠지지 않고 모였다.

30여 명의 숫자는 어느덧 줄어서 20명밖에 남지 않았다. 하루 만에 전력의 3분의 1이 날아간 것이다.

“자, 그러면 시작해 볼까요?”

그 회의장의 중심에서 유현이 모두의 귓가에 들리게끔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의 주제는, 모비딕을 어떻게 사냥하느냐입니다.”

웅성웅성.

“그걸 잡을 수는 있나?”

“지금 당장이라도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니야?”

“아서라. 녀석을 보면 알잖아. 우리가 도망치면 녀석은 분명 쫓아올 거야. 이미, 우린 놈의 사냥감이 되고 만 거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싸워서 이길 수 있을지는…….”

“방금, 거기.”

유현은 자기들끼리 조용히 중얼거리는 선원 중 하나를 가리켰다.

“네, 네? 저요?”

“네. 당신. 방금 뭐라고 그랬죠?”

“아, 아니 그게…….”

“괜찮습니다. 질책하려고 부른 게 아니니까요. 그냥 방금 했던 말을 그대로 하면 됩니다.”

“그, 그러니까…… 그 모비딕이라는 괴물은 저희가 도망치면, 분명 쫓아올 거라고…….”

“바로 그겁니다.”

유현은 단서를 찾았다는 듯 씨익 웃었다.

그리고 웃는 얼굴로 모두의 앞에서 폭탄 발언을 했다.

“도망치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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