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149화
‘쯧. 지금 행동하는 건가?’
유현은 박철오에게 저들이 어느 순간에 행동하게 될지 전했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모비딕이 생각보다 빠르게 들이닥쳤고, 그 이상으로 빠르게 퇴각해 모두가 정신이 팔린 지금.
황혼의 장막 클랜에서 보낸 첩자가 활동하기 가작 최적의 시간이었다.
‘셋이 다 함께 움직이는 건가? 아니면, 따로?’
유현은 주변을 살폈다.
노틸러스호를 제외한 나머지 포경선은 3척. 그리고 남은 숫자도 3명.
게다가 녀석들의 실력을 생각하면 배 한 척에 셋이서 뭉쳐 다닐 거라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한 척당 한 명씩이라…….’
유현은 가까이에 선 강혜림과 권지아를 살폈다.
‘숫자는 마침 딱이군.’
유현은 권지아와 강혜림을 불러 모아 입을 열었다.
* * *
뚜벅뚜벅.
햇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선실 내를 한 남자가 걷고 있었다.
턱수염을 길게 기른 중년 남성이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주변을 경계하며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향하는 곳은 배의 저 아래, 용골이 있는 곳이었다.
우뚝.
남성은 계속 걷다가 자리에 멈춰 섰다.
그의 앞에 누군가가 벽에 등을 기댄 채 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어딜 그렇게 가시는 거죠?”
단정하고 깔끔한 정장을 입은 텔러, 강유현은 그렇게 물었다.
“길을 잃었다.”
“길을 잃은 것치고는 꽤나 깊게, 심지어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들어오시는 것 같은데.”
“…….”
중년의 남자, 김준배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고개를 슬쩍 돌려 자신이 온 길을 살폈다. 뒤에서 누군가 쫓아오는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주위에도 마찬가지였다.
최대한 확장한 그의 기감은 이 주위에 오직 그와 유현만 있다고 말해 줬다.
김준배의 눈빛이 순식간에 변했다.
피식.
유현은 그 모습을 보며 벽에서 등을 떼고 검을 쥐었다.
“피차, 말은 필요 없겠네.”
김준배는 황혼의 장막에서 보낸 컬렉터지만, 그가 실제로 하는 일은 일반적인 컬렉터와 달랐다.
요인 암살과 테러. 황혼의 장막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몰래 키우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김한중과는 조금 다른 녀석이지.’
김한중은 일부러 유명한 컬렉터로 만들기 위해 키웠다면, 김준배를 포함한 나머지 둘은 조직에서 더러운 일을 시키기 위해 키운 녀석들이다.
당연히 김한중과 다르게 김준배는 자의식이나 목표 같은 것이 없었다. 세뇌에 가까운 교육을 받아 온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받은 명령을 무슨 일이 있어도 수행하는 것이었다.
설사, 그것이 자살이나 다름없는 임무라도 해도.
‘한울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지.’
뇌라도 건드린 것마냥 감정이 절개되어 버린 인간. 과연, 저것을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유현의 입장에서 김준배는 단지 숨 쉬고 살아 있는 인형이나 다름없었다.
“천체주식회사 텔러 강유현.”
스륵.
김준배가 허리춤에서 무기를 뽑아 들었다. 그것은 그의 험악한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단검이었다.
“어떻게 우리의 목적을 알아차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늦었다.”
“과연, 늦었을까?”
“이미 요원 둘은 다른 배에 침투해 배의 용골을 부수고 있을 거다. 이번 사상세계 임무는 실패한다. 너희는 배와 함께 침몰해, 그 하얀 고래의 먹잇감이 될 거다.”
당연한 일을 있는 그대로 나지막이 읊듯이 말하는 김준배.
유현은 그 모습을 보며 비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래. 나머지 둘이 있었지. 키 작은 꼬맹이와 덩치가 큰 흑인 혼혈 아저씨 말이야. 그런데 댁도 뭔가 잊고 있지 않아? 너희가 셋인 것처럼, 우리도 셋이라고?”
“…….”
김준배도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은 눈치였다. 그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리며 처음으로 감정의 동요라는 것을 내비쳤다. 김준배의 표정은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유현은 그 자그마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뭐가 어찌 됐든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팀원을 믿는 건가?”
“오히려 운이 없었군. 너는 여기서 나와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스스로 화를 자초했다고 생각해라.”
김준배는 이길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들은 아주 오랫동안 특수한 교육과 세뇌를 받아오며, 펜타그램 부서의 지원을 받으며 육신에 이야기를 담아 왔다.
그들은 환상체와 싸우기 위한 훈련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 그것도 컬렉터를 죽이기 위해서 살아왔다.
단지, 힘을 얻고 그저 그런대로 사는 컬렉터들과 다르다.
뚜렷한 목적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피나는 훈련을 거듭한 것이 바로 그들이었다.
“자기 능력에 자신이 있는 건 잘 알겠는데.”
유현은 웃으며 백련을 뽑아 자세를 취했다.
“김한중이었나? 그 인간이 내게 어떤 꼴을 당했는지, 듣지 못했나 봐?”
“김한중이 네놈에게 졌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다. 하지만 녀석은 미숙함이 남아 있는, 일종의 얼굴마담으로 뽑힌 녀석이지. 우리와 비교 할 수 없다.”
“그래? 그러면 김한중과 너를 비교하면, 누가 더 강하지?”
“…….”
김준배는 대답하지 않고 양손에 단검을 쥐고 전투 자세를 취했다. 유현도 딱히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니어서 아쉬워하지 않았다.
“덤벼. 살인 기계 아저씨. 선공은 양보하지.”
“…….”
김준배가 움직였다. 스슥. 그의 몸이 흐릿해진다 싶더니, 좁은 복도를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마룻바닥을 달리다가 갑자기 벽을 수직으로 탔고, 그대로 천장을 디뎠다. 공간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좁은 공간에서 불규칙적으로 튀는 공 같았다.
처음 상대하는 입장에서 당혹스러운 공세였다.
하지만.
“꽤 재밌는 재주를 부리네.”
종말에서 10년을 살아온 유현에게는 그저 그런 재롱에 지나지 않았다.
천장에 붙어서 이쪽의 머리를 노리는 단검을 검 형태의 백련으로 쳐 낸 유현은, 곧바로 백련을 창의 형태로 바꾸어 김준배의 어깨를 찔렀다.
채챙!
김준배는 어깨를 틀며 단검으로 유현의 창을 쳐 냈다. 그는 유현을 지나치듯 거리를 벌리며 천장에서 떨어져 지면에 섰다.
“이 좁은 곳에서 창이라고? 날 우습게 보는군.”
“그거야 보면 알지.”
유현은 그렇게 말하며 창을 찔러 넣었다. 김준배는 자세를 취했다. 저 무기는 들어서 알고 있다. 형체가 자유자재로 변하는 무기라 했다. 그렇다 해도 창의 사거리는 그에게 닿지 않을 정도였지만.
후욱!
김준배는 몸을 숙이며 자신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섬뜩한 감각에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거리가 모자랐는데 닿았다. 무기의 모습을 바꾸는 것도 모자라, 그 크기와 길이까지 자유롭게 늘인다는 건가?’
이렇게 형태가 자유자재로 변하는 무기는 얼핏 보면 까다로워 보이지만, 그 위력은 사용자의 숙련도에 따라 정해져 있다. 싸움의 초보가 백련을 쥐면 그 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녀석은 다르다.’
유현은 어떤 무기의 형태도 자유롭게 사용했다. 정보에 의하면 그는 텔러라고 했다. 그것도 텔러 중에서 최초로 싸우는 텔러.
이야기는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유현의 능력은 어지간한 컬렉터보다도 훨씬 더 뛰어났다.
‘실력만 놓고 보면, 중견급 컬렉터 중에서도 단연코 탑인가?’
하지만, 이 싸움은 실력만으로 놓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김준배는 자신의 힘을 일으켰다. 그의 몸을 타고 새하얀 활자가 흐르며 단검에 모였다.
‘기교로 승부가 안 된다면 힘으로 찍어 누른다.’
김준배는 저 기묘한 무기와 함께 유현을 베어 내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재차 달려들었다.
그의 두 다리에서 이야기의 힘이 모이며 각력을 순간이지만 배로 증폭시켰다.
투웅!
김준배의 몸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의 발걸음은 얼핏 가벼운 것 같으면서도 바람처럼 빨랐다. 유현은 그 모습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김준배는 그것이 자신의 예상 밖의 움직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리숙하긴. 이미 늦었다.’
그렇게 유현의 지척까지 접근해 단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김준배는 유현이 보고 놀란 것이 자신이 아님을 깨달았다.
유현은 그의 등 뒤를 보고 있었다.
‘뒤라고?’
김준배는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어?’
고개를 돌린 직후 그가 본 것은, 자신의 미간을 향해 날아오는 손도끼였다.
퍼억!
“…….”
김준배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손도끼가 박힌 미간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유현은 쓰러진 김준배를 슬쩍 보다가 고개를 들어 도끼가 날아온 방향을 바라봤다.
“이거 좀 놀라운데요?”
어두운 선내의 복도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4개의 눈동자를 지닌 가면을 쓴 여인이었다.
괴선 방상씨.
이전부터 유현에게 묘한 시선을 보내던 컬렉터가 갑자기 등장한 것이다.
“안 도와주셔도 됐는데.”
“……위험해…… 보여서요.”
방상씨는 그렇게 말했다. 사람의 얼굴을 도끼를 이용해 반으로 쪼갠 것치고는 매우 평온한, 어떻게 보면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한 말투였다.
유현은 흥이 식었다는 듯 백련을 허리춤에 찼다.
“갑자기 이렇게 찾아오신 걸 보면, 제게 무슨 볼일이 있으신 거 맞죠?”
“그게…….”
“이전처럼 얼버무리거나 하지 마시고, 똑바로 말해 줬으면 좋겠는데요.”
유현은 방상씨가 적이 아님을 인지했다. 처음에 그녀의 행동에 의심을 하였지만, 조금 전 그를 도와준 것도 그렇고 저 기묘한 행동거지도 그렇고.
‘내게 뭘 바라는 건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방상씨는 김준배의 시체로 다가와 그의 얼굴에 박힌 손도끼를 뽑았다.
그 모습을 본 일부 성령들이 재밌다며 손뼉을 쳤다.
[일부 성령들이 방상씨의 존재에 호기심을 품습니다.]
[일부 성령들이 방상씨의 시화를 궁금해합니다.]
‘허, 참.’
역으로 이쪽의 손님을 빼앗길 판이었다.
‘하긴. 괜히 컬렉터들이 위로 올라갈수록 독특한 콘셉트를 잡는 게 아니지.’
중견급은 덜하지만, 상급 컬렉터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엇나간 인간들밖에 없다. 자신의 특성의 힘이 너무 강해 특성에 먹혔거나, 혹은 성령들과 시민들의 관심을 끌려고 일부러 콘셉트질을 하거나.
유현이 생각하기로는, 보통 일부러 노리고 콘셉트질을 한다기보다는 자신이 보여 주는 이야기에 본인이 먹힌 쪽에 가까웠다.
눈앞의 방상씨도 마찬가지다.
“어디 다치신 데는…… 없죠……?”
“보다시피, 위험한 순간 누가 도와줬으니까요.”
“다행……이다…….”
“그래서, 음. 방상씨라 불러야 할까요? 제게는 무슨 목적이죠?”
“그게…… 그러니까…….”
방상씨는 망설이면서 유현의 한쪽 어깨를 바라봤다.
‘어깨?’
유현의 어깨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원래라면 백효가 앉아 있어야 할 자리지만, 지금 백효는 바깥의 순찰을 나가 있으니까.
‘잠깐만. 백효라고?’
유현은 그제야 방상씨의 시선이 아까부터 어디를 향했는지 떠올렸다.
“혹시, 저희 백효한테 관심 있습니까?”
“아, 걔 이름이…… 백효에요……?”
“네. 새하얀 부엉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지었어요.”
“좋은…… 이름이다…….”
유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대충 그녀의 목적이 뭔지 보였다.
“혹시…… 부엉이 좋아하세요?”
“귀여운 건, 다 좋아해요.”
처음으로 방상씨는 말을 제대로 늘이지 않고 똑바로 말했다. 가면 때문에 얼굴이 가려져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조금 흥분한 것 같았다.
그녀가 유현에게 접근하려고 했던 것도, 유현의 어깨에 자주 올라타 있는 새하얀 솜뭉치 같은 새끼 부엉이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거, 참. 사람 뚝배기를 도끼로 갈라 버리는 사람이, 이런 부분에서 일반인처럼 굴다니.’
컬렉터들이 중견급, 그 이상부터 종잡을 수 없다는 건 바로, 이런 데서 나온 말이었다.
김준배가 악인이 맞고, 이런 상황에서 배를 침몰시키려 했으니. 당연히 그를 막으려면 어쩔 수 없이 무력행사에 들어가야 했다.
유현은 그 이유를 알기에 당연히 싸운 거였다. 하지만 방상씨는 달랐다. 애초에 그녀에게 유현이 무언가 알려 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녀는 바로 김준배를 죽여 버렸다.
‘아니. 됐다. 차라리 잘 됐어.’
적어도 전생에서 검후 강혜림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여자다. 그녀가 자신에게 적대적이지 않고, 심지어 호의적인 것은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일단,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부터 전하죠.”
“천만에요…….”
“음. 그래서 우리 백효를 보고 싶다고요?”
“네…….”
그녀는 쑥스러운지, 고개를 살짝 돌리며 그렇게 말했다.
“가능하면…… 쓰다듬어 봐도…… 될까요?”
“어, 음. 안될 건 없는데, 백효가 무서워할지도 모릅니다.”
“네……?”
“아뇨. 그 가면, 방상씨 탈이잖아요. 그거 부엉이가 가장 무서워하는 거라고요.”
“……!”
자신이 쓰고 있는 탈의 기원도 몰랐다는 듯 놀라는 방상씨를 보며 유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보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다른 배에서 벌어지는 테러가 어떻게 됐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지아 씨. 혜림 씨. 들립니까? 그쪽 상황은 어떻게 됐죠?’
-이쪽은 권지아. 그 흑인 혼혈이라면 내가 처리했다. 다짜고짜 죽이려고 덤비기에, 그대로 쓰러뜨렸지.
‘혜림 씨는요?’
-아, 네. 이쪽도 처리했어요.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요.
‘문제요?’
-아, 아뇨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고요.
강혜림은 살짝 애매한지, 망설임 끝에 말했다.
-에이허브 선장님이, 저 대신 나서서 죽여 버렸어요.
전혀 예상 밖의 이름이 나오자, 유현이 의아해했다.
‘선장님 이름이 왜 여기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