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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48화 (148/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48화

세상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치솟아 오른 물보라가 중력의 영향을 받아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후드득.

타오르는 노을빛을 머금은 소금 비가 세차게 내렸다.

투화아아악!!!

기울어진 모비딕의 몸이 옆으로 쓰러지며 바다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거대한 덩치가 해수면을 때리자, 재차 물보라가 크게 일어나며 바다 한가운데에서 거대한 파도를 만들었다.

“꽉 잡아!”

“으아악!”

순식간에 배의 측면을 강타한 거대한 너울에 선원들이 갑판 위를 굴렀다.

모비딕이 사라진 자리에는 조금 전까지 5호 포경선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잘게 부서진 파편만 남았다.

간혹 보이는 파편의 사이로 사람의 사체가 바다 위에 떠 있었다. 그마저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박살이 나 있었다. 사람이 아니라 관절 인형이 부서진 전위적인 모습이었다.

컬렉터도 선원도.

생존자는 없었다.

“다들 작살 챙겨!”

“무기 꺼내!”

“각자 위치 사수!”

선원들은 겁을 먹은 것치고는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그것은 그들이 나름 바다 위의 베테랑인 것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목숨의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망설이는 순간, 전부 죽는다.

살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하는 강렬한 생존 본능이 그들의 몸을 강제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뭐야, 저거…….”

정작 모비딕의 모습을 눈으로 목도한 컬렉터들은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 진짜 모습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보인 것은 물기둥의 사이로 비친 녀석의 그림자가 전부다. 그 그림자의 크기로 덩치를 짐작했을 뿐인데도, 거대함에 압도되고 만 것이다.

“뭐가 저렇게 커.”

유현도 모비딕의 덩치를 보고 아연하게 중얼거렸다.

눈으로 질식당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리라.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하다고 알려진 흰수염 고래도 가장 큰 개체가 33m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환상체니까, 그보다 더 크다는 것을 전제하에 생각하기는 했다. 그래도 커 봤자 60m가 최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방금 그 크기는…….’

배의 길이가 27m가 넘는 포경선 하나를 단 일격에 폭발시키듯 박살 냈다. 그리고 치솟아 오른 물기둥의 높이와 얼핏 비춘 녀석의 모습까지.

추측 크기, 약 230m.

일반적인 향유고래가 12m까지 자란다는 걸 생각하면, 녀석은 무려 그 20배나 되는 덩치를 지닌 것이다.

‘저걸 잡으라고?’

말이 20배지, 그건 단순 계산이고 질량과 부피는 그보다 훨씬 크다.

단순히 과학적으로 접근할 필요도 없었다.

녀석은 바다의 악마를 형상화한 거대한 괴물 이야기의 집합체다. 그 자체만으로 모비딕이라는 환상체는 더 없을 최강 최악의 해양 생물이었다.

“다들 뭣들 해! 가만히 서서 죽을 생각이냐!!!”

그런 유현의 정신을 차리게 만든 것은 에이허브 선장의 포효였다.

유현은 곧바로 백련을 꺼내 쥐었다. 권지아와 강혜림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싸움은 피할 수 없었다.

“다들 긴장하세요!”

유현은 백효와 시야를 공유하며 모비딕의 위치를 훑었다. 녀석은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바다 저 아래에서 수직으로 공격을 가해 왔다. 그렇다면 또 그런 방법을 취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그 전조를 알 수 있는 방법이라면……!’

유현의 시선이 에이허브에게 집중됐다.

“선장님. 냄새의 방향이 느껴집니까?”

“아래다. 녀석은 지금 저 아래로 향하고 있어. 놈의 성격상 도망치는 건 아닐 것 같고, 분명 재차 심해에서 공격을 가할 생각이겠지.”

“놈의 다음 타겟은 분명, 남은 일반 3척의 배일 겁니다.”

“왜 그렇게 확신하지?”

“녀석은 머리를 쓸 줄 아는 교활한 사냥꾼입니다. 갑작스러운 기습을 취하는 것도 그렇고, 그중에서 가장 약한 사냥감부터 노리는 것도 그렇죠.”

“가장 약한 사냥감이라. 그래, 그런 거로군.”

에이허브는 유현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며 작살을 쥐고 난간에 섰다. 유현은 박철오에게 다가갔다.

“팀장님. 다른 배에 있는 컬렉터들을 전부 이곳으로 모아야 합니다. 모비딕은 지금 작은 배부터 차근차근 없앨 생각이에요.”

“……그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힘드네. 조금 전 너울로 배와 배 사이의 거리가 상당히 떨어졌어. 남겨진 사람들을 부른다 해도 넘어올 수가 없다네.”

심지어 5문의 천자총통 중 하나가 순식간에 소실되고 말았다. 기껏 가져온 천망은 모비딕의 덩치를 보면 아무런 쓸모도 없어 보였다.

기습을 당한 상황에, 환경도 바다 위라서 움직임이 크게 제한된다. 그야말로 상황은 점입가경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

“놈이다! 놈이 온다!”

“조타수는 키를 돌려!”

심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울음소리에 선원들이 이를 악물었다. 선원들도 모비딕의 최우선 목표가 작은 배라는 걸 알았다. 조타수는 녀석이 자신의 배를 노린다고 생각하며 최대한 키를 옆으로 꺾었다.

“어디냐!”

이 상황 속에서 에이허브는 재밌다는 듯 웃었다. 유현의 시선의 한쪽, 이번에는 가장 우측의 포경선의 밑에서 검은 그림자가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이번에는 최 우측! 4호선입니다!”

“4호선이라고?”

에이허브와 컬렉터들은 곧바로 갑판 위를 달려 반대쪽에 섰다. 4호선 포경선은 다음이 자신의 차례임을 짐작했는지, 위에서 선원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배가 있는 힘껏 옆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모비딕의 공격이 약간이지만, 더 빨랐다.

투콰앙!!

거대한 물보라가 재차 터졌다. 폭발음에 공기가 잘게 진동하고 귀가 먹먹해졌다. 이번에도 조금 전처럼 거대한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조금 전 그림자만 보여 줬던 것과 다르게, 이번에는 모비딕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머리에 온갖 흉터가 가득한 새하얀 향유고래.

녀석은 매체에서 묘사된 것과 매우 흡사하게 생겼다.

‘덩치가 230m가 넘는다는 것만 빼면 말이지!’

유현은 모비딕의 거체를 두 눈으로 담기 위해 노려봤다. 순간이지만, 녀석과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모비딕은 조금 전처럼 수직으로 높게 치솟아 오르더니, 서서히 옆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지금이다! 모두 공격해!”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에이허브가 작살을 투척하며 외쳤다.

퍼퍼퍼펑!

수십 문의 포경포에서 작살이 날아가 모비딕의 몸에 꽂혔다. 선원들은 그 모습에 기뻐하려 했다가 이내 녀석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걸 보고 안색을 굳혔다.

모비딕은 덩치에 걸맞게 가죽도 매우 두꺼웠다. 그 탓에 작살이 박혀도 녀석의 가죽을 제대로 뚫지 못했다.

고래를 사냥하기 위한 특제 물건인데도, 모비딕을 상대로는 이쑤시개보다 훨씬 더 작아 보였다.

“서, 선장님!”

“멍청한 놈들! 눈 주변을 노려! 그쪽의 가죽이 얇고 약하다!”

에이허브가 그렇게 외쳤지만, 다시 공격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작살을 다시 준비하고 재차 포경포에 장착하는 사이 모비딕은 바닷속으로 사라질 테니까.

천자총통을 쏘는 것도 무리가 있었다. 위력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강하지만, 천자총통은 쏘기 위해서는 준비가 많이 필요하다.

이런 다급한 상황에서 사용할 물건이 아니었다.

그 순간이었다.

“다들 비켜요!”

강혜림이 크게 소리치며 난간을 밟고 허공을 뛰었다.

그녀는 곧바로 피쿼드호의 우측에 가까이 붙은 2호선을 밟고 갑판 위를 달려 검을 뽑았다.

파지지직!

그녀가 뽑은 살라딘 장검의 끝으로 푸른 전류가 모였다. 강혜림은 곧바로 전류를 머금은 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천뢰검(天雷劍)]

꽈르릉!

번개가 치는 소음과 함께 푸른 전류가 허공을 가르며 모비딕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번개는 나무뿌리처럼 끝부터 갈라지며 모비딕의 표면이 아닌 작살의 끝으로 빨려 들어갔다. 모두가 눈을 부릅뜨며 그 광경을 바라봤다.

─────!!

작살에 맞아도 아무렇지 않던 모비딕이 처음으로 제대로 된 반응을 보였다. 녀석은 눈을 크게 뜨더니, 자신의 신체를 타고 흐르는 전류에 괴로워했다.

“고, 공격이 먹혔다!”

“검후가 녀석에게 피해를 줬어!”

그 광경에 컬렉터들이 용기를 얻었다. 원거리에서 타격이 가능한 일부 컬렉터들이 자신의 특성을 끌어올리며 모비딕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끈적거리는 불길이 모비딕의 피부를 뒤덮었고, 반투명한 화살이 녀석의 눈 주위를 때렸다.

모비딕은 고통을 느끼고 수면 위에서 몸을 거칠게 흔들었다.

“녀석이 괴로워한다!”

“지금 몰아쳐!”

이때다 싶어 배를 넘어온 에이허브 선장까지 가세했다.

“크하하하! 오랜만이구나! 내 다리의 원수!”

에이허브 선장의 손에 쥐어진 작살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그가 던진 작살은 일반 작살보다 2배는 더 크고 굵었다. 작살의 끝은 박혔을 때, 쉽게 뽑지 못하게 훨씬 더 흉악하게 톱날이 서 있었다.

퍼억!

에이허브 선장이 날린 작살이 모비딕의 눈 위의 가죽에 직격했다.

촤악!

처음으로 모비딕의 몸에서 피가 튀었다. 그 모습을 본 선원들이 환호성을 내뱉었다.

“역시 선장님!”

“녀석에게 상처를 입혔어!”

정작 유호 타를 날린 에이허브는 혀를 찼다. 정확히 눈을 꿰뚫으려고 했는데, 모비딕이 일으킨 너울 때문에 배가 흔들려 조준이 미묘하게 빗나간 것이다.

에이허브 선장이 새로 작살을 쥐고 던지려고 하자, 모비딕이 바다로 잠수하려 들었다.

“녀석이 도망치려고 한다!”

“막아!”

겨우 잡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하지만 막으려 해도 저 덩치가 움직이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모비딕은 그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는 힘을 지녔으니까.

그때였다.

[이쪽을 잊고 있었나 보군.]

콰과과광!

노틸러스호에서 네모 함장의 목소리가 나오나 싶더니 수면 아래, 모비딕의 뱃가죽에서 거대한 폭발이 연달아 일어났다. 물기둥이 순차적으로 솟아오르고, 모비딕이 입을 벌리며 고통에 찬 괴성을 내뱉었다.

그것을 확인한 에이허브가 홍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핫! 노땅! 제법 재미난 물건을 지니고 있잖아?!”

노틸러스호가 발사한 것은 어뢰였다. 19~20세기를 배경으로 한 이 사상세계에 절대 나올 수 없는 무기.

저것은 오직, 수백 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은 노틸러스호에만 유일하게 허락된 강철의 송곳니였다.

[토르페도(torpedo) 5문에서 8문까지. 전부 개방.]

퍼퍼퍼펑!

노틸러스호에서 쏘아진 4정의 어뢰가 모비딕의 측면을 제대로 타격했다. 고열의 화염과 폭발의 충격에 모비딕은 몸을 크게 떨었다.

모비딕은 짐승으로서 위기감을 느낀 것인지, 반격을 가할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저 아래로 잠수했다.

모비딕은 거대했지만, 대해는 그런 모비딕을 품을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물보라를 흩뿌리며 잠수한 모비딕은 이내 그 그림자조차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됐다.

“도, 도망친 건가?”

“사, 살았다.”

일부 선원들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고, 에이허브 선장은 손에 쥔 작살을 아쉽다는 듯 매만지며 혀를 찼다.

“쯧. 냄새가 사라졌군. 녀석이 완전히 멀리 벗어났어.”

싸움이 끝났지만, 기뻐하기만 할 수는 없었다.

“피해 상황은?”

유현은 곧바로 4호선의 상황을 살폈다.

4호선은 운이 좋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제대로 모비딕의 박치기에 맞은 5호선과 다르게 미연에 공격을 읽고 조타를 옆으로 돌렸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완벽하게 공격을 피하지 못했고, 배의 뒤쪽 좌측에 스치듯 맞고 말았다.

스치듯 맞았음에도 4호선은 함미가 가루처럼 흩어졌다. 사람으로 치면 왼쪽 발끝을 맞았는데, 하반신이 통째로 날아간 셈이었다.

‘어떻게 돼 먹은 위력이야.’

단순히 거구에서 나온 물리력만으로는 불가능한 결과였다.

모비딕의 박치기 자체에는 배를 침몰시키기 위한 모종의 힘이 작용하는 것이 분명했다.

“생존자는?”

“아직 있습니다!”

4호선 갑판 위의 선원들은 아직 살아 있었다. 배가 순식간에 기울고 침몰 직전이었지만, 대다수가 생존해 있었다.

일부 죽은 선원들은 함미에 머무르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운이 없었다.

모비딕을 쫓아낸 것에 기뻐할 틈도 없이 침몰해 가는 4호선 선원들의 구출이 시작됐다.

‘피해가 막심하네.’

하나둘 구출되는 선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유현의 표정은 펴질 줄 몰랐다.

[성령들이 모비딕의 덩치에 감탄합니다.]

[일부 성령들이 해당 사상세계의 클리어 여부를 걱정합니다.]

관객인 성령들로서는 모비딕의 존재 자체가 꽤나 큰 볼거리였겠지만, 유현에게는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저런 거대한 녀석을 쓰러뜨릴 수 있는 방법이 지금 그에게 있을 리가 없었다.

‘혜림 씨의 천뢰검도, 박힌 작살을 피뢰침처럼 겨우 사용해야 타격을 입힐 정도.’

한 정당 배 한 척을 파괴할 수 있는 어뢰를 8발이나 맞고도 모비딕은 살아 있었다.

‘이걸 상급 컬렉터가 아니라 중견급 컬렉터들만으로 잡으라고?’

아무리 융합형 사상세계라 하더라도 난이도에 의구심이 들었다.

유현은 살아남은 컬렉터들이 피쿼드호에 모이는 걸 보면서 문득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잠깐만. 황혼의 장막 클랜 녀석들은 지금 어디 갔지?’

사상세계에 들어오기 전부터 눈여겨본 3명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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