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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45화 (145/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45화

“모두 긴장해라! 선장님이 말씀하셨던 녀석이다!”

“다들 정신 바짝 차려!”

피쿼드호를 포함한 포경선은 총 5척이지만, 그중에서 가장 본격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모선식(母船式) 경공선(鯨工船)인 피쿼드호뿐이었다. 나머지 네 척의 배는 피쿼드호를 보조하기 위한 용도에 지나지 않았다.

길이 40m에 배수량이 500톤이 넘는 피쿼드호는 보통 포경선의 규격을 아득히 넘어선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한 고래를 잡기 위한 에이허브 선장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역작이었다.

피쿼드호가 지닌 의미는 단순히 최고, 최대의 포경선만이 아니었다.

한 인간이 지닌 끝없는 증오와 복수심의 결정체가 바로 피쿼드호의 근원이었다.

땡땡땡땡!

종소리가 시끄럽게 울리며 선원들이 부리나케 움직였다. 마스트의 끝으로 올라간 선원이 멀리 보이는 해양의 그림자를 보며 소리 질렀다.

“전방 500에 녀석입니다!”

“거리가 멀지 않다! 다들 멍때리지 말고 어서 자리로 이동해!”

유현 일행은 갑판 위로 나와 난간 너머를 살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는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생명체처럼 보였다. 몰아치는 파도 저 너머에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컬렉터들의 뛰어난 시력에 잡혔다.

‘녀석이다!’

유현은 바로 박철오를 향해 시선을 보냈다. 박철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무전기를 들었다.

“아아. 이쪽은 박철오다. 내 말 들리나?”

-팀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갑자기 기밀 회선으로 연락을 하시고.

“김명철. 지금 네가 머무르는 배에 황혼의 장막 컬렉터들이 있나?”

-예, 제 쪽에는 둘. 양선우 요원 쪽에 하나 있습니다.

“둘에게 전한다. 그 세 명의 움직임을 조심할 것. 그들은 위험한 놈들이다.”

-……알겠습니다.

잘 훈련받은 컬렉터들이라 이유는 묻지 않았다. 그 이상으로 박철오가 부하들에게 엄청난 신뢰를 받고 있는 상사이기도 했다.

“일단, 지금 상황에서는 이게 최선이네. 우선 집중해야 할 것은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거대한 녀석이니까.”

“그렇죠. 다들 무기를 꺼내죠.”

모두가 각기 무기를 거머쥐는 순간이었다.

“선장님!”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유현 일행의 시선이 모두 뒤쪽, 함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에이허브 선장이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저 사람이…….’

유현은 그를 보며 눈에 이채를 띄었다. 원작 소설에서 에이허브 선장은 모비딕에게 한쪽 다리를 잘려 복수심에 불탄 선장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본 그의 모습은 복수귀라는 모습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에이허브는 깔끔하게 정리 정돈된 회갈색 수염과 부리부리한 눈매를 지닌 남자였다. 제복을 입은 몸 위로는 단련된 육체가 도드라져 보였고, 덩치가 주위에 선 다른 선원보다 더 컸다. 선원들 또한 상당히 우락부락한 걸 감안하면 대단할 정도였다.

선장이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노련한 용병 대장이라 해도 믿을 외모.

철그럭!

그의 한쪽 다리는 쇠로 만들어진 의족이었다. 에이허브 선장은 작살을 잘라서 자신의 의족으로 만든 것이었다.

‘보통 선장이 아니군.’

모습을 드러낸 것과 동시에 그를 중심으로 주변 분위기가 순식간에 변했다.

그저 가만히 보고 있을 뿐인데도, 마치 바다 자체가 자신의 것이라고 외치는 것 같은 광오함이 느껴졌다.

쓰읍.

에이허브 선장은 소리를 내며 코로 숨을 들이쉬었다. 그의 어깨가 한차례 들썩였다.

“바다의 향기. 그 너머에 증오스러운 녀석의 냄새가 느껴지는구나.”

무겁게 내려앉은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유현은 그 안쪽의 깊게 잠들어 있는 한 마리 짐승의 울음소리를 읽어 냈다.

에이허브는 겉으로 복수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것은 눈동자의 안쪽 깊은 곳에 응축되고, 압축되어 있었다.

언젠가 그 대상의 심장을 꿰뚫기 위해서.

“스타벅(starbuck) 일등 항해사. 현재 놈의 위치는?”

“전방 450입니다. 놈도 저희 위치를 알았는지, 이쪽을 향해 접근하는 중입니다.”

“그런가.”

에이허브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원수를 발견한 것치고는 매우 덤덤한 태도였다. 에이허브는 선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작살잡이는 모두 포경포를 준비해라.”

“……선장님. 정말로 하시려는 겁니까?”

“왜 그러지 스타벅? 혹시 겁이라도 먹은 건가?”

“선장님. 녀석은 위험합니다. 지금까지 몇 척의 범선이 당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문이로군. 이 피쿼드호가 녀석에게 당할 거라고 보는가? 그리고 이 에이허브가? 자네는 지금 이 배가 대체 무엇을 위해서 건조되었는지, 아직도 이해를 못 한 것 같군.”

스타벅 일등 항해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에이허브의 복수심을 알았다. 그래서 이번 백경 사냥을 별로 달갑지 않게 여겼다. 놈은 괴물이다. 그런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선원이 희생되겠는가.

하지만, 에이허브는 더한 괴물이었다.

겉으로는 이성의 외투를 둘러 대단한 사람처럼 포장했지만, 그 내면에는 보기만 해도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추악한 이면이 있었다.

“스타벅. 항명인가?”

“……아닙니다.”

하지만, 스타벅에게 선장의 명령을 거부할 담력이 없었다. 이곳은 망망대해의 위. 에이허브는 이 바다 위에 지어진 함선이라는 왕국의 왕이었다.

그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자리를 벗어났다. 에이허브는 그런 스타벅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무심한 그의 눈동자가 일순 유현 일행을 훑고 지나갔다.

‘무서운 사람이군.’

유현은 에이허브의 시선을 느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보통 인간이 아니었다. 이쪽을 향하는 그의 시선은 얼핏 보면 별 관심이 없어 보이지만, 유현은 느낄 수 있었다.

저 에이허브라는 선장은 보통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하긴. 이곳이 사상세계인 만큼, 그런 이야기로 구성된 인물들이 보통일 리가 있나. 분명, 모종의 변화가 있는 거겠지.’

그리고 그것은 이 피쿼드호의 존재 자체가 증명하고 있었다.

본래 모비딕 소설의 포경선은 나무로 이루어진 범선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피쿼드호는 아무리 봐도 나무로만 이루어진 범선이 아니었다. 증기로 움직이는 강철의 기선급은 아니었지만, 범선과 기선 사이의 범기선이라 부를 물건이었던 것이다.

19세기로 볼 수 없는 과학력. 유현은 사상세계로 구현된 이야기가 어느 정도 변질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차라리 잘된 일이야. 배가 튼튼하면 위험도 줄 테니까.’

지금 중요한 것은 이쪽을 향해 서서히 다가오는 모비딕이었다.

‘백효야. 어때, 뭐가 보여?’

부엉.

백효는 여전히 고도를 유지한 채 현장의 구도가 한눈에 보이게끔 유현에게 시야를 공유했다. 유현은 백효의 시야로 보여 주는 모비딕의 거대한 형체를 보고 얼굴을 굳혔다.

‘뭐가 저렇게 커?’

피쿼드호도 일반적인 배와 비교하면 거의 2배에 가까운 덩치였는데, 모비딕은 그보다 훨씬 더 컸다. 수면으로 슬쩍 드러나는 검은 그림자는 길이만 해도 얼추 70m는 돼 보였다.

‘하긴. 저 정도 덩치를 지녔으니까, 1, 2회차의 탐사대를 그 꼴로 만들었던 거였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범기선인 피쿼드호의 든든함이 순식간에 빛이 바래 보였다. 일부는 강철로 이루어진 이 배마저도 그 모비딕을 상대로는 버티지 못하고 침몰했다는 소리였으니까.

‘지금 싸울 수 있는 건가?’

유현이 고민하는 순간, 모비딕의 움직임에 변화가 생겼다. 이쪽을 향해 다가오던 녀석이 어느 순간 방향을 튼 것이었다.

“어, 어어?”

그 모습을 마스트 위에서 지켜보던 선원이 소리쳤다.

“선장님! 녀석이 방향을 틀었습니다! 도망치는 것 같습니다!”

“뭐?”

에이허브 선장은 눈썹을 꿈틀이더니, 숨을 크게 들이쉬며 외쳤다.

“쫓아라───!!!”

쩌렁쩌렁한 고함에 일부 선원들이 자기도 모르게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는 유현 일행도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에이허브의 목소리는 컸다.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는 기백과 목소리. 피부가 저릿저릿했다.

촤아악!

배의 기수가 돌아갔다. 어느덧 모비딕은 등을 돌려 바다를 가르며 도망쳤고, 그 뒤를 5척의 포경선이 따랐다.

마스트 위의 선원이 외쳤다.

“거리 350!”

모비딕과의 거리는 서서히 좁혀졌다. 에이허브는 원수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심지어 바람도 운이 좋게 녀석을 쫓으라고 강하게 불어오고 있었다.

“거리 250!”

어느덧 모비딕의 그림자가 육안으로도 뚜렷하게 보일 정도의 거리가 됐다. 선원들의 일부는 녀석의 거대한 형체에 질렸다는 듯 안색이 창백해졌다.

[성령들이 모비딕의 덩치에 감탄합니다.]

[일부 성령들이 저것을 과연 잡을 수 있을지 궁금해합니다.]

“유, 유현 씨. 저거 보여요?!”

“네. 보입니다.”

강혜림이 약간이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유현은 대답을 하면서 슬쩍 그녀를 살폈다.

강혜림은 두려워서 목소리를 떠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눈빛은, 저 거대한 괴물을 상대할 것에 잔뜩 기대에 차 있었다.

벌써부터 검을 쥔 그녀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가 있는 것이 보였다.

“저희도 슬슬 준비하죠.”

“저…….”

그때 방상씨가 유현에게 말을 걸었다.

설마 이런 순간에 직접 말을 걸 줄 몰랐는지, 유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괴선님 맞으시죠? 제게 무슨 볼일이라도?”

“그러니까 그게……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방상씨는 고개를 저으며 물러났다. 목소리도 무슨 처리를 했는지, 정체를 알기 어렵게 만들었다.

유현은 방상씨의 태도에 묘한 수상함을 느끼면서도 적의가 느껴지지 않아 무시하기로 했다. 어느덧 모비딕과의 거리가 200 안쪽으로 좁혀졌기 때문이다.

“거리 150!”

“작살을 준비해라!”

에이허브의 명령에 따라 작살잡이들이 난간 근처에 섰다. 그들은 배의 앞 끝에 장비된 포경포를 쥐고 있었다.

“발사!!”

투화악!

5척의 배에서 각기 6발씩, 총 30발의 작살이 대포처럼 쏘아졌다. 단단한 밧줄과 연결된 작살은 허공에 아치를 그리며 백색의 짐승을 향해 달려들었다.

티티티티팅!

“무, 무슨!”

“한 발도 먹히지 않았다고?!”

작살잡이들의 눈이 찢어지라 커졌다. 놀란 것은 유현의 일행을 포함해 상황을 지켜보던 컬렉터들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저 많은 작살 중 단 한 대도 박히지 않을 줄은 몰랐다.

심지어 조금 전 작살이 튕겨 나올 때 들린 소리는 마치 철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모비딕의 가죽이 그만큼 단단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서, 선장님! 어떡하면 좋죠?!”

“쯧. 어리숙한 놈들. 비켜라.”

보다 못한 에이허브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배의 선두 끝에 서서 어느덧 가까워진 그림자를 노려봤다.

“음?”

모비딕을 향한 에이허브의 눈빛에 일순 의아함이 떠올랐다.

유현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에이허브가 순간이지만, 망설이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뭐지? 망설이고 있어. 녀석을 잡고 싶었던 게 아니었나?’

에이허브의 반응은 어딘가 조금 이상했다. 하지만 이내 에이허브는 고민 따위는 떨쳐 냈는지, 한 손에 작살을 쥐었다.

“서, 선장님!”

그는 작살을 직접 던지려고 했다. 일부 작살잡이가 그를 불러 세웠다. 작살을 포경포로 쏘는 것이 아니라, 맨손으로 던지는 것은 아무리 봐도 만용이었다.

“흐읍!”

하지만, 에이허브는 그 만류를 뿌리치며 팔에 힘을 주며 작살을 던졌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피──잉!

쾅!

작살은 허공을 일자로 쏘아져 나가 모비딕의 단단한 피부를 꿰뚫은 것이었다. 맨손으로 던진 작살이 포경포로 쏜 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강한 모습은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흐음. 역시.”

정작 목표물을 맞힌 에이허브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모두가 그의 반응에 의아해하는 순간, 모비딕에게서 변화가 생겼다.

“어, 어어? 녀석이 선회한다!”

“놈이 옵니다!”

모두가 당황하는 순간, 모비딕은 물살을 가르며 이쪽을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녀석의 등 뒤에 박힌 작살이 그 이정표처럼 수면 위에 드러난 채 움직이는 모습은 공포스러웠다.

선원들이 모두 긴장하고, 컬렉터들 또한 무기를 쥐고 곧 이어질 전투를 대비했다.

촤아아악!

어느덧 거리가 30까지 좁혀진 모비딕은 이후 사람들의 예상을 재차 뛰어넘는 기행을 벌였다.

“어, 어어?”

“머, 멈췄어?”

곧바로 분노에 차서 머리를 들이받으리라 생각한 것과 다르게 모비딕은 피쿼드호의 지척에서 멈춰 섰다.

오히려 검은 그림자로만 보였던 놈은 서서히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푸화악!

강렬한 물보라와 함께 수면 위로 부상한 모비딕을 본 컬렉터들이 눈을 부릅떴다.

“뭐야, 저거.”

“고래가…… 아니었어?”

바다를 가르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모두가 생각했던 새하얀 향유고래가 아닌, 나선형의 잠수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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