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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44화 (144/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44화

이스마엘이라고 자신을 밝힌 청년의 이름을 듣는 순간, 한 가지 문구가 유현의 머릿속에서 번개처럼 몰아쳤다.

「나를 이스마엘이라 부르시오」

미국의 소설가 허먼 멜빌이 지은 해양 소설 모비 딕(Moby Dick)의 가장 유명한 문장.

유현은 이 호기심 많은 청년이 바로 해당 소설의 주인공임을, 그리고 그들이 들어온 이 사상세계가 단순한 해양 전설이 아닌 소설 모비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후우. 설마, 그랬을 줄이야.”

유현은 뒤늦게 퍼즐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네? 뭐가요?”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이스마엘 씨. 저희에게 궁금한 것이 뭐죠?”

“그냥 편하게 이스마엘이라고 불러 주시면 돼요! 저도 형이라고 부를게요!”

청년 이스마엘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소설 속 화자로서 이스마엘은 세상의 풍파를 겪고 매우 메마른 마음을 지닌 사람처럼 나왔는데, 지금은 꿈 많은 청년의 모습이다.

그는 조금 전부터 유현에게서 시선이 떨어질 줄 몰랐다. 그것은 자신이 모르는 세상을 아는 자를 향해 보내는 동경의 눈빛이었다.

“그래, 이스마엘. 뭐가 궁금해?”

“형은 정말 바깥에서 오신 분 맞죠?”

“그렇지.”

유현은 손님이라는 말에 의문을 품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아무래도 그들의 존재는 이곳에서 초대받지 않은 손님 취급인 것 같았다.

실제로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에서 컬렉터들은 용병 취급을 받았다. 사상세계 자체가 컬렉터에게 일종의 역할을 부여한 것이다.

한 번 떠들기 시작한 이스마엘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저는 더 많은 세상을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직 확인한 건 아무것도 없었죠. 더 먼 세상을 보고 싶어서 상선이 아니라 포경선에 탔는데, 맨날 지루한 바다밖에 안 보였거든요. 게다가 선장님은 어찌나 엄격하신지, 손님들과 말을 섞지 말라고 하더라니까요?”

이스마엘은 툴툴거리며 선장의 뒷담화를 했다.

“선장이라면?”

“에이허브 선장님이요. 지금은 뭘 하고 계시는지 모습을 안 보이고 있는데, 아마 방 안에 틀어박혀서 진탕 럼주를 마시고 있는 게 분명해요. 앗. 이건 비밀이에요. 제가 했다고 말하지 말아 주세요.”

“그런 걸 다른 사람에게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 아니니까, 걱정 마.”

유현은 에이허브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이곳이 모비딕 세계임을 확신했다.

‘2차 탐사 대원이 봤다는 거대한 백색의 괴수는, 이 소설의 주역이라고 볼 수 있는 모비딕이었나.’

모비딕은 이제는 전설로 남아 버린 흰색 향유고래다. 소설 속 이야기지만, 지금까지 몇 척이 넘는 거대한 상선을 파괴한 전적이 있었다.

모든 것을 파괴할 뿐 정복하지 않는 고래.

그리고 유현이 타고 있는 배의 선장 에이허브는, 지옥 한복판에서 모비딕을 향해 작살을 던지는 복수귀였다.

“손님은 그런데 무슨 이유로 이 피쿼드호에 탄 건가요?”

“아, 우리?”

유현은 무슨 이유를 말할지 고민했다. 그들이 이곳에 온 것에 딱히 이유는 없었다. 굳이 말하면 사상세계를 확인하고 그것을 클리어 하기 위함이었다. 이스마엘에게 그것까지 알려 줄 리가 없었다.

“고래잡이배에 탔으면 당연히 이유는 하나뿐이지.”

“손님도 모비딕을 찾으시는 건가요?”

이스마엘이 목소리를 낮추며 그렇게 물었다.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모비딕 세계라면 분명 사상세계의 클리어 조건도 모비딕의 사냥일 것이다. 그 거대한 녀석을 어떻게 잡을지는 차치해 놓고, 우선 목표만 놓고 보면 그랬다.

이스마엘은 신기해하면서 유현에게 이것저것 캐물었다. 다른 대륙은 어떤지, 또 그곳은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유현은 적당히 상대해 주면서 역으로 이스마엘에게 여러 가지 정보를 얻어 냈다.

“앗. 슬슬 가 볼 시간이에요. 여기에서 농땡이 피우고 있으면 퀴퀘그가 저를 애타게 찾거든요.”

“그렇구나.”

“형.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이스마엘은 유현의 양옆에 선 강유현과 권지아를 보며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양쪽에 두 여성분은 형의 부인들이에요?”

“어, 어?”

너무나도 순진한 질문에 유현이 제대로 한 방 먹었다. 그것은 유현의 양옆에서 대화를 지켜보던 권지아와 강혜림도 마찬가지였다.

“네, 네?”

“무, 무슨!”

둘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허둥지둥거리는 둘의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유현은 그런 감상을 한 수 접으며, 무언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이스마엘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에이. 다 알아요. 대륙 너머에서는 능력 있는 사람이 아내를 몇이나 맞이할 수 있다고. 맞죠? 부인들. 저도 알 건 다 안다고요. 역시 형은 대단한 사람이었네요! 저렇게 예쁜 누나들과 결혼하다니.”

“아니, 그게…….”

“앗. 내 정신 좀 봐. 저는 아무튼 이만 가 볼게요! 혹시라도 나중에 만나면 또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 부탁해요!”

이스마엘은 유현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쌩하니 떠나가 버렸다.

유현은 이스마엘을 붙잡으려 허공에 손을 뻗은 애처로운 동작에서 정지하고 말았다.

설마하니, 떠나기 직전에 이런 대형 폭탄을 던져 버리다니!

유현은 갑자기 어색해진 분위기에 침을 꼴깍 삼켰다.

“어, 음. 어쩌죠?”

“……몰라요.”

“……모른다.”

강혜림과 권지아는 얼굴을 붉힌 채 그렇게 대꾸했다.

* * *

그 이후로도 여러 가지 정보를 취합하려던 유현은 이스마엘 이후로 별다른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이스마엘의 제외한 대부분 선원은 손님들에 대해서 철저하게 주의를 받았는지, 모르쇠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스마엘이 특이한 케이스였고, 그와 나눈 대화가 마지막 기회였다.

‘다시 만나려 해도 어디 있는지 모르니 원.’

작살잡이 퀴퀘그와 함께 있다는 것은 들어서 알지만, 퀴퀘그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유현은 아쉬워하지 않았다. 뭐가 어찌 됐든 이곳이 모비딕의 이야기로 구성된 사상세계라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알았으니까.

“아. 거기 있었군.”

때마침 박철오도 유현을 찾고 있었는지, 우연히 마주치자 반가워했다. 박철오의 뒤로는 방상씨와 나머지 1명의 컬렉터가 뒤따르고 있었다.

“아, 박철오 팀장님. 단서는 얻으셨습니까?”

“아니, 전혀. 물어보려고 해도, 다들 피하기만 하고 대답하려 들지 않더군. 조금 강제로 할까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배 위에는 저들의 규율이 있다 보니 함부로 나서기 힘들어. 그래서 다른 배에 있는 부대원들에게도 난동은 피우지 말라고 전해 뒀지.”

“그랬군요.”

“그러는 그쪽은 어떻지? 혹시 뭐 알아낸 거라도 있나?”

“네. 그렇습니다.”

유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박철오가 기뻐하며 물었다.

“그런가? 그게 대체 뭐지?”

“저희가 들어온 이곳 사상세계의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알아냈습니다. 이곳의 이름은 모비딕. 유명한 소설이니, 팀장님도 아시리라 믿습니다.”

박철오는 자신의 무릎을 탁 하고 쳤다.

“아아. 그건가. 과연, 그렇군! 이 배가 일반적인 상선과는 어딘가 다르게 무장이 갖춰져 있어서 뭔가 수상했는데, 포경선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고맙네. 자네 덕분에 이곳에 대한 가장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었어.”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박철오는 곧바로 무전을 통해 다른 배에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 정보를 알렸다.

그는 매우 올곧은 인물이었다. 이번 정보를 얻은 것이 백화 매니지먼트이며, 그들의 공이 크다고 말했다. 거기에 더불어 더 단서를 얻을 수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르니, 너무 소란을 피우지 말라는 경고는 덤이었다.

“그렇다면 2차 탐사대의 생존자가 목격했던 것은 그 백경(白鯨)이 분명하겠군. 이거, 참. 자네에게 어떤 감사를 전해야 할지 모르겠어.”

“별거 아니었습니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으니까요.”

“그렇지. 중요한 건, 이곳이 모비딕인 걸 알아도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는 모른다는 소리야.”

유현도 아직 조건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생존자의 말을 취합해 보면, 배가 침몰하고 대부분 팀원이 다 죽어 나갈 때 정신을 잃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깥이었다고 한다.

‘배가 침몰하는 것이 조건인가? 아니면 모비딕이 등장했을 때? 혹은 소설 속의 결말처럼 생존자가 단 1명으로 정해진 것일 수도 있다.’

만약에 1명만 나갈 수 있다면 그때는 상황이 심각해진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모비딕을 사냥해서 이곳 사상세계를 끝내는 것이 훨씬 더 나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에이허브 선장을 만날 필요가 있겠는데.’

무엇보다 지금 가장 걸리는 것은 모비딕도 에이허브 선장도 아닌, 황혼의 장막에서 보낸 3명의 컬렉터였다.

다른 배에 모여 있는 셋은 당장은 얌전히 지내는 것 같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다.

“팀장님. 잠시 말할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지?”

그리고 다행히도, 유현의 앞에는 그에게 호의를 품고 있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었다.

“황혼의 장막 클랜에서 보낸 3명. 기억하십니까?”

“물론이네. 내가 이곳의 책임자인 만큼 참여 인원은 전부 다 외우고 있으니까.”

“그 셋을 조심하십시오. 위험한 사람들입니다.”

“그 세 명이?”

박철오는 유현의 말이 의아하다는 반응이었다. 그야 그럴 것이, 황혼의 장막에서 굳이 무슨 수작을 부릴 이유가 없던 탓이었다.

“그들은 안 그래도 일전의 사건 때문에 이쪽에 목줄이 잡힌 상태인데, 무슨 짓을 저지를 거라고 보나?”

“보통의 클랜이라면 오히려 몸을 사리겠죠. 하지만 저 셋은 다릅니다. 혹시 처음에 저 세 명의 명단을 받았을 때 조금 의아하지 않았습니까? 황혼의 장막에 이런 중견급 컬렉터가 있었다고?”

“그건…….”

박철오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니, 유현의 말이 맞았다.

중견급 컬렉터는 사람들의 사이에서 이름이 오르내릴 정도로 인기가 많다. 그것에 차이가 있을 지언정, 막 중견급으로 올라간 종6품 컬렉터를 모를 리가 없었다. 대부분 클랜에서 중견급 컬렉터의 존재란 그랬다.

황혼의 장막에서 보낸 셋은 그런 의미에서 이질적인 자들이었다.

‘저런 컬렉터가 있었어?’라는 반응이 절로 나올 정도로 그들은 과거의 행적이 뚜렷하지 않고, 등장이 갑작스러웠으니까.

무언가 있다.

박철오는 그렇게 느꼈다.

“……뭐, 알고 있는 거라도 있나?”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유현은 한 번 튕기듯 잡아뗐다. 그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여기서 아는 것을 너무 솔직하게 말하면 역으로 박철오의 의심을 사고 만다.

정보를 풀 때는 상대방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그 전체가 아닌 극히 일부만 푼다.

그것이 유현의 지론이었다.

“최근 소문이 하나 돌더군요. 클랜에서 몰래 비밀스럽게 컬렉터들을 키워 낸다고. 팀장님도 들어서 알고 있겠죠? 이번에 한울에서 터진 일을.”

“그렇지. 놈들은 정부의 허가 없이 비밀리에 특수 팀을 키웠으니까.”

“다른 클랜에서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죠. 특히, 황혼의 장막은 이전부터 말이 많이 나오던 곳이지 않습니까. 실제로 사고가 터지기도 했고요. 그런 곳에서 갑자기 어디서 왔는지 모를 중견급 컬렉터 셋을 보냈다? 어딘가 수상하지 않습니까?”

“…….”

박철오도 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의 시선은 전쟁을 앞둔 군인의 그것처럼 날카롭게 벼려졌다.

“지휘관으로서, 한 가지만 묻지.”

“예.”

“그들의 수상한 점은 확실히 들어서 알겠다. 그런데 딱 하나, 그런 짓을 저지를 이유가 떠오르지 않아. 심지어 이곳 사상세계의 배경을 보면 망망대해지. 무슨 일을 저지른다면 자신들도 죽을지도 모를 텐데 과연 그런 짓을 저지를까?”

박철오는 합리적인 이유를 찾고자 했다. 그는 노련한 지휘관답게 이성적으로 생각했다.

황혼의 장막이 무언가 숨긴 것은 알겠다. 그런데 그들이 과연, 정말로 위험을 무릅쓰고 그런 짓을 저지를까?

과연, 저 세 명이 자신의 목숨을 버려 가면서까지 무언가 저지를지 의문이었다.

박철오는 그 부분을 염려하고 있었다.

“팀장님. 한 가지만 묻죠.”

“뭔가?”

“광신도들이 자신의 행동에 마땅한 이유를 댑니까?”

“…….”

유현의 말에 박철오가 입을 다물었다.

“미친놈이 왜 미친 짓을 하는지 아십니까? 그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 걸 알면 미친놈이 아니겠죠. 세상에는 이유 없이 무언가를 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커 왔거나, 혹은 그만큼 미쳤거나. 황혼의 장막에서 보낸 셋은 바로 그런 녀석들입니다.”

“그들이 미쳤다고 어떻게 확신하지?”

“정 불안하시면, 나중에 놈들의 ‘눈’을 한번 보세요. 노련하신 분이니, 잘 아실 겁니다.”

“……그렇군. 그래, 내가 착각을 했어.”

박철오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단 한 명의 전력이 아쉬운 지금이라서 자신이 너무 낙관적으로만 생각했음을 반성했다.

“부대원들에게 전해 놓겠네. 혹시라도 놈들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 지켜보라고 말이야.”

“지금은 괜찮을 겁니다.”

“어째서 확신하지?”

“저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렇죠. 팀장님. 만약에 팀장님이 이번 작전을 망쳐야 한다면, 과연 어느 순간에 움직일 거 같습니까?”

박철오는 눈을 부릅떴다.

만약에 그가 모종의 이유로 이번 작전을 망치고 사람들을 방해하려고 한다면, 과연 어느 순간에 움직일 것인가?

그것은 바로.

“모두가 방심하고, 가장 중요한 순간…….”

그리고 이 모비딕 사상세계에서 그 순간은 단 하나.

“백경이 나타나면, 그때 놈들이 움직일 겁니다.”

불안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땡땡땡땡!

부엉!

귀를 울리는 시끄러운 종소리와 함께, 하늘을 날던 백효가 유현에게 시야를 공유했다.

“녀석이다! 녀석이 나타났다!”

5대의 포경선이 향하는 바다의 저 멀리, 수면 아래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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