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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43화 (143/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43화

유현은 곧바로 서재를 개방했다.

순식간에 5,000명이 넘는 성령들이 서재를 가득 채웠다. 이미 새롭게 열린 사상세계에 대한 소문이 퍼졌는지 들어오는 성령들의 기세가 줄어들었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셀린. 메시지 창 관리 부탁한다. 아무래도 나는 이번 시화에서 꽤나 바쁠 거 같거든. 잘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그래. 부탁한다.’

-네. 선배님.

관조자의 방에서 대기하는 셀린에게 그렇게 전한 뒤, 유현은 주변을 살폈다.

첫 사상세계에 들어갔을 때는 우선 이곳이 어떤 곳인지, 그리고 어떤 이야기로 구성된 곳인지 파악을 할 필요가 있었다.

유현은 배를 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컬렉터들도 마찬가지.

배는 총 5척이었고, 크기가 컸다. 30여 명의 컬렉터들은 총 6명씩 5대의 배에 골고루 배치됐다.

유현이 탄 배는 5척 중에서 중심에 선, 가장 큰 배였다. 운이 좋게도 백화 매니지먼트 사람 셋이 전부 모여 있었다.

나머지 3명은 괴선 방상씨와 박철오, 그리고 이름 모를 매니지먼트 출신 컬렉터였다.

“이런! 탈출구는?!”

“닫혔습니다!”

“큰일이군.”

전력이 분산된 것도 그렇지만, 입장과 동시에 입구가 사라졌다. 그 말은 즉 어느 특정 조건을 만족하지 않으면 이 사상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

“조건이 필요한 사상세계였을 줄이야.”

박철오가 침음성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보통 사상세계는 조건이 없다. 입구가 항상 열려 있어서 언제든 자유롭게 사상세계의 출입이 가능했다.

여기서 간혹 특이한 사상세계가 하나 나온다. 바로, 박철오가 말한 ‘조건’이 필요한 곳이다.

“국내에서는 아직도 한 번도 목격되지 않았던 것이 이번에 나타나다니.”

“유현 씨. 조건이 뭐죠?”

강혜림이 유현에게만 들리게끔 작게 물었다. 그녀는 아직 ‘조건’이 달린 사상세계에 대해서 잘 몰랐다.

“사상세계에 나가는 출구가 특정 조건을 만족해야 생성되는 곳을 뜻합니다.”

“특정 조건이요? 어떤 거죠?”

“그것도 사상세계마다 다릅니다. 그래서 이런 곳일수록 조건을 찾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죠. 보통은 해외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곳인데, 하필 지금 온 곳이 이럴 줄이야. 운이 없네요.”

유현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주변 풍경을 빠르게 훑었다.

배에는 선원들이 있었다. 전부 이야기로 구성된 환상체들이었다. 그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홋줄을 감거나 돛을 펼치며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어서 움직여라!”

“굼뜨게 있지 마!”

바다 사나이들의 시끄러운 목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이곳이 사상세계가 아니라 어디 어촌에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현은 턱을 쓰다듬으며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을 분석했다.

‘배의 구조나 마스트, 서양 선원들의 모습을 보면 다른 차원이 아니라 지구의 이야기야. 그리고 배 앞에 달린 저것들은 뭐지? 뭘 쏘기 위해 있는 건가? 바다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배가 다섯 척이나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인 일이군. 하지만 아직 여기가 정확히 어떤 이야기라고 확정하기에는 정보가 부족해.’

유현은 혹시나 싶어서 [라플라스의 악마 파편]을 발동시켰다.

[라플라스의 힘을 발동합니다.]

[실패!]

[현재 필요한 정보가 부족합니다.]

[현재 정보 취합률 23%]

‘역시 안 되는 건가?’

그냥 던져 본 거라 딱히 기대를 한 건 아니었다. 유현은 곧바로 권지아와 강혜림을 모아 말했다.

“두 분. 다 잘 들으세요. 우선, 이곳은 지구의 이야기가 구현된 세계인 건 확실한 거 같습니다. 다만, 배가 이렇게 많고 항해를 하는 이야기가 정확히 뭔지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어요.”

“혹시, 해전 같은 게 일어나는 걸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분명, 브리핑에서는 이곳에 아주 거대한 괴수급 환상체가 있다고 했어요. 해전이었으면 그러지 않을 겁니다. 그나마 대충 떠올리기 쉬운 건 하나가 있죠. 크라켄.”

크라켄은 전설의 바다 괴물 중 하나로 거대한 두족류 괴물이다.

덩치가 워낙 커서 거대한 촉수로 배를 감싸 부러뜨려 난파시키는 녀석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수 있었다.

“크라켄이 관련된 일화가 있던가?”

“크라켄은 딱히 정해진 이야기가 없죠. 다만, 대항해시대부터 구전된 이야기가 전부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 이 정도의 배, 그리고 항해. 2차 탐사 대원이 봤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 괴수.”

“흠. 확실히 일리가 있어. 그런데 그런 녀석을 이런 배 위에서 상대해야 한다는 건가?”

“그나마 천자총통이 있으니, 해 볼 만은 하다고 생각합니다.”

거대한 화포는 구시대에 사용하던 것이 아니다. 당시 시대와 역사의 [이야기]가 담긴 저 무기는 겉모습만 예전의 것과 비슷하지, 그 위력은 현대 병기의 화력을 아득히 웃도는 것이었다.

“우선은 이걸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야겠죠.”

유현은 바로 박철오에게 자신이 알아낸 것에 대해서 알려 줬다.

이곳까지 와서 자기들만 아는 정보를 숨기는 것은 멍청이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위험도가 높은 만큼 서로의 힘이 가장 필요하다.

유현의 말을 전해 들은 박철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우리도 그렇게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이 배를 보니, 아무래도 그 가설이 훨씬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군.”

“다른 배의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우선, 무전은 가능하다. 배와 배 사이의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아서 마음만 먹으면 오갈 수는 있겠더군. 다만, 어느 배에 또 다른 단서가 있을지 몰라서 지금은 우선, 대기 명령을 내린 상태다.”

“천자총통은 바로 사용하실 겁니까?”

“바로는 힘들다. 우선 위력이 위력인 만큼,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려. 천망을 가져온 것도 그 때문이다. 괴물이 나타나면 천망으로 묶은 후에 천자총통으로 일소해야 하니까.”

“아직 괴물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시간이 남는다는 소리군요.”

성령들은 유현과 박철오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잠자코 지켜봤다.

이곳에 열린 서재의 숫자만 해도, 유현의 서재를 제외하고 8개나 더 있었다. 유현의 서재에서 벌써 6천이 넘는 성령들이 모인 걸 제외해도 이번 사상세계를 구경하러 온 성령의 총 숫자는 무려 2만이 넘었다.

그만큼 이번 사상세계는 꽤나 중요한 곳이었다.

평소의 유현이었다면 이런 부분까지 다 고려했겠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사상세계의 정보를 모으는 것이 우선이었다.

“선원들이 바빠 보이는군요.”

“그렇네. 말을 걸어도 무시하기 일쑤더군. 뭐가 저렇게 급한 건지.”

“분명 이곳이 이야기가 구현된 것이라면, 중요한 인물이 있을 겁니다.”

지금 주어진 단서로는 아직 이곳에 어떤 이야기인지 알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단서라면 바로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진 등장인물일 것이다.

인물은 이야기의 중심이자, 하나의 세상이 어디로 향하게 할지 정하는 지표다.

그것을 미리 알아차린다면 이곳이 어떤 곳인지, 훨씬 더 쉽게 알 수 있으리라.

“우선, 각자 정보를 모으는 데 집중하지.”

“그러죠.”

박철오와 떨어진 유현은 강혜림과 권지아를 이끌고 배를 돌아다녔다. 갑판 위에는 선원들이 많았지만, 누구도 이쪽을 향해 시선을 던지지 않았다.

바빠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모종의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인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저기요.”

“…….”

“이봐요.”

“…….”

말을 걸어도 선원들은 자기 일에 열중하기만 했다. 유현은 난감한지 머리를 긁적였다. 부를 때 살짝이지만 반응이 오는 걸 보면 이쪽을 완전히 인지하지 못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유현은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말 좀 물읍시다.”

“아, 적당히 좀 방해하라고!”

다른 선원들에 비해서 덜 우락부락해 보이는 사람 하나를 붙잡고 집요하게 물어보니, 그는 불같이 화를 냈다.

“지금 내가 일하는 게 안 보이나?!”

“묻고 싶은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일 없네!”

“저희와 말을 섞는 걸 자체를 피하시는군요.”

유현은 선원의 태도에서 그것을 읽었다. 선원은 잠시 움찔하더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더 뻔뻔하게 나올 작정인지 대놓고 유현을 무시하려 들었다.

‘이걸 어쩌면 좋담. 힘으로 해결하자니, 배 위에서 난동을 피우기엔 적합하지 않은데.’

이곳에 있는 선원들과 적대하는 것은 썩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좋게 말로 해결하려고 하자니, 저쪽은 그걸 바라지 않았다. 유현이 고민하는 사이, 가만히 지켜보던 권지아가 나섰다.

“내가 한번 해 보지.”

“지아 씨가요?”

“그래.”

유현은 딱히 방도가 없어서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권지아는 유현이 방금 말을 건 선원에게 다가갔다.

“말 좀 묻지.”

“아니, 아까부터 이 인간이 자꾸……!”

인상을 쓰며 거칠게 뒤를 돌아본 선원은 권지아를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입이 헤 벌어지더니, 이내 눈치를 살피며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흠흠. 그, 아가씨는 무슨 용무요?”

“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현이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흘렸다.

[100TP 후원!]

[아ㅋㅋ 역시 사내 새끼는 관심이 안 주지ㅋㅋ]

[100TP 후원!]

[솔직히 내가 저 선원이어도 저런 미인이 말 걸면 좋아할 듯ㅋㅋ]

성령들이 유현을 보며 낄낄거리며 웃었다. 유현은 그 반응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뭐라 반박하지 못했다. 실제로 선원은 유현과 권지아를 대할 때 반응이 천지 차이였으니까.

‘……뭔가 억울한데?’

유현은 짜증이 났지만, 결국 납득하기로 했다. 상대방은 선원이다. 맨날 배에만 머물며 항해하는 선원이 여자에 환장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게다가 권지아는 눈이 번쩍 뜨이는 미인이라, 선원의 태도가 더욱 당연하게 비쳤다.

선원은 작은 목소리로 권지아에게 자신이 아는 것을 말했다.

유현은 그 태도에서, 선원이 무언가를 매우 조심스럽게 여기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랬던 거였군.”

권지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선원과의 대화를 끝내고 유현에게 돌아왔다.

“의외로 쉽게 알려 주더군. 이상한 일이야.”

“아뇨, 그건…… 하아. 아닙니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죠.”

“……?”

권지아는 딱히 자신의 외모를 믿고 나선 게 아니라서, 선원의 호의적인 태도에 약간이지만 당황한 느낌이었다. 유현은 권지아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에 더욱 패배감을 느꼈다.

“그래서, 선원이 뭐라고 합니까?”

“선장이 엄명을 내렸다더군. 손님과 함부로 말을 섞으려 들지 말라고.”

“선장이 그런 말을 했다라. 말을 하면서도 선원이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선장이 꽤나 무서운 사람인 듯합니다.”

“그래. 그나마 선원이 몰래 저렇게 알려 준 거지, 갑판장이나 다른 중요 위치에 선 사람과는 대화조차 섞을 수 없다더군.”

“단서를 얻기에는 더욱 힘들게 됐군요.”

유현은 선원의 태도를 통해 선장에게 무언가가 있음을 짐작했다. 하지만 선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선장은 배의 안쪽, 어딘가에 틀어박혀 있는 게 분명했다.

“백효야. 하늘에서 혹시, 뭐 보이면 알려 줘.”

부엉.

유현은 백효를 하늘로 날렸다. 배에서 정보를 얻는 것은 힘드니, 주변을 경계하며 다른 외부의 요소를 살필 필요가 있었다.

“음?”

유현은 백효를 보내고 느껴지는 시선에 뒤를 돌아봤다. 누구인가 했더니, 괴선 방상씨가 유현을 뚫어지라 보고 있었다.

“저한테 무슨 볼일 있으십니까?”

“…….”

유현의 물음에 방상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면을 쓰고 있어서 표정을 읽을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무슨 영문으로 이쪽을 계속 쳐다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유현이 무엇을 더 물으려고 하기도 전에 방상씨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유현 씨. 왜 그래요? 저 사람이 뭐라 말했어요?”

“아뇨. 그냥 계속 쳐다보다가 그냥 가더군요. 이상한 사람이었습니다.”

“유현 씨가 신기해서 본 게 아닐까요?”

“글쎄요.”

유현은 방상씨가 왜 저러는지 책을 통해 확인을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순간이었다. 한 기척이 조심스레 이쪽을 향해 접근하는 것이 느껴졌다.

유현과 강혜림, 권지아의 시선이 그쪽을 향했다.

“저, 저기요.”

그곳에 서 있는 것은 어리숙해 보이는 젊은 청년이었다. 이 배의 선원인 건 분명했지만, 어딘가 순박하고 눈빛이 살아있는 걸 보면 선원으로서 경험이 짧은 신입으로 추정됐다.

“무슨 일이시죠?”

“여기는 조금 눈치가 보이니, 다른 곳으로 가죠.”

선원의 말에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처음으로 이쪽에 호의적인 사람을 만났으니까.

그렇게 그들은 배의 안쪽, 사람들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곳으로 이동했다.

“여기면 되겠네요.”

“그래서 저희를 보자고 한 이유가 뭐죠?”

“바깥에서 오신 분들 맞죠?”

바깥?

젊은 선원의 말에 유현은 굳이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랬군요! 바깥에서 오신 분들이었다니! 저는 되게 궁금했었거든요!”

젊은 선원의 눈에는 총기와 호기심이 엿보였다. 그의 호의적인 태도에 유현은 쉽게 궁금한 것을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군요. 저는 강유현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권지아, 이쪽은 강혜림이죠. 그쪽 이름은?”

“아. 유현님이셨군요.”

선원은 쑥스럽다는 듯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저는 이스마엘이라고 해요.”

그 이름에 유현의 표정이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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