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142화
3차 탐사대에 관한 이야기가 퍼지자, 사람들의 귀추가 주목됐다.
1차에 이어서 2차 탐사도 실패했다. 컬렉터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 2번이나 실패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당연히 3차 탐사대는 일전의 실수를 만회하기라도 하듯 호화롭게 꾸려졌다.
총 탐사대 숫자 30명.
클랜, 협회, 각종 매니지먼트를 포함해 용병과 해외 클랜까지 돈을 주고 포섭해 꾸려진 원정대였다.
심지어 구성원의 대부분이 종4품부터 정6품 사이의 중견급 컬렉터들이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당연히 폭발적이었다.
[이거면 진짜 다 때려잡고 나오겠는데?]
[솔직히 처음부터 이렇게 했으면 오죽했겠음? 뒤늦게 사건 터지고 나서 부랴부랴 하는 거지]
[이제라도 제대로 하면 다행이지. 설마 이렇게 했는데, 실패하겠어?]
하지만, 불안하다는 반응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이번 3차 탐사까지 실패한다면 해당 사상세계는 탐사 불가 판정이 내려진다. 주위 반경 2km 이내까지 폐쇄 조치를 취하고 놔둘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피해가 막심해진다.
정부도 그것만큼은 막고 싶었고, 3차 탐사대는 최대한 호화로운 인선으로 뽑았다.
중견급에서 인지도가 높은 컬렉터들 위주로 팀을 꾸린 것은 그 때문이었다.
중견급 컬렉터 중 현재 가장 유명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검후 강혜림.
그녀와 더불어 검후를 키운 장본인이자 직접 싸우는 괴짜 텔러 강유현.
그런 강유현이 최근에 새로 영입해서 키우는 신인 권지아.
백화 매니지먼트에서 지원한 이 3명만 해도 대단했지만, 다른 클랜도 만만치 않았다.
한울에서 신동철이 이를 악물고 내보낸 2팀의 떠오르는 신성을 보냈고, 협회에서도 특수 전담 팀 소속 컬렉터 5명을 보냈다.
심지어, 돈을 주고 영입한 용병은 호주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밖에 해외 클랜에서 내보낸 컬렉터와 더불어 나름 이름을 얻기 시작한 중급 매니지먼트의 컬렉터까지.
“장난이 없군요.”
사상세계의 입구 근처,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며 유현은 휘파람을 불었다.
지금까지 봐 왔던 허접한 하급 컬렉터와는 질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것은 권지아도 강혜림도 마찬가지인지 살짝 긴장한 기색이었다.
“뭔가, 저희도 이제 슬슬 잘났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확인해 보니, 기가 눌리는 느낌이에요.”
강혜림이 유현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그녀는 조금 전부터 주위 시선을 느끼고 있는지, 살짝 긴장한 채 무표정을 고수하고 있었다.
유현도 강혜림의 말에 동의했다. 이번에 모인 사람들은 검후라는 이름 앞에서도 당당히 설 수 있는 몇 없는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렇다 해도, 예상 밖의 인물들이 몇몇 보이네.’
유현의 관심을 가장 크게 끄는 것은 바로 해외에서 지원해 찾아온 컬렉터였다.
‘플레임나이트 권인범. 설마, 저 사람도 올 줄이야.’
권인범은 전생에서 검후 강혜림과 함께 떠오르는 신성으로 불리던 자였다.
그는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던 사람이었다. 그러다 그곳에서 컬렉터로 각성을 해, 기간제 계약으로 미국의 클랜에 소속되어 활동했다.
원래라면 권인범은 몇 개월 뒤에 한국으로 넘어와 활동을 개시해야 했다.
그런데, 이번 사상세계 사태로 예상보다 훨씬 더 일찍 한국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저 녀석 말고도 다른 하나 더.’
유현의 시선이 저 멀리 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는 로브를 쓴 컬렉터를 바라봤다.
얼굴에는 탈을 쓰고서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조차 없이 그저 멍하니 허공을 주시하는 것이 꽤나 기묘해 보였다.
‘설마, 방상씨가 여기서 등장하게 될 줄이야.’
괴선(怪仙) 방상씨.
플레임나이트 권인범, 검후 강혜림과 더불어 당시 확 떠오른 3인방 중 마지막 하나였다.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저렇게 항상 모습을 감추고, 얼굴에 방상씨 탈을 쓰고 있어서 사람들은 방상씨라고만 불렀다.
유현은 방상씨의 책을 확인하고, 속으로 감탄사를 흘렸다.
‘하도 기묘해서 누구인가 했더니, 여자였을 줄이야.’
괴선이 쓴 방상씨 가면에는 주술적인 처리가 돼서 함부로 정체를 짐작할 수 없었지만, 유현은 달랐다. 그가 지닌 책을 보는 능력은 고작 저런 것에 막히지 않았다.
‘이름은 손서영. 나이는 스물넷인가? 생각보다 어리군. 책이 뿜는 빛은 은은한 금색이라……. 잠재 능력은 우리 혜림 씨보다 못하지만, 그래도 신성 3인방에 들 정도는 된다는 건가?’
유현이 그렇게 속으로 판단할 때, 멍하니 허공을 보던 방상씨가 갑자기 어깨를 부르르 떨더니 유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방상씨 가면의 뻥 뚫린 4개의 눈구멍은 어둠을 그릇에 담은 것처럼 새까맸다. 유현은 그것을 보면서도 놀라지 않고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부엉!
하지만, 유현의 어깨에 올라타 있던 백효는 방상씨의 시선에 기겁하며 날개를 퍼덕였다.
‘아. 그거 때문인가?’
유현은 왜 백효가 놀랐는지 이유를 짐작했다. 방상씨는 역귀를 쫓는 가면이지만. 부엉이를 겁주게 하는 데 쓰인 ‘역사’가 있다.
조선시대의 왕, 태종 이방원이 부엉이 소리를 두려워해서 밤에 금군들의 얼굴에 방상씨 탈을 쓰게 만들어 경계를 세운 일화 때문이었다.
“백효야. 괜찮아. 겁먹지 마.”
유현은 백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백효는 눈을 감으며 유현의 손길을 만끽했다. 유현은 뒤늦게 방상씨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어깨 위의 백효에게 향하고 있는 걸 알아차렸다.
‘뭐지? 우리 백효가 걸리는 건가?’
혹시 잡아갈지 몰라 유현은 백효를 더욱 손으로 감싸듯 몸을 가렸다. 워낙 작아서 한 손으로도 몸을 반절 이상을 가릴 수 있었다.
유현은 다른 사람들의 모습도 살폈다.
‘다른 클랜에서 보낸 중견급 컬렉터는 다들 어디서 들어 볼 법한 사람들이네. 그나마 이 중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건, 한울에서 보낸 백색창 황준우인가. 훗날 상급 컬렉터로 올라갈 인재였지.’
한울에서 저 정도의 컬렉터를 보낼 줄 몰랐다. 아무래도 한울은 이번 일이 성공하길 바라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반대로 황혼의 장막 쪽은…….’
유현의 가늘어진 시선의 사이로 3명의 컬렉터가 보였다.
후드를 뒤집어쓴 키 작은 남자, 기이할 정도로 키가 큰 흑인 혼혈, 턱수염을 길게 기른 중년 남성.
겉모습만 보면 주변 개성 넘치는 컬렉터들과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유현은 겉모습이 아닌 그 내면을 살폈다.
‘위험한 놈들을 보냈군.’
놈들은 애써 숨기고 있겠지만, 종말 10년 차 유현의 눈은 피할 수 없었다. 놈들은 위험한 부류였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피 냄새가 풍기는…… 잭 더 리퍼 김한중과 같은 놈들.
황혼의 장막은 어째서 저런 녀석들을 보낸 걸까? 유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곧바로 결론을 내렸다.
‘과연. 그런 거였군.’
황혼의 장막은 애초에 이번 탐사에 성공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망치려면 망쳤지.
‘황혼의 장막 클랜장이 이런 선택을 내렸을 리가 없어. 오히려 뒤에서 누군가가 사태를 종용했다. 대충 누구인지 감은 잡히네.’
황혼의 장막은 펜타그램 부서와 계약을 맺고 있다. 분명, 펜타그램 소속 텔러가 이번 인선에 손을 댄 것이리라.
떠오르는 얼굴은 천진난만한 척 웃는 자그마한 요정.
종말의 시작과 함께 사람들의 머리를 터뜨리던 그 녀석이다.
‘이번에 벌인 것이 나의 짓인 걸 눈치챘군. 뭐, 바보가 아닌 이상 언젠가 들킬 거라고 생각은 했었지.’
저 3명은 아가엘이 보내는 경고이자 복수였다.
김한중처럼 몰래 키워 온 중견급 컬렉터 셋을 보냈다는 것은 나름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이번 일을 반드시 방해하겠다는 의지가 돋보였다.
‘저 셋도 버리는 패로 쓰이는 것을 모르진 않을 텐데, 알면서도 온 건가? 세뇌하듯이 키운 녀석들이로군.’
김한중은 그래도 개인적인 욕망을 숨기지 않는 케이스였는데, 저 셋은 아무리 봐도 감정이 없는 인형에 지나지 않았다. 김한중보다는 급이 떨어지는 놈들이지만, 그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분명, 자신의 목숨을 버려 가면서까지 이번 탐사를 망치려 들 테니까.
‘몰랐으면 모를까, 알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어딜 그렇게 보는 거지?”
유현의 시선이 조금 전부터 한곳에 머물러 있자, 권지아가 물었다.
“저기 황혼의 장막에서 보낸 세 명입니다. 보이시죠?”
“그래.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놈들이로군.”
“네. 그리고 녀석들은 이번 탐사를 망치려고 들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키워진 놈들이니까요.”
“……목표는 우리인가?”
권지아는 구구절절하게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저 자연스럽게 유현이 말해 준 사실을 곱씹으며 그 이유를 찾아냈다.
“저쪽 텔러한테 보통 밉보였어야죠.”
“사상세계 일만으로도 벅찬데, 신경 쓸 게 더 늘었군.”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도 끝났다.
서로 친하게 지내려는 사람들은 없었다. 여기에 모인 다른 컬렉터들은 모두 잠재적인 경쟁자였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 곧 들어갈 사상세계가 위험한 곳이니만큼, 서로 경계를 하거나 기 싸움을 하는 일은 없었다.
컬렉터들도 이런 상황에서 싫어도 손을 잡아야 한다는 걸 알았다.
“아아. 모두 주목.”
모두의 시선이 소리가 난 곳을 향했다.
그곳에는 각진 얼굴의 중년인이 확성기를 들고 서 있었다.
“나는 협회의 특수 부대 2팀의 부팀장 박철오라고 한다. 그리고 이번 제3차 탐사대의 지휘를 맡게 됐지.”
그는 좌중을 쓰윽 훑어봤다. 절도 있고 간결한 행동은 오랫동안 조직에 몸을 담아 온 군인 같았다. 실제로 박철오는 변혁 전에는 부사관 출신으로 컬렉터로 각성한 인물이었다.
“이 자리에 모인 귀관들이 어디에서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임을 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부터 가야 하는 곳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다. 그곳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모두가 알 거라 믿는다. 그러니 최대한 나의 지시에 따라 줬으면 좋겠군. 이쪽도 입장은 이해하고 있으니, 무조건적인 복종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최소한의 선만 지키길 바랄 뿐.”
그의 말에 일부 컬렉터들이 ‘그 정도야, 뭐’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소속이 다른 중견급이 모인 만큼 자존심이 부딪치며 충돌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을, 박철오는 미연에 방지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는 호의적인 반응에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기에 앞서 정보를 알려 주지. 물론, 사전에 자료를 받은 사람들은 읽어 봤으니 알 거다. 브리핑도 했으니, 모를 수가 없겠지. 이번에 우리가 가야 하는 곳은 그만큼 아주 위험한 곳이니까. 다들 알고 있겠지? 바다. 그리고 거대 괴수.”
“후. 당연히 알죠.”
“바다라……. 이번엔 꽤나 배경이 좋지 않은데.”
“제길 바다에 괴수는 어떻게 되먹은 조합이야.”
이미 사전에 들어서 알고 있는 몇몇 컬렉터가 불만을 토했다.
사전에 언급이 됐던 백색의 괴수, 그러니까 거대한 환상체를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꽤나 벅차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배경까지 망망대해라고 한다.
생존자가 알려 준 정보는 극히 적었지만, 그 일부만으로도 컬렉터들을 질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걱정하지 마라. 그에 따른 대비는 이쪽도 확실하게 했으니까.”
박철오는 자신의 뒤에 나열된 물건들을 보여 주며 그렇게 말했다.
“저거 뭐야…… 거대 괴수용 무구잖아?”
“저만한 걸 가져왔다니. 이번 3차가 상당히 준비했다는 게 헛소문이 아니었어.”
특수 제작 된 물건들을 본 일부 컬렉터들의 얼굴이 풀렸다. 유현도 협회의 준비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폭발 이야기를 담은 대포 [천자총통]. 10m가 넘는 크기마저 집어삼켜서 포박하는 [천망]. 거대한 환상체를 상대로 꽤나 중요한 것들을 가져왔군.’
어지간한 환상체라도 한 방에 일소시키거나 사로잡을 무구를 접한 컬렉터들은 꽤나 안도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유현은 너무 마음을 놓지는 않았다.
‘준비는 철저하게 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지. 게다가 그 거대 괴수 환상체에 대한 세세한 정보도 없고.’
녀석의 정치가 얼마나 거대한지, 혹은 어떻게 생겼는지, 그런 정보는 일절 없었다.
생존자가 말한 것은 단 하나. 놈은 아주 거대한 괴물 환상체이며, 그 크기가 ‘매우’ 컸다고 했을 뿐.
명확한 수치가 명시되지 않아서 불안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뭐가 어찌 됐든, 반드시 성공할 테니까.’
박철오의 말이 끝나고 협회 소속 컬렉터들이 각기 천망과 천자총통 5문을 챙겼다.
“그러면, 가지.”
박철오가 앞섰고 나머지가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30명의 3차 탐사대는 모두 사상세계로 돌입했다.
촤아악!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바다의 소금기가 가득한 냄새와 함께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유현은 주변을 살폈다.
보이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
그리고 유현을 포함한 탐사대가 서 있는 5척의 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