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141화
생존자가 돌아왔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컸다. 유현은 최중모가 왜 이런 중요한 사실을 자신에게 따로 알려 줬는지, 그 속뜻을 읽으려 했다.
단지 그냥 알려 줬다고 보기에는 아직 그들의 관계는 그렇게 돈독하지 않았다.
“생존자는 누구고, 상태는 어떻죠?”
-이번 2차 탐사대의 팀장인 종4품 컬렉터입니다. 상태는 썩 좋다고 할 수는 없죠.
“흠. 대외비 아니었나요? 묻는다고, 다 말해 줘도 되는 겁니까?”
-어차피, 곧 뉴스를 타고 퍼질 정보입니다. 조금 일찍 알려 준다고 해서 나쁠 건 없죠.
“그런데도 따로 연락을 취하셨을 정도면, 남들은 모르는 중요한 사실을 따로 전해 주려는 의도라 생각하겠습니다.”
유현은 최중모가 어떤 생각으로 자신에게 연락을 취했는지, 짐작했다.
곧 있을 3차 탐사대에서 백화 매니지먼트가 나서야 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최중모의 입장에서는 유현에게 정보를 푸는 것이 차라리 났다고 판단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선행으로 상대방에게 빚을 지울 수 있는 것도 한몫했다.
-일단 정보를 전하면, 내부의 환경은 바다라고 합니다. 생존자는 지금 혼수상태입니다만, 쓰러지기 직전에 한 말이 있습니다.
“그게 뭐죠?”
-아주 하얗고, 거대한 괴물을…… 보았다더군요.
“하얗고, 거대한 괴물이라…….”
그것은 유현이라 하더라도 갈피를 잡기 어려운 말이었다.
“혹시, 그것 말고 다른 것은 없습니까?”
-저도 아는 것은 이게 전부입니다.
최중모의 정보는 거기까지였다. 그는 조만간 3차 탐사대가 모집될 거라는 말을 끝으로 연락을 끊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강혜림이 물었다.
“3차 탐사대라면, 저희가 포함되겠죠?”
“그럴 겁니다. 그것도 아주 높은 확률로.”
“그런데 2차 탐사대에서 생존자가 왔다면, 그것만으로 탐사는 끝난 게 아닌가요? 굳이 3차까지 꾸리는 건 아니라고 보는데.”
강혜림의 보기엔 탐사는 이미 2차 탐사대의 생존자가 있는 시점에서 끝이었다.
비록 희생자가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생환자가 있다는 것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끝마쳤다는 소리니까.
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는 않을 겁니다.”
“네? 왜요?”
“2차 탐사대 중에서 생존자가 있다는 것은 다행인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가 완전하게 탐사 임무를 끝냈다고 볼 수 없죠. 유일한 생존자는 돌아오자마자 쓰러졌고, 상태가 나쁘다고 했습니다. 그는 겨우 돌아온 겁니다. 그리고 꺼낸 정보는 새하얀 괴물밖에 없었죠.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설마…… 그것 외에 다른 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건가요?”
강혜림도 여기까지 오니, 상황이 보통 심각한 게 아님을 인지했다.
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협회는 3차 탐사대를 준비한다고 했습니다. 그들도 아는 거죠. 2차는 생존자 1명이 있지만, 실패했다는 것을. 하얀 괴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밖에 저 안쪽에 또 다른 무엇이 있는지. 그런 것을 완벽히 알아야 탐사라 할 수 있습니다.”
“으아. 기본적인 정보가 없이 사상세계에 들어가야 한다니. 엄청 위험하겠네요.”
“그렇죠. 실제로 컬렉터 중에서 위험도가 가장 높은 것은 탐사대의 역할이죠.”
“그, 그러면 어쩌죠?”
“하지만 반대로, 탐사가 성공적으로 끝나기만 해도 다른 컬렉터와는 급이 다른 보수가 들어옵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 있었다.
보상은 금전적인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명성은 물론이거니와 탐사에 참여하는 클랜이나 매니저에 사상세계의 부산물 소유 권한을 얻게 된다.
지난번 수정 동굴 같은 곳이 뽑힌다면, 누구 할 것 없이 탐사대를 하겠다고 지원할 것이다.
“뭐, 근데 반응을 보면 위험도는 그거대로 높고, 안쪽에서 부산물을 챙길 수 있을지도 장담이 안 되는군요.”
바다라는 배경의 특성상 뭘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미래 지식이 이번만큼은 쓸모가 없었다.
‘그게 제일 크지.’
모든 것을 알던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상황.
그나마 지구의 이야기가 뽑히면 여지라도 있겠지만,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 구성된 사상세계라면 정말 답도 없어진다.
가만히 듣고 있던 권지아가 의견을 냈다.
“이대로 진행해도 괜찮겠나? 그냥, 탐사대 차출을 거부하는 것도 방법일 텐데?”
“그게 먹혔으면, 저도 그냥 무시했겠죠. 그런데 여기까지 온 이상 그게 안 되는 걸 어째요. 아마 다른 클랜들은 무조건 저희를 저격할 겁니다. 이게 다 저희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책임을 져야 한다. 뭐, 이런 식으로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할까요?”
“반드시 그렇게 하니까,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클랜이 정말 백화 매니지먼트의 책임 소재를 묻고자,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사상세계가 새로 생기는 건 차라리 더 나은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번 사상세계의 탐사대를 빌미로 백화 매니지먼트를 견제하고, 그들의 전력을 깎아 먹는 것이었다.
“우릴 저 안으로 떠민 다음에 밖에서는 아주 망하라고 고사를 지을 겁니다. 그 녀석들 하는 짓이야 워낙 뻔하죠.”
사상세계가 너무 쉬웠으면 그때는 백화 매니지먼트의 책임이고 자시고, 클랜들은 자기 이권을 위해 숟가락을 들이밀었을 거다.
하지만, 이번 사상세계는 무려 협회가 2번이나 되는 탐사대를 꾸렸음에도 실패했다.
최대로 입장할 수 있는 컬렉터는 종4품이 한계. 중견급 컬렉터들로 꾸미는 파티마저 전멸의 위험성을 지녔다는 것은 위험도가 최상급이라는 소리.
클랜이나 매니지먼트에서 위험을 무릅쓸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니 기왕 이렇게 된 거, 저희가 자발적으로 나서야겠죠.”
“하아. 진짜 그 방법밖에 없는 거죠?”
“그래도 남들이 강제로 하라고 시켜서 하는 것보다는, 솔선수범해서 나서는 것이 이미지에는 더욱 좋으니까요. 저희에게 불만을 품었던 사람들도 그것을 빌미로 다시 보게 되겠죠.”
“그런데, 죽으면 다 끝이잖아요.”
“안 죽으면 됩니다.”
유현도 본인이 내뱉은 거치고는 참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어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그래도 그는 자기 뜻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
“결국, 이건 도박입니다. 저희가 안에 들어가서 성공할지, 실패할지. 실패하면 끝. 하지만 성공하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보상을 얻게 되죠. 죽음이냐 일확천금이냐.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양자택일입니다.”
“으엑. 운에 맡기는 건 별로인데.”
“선택지가 2개지만, 결과는 운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저희가 안에 들어가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테니까요.”
가만히 대화를 지켜보던 성유찬이 어쩐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어, 음. 진짜 괜찮겠죠? 네? 저 이제 막 취직했는데, 바로 직장 잃기는 싫은데…….”
“…….”
“…….”
찌릿!
성유찬이 재수 없는 소리를 하자, 권지아와 강혜림이 그를 강하게 쏘아봤다.
워낙 맥이 없는 성유찬은 두 컬렉터의 강렬한 시선에 어깨를 움츠리며 꼬리를 말았다.
“재수 없는 소리 마라.”
“맞아요. 누가 실패한 데요?”
“아, 아니면 말고요. ……으윽. 배가.”
성유찬은 위가 쓰린지 배를 부여잡으며 자리를 떠났다. 컴퓨터만 있으면 사람이 참 용감해지는데, 저렇게 면전에서 대화를 나눌 때는 상당히 힘없고 소심한 남자였다.
유현은 성유찬에게 너무 성급하게 단체 생활을 권한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뭐,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중요한 건 향후 있을 3차 탐사니까.’
자세를 가다듬으며 앞으로의 일을 떠올리는 유현을 보며, 권지아와 강혜림은 또 저런다는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크건 작건, 일과 관련되면 유현의 눈빛은 초롱초롱한 빛으로 반짝였다.
* * *
며칠 후.
유현의 예상은 보기 좋게 적중했다.
협회의 3차 탐사대를 모집하는 공문이 내려오자, 일부 클랜들은 서로 합이라도 맞춘 듯 백화 매니지먼트의 책임성을 주장했다.
평소에 클랜과 척을 지고 있는 협회는 대형 클랜의 자발적 참여를 말했지만, 그들도 필사적으로 백화 매니지먼트를 지키려고 들지 않았다.
‘뭐, 이럴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해.’
유현은 이럴 줄 알고 백화 매니지먼트는 3차 탐사대에 참여하겠다고 이미 공표를 한 뒤였다.
클랜의 입장에서는 꽤나 놀랄 일이었다.
누가 봐도 이번 사상세계는 독이 든 성배였다. 죽으러 가라는 말이나 다름없는데, 가지 않겠다고 뻗대지 않고 자발적으로 손을 드는 것은 자살행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도 유현이 뭘 노리는지 모르는 건 아니었다.
“과연. 어차피 가게 될 거, 자발적으로 나서서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겠다. 이건가?”
“이런 결단을 내리기도 쉽지는 않았을 텐데.”
“하지만, 그래 봤자. 죽으면 끝인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설마, 성공의 가능성을 점치기라도 한 건가?”
유현의 행동은 ‘살아 돌아왔을 때’를 상정한 것이었다. 클랜과 협회의 높으신 분들은 그 행동을 비웃었다.
이성, 계산적으로 봤을 때 이번 3차 탐사대를 꾸려도 성공률은 3할 아래다.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고 되는대로 내지르는 말일 뿐이라고 모두가 그렇게 평가를 내렸다.
남들이 보면 오기를 부리는 거나 다름없는 미친 짓이었지만, 유현도 생각이 다 있었다.
“어차피 이쪽에서 보낼 사람이야, 나 포함해서 세 명이 전부인데. 뭐, 어쩔 건데?”
1차 탐사대 7명.
2차 탐사대 12명.
3차 탐사대는 이전보다 더 많은 숫자를 꾸리는 걸 감안하면, 백화 매니지먼트 3명을 제외해도 최소 15명 이상은 더 뽑아야 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했다.
“과연, 클랜에서 자기 사람들을 보내겠다고 나서는 인간이 있을까?”
너희들은 안 갈 줄 알았지?
유현은 속으로 그들을 비웃었다.
그 말대로였다. 유현을 비웃은 클랜의 사람들은 뒤늦게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온 걸 깨닫고 침묵을 고수했다.
협회에서도 일부 인원을 지원하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클랜이 짊어져야 하는 책무가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중견급 컬렉터를 보내야 하는데, 가면 죽는 걸 뻔히 알면서 어떻게 보내?’
‘하급이면 모를까, 중견급이면 그래도 베테랑인데. 이런 인재를 함부로 내놓으라고?’
‘하지만,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할 수도 없다. 정부에서 공문이 내려온 이상, 이것은 인원을 차출해야 하는 것은 사실상 필수야.’
클랜은 기본적으로 거대한 사기업의 형태를 띤다. 그 덕분에 여러모로 혜택을 받기도 하지만, 혜택을 받는 만큼 의무도 강요된다.
바로, 지금처럼.
사상세계의 탐사대를 차출하기 위한 사람을 뽑을 때는 최우선으로 고려되는 것이 클랜이다.
특히, 황혼의 장막과 한울이 더욱 그러했다.
“쯧. 외통수로군.”
한울 클랜의 2팀장 신동철은 정부에서 내려온 공문을 보며 혀를 찼다.
황혼의 장막 클랜이 저지른 일에 의도치 않게 엮여서 정부에 책이 잡힌 마당에 탐사대 차출까지 말이 나왔다.
말이 권장이지, 이건 사실상 협박이나 다름없다.
안 그래도 이번 일로 한울의 위상이 크게 내려간 상황이었다. 심지어, 여전히 법적인 공방은 계속되고 있어서 정부의 말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나한테 책임을 다 떠넘기다니.”
신동철은 1팀장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일을 벌였지만, 결국 실패했다.
모든 일이 성공할 수는 없지만, 실패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신동철은 클랜장이 자신에게 직접 꺼낸 말을 떠올리며 이를 으득 갈았다.
-이번 일은 자네의 책임이 크니, 이번에 차출하는 사람은 자네 팀에서 뽑게.
그야말로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일이었지만, 그를 더욱 짜증나게 하는 것은 반박조차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였다.
‘전광석 그 머저리에게 일을 맡긴 것이 잘못이었다. 후우. 그래. 인제 와서 후회하기는 늦었지. 지금은 시키는 대로 한다.’
신동철은 이런 상황에서 자존심을 세우려 하지 않았다.
지금은 필요하니 고개를 숙이고, 상대방이 하는 말을 고분고분 들어준다. 하지만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두고 봐라.’
뜻밖의 여파를 맞은 것은 황혼의 장막과 계약을 맺은 펜타그램 부서의 아가엘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역시 그랬었어!”
그녀는 대체 누가 황혼의 장막을 엿 먹였는지, 천고의 수소문 끝에 그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 이 하찮은 무소속 텔러 따위가!”
백화 매니지먼트.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유현의 얼굴이 떠올라 아가엘의 인상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물증은 없었고 있는 것은 심증뿐, 그것도 백화 매니지먼트의 알리바이는 완벽했다.
하지만, 아가엘은 믿지 않았다. 녀석이다. 이건 분명 녀석의 짓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것은 인지를 초월한 무언가가 계시를 주듯 내린 판단이었다.
“으드득! 감히! 감히이이이!!”
아가엘은 관조자의 방의 물건을 때려 부수고 난리를 피웠다. 그래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그것은 이번에 황혼의 장막에 내려온 공문 때문이었다.
황혼의 장막은 3차 탐사대의 컬렉터를 내놓으라는 명령이었다.
안 그래도 불법 사상세계 점거로 정부에게 찍소리도 못하는 황혼의 장막은 눈뜬 채로 코를 베여 갈 수밖에 없었다.
아가엘은 자신이 부릴 장기 말이 줄어드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아니, 잠깐만.’
아가엘은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백화 매니지먼트, 그 빌어먹을 녀석도 이번 3차 탐사대에 들어간다고 했었지. 그러면 이건 역으로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녀석들이 3차 탐사를 성공할 리가 없지만, 만의 하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부에서 방해해 탐사를 망치게 한다면…… 그 눈엣가시 같은 녀석을 없앨 수 있어.’
그러기 위해서는 죽음을 불사하며 자신의 몸을 던질 녀석이 필요했다.
‘그런 녀석들이야, 당연히 있지.’
아가엘이의 눈동자가 초승달처럼 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