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139화
“……이게 다 뭐예요?”
백서련은 사무실에 들어온 기기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앞에는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컴퓨터의 본체와 모니터들이 즐비해 있었다. 온갖 복잡하게 엮여있는 선들은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 앞에는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건지 모를 백수 같은 청년도 있었다.
“저희 매니지에 제가 새로 영입한 요원입니다.”
“……유현 씨. 제가 잠시 머리가 안 따라가서 그러는데, 저희가 언제 새 멤버가 필요했죠? 저분 혹시 컬렉터에요?”
“아뇨. 컬렉터는 아니고, 나름 인지도 높은 해커입니다.”
“해, 해커요? 갑자기 해커는 왜요?!”
“왜긴 왜겠어요. 필요하니까 영입했죠. 유찬 씨. 여기는 백서련 씨입니다. 저희 백화 매니지먼트의 대표님이죠.”
“성유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대표님.”
“네, 네? 아, 네. 잘 부탁해요.”
성유찬의 인사를 받으며 백서련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성유찬은 어딘가 맥이 없어 보이는 남자였다. 몸은 호리호리한데, 운동을 하지 않아서 말랐다는 인상이 강했다.
머리카락도 남자치고는 길었다. 정리하지 않아서 그런지, 앞머리가 한쪽 눈을 가리고 있었다. 심지어 복장도 후줄근하기까지.
너무 해커의 표본같이 생긴 모습이라, 뭐라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대표님? 음. 뭐, 보는 눈은 있네.’
백서련은 성유찬의 모습보다, 자신을 대표님이라 깍듯이 불러 주는 태도가 반가웠다.
그녀가 백화 매니지먼트의 대표였지만, 지금까지 매니지에 소속된 세 명이 그녀를 어떻게 대했던가? 강혜림이야 친하니 언니 동생 하는 사이지만, 유현은 그녀를 대표 취급해 주지도 않았다. 권지아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새로 들어온 신입(?)이 그녀를 대표님이라고 불러 준 것이다.
백서련의 경계심은 뜨거운 뙤약볕 아래의 아이스크림마냥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뭐, 사람 한 명 정도 더 와도 상관은 없겠죠.”
“……참 쉬운 사람이네요.”
“네? 유현 씨? 뭐라고요?”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쪽을 향해 웃으면서 고개를 돌리는 백서련을 보며 유현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시선을 피했다.
“으음. 그런데 이렇게 보니까, 공간이 좀 부족하기는 하네요.”
유현은 사무실의 일부를 차지하는 전자 기기들을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백화 매니지먼트가 원래부터 좁은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는 거야 지내면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다만, 넷이서 머무르면서 좁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이번에 성유찬이 들어오면서 그 부족한 부분이 통감 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좁은 사무실에 성유찬이 사용하는 기기가 대량으로 들어온 탓에 사무실이 더욱 좁아 보였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겠네요.”
유현은 슬슬 백화 매니지먼트가 새로운 사무실을 구해야 함을 실감했다.
그리고 그것은 백서련도 마찬가지였다.
“서련 씨. 부산물 처분은 전부 끝났나요?”
“네. 정산도 전부 다 했어요.”
“그렇다면 제가 줬던 현금과 합쳐서, 꽤나 돈이 쌓였겠네요. 어떻습니까? 슬슬 저희도 이사를 해야겠는데요.”
백서련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확인을 한 곳이 몇 군데 있어요. 그중에서 가장 괜찮은 부분을 비교해서 고르려고 하니, 좀 시간이 걸려서 그렇죠.”
“그냥 적당한 저택으로는 부족할 겁니다. 이제 슬슬 혜림 씨와 지아 씨가 훈련할 공간도 필요하고, 그 외에 앞으로 새로 들어올 사람들을 고려해서 여가나 거주와 관련된 공간도 필요하고요. 어중간한 크기로는 안 되겠네요.”
땅값이 비싼 서울에서 그런 곳을 구하기가 썩 쉽지 않았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매물이 없는 것이 더욱 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돈은 충분히 있어서 대출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었다.
“적당히 꼬마 빌딩 정도 사면 괜찮겠네요.”
“경쟁이 엄청 치열할 거예요. 거기에 더불어 내부 인테리어도 싹 다 뜯어고쳐야 하고요.”
“시간이 꽤 걸리겠죠?”
“짧게 잡아도 2주 이상은요.”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성유찬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저기…… 제가 도와드릴까요?”
“네?”
“좋아 보이는 건물 하나 찾으시는 거 같은데, 제가 또 이런 부분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거든요. 필요한 조건만 말씀드리면, 제가 거기에 맞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 그래 주시겠어요?”
백서련은 성유찬이 뛰어난 프로그래머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가 뒷세계에서 유명한 블랙 맘바라는 해커인 사실까지는 모른다. 그래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그러라고 말했다.
유현은 그 모습을 보며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아마 성유찬이 저렇게 말한다면 분명,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가져오리라.
백서련이 놀라는 모습이 벌써부터 눈앞에 선했다.
‘뭐. 어련히 잘하겠지.’
그리고 성유찬이 자신이 나서겠다고 조심스레 말을 하고 나서 15분 뒤.
“다 했습니다.”
“벌써요?!”
백서련이 기함하며 놀랐다. 그녀는 최소 2~3일 정도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15분은 짧아도 나무 짧았다.
혹시나 그가 일을 대충 처리하기라도 한 걸까? 만약에 그렇다면 대표로서 따끔한 한마디를 해 줄 생각이었다.
성유찬이 건넨 정보를 확인한 백서련은 자료와 성유찬을 번갈아 살폈다.
“어, 딱 제가 원하던 자료……네요? 아니 근데,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여전히 믿기지 않는지, 어안이 벙벙하며 중얼거리는 백서련에게 성유찬은 쑥스러운지 뒤통수를 긁적였다.
“이런 정규 루트로 확인하는 건 오랜만이라 시간이 좀 더 걸렸네요.”
“네? 이게 시간이 걸린 거라고요?”
“예전이었으면 3분이면 충분했거든요. 아, 참. 그리고 매입 비용을 절감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거 매물을 낸 사람의 정보를 몰래 확인해 보니까 법적으로 여러 가지 켕기는 게 많은 사람이더라고요. 이걸 빌미로 협상을 시도하면 가격을 꽤나 후려칠 수 있을 겁니다.”
“네?!”
자기 생각을 아득히 뛰어넘는 말에 백서련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녀는 살짝 울먹이는 표정으로 옆에 선 유현을 올려다봤다.
대체 어디서 저런 사람을 주워 왔냐고, 그녀는 눈빛으로 강하게 항의하고 있었다.
“제가 지금까지 뽑은 사람들이 무능한 거 보셨습니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백서련은 말을 하려다 말고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생각해 보면 그녀가 지금까지 놀랄 만한 일들은 이미 한가득하지 않았던가?
당장 눈앞의 강유현만 해도 세상을 뒤져 봐도 절대 없을 별종 텔러다.
백서련은 이제 상식을 놓기로 했다. 이미, 그녀는 돌아가기에는 너무 먼 길을 오고 말았다.
“……다음부터는, 제발 언질이라도 좀 주세요.”
“서련 씨 놀라는 모습이 워낙 재미있어서, 힘들겠네요.”
“저 대표거든요?”
“네. 대표님. 힘내세요. 아자아자, 파이팅.”
“아니, 진짜.”
둘이 그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성유찬은 앞으로 할 일들을 처리하겠다며 열심히 키보드를 두들겼다. 여러 개의 모니터 사이로 온갖 데이터들이 흘러가는 모습은 극장의 스크린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다 끝났습니다. 이런 기초적인 것도 오랜만에 하니까 좀 괜찮네요.”
그게 기초적인 거라고?
후련하게 말하는 성유찬을 보며, 백서련은 그저 잘했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칭찬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맥이 없었다.
* * *
“여기가 오늘부터 저희 백화 매니지먼트의 새로운 사무실입니다.”
“와!”
역세권에 있는 자그마한 빌딩을 본 강혜림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총 6층으로 이루어진 빌딩 전체가 백화 매니지먼트의 소유였다. 심지어 지하 2층까지 있었고, 내부 리모델링까지 모두 끝낸 덕분에 이 이상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상태였다.
백서련은 여전히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이걸…… 기존의 반값으로 계약했다는 게 놀랍네요.”
“별거 아니었습니다.”
성유찬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별거 아니었지만, 백서련은 납득하기 힘들었다. 유현이 대체 어디서 저런 사람을 데려왔나 싶더니, 성유찬도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에구, 그래.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녀는 걱정을 하면 자신만 손해라고 생각했다.
시공이 모두 끝난 내부는 신축 건물 이상으로 매우 깔끔했다. 가구가 구비된 넓은 거실을 본 강혜림이 물었다.
“와! 이제 저희도 여기서 사는 거예요?”
“물론입니다.”
강혜림과 권지아는 이전까지 각자 원룸에서 지내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슬슬 그녀들이 출근하는 것을 틈타 몰래 접근하려는 기자들도 있던 참에 이사까지 한 것이었다.
매니지먼트 대표인 백서련과 성유찬, 심지어 유현이 머물 방까지 따로 있었다.
심지어 내부에서는 훈련할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되어 있는 데다가 헬스장까지 겸비했다. 업무 공간, 휴식 공간, 주거 공간을 따로 구분해도 사람의 수가 적다 보니, 여유가 있었다.
“그래도 공간이 많이 남는 거 같은데.”
방의 수를 확인한 권지아가 날카로운 눈썰미를 뽐냈다.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저희 매니지먼트에 들어올 컬렉터들을 생각하면 당연하죠. 일단, 저는 네 번째까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2명이 더 추가되는 거군. 그렇다고 쳐도 방이 조금 더 남는 거 같다만?”
“아. 거기도 물론 주인이 있죠. 셀린.”
유현이 부르자 셀린이 공간을 찢고 나타났다.
그녀의 등장에 성유찬의 눈이 찢어지라 커졌다. 기익족, 그것도 텔러가 공간을 가르며 나타나는 모습은 아무리 그라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저기 방 보이지?”
“네. 그렇습니다.”
“앞으로 네가 지낼 곳이다.”
“네?”
무표정하던 셀린의 얼굴에 금이 갔다. 그녀는 유현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 기색이었다.
“뭘 그렇게 놀라? 너도 같이 일을 하니까, 저기서 지내면 돼.”
“하지만, 선배님. 저는 가호를 지닌 텔러입니다.”
“가호를 지녔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너도 우리와 한 식구이기 때문이지. 네가 사용하고 하지 않고는 순전히 너의 자유야. 다만, 저기는 누가 뭐래도 너의 방이라는 것만 알아 둬.”
셀린은 유현의 말에 묘한 기분을 느꼈다.
유현이 일반적인 텔러와 다른 건 이미 겪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자신을 위해서 저렇게 방까지 따로 마련해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한 식구라니.’
셀린에게 그 말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말 뿐만이 아닌 실제 선물을 받으니, 더욱 그랬다.
기익족에게는 가족이라는 개념이 없다. 그저 빛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자라는 게 기익족이었다.
그들은 대화도 필요 없었다. 빛으로 이루어진 날개는 서로의 사고를 자연스럽게 통합해서 감정을 공유하니까.
그런 기익족의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텔러가 되기 위해 천체주식회사에 들어온 셀린은 어떻게 보면 괴짜나 다름없었다.
누구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별종. 그런 취급은 천체주식회사에 들어와서도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유현은 달랐다.
그녀의 정체를 알면서도 묵인했고, 그녀의 능력을 높이 샀으며, 심지어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 줬다.
난생처음 받는 대접에 셀린은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그녀의 시선은 그저 자신에게 배정받은 개인 방문에 못 박힌 듯 고정됐다.
“……신기하네요.”
성유찬은 셀린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왜요. 한눈에 반했습니까?”
“그런 거 아닙니다.”
성유찬은 고개를 저었다. 셀린은 분명 아름답지만, 범접할 수 없는 기운 때문에 뭐라 표현하기 애매한 존재였다.
다만, 그녀의 등 뒤에 펼쳐진 빛나는 날개가 신기했을 뿐.
“그냥, 텔러를 처음 봐서 그렇습니다.”
“저도 텔러인데요?”
“……그러네요?”
성유찬은 뒤늦게 유현이 텔러임을 자각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이 남자는 분명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꼭 오래 알고 지낸 고향의 친구처럼 느껴졌으니까.
텔러라는 걸 알고 있어도, 가끔 보면 그냥 사람 같았다.
“그보다 유찬 씨는 마음에 듭니까?”
“네. 뭐, 나쁘진 않죠.”
성유찬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에게도 개인 방이 주어졌고, 심지어 개인 컴퓨터 룸까지 있었다. 이전에 지내던 좁아터진 방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단체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 걸렸지만, 분위기를 보면 강압적인 것은 하나도 없이 자유로웠다. 성유찬은 이곳에 오기 전까지 했던 자신의 걱정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깨달았다.
“유찬 씨에게 크게 강요하는 건 없습니다. 그저 주기적으로 최근 정세에 대해서 알아보고, 알려주기만 하면 되니까요. 보수도 그에 걸맞게 드릴 겁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성유찬은 성격을 굳이 꼽자면 사회 부적응자에 가까웠다. 본인도 그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해커로 활동을 하면서도 팀을 꾸리거나 동료를 만들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혼자였고, 어떻게 보면 제멋대로 활동했다.
그런데 유현과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누고 그의 수완을 느끼다 보면, 스스로 폐급이라 생각한 자신이 타인과 이렇게나 멀쩡하게 지낼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뭐, 됐어. 나는 컴퓨터만 만질 수 있으면 뭐든 좋으니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성유찬은 적응력이 매우 빠른 사람이었다. 그 덕분에 미래에서 종말이 벌어져도 거기서 정보 상인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유현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사무실을 구하니, 무언가 본격적으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사건만 안 터지면 완벽하겠지만.’
그런 유현의 기대를 배신하듯, 최중모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제네시스 넷이 아닌 유현이 새로 개통한 기기를 통한 연락이었다.
“네. 최중모 씨. 무슨 일이시죠?”
-큰일입니다. 유현 씨.
“……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시죠?”
통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최중모의 다급한 목소리에 유현 또한 심각성을 느끼고 조용히 물었다.
-사상세계입니다.
“사상세계라니, 어떤?”
-지금까지 관측되지 않았던 새로운 사상세계가 나타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