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138화
허억 허억!
성유찬은 자신을 쫓는 사람들을 피해 암시장 내부를 필사적으로 뛰었다.
‘제길! 빌어먹을! 꼬리가 너무 길었어!’
성유찬은 해커였다. 그것으로 정보를 사거나 팔면서 돈을 벌어 왔다.
해커인 그는 언제나 떳떳하게 돈을 벌지는 않았다. 오히려 범죄 조직의 정보를 해킹으로 털어먹어서 다른 조직에 파는 일도 있었다.
성유찬은 스스로 천재라고 자부했다. 그래서 무슨 짓을 해도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지금 쫓기는 것은 그것의 연장선이었다. 꼬리가 긴 나머지 상대 조직이 고용한 해커에게 꼬리를 밟혀서 쫓기고 만 것이었다.
‘후욱. 괜찮아. 이 주변 지리는 내가 잘 아니까.’
성유찬은 뒤에서 쫓아오는 덩치들이 조금씩 멀어지는 걸 확인하며 사람들이 오가지 않는 골목길로 숨어들었다. 들킨 것은 운이 없다고 할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잡히는 건 아니었다.
이곳은 모두 정체를 숨기고 활동하는 암시장.
조금이라도 저들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순간, 몸을 숨길 곳은 어디라도 있었다.
“젠장! 녀석 어디 갔어?!”
“이런, 씨. 다 똑같이 생겨서 알아먹을 수가 없잖아.”
“그런 말 할 시간에 빨리 찾기나 해! 우리 조직을 엿 먹인 놈이다! 놓치면 우리가 두목 손에 죽는다고!”
‘됐다!’
성유찬은 골목길 사이에 숨어서 그 대화를 엿들었다. 뒤를 쫓던 조직의 사람들은 그를 찾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성유찬은 골목길에 등을 기댄 채 바닥에 주르륵 미끄러지듯 앉았다.
뒤늦게 긴장이 풀리고, 폐가 산소를 요구했다.
“후욱. 후욱.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운동이라도 해 둘걸.”
성유찬은 자신의 저질스러운 체력이 새삼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이번에는 살았으니, 다음에는 체력이라도 조금 키우겠다고. 그런 이루지도 못할 다짐을 품으며 자리에서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여기 있었네.”
“……!”
성유찬은 갑자기 골목길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몸을 잘게 떨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젊은 남자였다. 얼굴을 봐도 마치, 뿌연 안개가 끼어 있는 것처럼 인식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쫓던 사람인가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보다 더, 위험해 보였다.
‘보, 보통 사람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암시장에서 가면을 쓰지만, 얼굴이 저렇게 안 보이게끔 만들 정도라면 신비한 힘을 지닌 마도구인 아티팩트 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보통일 리가 없었다.
남자는 옆에 비서로 보이는 여자와 함께 있었다. 여자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서, 설마 조직의 높은 사람인가?’
성유찬이 곧바로 도망칠 준비를 할 때였다.
남자, 유현은 그에게 너무 겁먹지 말라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너무 그러지 마. 우리는 방금 너를 쫓던 놈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까.”
“뭐?”
성유찬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되묻고 싶은 참이었다.
“흐음. 그러니까, 나는 네 능력이 탐나서…….”
“저기 있다!”
유현의 말을 끊고 누군가가 소리쳤다. 뒤를 돌아보니, 조금 전 성유찬을 쫓던 덩치들이 보였다. 성유찬은 덩치들을 보고 안색이 하얗게 물들었다. 겨우 따돌렸다고 생각했는데, 저 두 남녀 때문에 들킨 것이다.
“어이쿠. 나 때문인가?”
정작 이 일을 초래한 유현은 과장되게 웃었다. 성유찬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유현을 노려봤다.
덩치들이 골목 입구로 가까이 다가왔다.
“너희 둘은 뭐냐? 설마, 저 새끼 동료냐?”
“동료 아닌데.”
“아니면 꺼져라. 험한 꼴 당하기 싫다면.”
“아니. 그건 안 되겠어.”
“뭐?”
덩치들은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었다. 동료는 아닌데 비킬 수는 없다? 자연스레 그들의 화살이 유현과 그 곁에 있는 권지아에게 향했다.
“동료도 아닌데, 비키지 못하겠다고?”
“지금은 아니라는 소리지. 이제 영입하려고 했거든.”
“……이건 또 무슨 신박한 개소리야?”
이 자리에서 가장 직급이 높은 녀석은 얼굴에 가면을 썼음에도 황당함을 숨기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냈다. 부하들이 그에게 조심스레 권했다.
“형님. 뭐가 어찌 됐든 저 해커 새끼는 꼭 잡아야 합니다. 두목이 잔뜩 벼르고 있잖아요.”
“나도 알아.”
잡아야 할 녀석을 방해하는 사람은 고작 둘. 이쪽은 숫자가 무려 다섯이었다. 단순히 숫자의 우세도 있지만, 저쪽은 남녀 한 쌍이 전부.
상대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쪽을 막아선 시점에서 이미 없애야 할 놈들이었다.
덩치들이 다가오려고 하자, 유현은 뒤로 슬쩍 물러났다.
“권 비서. 부탁해요.”
“음?”
난데없이 짐을 떠맡게 된 권지아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유현은 익살스럽게 웃으며 대꾸했다.
“원래 이게 우리 역할이었잖아요? 저는 돈 많은 도련님. 권 비서는 제 호위. 그러니 호위가 대신 싸워야죠.”
[역시, 내 계약자! 인성이 끝내준다니까!]
유현은 백련의 비아냥을 자연스럽게 무시했다.
권지아는 잠시 유현을 노려보더니,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이쪽을 향해 서서히 다가오는 덩치들에게 시선을 보냈다.
‘이상하게 최근 나를 자주 부려 먹는 느낌인데, 착각인가?’
회귀자는 묘하게 유현이 점점 자신에게 거리낌이 없어지는 걸 느끼면서도, 굳이 그의 말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군.”
권지아는 그대로 가장 앞에서 다가오는 녀석의 멱살을 빠르게 틀어쥐고, 그대로 지면에 처박았다.
쿠웅!
“크헥!”
가녀린 몸에서 나올 수 없는 폭발적인 근력. 그 힘을 전신으로 고스란히 느낀 남자는 입에 거품을 물며 기절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조직원들은 움찔 떨었다. 여자라고 무시했는데, 일반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 잠깐만. 저거 컬렉터였어?”
권지아의 힘을 알아봤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도망치기에는 늦었다. 이미 권지아가 그들에게 가까이 접근한 뒤였다.
“이게 무슨…….”
성유찬은 가녀린 여자 한 명이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5명을 순식간에 제압하는 모습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사태가 정리되자, 성유찬은 자신의 앞에서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유현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쪽을 영입하고 싶은 사람.”
“제, 제가 누구인지 알고.”
“잘 알죠. 성유찬. 직업은 해커. 이쪽 바닥에서는 블랙 맘바라고 불린다면서요? 이름 참 어디 특수 부대처럼 잘 지었네요.”
“미친.”
자신의 이력이 유현의 입에서 주르륵 흘러나오자, 성유찬은 등골이 싸늘해졌다.
성유찬은 아무리 자신이 꼬리를 밟힐 짓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개인 정보를 털린 적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정체도 모르는 남자의 입에서 자신의 신상명세가 나오니 놀라기는커녕 공포가 앞섰다.
“너무 겁먹지 마세요. 제가 당신을 뭐 어떻게 하려고 부른 게 아니니까요. 말했잖습니까. 당신을 영입하고 싶다고.”
“대, 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성유찬의 목소리가 급격히 공손해졌다. 해커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괴롭히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정체를 들킨 해커는 더 이상 그게 불가능했다.
성유찬은 쓸데없는 객기 따위는 부리지 않았다. 그저 유현이 갑의 입장임을 통감하고 그에 순응했다.
“역시. 당신은 눈치가 참 빠르네요.”
유현은 그런 성유찬의 태도를 보며 그렇게 칭찬했다.
성유찬은 모르지만, 유현은 미래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었다. 종말 이후에서도 성유찬은 정보 상인으로서 꽤나 오랫동안 살아남았고, 유현과 나름의 친분을 지닌 사람이었으니까.
그 사실을 모르는 성유찬의 입장에서는 두렵기만 했다.
유현이 자신을 아는 것처럼 말하자, 몸을 바르르 떨었다.
‘나, 나에 대해서 세세히 알고 있어!’
상대방을 향한 경외심이 그의 고개를 더욱 숙이게 만들었다. 유현이 노린 것은 아니었지만, 성유찬은 유현에게 반항할 생각을 완전히 벗어던졌다.
“그러면 어디 조용한 곳으로 이동할까요?”
어느덧 상황을 모두 정리한 권지아까지 다가왔다.
성유찬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 * *
“와.”
서울의 사람들이 오가는 한 카페.
성유찬은 자신의 앞에 앉은 두 남녀를 보며 재차 감탄사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강유현…… 텔러님이시네요. 옆에는 권지아 컬렉터고요.”
“역시 아시는군요.”
“그야 저 같은 사람은 이런 일을 하다 보면 이것저것 다 주워듣거든요.”
성유찬은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심지어 그는 같은 해커 분야에서도 꽤나 독보적인 인물이었다. 방심하고 운이 없는 탓에 쫓기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의 실력이 빛이 바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어지간한 것들은 대부분 알고 있었다. 유현이 그를 찾은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다.
“저를 영입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죠?”
“유찬 씨가 프로그램 능력이 능하다는 건 압니다. 그 이상으로,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다양한 정보들을 모은다면서요?”
“그건 그렇죠.”
“저희는 그런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성유찬은 유현의 말을 순간이지만,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을 찾아올 정도라면 분명 대단한 정보원을 지니고 있을 텐데, 왜 굳이 자신을 고른 거란 말인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시죠?”
“네, 네? 아, 아닙니다.”
“아뇨. 이해합니다. 뭐, 굳이 여기서 설명을 하면 정보의 종류가 달라서라고 보죠. 저는 텔러인데, 주로 얻는 정보는 당연히 컬렉터와 관련된 것들입니다. 그런데 최근 다른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더라고요. 당신이라면 알겠죠?”
“……네.”
국회 의원 권동진이 백화 매니지먼트 사무실에 방문한 일은 이쪽 바닥에서도 꽤나 유명했다.
유현이 다른 당과 손을 잡았다는 소문도 도는 마당이었다. 성유찬은 그가 자신에게 뭘 바라는지 알아차렸다.
“당신의 그 정보를 얻는 능력, 저는 그걸 원합니다.”
“그건…….”
성유찬은 조금 망설였다. 그가 백화 매니지먼트의 식구로 활동하게 되는 것에 약간이지만 거부감이 든 탓이었다.
그는 언제나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어딘가에 얽매이는 걸 싫어했다.
하지만 그걸 솔직하게 말하려니, 유현이 이미 자신의 목을 틀어쥐고 있는 상황이었다.
살기 위해서 뭐든 못 하겠냐 만은, 그래도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그랬다.
“걱정되시나요? 혹시나 제가 과도한 요구를 할까 봐?”
“아, 아닙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부정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뭐, 유찬 씨의 입장은 저도 이해하니까요.”
유현은 이쪽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말했다. 성유찬은 유현의 말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가 보통 텔러와 다르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마주해 보니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고작 데이터로 이루어진 글귀 몇 자로 묘사된 남자는, 실제로 보면 훨씬 더 거대한 무언가를 품고 있던 것이다.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그쪽에서 거절한다고 하더라도, 보복으로 당신의 개인 정보를 뿌린다거나 하지도 않겠습니다. 전부 유찬 씨의 자유입니다. 저는 그저 제안할 뿐이죠.”
그리고 그의 대인배 같은 태도를 면전에서 목도하니, 성유찬은 자기도 모르게 유현에게 끌리는 것을 느꼈다.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닌 자발적으로 품게 되는 경외심.
이 남자라면, 어쩌면 자신의 목표를 이루게 도와줄지도 모른다고.
성유찬은 그렇게 생각했다.
“유찬 씨.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겠습니다. 맡겨만 주세요.”
성유찬은 유현이 내민 손을 잡았다.
이성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이것이 옳다고 말해 주고 있었다. 손을 잡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거 다행이네요.”
유현은 성유찬을 향해 웃어 보였다.
“기껏 주문한 기기들이 쓸모가 없어지지 않아서요.”
“네?!”
성유찬은 화들짝 놀랐다. 이 남자, 이미 자신이 여기로 올 것까지 예상하고 물건까지 사 놓았다는 건가?
“유찬 씨가 기존에 사용하던 물건들도 있죠? 거기에 더해서 몇 가지 추가로 지원해 주겠습니다. 원하는 대로 사용만 하시면 돼요.”
“가, 감사합니다.”
부처님의 손바닥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성유찬은 꿈을 꾸는 것처럼 얼떨떨함을 느끼면서도, 마음속으로 한 가지 굳게 다짐했다.
절대로 이 남자에게는 덤비지 말자고.
그렇게 백화 매니지먼트에 정보를 담당하는 새 직원이 추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