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137화
암시장(暗市場), 혹은 블랙마켓(black market).
국가에서 허락되지 않는 법에 저촉되는 물건들을 사고파는 곳을 총칭하는 단어다.
컬렉터들의 사업은 크다.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온갖 물건들이 사상세계에서 나오니, 당연히 시장이 커질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시장이 모든 사상세계의 부산물을 담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드리우는 그림자 또한 짙어진다.
법의 테두리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사상세계의 잉여 물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났다. 거기에 눈독을 들인 뒷세계의 사람들이 하나둘 손을 뻗으며 체계를 이루기 시작한 결과물이 지금의 암시장이다.
컬렉터 암시장은, 어떻게 보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지분을 지닌 또 다른 컬렉터 사업이었다.
암시장은 일반 시민들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사실은 어느 국가에 가도 빠지지 않고 존재한다. 그것은 치안이 좋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금 거기로 가겠다는 건가?”
“네. 오늘부로 가서 처리할 일이 있어서요.”
“대체, 뭐지?”
“정보.”
정보라는 말에 권지아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사실 어지간하면 신경을 안 쓰려고 했는데, 오늘 그 의원이 찾아오고 뭐라 하는 걸 보고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유현의 목적은 최우선으로 지구의 종말을 막는 것이다. 당연히 그런 목적을 이루려다 보면, 누군가와 부딪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보통 그 대상은 클랜이었다. 혹은 유현을 노리는 스캐빈저가 되기도 했다.
“저희를 방해하려는 인간들이 컬렉터가 아닌 다른 녀석들까지 끼어들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신경 쓰지 않던 곳에서 방해꾼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처럼 짜증 나는 것은 없다. 당장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이상한 녀석들이 달라붙는 건 질색이었다.
권지아는 유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확실히, 전혀 의외의 곳에서 우릴 방해하려고 하면 속절없이 당할지도 모르지.”
“네. 저는 그것을 막기 위해 정보를 얻으려는 겁니다.”
사상통합의 시대 이후에도 정보는 여전히 힘이었다.
암시장은 온갖 다양한 물건들을 판다. 법으로 허락되지 않는 것이나 남들이 꺼리는 것까지 팔다 보니, 양지의 시장보다 물건의 범위가 훨씬 더 다양했다.
특히 암시장의 [이야기 상인]이 파는 정보는 정부의 특수 기관에 준할 정도의 정확도를 자랑하는 것으로 뒷세계에 유명했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컬렉터와 다국적 해커 집단들이 모였으니, 오죽할까?
유현이 노리는 것도 바로 정보였다.
“그런데, 왜 굳이 암시장에서? 정보는 따로 구할 수 있지 않나?”
“그것도 방법이지만, 누군가가 저희를 뒤에서 캘 수 있다는 단점이 있으니까요.”
유현은 그런 구설에 올라가는 것 자체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했다.
암시장의 이야기 상인을 만나는 것은 분명 그 과정이 귀찮겠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훨씬 더 합리적인 근거로 내린 판단이었다.
“그래서 내게 암시장의 안내를 부탁하려고 부른 거였군.”
“암시장이 대충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만, 거기로 가는 방법은 저도 잘 모르거든요.”
알 만한 녀석을 족치면 알아낼 수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했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암시장 측과 충돌을 빚을 가능성도 있었다.
유현은 암시장의 존재를 알지만, 그곳으로 가는 방법은 몰랐다. 종말 이후에 그쪽도 와해되다시피 해서 점조직으로 흩어진 탓이었다. 인연이 닿아 해당 업계와 관련된 사람을 만나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눈 것이 전부였다.
“지아 씨라면 알 거 같아서요. 실제로 가 본 적도 있으시죠?”
“……그래. 많이 가 봤지.”
“그러니 안내 좀 부탁드립니다. 다 저희를 위한 일이라고요.”
“나도 안다. 후우. 어쩔 수 없군. 따라와라.”
권지아는 유현을 이끌고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어두운 골목길을 향했다.
“그런데, 가서 정확히 뭘 할 생각이지? 단순히 정보만 얻을 생각인가?”
“커넥션을 하나 만들려고 합니다. 주기적으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사람이 하나 있으면 편하겠죠.”
“흠. 확실히 좋은 방법이지. 하지만 믿을 만한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군. 내가 아는 선에서, 저 안쪽에 있는 놈들은 죄다 맛이 가거나 뒤통수를 잘 때렸으니까.”
“뭐, 그야 그렇겠죠. 불법을 일삼아서 살아가는 놈들인데, 신뢰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극히 일부는 신뢰에 따라 움직이는 자들도 있다. 하지만 그 경우는 정말 극히 일부였고, 심지어 요구하는 금액의 비용이 아주 높았다.
정 안되면 그런 검증된 사람들을 골라야겠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여기가 입구다.”
“뭔가 분위기 있는 술집이군요.”
골목길의 안쪽에는 허름한 전등을 켜 놓은 자그마한 포차가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포차 주인이 술잔을 닦다가 둘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직 영업시간이 아닙니다.”
“가게에서 4번째로 비싼 술 2잔을 사지.”
“이런, 그쪽 손님이었군. 저쪽으로 가 봐. 오늘 암호는 2380이다.”
“그러지.”
권지아의 자연스러운 말에 주인은 대수롭지 않게 한쪽에 있는 허름한 문을 가리켰다.
안으로 들어가자 문 안쪽에는 또 다른 문이 있었다. 들어왔을 때의 허름한 문과 질적으로 다른, 매우 튼튼해 보이는 금속으로 이루어진 문이었다.
권지아는 포차 주인이 알려 준 대로 문의 암호를 입력했다.
삐리릭.
열린 문을 통해 안쪽으로 들어가는 순간, 유현은 무언가가 몸을 쓰윽 훑고 지나가는 걸 느꼈다. 권지아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공간을 왜곡시키는 이야기의 일종이군요.”
“그래. ‘도시 괴담’의 형태로 존재하는 녀석이지.”
열린 문 아래로 이어진 것은 끝이 없어 보이는 나선형의 계단이었다. 보수를 잘했는지, 녹슨 부분이 없이 깨끗했다.
유현과 권지아는 아래로 내려갔다. 꽤나 길게 보이는 것과 다르게 둘은 5분 만에 계단의 끝에 도착했다.
“여기다.”
“그렇군요.”
권지아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계단의 끝, 그곳은 어둠과 안개로 가득 찬 하나의 도시였다.
빨갛고 샛노란 형광등이 가득하며 도시 전체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규격이 제멋대로 들어선 자그마한 건축물들 사이로 정체를 숨긴 온갖 사람들이 분주히 돌아다녔다.
“싸다 싸! [회복 이야기]가 담긴 물병!”
“다른 차원에서 공수해 온 [적색연환창법] 팝니다!”
“텍스트 포인트 매입합니다! 최고가 매입! 오늘의 시세를 확인하세요!”
좌판을 깔거나 혹은 가게 바깥에서 호객하는 사람들이 목이 터지라고 소리를 질렀다.
어둠 속에 존재하는 시장은 환경에 걸맞지 않게 활기를 띠고 있었다.
대부분 사람은 특수한 처리가 된 가면을 썼다. 이곳에 찾아오는 자들은 대부분 법을 어긴 자들이기 때문에 일부러 정체를 숨기기 위함이었다.
유현은 미리 준비해 둔 안경을 착용했다. 권지아 또한 안경을 썼다.
가면이 없어도 어떤 방법으로 정체를 감추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이곳에 대놓고 들어왔다고 알리는 것은 하이에나 놈들에게 목을 들이미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안쪽까지 들어왔으면 이제는 쉽죠. 이제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러지.”
둘은 암시장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유현은 걸으면서 주위를 빠짐없이 살피며 정보를 주워 담았다. 귀도 최대한 열어 놔서 혹시라도 흘러가는 소문을 흘리기라도 할세라 세세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듣기만 했지, 그래도 실제로 온 건 처음이네요.”
유현은 이 암시장의 안에 자신이 서 있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했다.
암시장은 하나의 도시였다. 그것은 여러 가지 [도시 괴담]의 이야기들이 모이고 모여서 만들어진 하나의 별세계였다.
이런 곳에서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할 생각을 하다니, 인간이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나라는 어떤지 궁금하긴 하네요.”
“별거 없다. 오히려 기대한 만큼 실망할 거다. 한국의 암시장은 다른 국가에 비해서 훨씬 더 발전했으니까. 물론, 간혹 귀신같은 게 나오긴 하지만.”
“그건 좀 무섭네요.”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의 경우에는 암시장도 하나가 아니라 분산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땅이 좁다 보니, 암시장은 하나만 있어도 족했다.
그 때문에 한국의 암시장은 다른 국가와 비교하면 그 규모가 상당히 컸다.
“여기군요.”
둘이 도착한 곳은 정보를 중점적으로 파는 이야기 상인이 머무는 구역이었다.
아무렇게 대충 누더기를 꿰매듯 만들어진 암시장의 너저분한 외형과는 다르게 안쪽에는 물건들을 분류해서 파는 구역이 깔끔하게 나누어져 있었다.
유현이 찾아온 곳은 정보를 주로 파는 자들이 보인 구역.
‘이야기보따리’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이거, 여간내기가 아닌 손님분들이 오셨군요.”
가게에 들어서자, 해당 오너인 이야기 상인은 유현과 권지아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둘의 분위기만으로 상대가 초짜가 아님을 곧바로 간파한 것이었다.
현재 유현과 권지아는 돈이 많은 고객과 그 비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오너는 유현을 보며 물었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원하십니까?”
“딱히 정한 건 없어. 다만, 현대의 정세를 쉽게 파악할 것들 위주로 필요하지.”
유현은 자연스럽게 반말을 했다.
이야기 상인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애초에 이쪽 바닥의 손님들에게 예의를 바랄 리가 없었다.
“흐음. 그거라면 뭐, 카테고리가 정해져 있으니 살펴보시면 될 겁니다.”
“한번 봐 보지.”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이야기 상인은 방의 한쪽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커다란 앨범 같은 것을 꺼내 왔다.
“고객님이 원하시는 정보는 여기에 있습니다. 참고로 이것은 해당 정보의 맛보기라 극히 일부분인 것만 알아 두시길.”
“그러지.”
유현은 앨범을 펼쳐 보았다. 카테고리가 정해져서 자료는 시간대 순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과거의 일을 굳이 파헤칠 필요가 없어서 가장 최신 부분 위주로 살폈다.
안쪽에는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의 기본적인 정세에 관한 글귀들이 보기 좋게 나열되어 있었다.
‘흐음. 신기하긴 하네.’
[뭐야 이거. 정보라 해도 내용이 너무 적은데?]
가만히 지켜보던 백련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이건 말 그대로 맛보기에 지나지 않아서 그래.’
[맛보기?]
‘그래. 생각을 해 봐. 여기에 정보 싹 다 알려 주면, 그냥 정보를 살 필요 없이 이것만 보고 뺄 수도 있잖아. 맛보기는 그걸 막게 해 줘. 일부러 고객이 찾는 정보의 아주 일부만 슬쩍 보여 주는 거야.’
[아하. 그러면 정보의 신뢰도도 올릴 수 있는 데다가 또 감칠맛을 느끼게 할 수도 있겠구나?]
‘바로 그거지.’
실제로 가짜 정보를 진짜처럼 속여서 판 사건이 암시장에서도 여러 번 있었다. 걸리지 않으면 모를까, 그걸 걸려서 여러모로 자그마한 사건·사고가 많이 터졌다.
불법으로 운영되는 암시장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사고가 자주 터지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이야기 상인들이 합의하에 도입한 방법이 바로, 이 ‘맛보기’였다. 그리고 대부분 정보는 상인들끼리 서로 공유를 하고 있다 보니, 가게가 여러 개여도 사실상 하나의 거대한 업체에서 운영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맛보기 중에서 몇 개 골라내려고?]
‘아니. 그럴 리가. 돈 나가는 짓을 왜 해?’
유현은 씨익 웃었다. 백련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아니, 정보 사러 왔다며. 그러면 돈 나가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아니면 포인트로 대체하려고?]
‘그럴 필요가 없다는 소리야.’
유현은 앨범을 통해 가장 최신 정보들의 ‘맛보기’를 모두 읽어 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기본적인 정보로 자신이 바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진짜로 심화된 내용은 돈을 내고 구매를 해야만 얻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유현은 달랐다.
[라플라스의 악마의 파편]
유현이 지니고 있는 라플라스의 힘이 발동됐다.
토대를 이루는 기본적인 정보만 주어진다면, 그것을 분석하고 발전시켜 남들이 모르는 것까지 알게 해 주는 사기적인 힘.
유현의 머릿속에서 ‘맛보기’ 정보가 순식간에 재구성되며 멀쩡한 정보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유적의 파편이, 그 파편을 기점으로 시간을 되돌리듯 멀쩡하게 복구되는 것처럼.
“손님. 어떠십니까?”
“음. 애매하군. 내가 찾던 것이 없어.”
“그렇습니까?”
유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곁을 보좌하듯 권지아가 섰다.
“다음에 찾아오지.”
“네. 편히 가십시오.”
오너는 별로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는 유현이 단순히 맛보기만으로 나머지 정보를 알아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 사실을 알았어도, 쉽게 믿지 못하리라. 세상에 어떤 존재가 그걸 가능케 하겠는가?
유현도 그 사실을 알기에 자신의 힘을 이용했고, 공짜로 필요한 정보만 쏙쏙 알아낼 수 있었다.
[와. 너 진짜…….]
백련이 기가 막힌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미 몇 번이고 유현의 기행을 가까운 곳에서 봐 왔지만, 그는 언제나 항상 새로운 방식으로 놀라게 했다.
[상대 진짜 눈 뜨고 자기 밑천 털린 거 실화냐? 진짜 인성이.]
‘아니. 인성이 뭐가? 내가 저 사람한테 피해를 주기라도 했어?’
[공짜로 봤잖아!]
‘그건 당연한 거고. 공짜로 볼 수 있는데, 안 보는 게 이상한 거지. 어차피 여기도 다 불법으로 운영되는 곳인데, 똑같이 한다고 뭐 달라지겠어?’
[……그건 그러네? 하긴, 범죄자들 상대로 등쳐 먹는 셈이니까.]
어쨌든 필요한 정보는 모두 얻었다. 유현이 그 사실을 권지아에게 전하고, 적당히 암시장 안쪽을 돌아다니려던 참이었다.
허억 허억!
몸을 로브로 가린 남자가 숨을 헐떡이며 도망치고 있었다. 그런 남자의 뒤를 덩치가 큰 몇몇이 쫓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건…….”
“신경 쓰지 마라. 암시장에서는 언제 어디서 주먹다짐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으니.”
권지아는 그렇게 말했지만, 유현은 방금 도망치던 로브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왜 그러지?”
“아무래도 찾은 거 같습니다.”
“뭐?”
“제가 여기 찾아온 이유.”
골목길로 사라진 로브.
유현은 그 머리 위에 떠다닌 찬란한 은색의 책을 놓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