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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36화 (136/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36화

“그건 갑자기 왜 물어보시는 거죠?”

유현은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박하게 물었다.

최중모는 무슨 말을 할지 또 고민했다.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보는 게 답답한지, 지금까지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하던 유성아가 나섰다.

“자, 여기는 이제부터 내 차례.”

“유성아 씨.”

“아저씨. 적당히 해. 그래도 아저씨 아시는 분이라고 지금까지 얌전히 있었어. 애초에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는 다 알잖아? 그건 텔러 형씨도 마찬가지지?”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성아는 협회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실력자이자 미친개로 소문이 난 컬렉터다. 그런 그녀가 왜 최중모와 만나는 이곳에 있는지, 처음에 유현도 몰랐다.

하지만, 최중모가 던진 질문을 듣는 순간 이해했다.

이해하고 말았다.

유성아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무섭게 미소지었다.

“소식은 들었지? 황혼의 장막. 그 잡것들이 법을 어기면서 사상세계를 몰래 숨기고 사용해 왔다는 거.”

“저도 듣는 귀가 있어서 알고는 있죠.”

“그래. 심지어 거기에 한울 클랜 녀석들까지 엮였더라고. 한울에서는 자신들은 정말 모른다고, 억울하다고 발뺌을 했지만, 대부분 클랜이 예전부터 거짓말 자주 하는 거야 늘 있던 일이니 넘어가고.”

‘그런데’라며 유성아가 꼰 다리를 풀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이놈들을 심문하니까 묘한 일이 있더라고. 대체, 한울과 황혼의 장막은 어쩌다 안쪽에서 싸운 걸까? 한울은 여길 또 어떻게 알고 온 걸까? 혹시 짐작 가는 바 없어?”

유성아의 눈빛은 숫돌로 날을 예리하게 간 칼날 같았다. 그 시선이 닿는 곳은 피부가 따끔거렸다.

“저희에게 짐작 가는 바가 있냐고 물으신 들…….”

유현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대꾸했다. 유성아는 그 말만 듣고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지 않았다.

“한울 녀석 중에서 생존자를 심문했지. 놈들은 입을 열지 않으려고 했지만, 자기 클랜에 버려지니까 배신감이라도 들었는지 몇 가지 사실을 성토하더라고. 그중 하나가 뭔지 알아? 자기들이 움직인 이유가 백화 매니지먼트의 특정 인물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하더군.”

“특정 인물이라…….”

“그래. 지금 나와 마주 보고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당신. 놈들은 그쪽을 노리고 움직인 거였어.”

유성아는 씨익 웃었다. 예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포악한 미소였다.

“그런데, 신기한 건 말이지. 대체 왜 한울이 댁을 노리고 움직였는데, 황혼의 장막이 숨겨 놓은 사상세계가 있는 곳으로 향했냐는 거야. 이건 앞뒤가 안 맞잖아? 노리려면 댁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지.”

“노리기 전에 다른 곳에 들른 게 아니었을까요? 범죄자들의 생각을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아니야, 아니야. 내 말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더 들어 봐. 그러니까 한울 녀석들은 특정 인물을 암살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 인물이 어디로 향했는지에 대한 정보고 입수했을 테고 말이지. 그런데 거기가 황혼의 장막 클랜과 관련이 있던 곳이었어.”

유성아는 자신이 얻어 낸 자료를 바탕으로, 그때의 사건을 퍼즐처럼 맞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황혼의 장막도 한울도 서로 상대가 찾아올 줄 몰랐지. 그들이 싸운 이유를 파헤쳐 보니,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하더라고. 황혼의 장막은 몰래 숨겨 놓은 사상세계에 침입자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었고, 반대로 한울은 한 인물을 노리고 찾아온 거였고. 심지어 협회에 익명의 신고가 온 것도 그래. 뭔가 그려지지 않아?”

“흐음. 그러니까, 유성아 씨의 말은.”

유현은 그녀의 추리를 뒷받침하듯 말을 받았다.

“한울이 노리는 특정 인물이 자신을 노리는 한울을 이용해서 황혼의 장막과 싸움을 붙였다는 거로군요. 심지어 그자는 황혼의 장막이 사상세계를 숨기고 있던 것을 미리 알아차리고 있었고, 그것을 알리기는커녕 역으로 이용해 먹었다는 거고요.”

“맞아.”

“그리고 그런 두 클랜을 동시에 정리하기 위해서,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협회의 손을 빌렸다고 말씀하시고 싶은 거죠?”

“바로 그거야.”

유성아는 웃으며 말했지만, 그녀의 눈빛은 전혀 웃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유현의 존재가 자신이 그때 놓친 정체불명의 3인 중 하나라고 점점 확신해 가고 있었다.

유현은 그녀의 시선을 마주 보며 재밌다는 듯 웃었다.

“이거, 참…….”

유성아의 추리는 상당히 들어맞았다. 중간중간 엉성한 부분도 있지만, 실제로 일어난 사실과 비교하면 아주 흡사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유현은 감탄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터무니없는 억측이로군요.”

“억측이라고?”

“네, 억측. 애초에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봅니까? 그 특정 인물이 자신을 노리는 적의 존재도 눈치를 채고, 그걸 역으로 이용해 두 클랜을 싸움 붙게 했다? 대체 그걸 어떻게 알고 어떻게 행동했는지는 둘째 치고, 이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유현은 자신이 아니라고 잡아뗐다. 유성아의 시선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유성아 씨의 말은 잘 들었습니다. 꽤나 흥미로운 추론이었어요. 그런데 결국, 그 모든 것들은 그쪽이 ‘심증’으로 이루어 낸 결과 아닌가요? 이 추론을 뒷받침할 명백한 증거가 없잖아요.”

유현이 지적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녀가 유현을 의심하는 이유는 모르는 게 아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 일을 유현이 했다는 증거가 없었다.

심지어 유현은 알리바이도 가지고 있었다.

“그날 사건이 벌어지던 때, 저희가 어디에 있었는지 아십니까?”

“그건…….”

“사무실에 있었습니다. 그날은 쉬고 있었거든요.”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정 궁금하면 저희 사무실 주위에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에게 물어보면 알겠죠.”

유현이 이렇게 당당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기자들의 존재였다.

그들은 어떻게든 유현을 만나고자 백화 매니지먼트 사무실 주위에 머무르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만약, 유현이 모습을 드러냈다면 기자들이 알아차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설마.’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권지아가 눈을 크게 떴다. 이 남자가 왜 바깥에 포진한 귀찮은 기자들을 일부러 놔뒀는지, 그게 줄곧 의문이었는데.

설마, 여기까지 내다보고 있었을 줄이야.

“그들에게 물어봐서 사건 당일 저희가 사무실을 나갔는지, 안 나갔는지 물어보면 답이 나오는 거 아닙니까?”

상황이 재미있게 흘러갔다.

평소에 유현을 귀찮게 했던 기자들이 이 상황에서 역으로 그의 알리바이를 입증해 주는 증인이 된 것이다.

그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권지아는 유현의 소름 끼치는 설계에 고개를 작게 저었다.

자신은 전생에서부터 꾸준히 무시하고 치우려고 했던 기자들을 이렇게 자신의 입맛대로 이용하다니. 유현의 발상은 그녀와 뼛속부터 달랐다.

“응당 협회라면, 그것도 확인했겠죠?”

“큭.”

유현은 [각인]을 새긴 물건을 통해서 기자들 몰래 바깥을 왕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백화 매니지먼트 사무실 사람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유현은 걸릴 리가 없기 때문에 떳떳했다.

유현의 방긋 웃는 얼굴을 보며 유성아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녀도 물론 심증만으로 유현을 완전히 범인으로 몰아세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유현이 완전히 무고하다고도 생각하지도 않았다.

‘저 남자, 분명 뭐가 있어.’

이번 사건에 관련된 것은 황혼의 장막과 한울밖에 없었다. 아니, 둘밖에 없어야 했다.

하지만, 걸리는 사건이 여러 가지가 있다. 한울이 누군가의 명령을 받고 유현을 제거하기 위해 움직인 점. 황혼의 장막이 하청으로 부리는 조폭 사무실에 누군가 습격을 했다는 정보도 있었다.

심지어 현장에서 도망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까지.

유성아는 그것이 못내 걸렸다.

‘증거는 없지만, 그걸 입증할 수 없음에도…… 자꾸 무언가 걸려.’

유성아는 그게 유현이라고 생각했다.

이성적인 판단이 아닌 감에 지나지 않았지만, 자꾸 그런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유현의 말마따나 이 일을 유현이 했다는 증거가 없었다.

‘역시, 나를 의심하고 있군.’

유현은 유성아가 자신을 계속 노려보는 걸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그녀는 자신을 범인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건 사실이었다. 실제로 이 모든 일들은 유현이 꾸몄으니까.

‘감이 좋은 건가? 보아하니, 이 밝혀지지 않은 사태의 수상함이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상당히 날카로워. 단순히 정황만으로 진짜 범인을 찾았으니까.’

유성아의 생각은 맞았지만, 문제는 유현이 그걸 전혀 알려 줄 생각이 없다는 점이었다.

“기껏 불렀더니, 범인으로 의심하며 추궁이라니…… 실망이 큽니다. 최중모 씨. 저는 좀 더, 우리 사이가 꽤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아닙니다! 유현 씨. 그게 아니라…… 유성아 씨. 뭐라고 말 좀 해 보시죠.”

“그건…….”

유현은 일부러 유감을 표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자 유성아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유성아 씨.”

옆에서 최중모까지 질책하듯 나서자 유성아는 입술을 깨물더니 이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후우. 의심해서 미안했습니다. 워낙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어서…….”

“말로만 사과하실 겁니까?”

“아니, 그건…….”

유현이 저렇게 나오니, 유성아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살짝 망설였다. 말로만 사과하는 게 아니라면 여기서 뭐, 할 거라도 있는가?

유성아가 당황하자, 유현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농담입니다. 유성아 씨가 얼마나 바쁜지는 저도 알고 있으니까요. 분명 머릿속에 복잡해져서 착각하신 거였겠죠.”

“그건…… 그렇죠.”

“뭐, 다른 사람이 그랬으면 저도 기분이 상했겠지만, 그래도 또 최중모 씨의 아는 사람이기도 하고 불철주야 고생하는 협회의 컬렉터시기도 하니…… 이번은 넘어가겠습니다.”

“……네. 고마워요.”

“그리고 너무 인상 찌푸리지 마세요. 예쁜 얼굴 망가질라.”

유현이 그렇게 말하자, 유성아가 격하게 반응했다.

“네?”

“왜 그러십니까?”

“아니, 방금 무슨…….”

“예쁘다고 한 거요?”

유현의 물음에 유성아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미인이 맞다. 하지만 문제는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미인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유성아가 지니고 있는 특성 [명월부인]은 박씨전의 박씨부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박씨부인의 특징은 뛰어난 힘과 도술을 지녔지만, 본모습을 드러내기 전에는 추녀처럼 지냈다는 거다.

당연히 특성의 힘을 강하게 사용하는 만큼, 유성아는 해당 특성에 영향을 받는다.

그녀가 아무리 예쁘게 꾸미더라도 주위에서는 그녀를 자연스럽게 못생겼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것에 나름 불만을 품기도 했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서 별로 신경 쓰지 않게 됐는데…….

‘저 사람, 아니 텔러…… 내 진짜 모습이 보이는 건가?’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유현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계속 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유성아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남들의 앞에서는 어차피 무슨 짓을 해도 그녀의 진짜 모습을 모르니, 약간 가면을 쓴다는 느낌으로 행동했다. 그녀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오히려 화장하지 않고 다녀서 편하기도 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진짜 모습을 보였다. 유성아는 그것이 부끄러워졌다.

유성아가 당황하는 사이 유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볼일도 다 끝나신 거 같으니. 저는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네. 그러시죠.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뇨. 별거 아니었습니다.”

유현은 최중모에게 그렇게 말하며 아직도 당혹스러워하는 유성아에게 인사를 건넸다.

“유성아 씨도 수고하십시오.”

“네? 아, 네…….”

유성아는 크게 한 방 먹은 나머지 멍한 목소리로 답했다.

* * *

“……이럴 거면 대체, 나는 왜 부른 거지?”

협회를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권지아가 불만을 토했다. 협회에서 있었던 일은 그녀의 도움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았다. 거기에 가만히 앉아서 상황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고역이었다.

“지아 씨를 부른 목적은 바로, 지금부터입니다.”

“지금?”

“말했잖아요. 협회에 들렸다가 따로 볼일이 있다고.”

“그게 대체 뭐지? 내 도움이 필요할 정도의 일이라도 있는 건가?”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권지아도 그제야 자세를 가다듬었다. 어디 뭐가 궁금한지 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지아 씨는 우선 어지간한 정보는 다 알고 있죠? 컬렉터와 관련된 것들 말이죠.”

“그렇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혹시 암시장(暗市場)에 어떻게 가는지도 알겠죠?”

암시장이라는 말에 권지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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