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135화
“지아 씨. 오늘은 지아 씨가 저랑 같이 갑니다.”
“나 말인가?”
권지아는 유현이 자신을 지목하자, 조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서 물었다. 그녀는 아직도 지난날 유현과 있었던 일 때문에 아직 제대로 얼굴을 마주하기 껄끄러운 상태였다.
평소에 눈치가 없던 강혜림은 권지아의 묘한 태도에 무언가를 읽어 내고, 그녀와 유현을 번갈아 살폈다.
“그러면 제가 갈래요!”
“혜림 씨는 안 됩니다. 이번에는 지아 씨가 필요하거든요.”
“내가 필요하다니. 협회에 들리는 게 아니었나?”
“우선 협회의 사람들을 만날 겁니다. 중요한 건 그다음에 할 일이거든요.”
“그다음이라니.”
권지아는 유현이 무엇을 하려는지 몰랐다. 하지만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보아 분명, 미래의 지식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후우. 어쩔 수 없군. 같이 가지.”
“이잉.”
강혜림은 자신이 이번에도 가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는 울상이 되었다. 유현은 그런 강혜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어차피 사상세계에 가거나 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유현은 이번 일에 강혜림까지 데려가기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 모은다는 것을 알기에 내린 선택이었다.
‘이것도 참 힘든 짓이군.’
컬렉터가 한 명에서 둘로 늘었을 뿐인데도, 그가 신경 써야 할 것들이 2배는커녕 3배 이상 늘어난 기분이었다.
[왜? 바쁜 거 보니까 네가 딱 좋아할 일인데. 완전 보모 일 제격이야, 너는.]
이때다 싶어서 백련이 유현을 놀려 댔다.
‘넌 또 갑자기 왜 그러냐?’
[와. 나는 왜 그러냐고? 진짜 몰라서 물어? 너 요즘 저 셋 신경 써 준답시고 나는 거들떠도 안 봤잖아.]
‘아니, 그건…….’
유현은 뭐라고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니, 최근 백련에게 신경을 써주지 못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야. 내가 아무리 개 쩌는 칼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손질을 안 하면 나도 녹이 슬고 막 그러거든? 너 솔직히 나 깨울 때 각인 배운 거 말고, 그 이후로 나 손질해 준 적이라도 있어?]
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백련의 말마따나 유현은 백련을 자주 사용한 것치고는 손질은 거의 하지 않았다. 자아를 가진 백련이기에 그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고, 참고 참다가 지금 와서 터진 것이었다.
‘미안하다. 조만간 네 손질도 해 줄게.’
[이번엔 진짜지? 믿는다?]
‘어, 진짜. 진짜 해 줄게.’
백련은 보통 검과 다르다. 혼성계에서 제일가는 마도공학의 정수로 이루어진 검이기에, 그것을 손질하는 것도 여타 무기들과 확연히 달랐다.
유현이 백련을 깨웠을 때, [각인사]라는 칭호를 얻은 것은 그냥이 아니었다. 오직 각인이 가능한 존재만이 살리오 장검을 제대로 손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쁘다. 바빠.’
신경 써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미 업무에 짓눌려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였으리라.
‘그래도 이래야 사는 맛이 나지.’
유현은 이렇게 움직이고, 생각하고 일을 하는 것이 좋았다. 이렇게 할수록 자신이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떳떳하게 살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것은 일종의 강박감이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갔다 오지.”
“네. 다녀오세요.”
“잘 갔다 와요.”
백서련과 강혜림의 배웅을 받으며 유현과 권지아는 협회로 향했다. 이번에는 당당한 방문이라서 정체를 숨기는 안경을 쓸 필요도 없었다.
주위에서 진을 치던 기자들이 유현과 권지아를 발견하고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가, 강유현 텔러님!”
“잠시 인터뷰 가능하십니까!?”
그들은 며칠이 넘도록 이 근방을 돌아다니며 머물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사무실에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는 데다, 창문에는 무슨 처리를 했는지 안쪽을 들여다볼 수도 없었다.
유현에 대한 특종에 애가 타던 차였는데, 그가 이렇게 나온 것이다.
그것도 권지아까지 같이.
“어쩌지? 알아서 치울까?”
권지아가 유현을 보며 그렇게 물었다. 그녀는 기자들이 얼마나 귀찮은 족속들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이대로 가만히 놔두면 저들은 더욱 이쪽을 귀찮게 굴 것이었다.
“제가 하죠.”
유현은 권지아를 말리며 기자들의 앞에 섰다.
기자들은 유현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자 침을 꿀꺽 삼켰다.
천체주식회사 시화실 소속 강유현 대리. 텔러면서 컬렉터와 함께 사상세계에 들어가 싸우는 별종 중의 별종.
그 이름만 들어도 군침이 절로 도는 소재 덩어리가 아닌가?
“의외로 사람이 많군요. 여러분들이 제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 그러니……!”
“하지만.”
유현은 다급하게 외치려는 기자들의 말을 끊었다.
기자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유현의 목소리가 큰 것도 아니었는데, 묘한 박력이 있었다.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자신의 것을 휘어잡는 힘이었다.
모두가 눈동자만 굴리며 유현의 눈치를 살폈다.
“저는 지금 급히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 아쉽지만, 인터뷰에는 응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누, 누구를 만나러 가는 겁니까?”
“누구인지는 그 사람의 개인 정보 때문에 말하긴 그렇고, 음. 협회의 높으신 분 정도라고만 알아두시면 됩니다.”
“헉!”
“협회 측 사람이라고?”
기자들이 모두 숨을 집어삼켰다.
이곳에 모인 자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들은 유현이 누구를 만난다는 것을 절대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기자들이기에 현대의 정세에 눈과 귀가 밝았다. 그들은 협회와 클랜의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나, 그 뒤에는 어느 당의 어느 정치인이 있는지도 알았다.
그리고 조금 전, 그들은 유현의 사무실에서 권동진이 나온 것을 본 참이었다.
‘이거 설마……?’
‘협회라면, 그쪽이랑 손을 잡는다는 건가?’
‘이, 이건 대박이다.’
유현의 존재도 매우 흥미로웠지만, 그들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몰아치는 이 상황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
지금 당장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기자들은 눈에 불을 켜고서 뿔뿔이 흩어졌다.
그 모습을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던 권지아는 혀를 내둘렀다.
“여전히 대단한 말발이로군. 그보다 괜찮은 건가? 저들이 멋대로 지레짐작하고 무슨 소문을 퍼트릴 줄 모르는데?”
“그걸 알면서 한 겁니다.”
“……노린 거였군.”
“아마, 곧바로 이 건에 관해서 기사가 뜨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그 협회의 뒤를 봐주는 정치인과 손을 잡을 생각인가?”
“제가요? 그럴 리가요.”
유현의 대답에 권지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면 왜 저들에게 굳이 그런 식으로 말했지?”
“아, 그거요? 저는 딱히 제가 누구와 손을 잡는다거나 하지는 않았는데요? 다만, 저들에게는 그렇게 보이는 ‘뉘앙스’를 취했을 뿐.”
직접 말한 것과 그렇게 보이게끔 행동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엄연히 달랐다. 권지아도 유현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차렸다.
“그러니까 너는 직접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저들이 멋대로 지레짐작했으니. 이후 무슨 일이 벌어져도 책임의 소재는 저들에게 있다. 이건가?”
“뭐, 그런 것도 있죠.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이 소문에 민감하게 반응할 사람들에게 나름의 선포를 한 겁니다.”
유현은 일부러 그쪽 정치인과 연관이 있다는 식으로 소문을 뿌려, 권동진을 비롯한 친 클랜 정치인들에게 섣부르게 움직이지 못하도록 경고를 날린 것이다.
정작 소식을 들을 친 협회 정치인들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들로서는 유현이 자신들에게 호의를 품는 것이 좋으면 좋았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실제로 그들과 별로 친하게 지낼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무슨 선거에 출마하는 것도 아니고, 정치인들과 뭣 하러 친분을 맺습니까? 이것도 다 하는 척입니다. 친협회 쪽과 친한 척을 하면 클랜 파가 저희를 귀찮게 하는 걸 방지하는 거죠.”
“자칫 잘못하면 멋대로 이용하려 든다고 협회 쪽에서 우릴 적대할 수도 있다.”
“아뇨.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왜 그렇게 확신하지?”
“그건 그들이 정치인이기 때문이죠.”
정치인들은 얼마 전까지 서로 죽도록 물어뜯고 싸우더라도,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 온다면 적과 손을 잡을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도덕심은 하자가 많지만, 실리를 챙기는 판단은 유현도 인정하는 바였다.
“정치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존심 따위는 얼마든지 벗어던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걸 일반적인 사람의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되죠. 그걸 알기에 이렇게 행동한 거고, 저들도 알면서도 저희를 놔둘 겁니다.”
“……후우. 정말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남자로군.”
“칭찬 고마워요. 자, 귀찮은 방해꾼들은 모두 사라졌으니. 이때 어서 가죠.”
둘은 곧바로 협회에 방문했다.
정오에 가까워지는 시간이라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일부 컬렉터들은 유현과 권지아를 알아보고, 저들끼리 뭐라 웅성거렸다.
“강유현 텔러님 맞으시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둘을 맞이해 준 것은 최중모가 보낸 협회의 사람이었다. 둘은 안내를 받아 협회의 안쪽, 일반 컬렉터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으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그곳에 두 사람이 유현을 반겨 줬다.
한 명은 유현이 알고 지내는 최중모였다. 하지만 나머지 한 명은 유현으로서도 의외의 사람이었다.
“그쪽은…….”
“아, 이쪽은 협회의 특무 팀을 맞고 있는 유성아라고 합니다.”
불량스럽게 다리를 꼬고, 껌을 씹고 있는 유성아는 유현도 아는 사람이었다. 그야 그럴 것이, 당장에 황혼의 장막이 숨겨 놓은 사상세계를 털고 도망칠 때 현장에 급습한 게 유성아였으니까.
유현은 그녀를 봤음에도 당황하는 기색 하나 없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강유현이라고 합니다.”
“유성아에요.”
“이름은 저도 많이 들어 봤습니다. 명월부인이라는 특성을 지니셨다면서요?”
“다 알고 계시네요. 하, 씨. 이런 거 원래 컬렉터 밑천인데. 다 까발려져 있네.”
“워낙 유명하니까요.”
“뭐, 그쪽도 만만치 않지만요.”
그녀의 태도는 꽤나 불량해 보였지만, 그렇다고 목소리에 적대감은 없었다.
유현은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유성아는 현장에서 도망친 정체불명의 세 명이 유현 일행인 걸 몰랐다. 그걸 알았다면 그녀의 성격상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달려들었을 테니까. 용골대를 때려잡은 박씨부인은 절대 불의를 용서하지 않는다.
“그래서, 중모 씨가 저를 보자고 한 이유가 뭐죠?”
“그건…… 그러니까…….”
최중모는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망설였다. 부른 것까지는 좋았는데, 막상 본론을 꺼내자니 조금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아저씨. 뭘 그리 고민해? 거, 텔러 형씨. 댁 오늘 권동진이랑 만났다면서?”
“유성아 씨!”
“아, 씨. 중모 아저씨. 나 귀 안 먹었으니, 너무 그러지 마. 어차피 저쪽도 에둘러서 말하는 거 싫어할 거 아니야.”
유성아의 화끈한 태도에 유현은 작게 웃었다. 그녀의 말에 깊이 공감하는 바였다. 유현의 옆에 앉은 권지아 또한 유성아의 성격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어서인지, 별로 놀라지 않은 눈치였다.
“뭐, 그 말대로입니다. 그쪽에서 저를 이른 아침부터 찾아왔더군요.”
“무슨 대화를 나누신 겁니까?”
“별거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신들과 손을 잡지 않겠냐고 묻더군요.”
“설마…….”
“물론, 거절했습니다.”
“후우. 그렇군요.”
최중모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현은 그 모습을 보며 떠보듯 물었다.
“위에서 꼭 확인을 해 보라고, 최중모 씨에게 부탁이라도 했답니까?”
“아뇨, 그건…….”
“굳이 숨기실 필요 없습니다. 뭐, 정치권이 친클랜 파와 친협회 파가 나뉜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 자리를 빌려 제 입장을 확실히 말하려고 합니다. 저는 권동진을 포함한 그쪽 사람들과 손을 잡을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리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 저는 어디와도 손을 잡을 생각이 없어요.”
최중모가 당황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유성아는 유현의 대답이 시원해서 마음에 드는지 씨익 웃었다.
“최중모 씨. 그쪽의 걱정은 뭔지 압니다. 혹시라도 제가 저기에 붙지 않을까 걱정되겠죠. 하지만 저는 딱히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아니, 굳이 말하자면 저쪽과는 적대적인 사이에 가깝겠죠.”
권동진의 면전에 대놓고 거절의 뜻을 내비쳤고, 한울과 황혼의 장막의 경계를 샀다.
그들은 서로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처럼 애초에 친해질 수 없는 사이였던 것이다.
“유현 씨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한시름 놓을 수 있겠군요.”
“오. 뭔가 수긍이 빠르시네요. 그래도 더 집요하게 물을 줄 알았는데, 위에서 그러라고 시키지 않았나요?”
“그건 아닙니다. 그러니까 제 윗분, 아는 의원님은 유현 씨를 너무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최중모가 유현을 부른 것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중요한 안건은 따로 있었다.
“유현 씨. 제가 정말로 궁금한 건 따로 있습니다.”
최중모는 침을 한 모금 삼키고는 본론을 꺼냈다.
“이전, 황혼의 장막과 관련된 사태에 대해서…… 백화 매니지먼트가 연관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