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131화
유현과 권지아가 들어온 곳은 사람이 적고 분위기 있는 작은 술집이었다.
자연스럽게 온 것까진 좋았는데, 유현은 막상 메뉴를 시키려니 조금 막막했다.
‘이런 가게에서 파는 술을 마셔 봐야 알지.’
정확히는 소주와 맥주를 마셔 본 적이 없었다. 회귀하고 나서 와인을 입에 댄 것이 전부.
전생에는 미성년자라 술을 못 마셨고, 성인이 막 됐을 때는 종말이 열려서 술을 마실 기회도 없었다.
취하면 죽는 세상에서 누가 술을 입에 댈까?
유현은 권지아에게 혹시라도 아는 게 있냐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모르기는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권지아는 회귀자로 살면서 수도승이나 승려를 방불케 하는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 스스로 욕망을 억제했다기보다는 그 방향성이 강해지는 데에만 있던 탓이었다.
결국, 유현과 권지아 모두 술은 처음인 풋풋한(?) 상태였다.
“소주 1병에 맥주 2병 주세요.”
유현은 결국, 가장 무난한 메뉴를 시켰다. ‘언젠가 어른이 되면 이렇게 먹어야겠지’라고 막연히 떠올리던 시절의 기억을 겨우 끄집어낸 결과였다.
권지아는 자연스럽게 주문한 유현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나지막이 감탄했다.
술도 부드럽게 잘 시키다니. 역시, 유현은 뭐든지 다 할 줄 안다고.
물론, 착각이었다.
“안주는 어떤 거로 드실래요?”
“그냥 뭐, 간단한 거로.”
“그러면 적당히 오징어 같은 거로 할게요.”
안주는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술은 그렇지 않았다. 냉장고에서 막 꺼낸 차가운 술병이 두 사람의 사이에 놓였다.
“자, 마시죠.”
“그러지.”
둘에게는 처음이나 다름없는 술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인생의 노하우는 있다 보니 뜸 들이거나 망설임이 없었다.
처음은 가볍게 맥주였다.
“쨘.”
“…….”
둘은 잔을 부딪쳤다. 황금빛 맥주는 새하얀 거품이 가득 올라온 톡 쏘는 음료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혀끝에서 아주 미약하게 느껴지는 쌉싸름한 알코올의 향이, 이것이 그래도 술이라는 것을 말해 줬다.
“나쁘지는 않네요.”
“음. 그렇군.”
권지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답했다.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둘은 서로 몇 번 눈을 마주치며 술잔을 연거푸 들이키는 것만 반복했다. 미묘한 분위기가 지속됐다. 서로 먼저 말을 꺼내는 순간, 무언가가 펑 터져 버릴 것만 같은 기분.
결국, 먼저 말문을 튼 것은 유현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조금 진지한 질문을 해 보죠.”
“뭐지?”
“궁금한 것이 있어서 말이죠. 지아 씨라면 그래도 아는 것이 많으니까, 혹시 이것도 알지 않을까 싶더군요.”
유현은 최근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곱씹으며 입을 열었다.
“최근 제게 여러 일이 벌어졌었죠. 난데없는 다른 텔러가 시비를 건다거나, 컬렉터들이 저희를 노린다거나, 가는 곳마다 작은 사건이 연달아 터졌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건들은 어딘가 이상하더군요.”
사건 자체가 이상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왜 이런 일들이 난데없이 벌어지냐는 것이다.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한두 가지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일직선으로 길을 갈 뿐인데, 나아가는 길 자체가 바깥으로 가지를 뻗어서 바깥의 일을 안쪽으로 끌고 오는 기분.
“나도 그런 적이 있다. 아니, 상당히 많았지.”
권지아 또한 유현의 말 어딘가에 가슴 깊이 납득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유현과 같은 경험을 했다. 그녀가 회귀자가 된 이후로, 사실상 매번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다. 누군가 이유 없이 시비를 걸거나, 실력을 증명해도 무시하거나, 사상세계를 갈 때마다 묘한 사건이 터지거나.
두 사람에게 공통분모가 이 자리에서 또 하나가 완성됐다.
“지아 씨는 뭐 아는 게 있습니까?”
“아니. 애석하게도 나도 확신할 수 없더군.”
권지아는 맥주를 벌컥 들이켜더니, 말을 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의심이 가는 것은 있다.”
“그게 뭐죠?”
“바로, 이 세상이 그렇게 흘러가게 만든다는 거지.”
“그건……. 흠, 좀 색다른 발상이군요.”
“얼마나 이상하게 비치는지 나도 안다. 하지만 이렇게밖에 설명할 길이 없군. 그냥, 이 빌어먹을 세상이 날 놔두지 않는 것 같다.”
“세상이 놔두지 않는 다라…….”
“내가 아는 건 그게 전부다. 사실 안다고 하기도 뭣한, 단순한 감에 의거한 때려 맞추기에 지나지 않지. 뭐, 결국 이 자리에서 시시콜콜하게 떠들어도 답은 나오지 않는 이야기라는 거다.”
“……그렇군요.”
권지아는 거기까지만 말했지만, 유현은 그녀의 말에 아주 미약한 실마리를 하나 붙잡은 것 같았다.
‘만약 세상이 정말로 그런 구조를 지니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그녀나 나처럼…… 아주 특별한 무언가를 지닌 자들에게만 다가오는 무언가라면.’
그것은 마치, 세상이 특별한 누군가에게 지속적으로 시련을 부여하는 것 같지 않은가?
유현은 자신이 죽기 전에 봤던 황금빛을 떠올렸다.
그 정체불명의 빛이 유현의 회귀를 이끌어 냈으며 그에게 타인의 책을 보는 능력까지 함께 줬다.
‘그렇다면 이 책을 보는 힘과 회귀를 한 것이, 지금 사건을 불러오는 것과 연관이 있는 건가? 그러면 그 황금빛은 대체 뭐였던 걸까?’
그걸 도무지 알 방도가 없었다. 권지아에게 물어볼까 싶었지만, 아무래도 이것까지는 아닌 것 같아서 유현은 입을 다물었다. 권지아도 묵묵히 술을 마시기만 했다.
벌컥. 벌컥.
특히 권지아는 이런 분위기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탓에 술을 마시는 데만 집중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처음으로 마시는 술에, 권지아는 페이스 조절 같은 건 하나도 하지 않았다.
어느덧 맥주 2병과 소주 1병이 동났다. 그녀는 살짝 풀린 눈동자로 빈 술병을 보더니, 유현에게 시선을 옮겼다.
“술…….”
“더 마시게요?”
끄덕끄덕.
상태가 어쩐지 묘했지만, 유현은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소주 2병에 맥주 3병이 추가로 나왔다. 권지아는 술이 추가되자마자, 곧바로 마시기 시작했다.
명백히 오버 페이스였다.
아무리 권지아가 컬렉터라 하지만, 이렇게까지 마시면 유현이라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킨 술이 순식간에 동났다. 유현은 소주 2병과 맥주 3병을 추가로 주문했다.
“지아 씨. 조금은 천천히 마시세요. 아직 안주도 안 나왔어요.”
“너는…….”
“네?”
“너는 몇 번을 봐도 특이하다.”
권지아의 말은 맥락도 없이 갑작스러웠다. 그것은 그녀가 취기가 올랐다는 증거였다.
평소에 입을 꾹 닫고 꺼내지 않았던 마음속에 담아 놓은 말을 스스럼없이 내보일 수 있다는 건, 그녀가 가장 솔직할 수 있는 순간이라는 소리였다.
“왜 넌 망가지지 않았지?”
“…….”
권지아가 가장 궁금한 것은 유현의 그 모습이었다. 어째서 너는 망가지지 않았나. 그것은 낮의 국밥집에서 있었던 대화의 연장선이었다.
유현은 주위 눈치를 보며 빠르게 테이블 모서리에 자그마한 각인을 새겼다. 이걸로 둘의 대화가 다른 사람들에게 새어 나갈 일은 없었다.
“지아 씨.”
“나는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삶을 반복하고 있지. 계속. 계속계속계속계속계속. 반복했어. 분명 나는, 망가진 사람인 거야.”
평소에 당당했던 말투마저 어딘가 무뎌지고 있었다. 취했기 때문일까, [회귀자]의 특성이 점점 효력을 잃어 가고 있었다.
취중진담이라고 해야 할까?
회귀자라는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 드러나는 것은, 상처 입은 한 사람이었다.
“난 네가 부럽다. 넌 망가진 것 같았지만, 그러지 않았지. 분명, 너는 모든 것이 진짜처럼 행동하고 있어. 왜지? 너는 그 끔찍한 미래를 보고 겪어 오지 않았나? 왜 그렇게 멀쩡하지? 회차가 부족한가? 횟수가 문제인가?”
그것은 권지아가 마음속에 담아 놓고 꺼내지 않았던 말.
그녀는 유현을 질투하고 있었다. 이미 망가져서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올 수 없는 자신과 다르게, 유현은 그러지 않았으니까.
유현은 권지아의 모습에 난감함을 느꼈다. 컬렉터는 신체 능력이 뛰어나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신진대사도 높다는 걸 의미했다. 당연히 어지간히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 게 컬렉터였다.
그런데도 권지아는 취했다. 유현은 권지아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권지아, 그녀는 술에 너무 약했다. 컬렉터가 됐음에도 쉽게 취할 정도로.
“이거, 참…….”
유현은 이걸 어쩌면 좋은가 고민하는 사이에도 권지아의 주정은 계속 이어졌다.
“대답해보란 말이야아. 왜 너만, 왜 너만 멀쩡한 건데.”
“회차가 부족했나 보죠.”
“아니야. 그게 아니야. 넌 뭔가 달라. 분명 너는 나처럼 반복했어도, 분명 나와 달랐을 거야.”
“그거야 당연히 달랐겠죠. 저는 지아 씨가 아니니까요.”
“나는…….”
권지아는 입술을 우물쭈물거리다가 테이블에 엎어지듯 고개를 푹 숙였다. 유현은 순간, 그녀가 필름이 끊긴 게 아닌가 걱정이 들었지만, 다행히도 그건 아니었다.
“……네가 정말로 부럽다.”
아주 작지만, 확실히 들리는 목소리.
그것은 권지아가 취기를 빌려서 겨우 꺼낸 진심이었다.
“너의 신념이, 무언가 확고하게 할 수 있다는 그 눈동자가. 너무 부럽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
“차라리 이런 능력이 내가 아니라 너에게 갔었다면…… 어쩌면 이 세상은…….”
“지아 씨.”
유현이 무거운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막았다.
아래를 향한 권지아의 시선이 빼꼼, 유현을 향했다. 반쯤 풀린 그녀의 눈동자가 유현의 얼굴을 담았다.
“제가 지아 씨였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에요.”
“아니야. 분명 거짓말이야.”
회귀자로서의 말투마저 사라진 권지아의 지금 모습은, 딱 그녀의 나이대에 어울렸다.
유현은 맥주를 한 모금 넘기며 말했다.
“지아 씨가 저를 그렇게 잘 봐주는 건 고마운데, 사실 저도 그렇게 잘나지는 않았습니다. 저도 불안해요.”
“너도…… 불안해?”
“네. 불안하죠. 어떻게 안 그럴 수 있겠어요. 지아 씨. 우리가 하는 행동을 봐요. 우리는 자그마치 세상을 바꿔야 해요. 단순한 혁명이 아니에요. 사람들을, 지구를, 더 나아가 텔러들과 성령들까지.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은 아주 많죠. 그걸 보고 있으면 어떤 기분이 들 거 같아요?”
“으응. 나는 잘 모르겠다.”
“막막합니다. 네, 아주 막막하죠. 막상 하려고 보면,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진짜 그런 생각밖에 안 들어요.”
“……정말?”
“정말로.”
유현은 나름 훌륭한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하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앞으로 펼쳐진 길과 비교하면 시작점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아주 멀고 험하고, 또 때로는 방향조차 가늠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기분. 저기까지 가는 데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할까?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까?
차라리 포기한다면 몸이라도 편할 것이다. 하지만 마음은 그러지 못했다.
“저는 그래도 갈 뿐입니다.”
“대체, 왜? 무슨 의미가 있어?”
“의미는 없어요. 그래도 가는 겁니다.”
유현이 하는 짓은, 양식장에 살던 물고기가 강가로 도망쳐 격류를 거스르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주어진 먹이만 주워 먹으며 살을 불리던 양식장과 다르게 강은 매우 위험한 곳이었다.
포식자가 있고 조금이라도 방심하는 순간, 격류에 부딪혀 휩쓸리고 만다.
한시라도 쉴 수 없고, 끝없이 나아가더라도 언제 목적지에 도달할지도 모르는 험난한 여정.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의미란 결국 나중에 만들어 가면 됩니다. 지금은 그저 가기만 하면 돼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끝까지 가는 거죠. 그 끝이 어디에 도달할지 모른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멈출 수 없어요.”
산에 왜 오르는가? 사람들은 왜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을 향했나? 왜 우주로 향했나?
단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산이, 하늘이, 우주가.
아직 그가 모르는 미래가.
“두렵지 않아서 계속 가는 게 아닙니다. 두렵지만 가는 거예요.”
“어째서?”
“그래야만 하니까. 그리고 그건 지아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유현은 손가락을 들어 올려 권지아를 가리켰다. 그녀는 잘 모르지만, 유현은 안다. 아귀도의 사상세계가 붕괴했을 때 권지아가 보여 준 모습을.
그것은 분명 너무나도 용감하고 아름다운, 그로서는 도저히 가질 수 없는 빛나는 모습이었다.
“저 또한, 지아 씨에게 그 모습을 봤거든요.”
“……그런가.”
“네. 그렇습니다.”
“……그런 셈 치지.”
얼굴이 붉게 상기된 권지아는 괜히 부끄러운지, 유현의 시선을 피했다.
어느덧 안주가 나왔다. 권지아는 질긴 오징어 다리를 몇 번 질겅질겅 씹더니, 이내 퉤 하고 뱉었다.
“으잇. 맛없어. 역시 술이 최고야~.”
그녀는 다시 빈 잔에 술을 가득 채워 그것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유현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거, 아무래도 다음날에 숙취 제대로 오겠군.
그래도 다행인 건 권지아는 조금 전처럼 유현에게 투정을 부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비록 취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권지아는 유현의 말에 무언가를 느낀 것이었다.
‘지금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의미는 나중에 만들어 가면 된다, 이건가?’
또르륵.
권지아는 소주 병뚜껑을 손끝으로 툭 치며 테이블에 굴렸다.
권지아는 여태 항상 자신의 회귀에 대한 의미만을 찾아다녔다. 계속 반복된 실패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실패에도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자신의 삶이 틀리지 않았다고. 비록 실패했어도, 그 자체에 의미가 있었길 바랐다. 그것이 나약해진 마음이 만들어 내는 자기 합리화에 지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하지만,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한 번 맛본 위로의 행동은 너무나도 달콤했으니까.
그 끝이, 지금에 와서는 처음 지녔던 그녀의 목적마저 희석시켜 버릴 줄은 그녀도 몰랐다.
그래서 그녀는 뒤늦게 필사적이었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했던 것, 잊어버린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그래서 마치 짐승처럼, 삶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싸워 온 것이다.
그렇게 유현을 만났다.
“…….”
그녀는 풀린 눈동자로 유현을 주시했다. 이제 조금 마음이 편해졌는지, 술을 음미하며 마시는 남자의 얼굴을.
부드러운 눈빛, 훤칠하게 뻗은 코, 거기에 더해서 어딘가 시원해 보이는 인상. 웃으면 친절해 보이지만, 또 진지하면 한없이 날카로워지는 인상.
대체, 저 남자는 어디가 부족했기에 그랬던 걸까? 무엇이 아쉬워서 다시 시작한 걸까?
‘납득이 안 가.’
권지아가 본 유현은 완벽했다. 그는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대단했다. 유현 스스로는 자신이 대단치 않다고 말하지만, 권지아는 그가 부족했던 시절이 있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뭔가…… 보고 싶네.’
그는 대체 어떤 과거를 지녔던 걸까? 또 지금의 그는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그것이 알고 싶어졌다.
언제나 타인을 향해 무감각했던 회귀자는, 처음으로 자신을 제외한 다른 누군가에게 관심을 품기 시작했다.
“저기…….”
“네?”
“너……한테. 꼭, 묻고 싶은 것이…….”
‘있어’라고 말을 하려던 권지아는 점점 자신의 정신이 하늘을 붕 뜨는 걸 느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눈이 무겁다. 세상이 빙빙 돌았다. 그녀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 말고, 이내 테이블에 고개를 완전히 처박고 말았다.
쿵.
“……아이고.”
그 모습을 본 유현은 자기도 모르게 그런 말을 내뱉고 말았다.
취해서 주정을 부리다 못해 이제 필름이 끊겨서 쓰러지다니. 도저히 회귀자라고 할 수 없는 추태에 머리가 아파 왔다.
“여기 계산이요.”
유현은 그렇게 권지아를 등에 업고 가게를 나왔다. 힘없이 늘어진 그녀의 몸이 유현의 등에 달라붙었다. 등 뒤로 느껴지는 온기에 유현은 한숨을 내쉬며 번화가를 걸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무실과 가까운 곳에서 마실 걸 그랬나?’
아무리 그래도 사무실까지 가기에는 거리가 멀었다. 어서 택시라도 하나 잡아서 돌아갈까 하는 순간, 권지아에게서 갑자기 신호가 왔다.
“자, 잠깐만…….”
“지아 씨?”
“소, 속이…….”
“네? 자, 잠깐만요.”
유현은 불현듯 불안감이 자신의 등골을 쓰윽 훑고 가는 것을 느꼈다. 설마, 그건 아니겠지? 제발 아니어라.
그 기도는 보기 좋게 박살 났다.
“우읍!”
“으악! 조금만 버텨요!”
“그, 급하다…….”
“알았으니까, 좀!”
유현은 황급히 화장실을 찾아 움직이려 했지만, 그런 곳을 쉽게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보다 못한 유현은 권지아를 등에 업은 채 가장 가까운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둘이 들어간 곳은 무인 모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