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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27화 (127/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27화

“아으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 다 큰 성인인 데다가 대표거든요? 그렇게 자비 없이 꿀밤을 날리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마음만 같아서는 볼까지 꼬집고 싶은 걸 필사적으로 참고 있는 겁니다. 반성하세요.”

“치.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유현 씨는 나오려고 하지 않을 거잖아요.”

“왜 절 그렇게 나가게 하려고 합니까?”

“어제는 혜림 언니랑 같이 데이트 했으면서.”

“그건…….”

유현은 무언가 말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아니라고 말하기엔 곰곰이 씹을수록 반박할 수 없었다.

그냥 기분 전환 겸 나간 것인데, 어떻게 보면 데이트처럼 비치기도 했다. 아니, 사실상 데이트가 맞지 않는가? 같이 밥도 먹고, 쇼핑도 했으니까.

유현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백서련이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오늘은 제 차례에요.”

“저를 무슨 공공재처럼 대하지 말아 주시겠어요?”

“대표의 명령이에요.”

“직장 내 갑질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더니, 이렇게 가까이 있었군요. 고소할겁니다.”

“일 잘하는 사원에게 내리는 상이라고 생각하세요.”

“제게 상은 일을 더 시키는 겁니다.”

“어휴. 진짜. 누가 일벌레 아니랄까 봐.”

백서련은 한숨을 내쉬며 강제로 유현과 팔짱을 꼈다.

“자, 오늘은 푹 쉬어요.”

“어제도 쉬었는데요?”

“저도 쉬어야죠!”

“아니, 그런…….”

“대표 명령!”

“끄응.”

사실 거절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현은 그러지 못했다. 백서련이 지금까지 얼마나 고생하고 열심히 일했는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유현은 스스로가 일을 계속하는 건 괜찮았지만, 백서련이 쉬지 않고 일만 하는 것은 별로 달갑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참 이기적인 생각이었지만, 그게 유현의 생각이었다.

그래서였다. 그녀가 저렇게 웃으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자는 제안을 칼같이 거절하지 못하는 것은.

백서련이 지금까지 얼마나 노력을 해 왔던가? 겨우 빛을 보게 된 게 얼마 전이다. 그런 그녀가 쉬겠다고 하는데, 누가 감히 토를 달 수 있을까?

결국, 유현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하아. 알겠습니다. 대표님 명령이라고 하시니, 오늘은 제가 기꺼이 어울려 드리죠. 고마운 줄 아세요.”

“히힛. 그거참 황송하네요.”

유현은 자신의 옆에서 희희낙락하며 아울렛 안쪽을 둘러보는 백서련을 보면서 피식 웃음을 흘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무를 수도 없는 거, 최선을 다해 그녀의 기분을 맞춰 줄 생각이었다.

“아. 유현 씨. 저기 봐 봐요, 신기한 물건들이 가득하네요.”

“저긴 그거네요. 사상세계의 부산물로 만든 물건들을 파는 곳.”

백서련의 시선을 끄는 곳은 꽤나 특이한 곳이었다.

사상세계의 부산물은 온갖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상세계의 부산물이 ‘전부’ 쓸모가 있다면 그건 아니었다.

때로는 쓰기에는 애매한 잉여 물건들이 남게 되는데, 백서련이 관심을 갖은 곳은 그런 잉여 부산물들을 이용해 액세서리를 만든 곳이었다.

“저희 저기로 가 봐요.”

“그러죠.”

둘은 곧바로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얼핏 보면 평범한 액세서리 매장처럼 보였지만, 안쪽의 진열대에 즐비한 것은 전부 사상세계에서 나온 부산물들이었다.

지구에서는 보기도 힘들고, 구할 수도 없는 특이한 재질로 이루어진 물건들.

분명 쓸모가 없는 것들을 어떻게든 재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또 구매자들의 욕구를 제대로 자극했는지 손님들이 상당히 많았다.

“서련 씨도 이런 거에 관심이 많았어요?”

“에이. 관심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저도 엄연히 컬렉터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그것도 그렇네요.”

“궁금하기도 했어요. 사상세계는 어떤 곳이고, 그곳에는 대체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그런데 컬렉터가 아닌 제가 함부로 거길 들어갈 수는 없잖아요.”

“글쎄요.”

백서련은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마음만 먹으면 일반인도 사상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다만, 일반인은 절대 환상체에게 대항할 수 없어서 위험하기에 금지되었을 뿐. 갈 놈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간다.

백서련은 그 사실을 몰랐을 뿐. 아마, 알았어도 그런 짓을 벌이지는 않았을 거다. 유현도 그 사실을 알기에 별말을 하지 않았다.

“짜잔. 이거 어때요?”

백서련은 신기한 풀로 엮어서 만들어진 귀걸이를 하나 들어 올리며 유현에게 물었다.

유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가요?”

“아이, 참. 이게 저랑 어울리는지 묻는 거잖아요.”

“아.”

“자, 봐요.”

‘어때요?’라고 물으며 백서련은 귀걸이를 자신의 귀에 가까이 가져다 댔다.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기면서 그녀의 얼굴이 이전보다 훨씬 더 명확하게 보였다. 유현의 시선이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드러난 목덜미를 향했다.

평소에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던 그녀의 목은 잡티 하나 없이 뽀얗다.

‘아니지, 아니야.’

유현은 즉시 고개를 털어 내며 백서련의 질문에 답했다.

“으음. 좀 어울리는 것 같기도?”

“에? 대답이 그게 뭐예요. 성의 없어.”

“제가 뭐, 장신구에 관해서 잘 알지는 못하든요.”

“유현 씨라면 그래도 알 줄 알았는데. 항상, 뭐든지 척척 해내잖아요.”

“할 수 있는 것만 해서 그렇게 보이는 겁니다. 저는 이런 부분에서는 젬병이에요.”

“큭큭. 젬병이래.”

“그게 웃겨요?”

“솔직히 유현 씨가 스스로 뭘 못한다고 말하는 게 잘 안 믿기거든요. 사실 잘하는데, 일부러 못하는 척 겸손 떠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런 느낌?”

“그런 느낌은 뭡니까, 그런 느낌이. 어울리고 자시고는 저도 잘 모르는데, 그래도 물건을 보는 눈은 있으니까 조금 도와드리죠.”

유현도 나름, 이 매장에 관심이 생겼다.

남들이 신경 쓰지 않는 부산물을 이용해서 하나의 물품을 만든다. 이걸 처음으로 떠올린 사람은 꽤나 독특한 발상을 지닌 사람임이 분명했다.

‘그래도 위험한 물건 같은 것도 섞여 있지 않으려나?’

부산물이라 해도 쓸모가 없다고 위험도가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써먹을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해서 잉여 부산물로 처분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딱히 위험의 소지가 될 요소는 없어 보였다.

‘하긴. 그런 것들은 미리 걸러 냈겠지. 신기하긴 하네. 부산물을 이용해서 만든 장신구라…….’

반지, 목걸이, 귀걸이, 머리띠 등등. 단순히 여성을 위한 물건 말고도 남자들이 쓰기에 적당해 보이는 벨트나 배지, 시계까지 있었다.

‘부산물인 줄 몰랐다면 잡상점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어. 아니, 잡상점이 맞긴 한가?’

유현은 관심이 동해서 물건들을 세세히 살폈다. 백서련은 그 옆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아닌 척해도 막상 이곳에 와서 가장 흥미를 품고, 집중하는 것은 강유현이었다.

‘아. 은근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유현이 저렇게 무언가에 빤히 집중하는 모습은 몇 번 보았지만, 그 대상이 아기자기한 장신구라는 점이 묘한 상황을 연출했다.

유현은 몇 개의 물건을 집었다가,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놨다. 그래도 사상세계의 부산물이라서 무언가 특별한 기운이 서려 있지 않을까 했지만, 그런 것이 없었다.

그저 재질이 특별할 뿐, 어디를 봐도 특출난 물건들은 아니었다.

“짜잔. 유현 씨. 이건 어때요?”

백서련이 이번에 보여 준 것은 머리핀이었다. 그녀의 한쪽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장착한 옥색 머리핀은 백서련의 분위기를 더 차분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백서련은 체구가 평균보다 작고 인상이 동글동글했다. 얼굴이 빵빵하다는 게 아니라, 외모가 귀엽다 보니 그런 이미지가 특히 강했다.

하지만 머리핀으로 한쪽 머리를 넘기며 고정하니, 백서련은 이미지가 확 바뀌며 이지적인 회사원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유현이 종말의 미래에서 보았던 머나먼 그녀의 모습과 흡사했다.

“…….”

“유현 씨? 유현 씨이?”

“……네? 아, 네.”

“갑자기 멍하니 왜 그래요. 그렇게 안 어울렸어요?”

“아니, 그게…… 갑자기 옛날 일이 생각나서요.”

“옛날?”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그 머리핀, 되게 잘 어울리네요. 네. 엄청 어울리는 거 같아요.”

“오오. 갑자기 웬일? 칭찬을 다 하시고.”

“저도 칭찬할 때는 다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 아니면서.”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둘이 시시덕거리자 주변에서 둘을 향하는 시선이 늘었다. 이곳에 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여자끼리 오거나 혹은 남녀 개인에 지나지 않았다.

남녀가 함께 온 케이스는 유현과 백서련이 유일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둘은 어울리는 한 쌍의 미남미녀 커플처럼 보였으리라.

‘크흑. 나한테도 저런 예쁜 여자 친구가 있었다면!’

‘아 씨. 옆구리 시리게 만드네. 나도 저런 젠틀 한 남친 있었으면 좋겠다.’

‘저것들이 어디서 신성한(?) 매장에서 연애질이야?’

대부분 그런 시선이었다. 하지만 쇼핑 자체에 푹 빠진 백서련은 그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시선에 민감한 유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다른 물건을 찾고자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문득, 하나의 물건에 시선이 갔다.

‘이건…….’

얼핏 보면 주변에 있는 다른 액세서리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물건. 하지만 유현이 보는 것은 물건의 겉모습이 아닌, 그 안쪽부터 흘러나오는 기운이었다.

유현이 자연스럽게 해당 물건을 꺼내 들자 백서련이 의외라는 시선을 보내왔다.

“어라? 그거 노리개네요.”

노리개.

치장 물품 중 하나로 한복이나 치마허리에 다는 호화로운 물건이었다.

유현이 관심을 품은 것이 바로 이 노리개였다.

“신기하네요. 노리개는 전통적인 매듭 기법으로만 만들 수 있어서 이런 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닌데. 그것도 색깔이 되게 화려하네요. 일곱 빛깔 실로 엮은 건가?”

“여기 주인이 보통 손재주를 지닌 게 아닌 거겠죠.”

“하긴. 사상세계 부산물로 이런 물건을 만들려면 보통 사람은 아니겠죠?”

“아마, 그럴 겁니다.”

무엇보다 유현의 관심을 가장 크게 끄는 것은, 노리개 자체에 담겨 있는 [이야기의 힘]이었다. 보통 사람은 절대로 인지할 수 없었고 컬렉터도 마찬가지다. [라플라스의 파편]을 지닌 유현이니까 겨우 알 수 있었다.

이 노리개는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그보다 다른 독특한 기운을 품은 아티팩트에 가까웠다.

누군가 일부러 만든 게 아니다. 그저 만들다 보니, ‘우연히’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원 오브 사우전드(One of Thousand)

제작자의 의도를 벗어나, 극히 드문 확률로 튀어나오는 걸작.

‘운이 좋네. 설마, 이런 곳에서 이런 걸 발견하게 될 줄이야.’

가격도 물건의 가치를 생각하면 헐값이나 마찬가지였다. 유현은 결국, 이것을 구매하기로 했다.

“어? 그거 사시게요?”

“네. 마음에 들거든요.”

“어디에 쓰시려고요?”

백서련이 노리개를 구매한 유현에게 물었다. 유현은 웃으며 그녀의 옷깃에 노리개를 가져다 댔다.

“여기에요.”

“네, 네?”

갑자기 유현이 불쑥 다가오자 백서련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유, 유현 씨?”

“가만히 있어 봐요.”

“네, 넷!”

“자……. 됐다.”

유현은 그녀의 옷깃에 노리개를 달아 주는 데 성공했다. 백서련은 유현이 구매한 노리개를 슬쩍 보더니 이내 고개를 들어 유현을 올려다봤다.

“이거 저 주는 거예요?”

“네. 선물입니다. 그거 보통 물건 아니니까, 잘 간직하세요.”

선물한 노리개에 들어 있는 [이야기]는 착용자를 위기로부터 보호하고, 병과 재난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이었다.

유현에게는 크게 필요가 없지만, 일반인인 백서련에게는 아주 좋은 효과였다.

“어울리고 좋네요.”

“어…… 그, 그 고마워요.”

부끄러워서 얼굴이 홍시처럼 달아오른 백서련은 말을 더듬으며 감사를 전했다. 본인의 흥미 위주로 끌고 와서 지루해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유현은 오히려 자신에게 선물까지 해 준 것이다.

옷깃에 달린 노리개를 슬쩍 본 백서련의 입가가 풀어졌다.

“헤, 헤헤. 잘 쓸게요.”

“살 것도 다 샀으니까, 다른 데도 둘러볼까요?”

“네. 그래요.”

다른 손님들의 질투심 어린 눈빛을 받은 두 사람은 매장을 벗어났다.

백서련은 여기에 막 들어왔을 때보다도 확실히 기분이 들뜬 상태였다. 딱 나이에 어울리는 풋풋한 모습. 언제나 일에 치여 살던 그녀였기에 특히나 그랬다.

그러다 유현은 문득, 무언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서련 씨. 잠시만요.”

“네?”

“잠깐만 저기 앉아 보세요.”

아울렛의 중간중간에 손님을 위해 쉬어 갈 수 있는 의자가 있었다. 유현은 백서련을 거기에 앉히며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유현은 곧바로 백서련의 구두를 벗겼다. 살색 스타킹에 둘러싸인 백서련의 맨발이 보였다. 백서련은 유현의 거침없는 행동과 자신의 발목을 붙잡는 남성의 억센 손길에 당황하며 목소리를 떨었다.

“유, 유현 씨? 갑자기 이게 대체…….”

“역시. 뭔가 이상하다 싶더니.”

“네?”

“서련 씨. 스타킹 올이 나갔네요.”

유현이 보여 주는 곳, 백서련의 발목 부근 스타킹의 올이 심하게 나가 있었다.

유현의 진지한 표정에 백서련은 순식간에 맥이 빠졌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더니.

“아, 그러네요.”

“기왕 이렇게 된 거 하나 새로 사죠. 서련 씨도 마음에 드는 옷도 사시고, 그럴 필요가 있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이걸 대체 어떻게 아신…… 아항.”

백서련은 장난기가 치솟는 걸 느꼈다. 그녀는 일부러 자신의 스타킹을 신은 발을 유현에게 슬쩍 내밀며 장난스럽게 미소 지었다.

“유현 씨. 혹시, 이런 거 좋아하셨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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