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123화
“…….”
“…….”
“…….”
내 설명에 셋은 침묵했다. 둘은 믿을 수 없다는 경악 때문에, 한 명은 이미 이 심각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솔직히 누가 이렇게 설명해도 믿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건 내 기우였던 것 같다.
“그러니까 저희가 하는 행동은 지금, 이 가득 차오른 풍선에 바람을 미리 빼 주는 겁니다. 지나치게 팽창해서 터지지 않게끔 말이죠.”
우스꽝스러운 비유지만, 이게 사실이고 현실이었다.
사상세계를 클리어하지 않으면 지구는 결국에 멸망한다. 그건 미래를 겪어 온 나이기에 확신할 수 있는 불변의 진실이었다.
‘물론, 진짜 이유는 따로 있지만.’
종말이 일어난 것은 이렇게 사상세계를 클리어하지 않은 것에 있지만, 그것은 이 꼴을 지켜본 성령들의 의지 또한 있었다.
컬렉터들은 사상세계를 클리어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험을 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며 주어진 것만 받아먹으며 살고자 했다.
수백 수천이 넘는 사상세계 중, 전생에서 클리어 된 것은 향후 5년간 10개도 채 되지 않는다면 믿겠는가?
클리어 비율이 1%도 채 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모험도 낭만도 열정도 기대감도 없어지니, 성령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지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이야기와 막대한 이야기가 매장된 세계지만, 그것을 활용하지 않으면 결국 관객은 떠나고 말아.’
성령들이 줄어들고, 제네시스 넷에서도 지구의 가치는 연일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결국, 지구를 담당한 천체주식회사는 큰 결심을 하게 된다. 더 이상 포인트의 이득을 주지 않는 이 세계를 팔아 버린 것이다.
‘기업은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이익이 발생하지 못한 사업은 빠르게 처분하는 게 당연해.’
그렇게 지구의 시화권은 천체주식회사에서 엑소도스의 손으로 넘어갔다.
엑소도스의 텔러들은 지구의 시화권을 얻자마자 바로 지구를 종말로 이끌었다. 안쪽에 가득 찬 이야기를 폭주시키고, 그것을 현실과 동화시켜 폭주를 끌어 낸 것이다.
그렇게 세계가 변했다.
엑소도스는 이 폭주하는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나열해, 나름의 순서를 세워 하나의 과정을 만들었다.
그것이 종말 속에 펼쳐진 ‘시련’이었다.
‘그리고 특정 사람만이 컬렉터가 되고 시화를 할 수 있게 했던 전과 다르게, 살아남은 전 인류에게 시화를 할 수 있게끔 각성을 시켰지.’
난데없이 벌어진 종말. 살아남은 사람들의 각성. 친절한 설명이 없이 펼쳐지는 온갖 시련들.
나는 그 속에서 10년을 살았다.
소중했던 사람들이 죽고, 그들을 그리워하고 떠나보내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해.
필사적으로 앞만 보고 달렸다.
“제가 사상세계의 클리어를 고집하는 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성령들의 관심과 기업의 이윤에 대한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이것까지 설명하기에는 그녀들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게 하는 짓이었으니까.
“그, 그렇다면…….”
백서련이 말을 더듬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세계의 각 정부와 클랜들이 하는 짓은 전부…….”
“네. 맞습니다. 지구의 종말을 초래하는 짓이죠.”
“하, 하지만 대체 왜?”
그녀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그야 그럴 것이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겠지.
그러나, 이게 현실이다.
“지금의 지구는, 이야기의 힘을 이용한 여러 산업이 발달했죠.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변혁이 오기 전 지구의 상황. 그때는 지구 온난화라는 끔찍한 미래가 예고되어 있었죠.”
“그건…….”
“그때도 사람들은 어땠죠? 기업은? 국가는? 자신들이 소모한 자원이 자신들의 목을 죄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죠. 기업의 이윤을 위해, 인간의 욕망을 위해. 알면서도 괜찮겠지 하면서 넘긴 겁니다.”
그래도 그때는 차라리 나았다. 나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사람들이 환경 운동도 펼치고, 고치고자 노력을 하는 움직임은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오히려 그때보다 더 심각하다.
“사람들은 모릅니다. 자신들의 이런 행동이 이 세계를 어떻게 이끄는지.”
“저, 이해가 안 가요. 유현 씨가 알고 있다면 다른 텔러들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왜 설명을 해 주지 않은 거죠?”
“다른 텔러라고 다 아는 것은 아니거든요.”
여기서 모두를 납득시키려면 내가 미래에서 왔다는 것까지 말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까지 밝히기엔 리스크가 너무 컸다.
나는 둘러대면서도 그녀들이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댔다.
“이건 천체주식회사 내부에서도 아주 극비만 아는 사안입니다. 다른 텔러들이라고 다 알 수는 없어요.”
“유현 씨는 아시잖아요.”
“저는 보통 텔러가 아니잖아요.”
“아.”
“그리고 다른 텔러들이 그걸 안다고 해서, 굳이 하계의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말할 이유가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인간들을 눈 아래로 깔고 가는 거만함을 지닌 게 텔러다.
그들에게 친절하거나 자세한 설명을 바라는 것은 호랑이가 샐러드를 먹는 거나 다름없었다.
내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해 줬다. 그들도 텔러들의 독선적인 성격은 소문을 들어서 익히 알고 있었다.
“천체주식회사 내부에서도 그냥 이러한 ‘전망’이 있을 거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죠. 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이대로 가면 이 세계는 멸망하고 말아요.”
“그렇다면……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알린다면, 과연 그들이 제 말을 믿을까요?”
“그건…….”
“분명, 그들은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 저들은 분명 사상세계 클리어를 하기 위해 저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는 하는 거다. 거짓말로 자신을 납득하려 들고 있다. 이렇게 말이죠.”
다른 텔러들도 내게 말하겠지. 일부러 이슈 몰이를 해서 시청령을 늘릴 속셈이냐고. 내가 하는 말이 거짓말일 거라고.
게다가 내가 대놓고 이걸 떠벌리고 다니지 않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이걸 말했다고 하면 ‘너는 어디서 그걸 알았냐?’라고 캐물으면 가장 곤란해지는 건 나다.
내가 미래에서 와서 그렇고 사실 전생에 인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사실을 알렸다가 내가 무슨 짓을 당할 줄 모른다.
그렇다고 진실을 숨기면 상대는 절대 믿어 줄 리가 없다. 말해야 하는 것과 말해서 안 되는 것은 하나로 포개져 있었다.
‘서련 씨나 혜림 씨야 나를 믿어 주고 여기에 별로 의문을 품지 않아서 그렇지. 다른 컬렉터가 이 말을 듣게 된다면? 아니면 성령이 이 사실을 안다면? 과연, 그들이 나를 믿을까? 나를 가만히 놔둘까?’
결국, 그거다.
알려줄 수도 없고 알려 준다고 하더라도 듣는 사람들이 믿어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마야인의 종말론이나 노스트라다무스가 떠든 종말론이 헛소리로 치부됐고 실제로 그리했듯이.
사람들은 결국, 이 또한 누군가의 망상이라 치부하고 넘길 것이다.
“그리고 분명,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일부 텔러들이 있습니다. 알면서도 말하지 않고서 숨기는 자들이 있죠.”
바로, ‘펜타그램’ 부서.
놈들은 종말 때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던 텔러들이었다. 놈들은 분명 지구가 그렇게 되리란 걸 알고 있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들이 안다고 해서 내가 그들에게 찾아가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그쪽은 필사적으로 모르쇠로 일관할 거고, 오히려 내게 어디서 그걸 알아냈냐고 나를 몰아세울 것이다.
놈들은 훗날 찾아올 종말을 알고, 그것을 앞당기려 하고 있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해 먹으려고.
“저는 이 세상이 그런 끔찍한 결말을 맞이하는 걸 원치 않습니다.”
그러니, 나 또한 알면서도 알리지 않는다.
훗날 찾아올 종말을 알고, 그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사람들과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
“…….”
“…….”
“…….”
권지아를 제외한 나머지 둘은,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맞이한 사람의 반응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녀들에게 있어서 내가 꺼낸 말은 너무나도 허황되고, 또 와닿지 않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임을 알기에, 더더욱 무겁게 다가올 거고.
“후우. 제가 그래서 별로 말하는 걸 원치 않았죠. 진실이라는 것은, 때로는 이렇게 잔혹하고 무거운 거니까요. 아예 모르고 활동하면 모를까, 이미 알아 버리면 잊을 수도 없잖아요.”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것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소리다.
하지만, 지금 세상에서 모르는 것은 절대 약이 아니다. 모두가 이 사실을 알고 힘을 합쳐 위협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너무 이상적인 그림이었다. 이 사실을 알면 사람들이 모두 ‘그래! 우리 힘내자!’ 하고 손에 손잡고 노력하겠는가?
패닉에 빠질 거다. 폭동이 일어나고, 종말을 예찬하는 자들이 테러를 벌이겠지.
상황은 더 나빠지면 나빠질지언정,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 참고로.”
나는 무거워진 분위기를 가볍게 환기하기 위해 농담조로 말했다.
“이미, 이 사실을 들은 여러분들에게 선택권이란 없습니다. 끝까지 함께 가셔야죠.”
“너흰 너무 많은 걸 알았어. 뭐, 그런 건가요?”
“바로 그거죠. 보통 그 대사를 읊어 주는 건 악의 조직이지만, 우린 세상을 구한다는 게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죠.”
“하아. 저는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백서련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골머리를 쥐어 싸맸다.
“세계 멸망이니, 뭐니. 스케일이 너무 크잖아요. 진짜로, 저는 그저 돈을 많이 벌고 싶었을 뿐인데.”
조금은 짜증을, 조금은 허탈하게.
그렇게 중얼거린 백서련은 다시 몸을 반듯하게 일으켜 세웠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멈출 수야 없죠.”
그 흔들림 없는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혜림 씨는요?”
“저는 유현 씨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그건 혜림 씨의 의지인가요? 아니면 제 의지인가요?”
“제 의지에요. 제가 원하니까, 하는 거라고요.”
그녀의 말에 거짓은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도 잘했다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자연스레 옆에 있는 권지아에게 시선을 옮겼다.
“자. 그러면 다 된 거죠?”
“잠깐. 왜 나한테는 그걸 묻지 않는 거지?”
뜬금없이 권지아가 태클을 걸어왔다. 아니, 댁은 이미 알고 있잖아요?
그런 눈빛을 보냈지만, 그녀는 어딘가 뚱한 채 납득하지 못한 기색이었다. 내가 혹시 뭐 불편한 행동이라도 한 걸까?
[야, 이 바보야. 아무리 그래도 좀 맞장구 좀 쳐 주라는 거잖아. 혼자만 쏙 빠지니, 얼마나 섭섭하겠어?]
그때 나를 질책하는 백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거였나?’
권지아는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있으니까, 굳이 묻지 않아도 되겠지 하고 넘기려는 게 잘못된 행동이었다.
곱씹어보니 말하지 않아도 알아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때로는 알면서도 표현을 해 줄 필요가 있었다.
‘덕분이다. 고마워 백련.’
[흥. 고마우면 나한테도 잘해! 뭐라 해도, 난 네 동반자니까.]
‘그래.’
나는 권지아를 향해 물었다.
“지아 씨도. 할 수 있죠?”
“물론이다.”
그녀는 조금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내 행동이 정답이었나 보다.
“그래서, 앞으로 어쩔 생각이지?”
권지아의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쩌고 자시고, 바람이 차오르는 풍선이 터지지 않게 하려면 바람을 빼 줘야겠죠. 우리에겐 그 방법이 사상세계를 하나씩 클리어 하는 거고요.”
“그렇다면 언제까지 계속 그것을 반복해야 하나요?”
백서련이 날카롭게 질문했다. 그래. ‘왜?’라는 이유를 알고 ‘어떻게’라는 방법을 안다면 그다음에는 ‘언제’까지라는 의문이 남는다.
그것은……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저도 자세히 알진 못하지만, 그래도 짐작이 가는 건 있습니다. 지금 사상세계의 종류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아십니까?”
“그냥 이야기 아닌가요?”
“이야기에도 종류는 여러 개죠.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나 ‘역사’도 있고, 사람들의 입과 글을 타고 전해진 ‘설화’나 ‘민담’이 있죠. 그리고 모두의 기억에 새겨진 ‘전설’, 모두가 우상시하는 ‘신화’가 있습니다.”
사상세계의 이야기는 이렇게 여러 가지로 구성된다.
“그중 바깥에 나온 사상세계는 대부분 ‘역사’에 기반한 것들이 많습니다. 아주 간혹, 민담과 설화도 섞여 있고 극소수지만 전설, 신화의 이야기도 있죠. 다만, 이것들은 진짜 신화와 전설에 비해 매우 매약한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지구의 안쪽, 내부에서 맹렬하게 팽창하려는 이야기를 가리켰다.
“아주 무겁고 중요한, [진짜 이야기]는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는 거죠. 중요한 건 바로, 이 진짜들입니다.”
가장 중요한 신화의 이야기로 구성된 사상세계.
이 지구의 운명을 결정지을 핵심 이야기였다.
이것을 클리어 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이 세계의 미래가 정해질 거다.
지구의 가능성을 느끼고 이대로 놔둘 것인가?
지구는 더 이상 회생이 불가능하다 생각하고 낙인을 새겨 폐기할 것인가?
“전부 저희의 성공에 달렸다는 거죠.”
그리고 그것을 보고 판단하는 것은 우리들의 역할이 아니다.
가치를 매기는 것은 저 하늘의 위, 드높은 천상의 존재인 성령들이다.
그들은 우리 시화를 보는 시청자며 무대를 보는 관객이자, 종말의 심사 위원이었다.
나 자신의 미래를 타인에게 맡겨야 한다니.
그야말로 불안하고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해야지.’
싫어도 꾹 참고 웃으면서 해야 한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지.’
언젠가 올지도 모를 미래를 그리며, 나는 내 감정을 조용히 억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