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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22화 (122/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22화

“자. 그러면 다음 일을 하러 가 볼까요?”

이미 거하게 한 방 터뜨렸지만, 그렇다고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 그 후속 작업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대비해야 할 일들은 여전히 산더미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뜨악하는 표정으로 나를 막아세웠다.

“유현 씨. 오늘은 좀 쉬는 게 어떠세요?”

“맞아요. 유현 씨 요즘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백서련과 강혜림이 나를 달래듯 말했다.

나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물었다.

“아니, 쉬다뇨? 지금 이럴 때일수록 더욱 부지런하게 일해야죠.”

“…….”

“…….”

내 말이 정녕 믿기지 않는지, 서로의 시선을 교환하는 백서련과 강혜림.

결국, 보다 못한 백서련이 권지아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가만히 이 상황을 지켜보던 그녀는 갑작스러운 SOS 신호에 어깨를 움찔 떨더니, 나와 백서련을 번갈아 살폈다.

“크흠. 흠. 내가 보기에도 지금은 좀 쉬는 게 좋을 거 같군.”

“네?!”

설마하니, 회귀자인 그녀도 저런 말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브루투스에게 배신당한 카이사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지아 씨 당신마저!

“그래. 솔직히 얼마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내가 이곳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나는 네가 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니. 쉰 적이 왜 없어요. 중간중간 좀 쉬었는데.”

“그게 쉰 건가? 그때도 손에 서류를 쥐고, 온갖 고민과 궁리를 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그건…….”

가만히 있으면 심심하니까, 그저 몸을 풀듯이 하려 했을 뿐이라고. 그렇게 미약한 저항을 하자 세 명의 여성 진이 불같이 화를 냈다.

“그게 무슨 휴식인가요!”

“맞아요! 쉴 때는 푹 쉬어야지. 그건 결국 일한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적어도 휴식이라는 것은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해야 하는 건데, 네놈의 그 행동 어디에 ‘편함’이 있다는 거냐?”

어? 설마, 지금 내가 잘못한 건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보통 이렇게 기회가 찾아왔으면, 더더욱 노를 저어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막상 반박하자니, 저 셋의 기세가 너무 무섭다.

“그, 그래도 부산물 처분도 해야 하고, 추가 정산된 포인트도 정리도 하고, 세 번째 컬렉터도 찾아야 하고…….”

“그걸 꼭 지금 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리고 부산물을 파는 것은 이곳의 대표인 제 역할이기도 해요. 그것까지 유현 씨가 할 생각인가요?”

“아니, 그게…….”

생각해 보면 이제 백서련에게 맡기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나는 묘하게 그 부분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일하지 않으면, 뭔가 안 될 것만 같은 이 기분. 한시라도 쉬면 안 되는 불안감이 내게 있었다.

“그런가, 아무래도 일중독 같군.”

권지아는 그런 내 상태를 한마디로 일축했다.

일중독이라고.

“제가요? 일중독? 지나가는 개가 다 웃겠네요.”

“본인은 그렇게 아닌 척해도, 우리는 그렇게 느끼고 있다. 그럴 것이, 일하지 않으면 불안해하지 않는가?”

“마, 맞아요!”

강혜림이 이때다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에 나는 뭐라도 반박을 해야 했는데,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내가 진짜 일중독인가? 그냥, 이게 당연한 거 아니었나?

“후우. 그 표정을 보니, 아직도 납득하지 못한 거 같군. 텔러로 활동하면서 제대로 쉰 적이 있기는 한가?”

“그건…….”

“없겠지. 아마 본인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지금 너는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고 있다. 혹사한다고 해도 좋지. 뭐가 그렇게 불안한 거지?”

“불안?”

아.

권지아의 말에 나는 그제야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나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가만히 서 있기만 하면 나도 모르게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종말에서는…… 한시라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으니까.

‘이 삶이 이미 버릇처럼 돼 버린 거였나?’

종말에서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뒤처지고 도태되고 말았다.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봐 왔기 때문에 더욱 필사적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10년을 살아왔다.

처음에는 힘들고 괴롭고,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와 피로감이 장난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것이 적응되고 ‘일상’이 되고 만 것이었다.

그렇게 죽고 나서 다시 태어난 지금도 그때의 잔재는 남아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밀도 있는 10년을 그렇게 보냈는걸.

갑자기 바뀌라고 해도 바뀔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맞아. 나는 너무 쉬지 않고 달렸지.’

스스로 납득을 하면서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 그런데 지치지 않았다면 안 쉬어도 되는 거 아닌가?

쉬는 것은 지칠 때만 하는 거잖아.

나는 내가 떠올린 이 훌륭한 논리적인 해답에 도취하여 목을 가다듬었다.

“흠흠. 그래도 저는 지치지 않았으니까, 더 해도 딱히 상관없지 않을까요?”

“보는 우리가 불안해서 그런다.”

“아니…… 그게 왜요. 저라도 일하겠다는데.”

“유현 씨가 그렇게 부지런하게 돌아다니면, 저희는 눈치 보여서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

강혜림의 말이 나의 폐부를 찔렀다. 그런가? 그런 건가?

하, 하지만 막상 그 말에 납득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려고 하니, 내 몸이 달달 떨렸다.

“아, 안 돼. 역시 안 되겠어. 일, 일을 해야 해. 뭐라도 해야…….”

“유, 유현 씨가 좀비처럼 변했어!”

“붙잡아!”

“으억! 날 가만히 내버려 둬!”

반항하려고 했지만, 순식간에 권지아와 강혜림이 내 양팔을 붙잡고 힘으로 제압에 들어갔다.

내가 보통 컬렉터보다 강하다고는 하지만, 주인공급 특성을 지닌 저 둘이 작정을 하고 행동에 들어가니, 찍소리도 내뱉을 수 없었다.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구나!

결국, 나는 둘에게 제압당한 채 소파에 고정될 수밖에 없었다.

“쉬지 않겠다면, 강제로라도 쉬게 하겠다.”

“맞아요. 유현 씨가 그렇게 나오면 저희도 어쩔 수 없어요.”

“……알겠습니다.”

저 둘이 저렇게 말할 정도니, 이젠 나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어깨에 힘을 빼자 둘은 그제야 내 양팔을 놓았다.

그래도 혹시나 모를 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건지, 내 곁에서 떨어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칫. 눈치 빠르기는.

나는 이대로 쉬기에는 좀 그래서 최후의 반론을 펼쳤다.

“그, 그래도 부산물 처분은 필요하니…….”

“아. 그건 제가 할 거예요.”

백서련이 그렇게 대답했다.

“……제 서재의 정산 정리가.”

“이미, 제가 전부 끝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셀린이 그렇게 대답했다. 아니, 이 녀석이?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셀린은 홀연히 등장했던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세 번째 컬렉터를 찾으러.”

“그건, 굳이 지금 할 필요가 없잖아요.”

“어, 음. 네.”

결국 나는 해야 할 일들을 찾기 위해 머리를 쥐어 짜냈지만, 그럴 때마다 보기 좋게 논파 당하고 말았다. 나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제가 졌습니다.”

“후우. 그러게 진즉에 포기하면 얼마나 좋아요?”

“혹시 모르니, 오늘은 이대로 지켜보겠다.”

무려 2명의 감시자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말하니,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아직 내가 워커홀릭임을 제대로 납득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컬렉터들이 원하니, 나는 반강제적인 휴식을 취하게 됐다.

“그런데, 유현 씨는 왜 그렇게 사상세계 클리어에 집착하시는 거예요?”

문득 떠올랐다는 듯, 강혜림이 내게 물었다. 피부의 온기가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던져진 질문에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사상세계를 클리어 하려는 이유는 여러 개였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를 꼽으라면 이 세계를 종말로부터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과연 그것을 내가 말해도 되는가?

‘하지만, 언제까지고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야.’

어쩌면, 지금이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후우. 뭐, 인제 와서 숨길 것도 없겠죠. 원래라면 세 번째까지는 찾고 나서 설명해 줄 생각이었지만, 미리 말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머지않아 말해 줄 생각이었다. 언제까지고 사상세계의 클리어에 열을 올린다면 누구라도 그런 의문을 품을 테니까.

사람에게 있어서 무언가 목적을 세울 때 ‘왜’라는 이유는 필수다. ‘왜’라는 이유는 동기가 된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 무언가를 하더라도 거기에 합당한 의지가 깃들게 되니까.

바꿔 말하면 강혜림은 지금까지 그런 ‘왜’라는 것을 궁금해하면서도 꾸욱 참고 나를 따라와 준 것이다.

“서련 씨도 들으세요.”

내 목소리에 담긴 진중함을 읽은 것일까, 강혜림도 백서련도 모두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에 할 설명은, 그녀들에게도 상당히 충격적으로 들릴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었다.

“저는 지금까지 사상세계를 ‘왜’ 클리어 해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해 주지 않았죠. 다만 이렇게 하면, 성령들에게 다른 컬렉터와 다른 시화를 보여 줄 수 있다고 말했을 뿐.”

“그게 이유가 아니었던 거예요?”

“그것도 이유 중 하나기는 하죠. 하지만 혜림 씨. 세상에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없어요. 크건 작건, 결국 무언가를 하려는 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는 법이죠. 성령들에게 더 나은 시화를 보여 준다, 그것은 작은 이유에 지나지 않아요.”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이유는 뭐죠?”

“그건…….”

나는 말하다 말고 권지아와 시선을 살짝 교환했다. 그녀는 내게 정말로 말할 거냐고 물었다.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거로 답했다.

권지아는 내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녀도 결국, 이 과정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

나와 권지아가 서로 눈빛을 교환한 것을 본 강혜림의 표정이 어째서인지 어두워졌다.

나는 그것을 신경 쓰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한쪽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눈으로 보면서 설명을 들으면 더 쉽게 이해되실 겁니다.”

나는 보드 마커로 간단한 그림을 그렸다.

가운데에 동그라미 하나와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커다란 세계를.

“대부분이 알다시피, 지구는 지금 이렇게 혼성계 안쪽으로 들어오게 됐죠. 이 가운데가 지구고, 주위의 세계가 혼성계입니다. 지구는 이렇게 혼성계로 들어오게 되며, 변혁을 맞이했죠. 바로, 사상 통합의 날입니다.”

그렇게 생긴 것이 바로 사상세계의 존재와 컬렉터의 등장이다.

“사상세계란 지구와 혼성계 곳곳에 존재하는 여러 이야기가 현실로 구현된 공간을 말합니다.”

지구의 안쪽에서 외부로 화살표가 쭉쭉 뻗어져 나갔다.

지구 외부, 혼성계에서 지구로 향하는 화살표도 있었다.

이것이 사상세계로 이루어지는 ‘이야기’의 존재였다.

이렇게 지구는 수많은 화살표, 즉 사상세계가 존재하게 된다.

“그런데, 표면으로 나올 수 있는 사상세계의 숫자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상세계가 하나 사라지면, 그 빈자리를 찾아 새로운 녀석이 나오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죠. 협회나 정부, 클랜도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일부러 사상세계를 놔두는 중입니다.”

문제는 사상세계를 클리어 하지 않은 채로 놔두는 것이다.

“사상세계를 가만히 놔두면, 한정된 자리를 기존 사상세계가 계속 유지하게 되겠죠. 그렇게 되면 자리를 얻지 못한 나머지 이야기들은 이렇게 안쪽을 맴돌게 됩니다.”

자리를 잃은 화살표가 지구 내부를 계속 회전했다. 그것의 숫자는 계속 쌓이고 쌓이는 중이었다.

“갈 곳을 잃은 이야기가 계속 쌓이고 쌓여서 한계까지 도달해 분출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 거 같습니까?”

내 시선을 받은 강혜림과 백서련이 침을 꿀꺽 삼켰다.

오직 이러한 미래를 알고 있는 권지아만이 무거운 표정으로 내 말을 경청했다.

“모든 것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이렇게 섞일 대로 뒤섞인 이야기는 고스란히 저희가 사는 현실을 뒤덮게 됩니다.”

이야기의 폭주. 사상세계와 현실을 그어 주는 경계선마저 사라지고, 현실이 곧 이야기로 변하고 만다.

완전히 혼성계에 들어가지 못한 ‘물질’은 자신보다 훨씬 상위의 힘인 ‘이야기의 힘’을 견디지 못한다.

그렇게 반쯤 뒤섞이고, 반쯤 붕괴되고, 사라지고.

그 최후의 형태가 바로 ‘종말’이었다.

“세계가, 멸망하는 거죠.”

내 목소리가 사무실에 무겁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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