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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21화 (121/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21화

‘역시, 착각이 아니었어.’

내가 꺼낸 것은 예전에 사탄이 직접 내게 선물해 주었던 ‘생명의 열매’였다.

에덴동산에서 직접 따온 ‘진품’. 갓 자라난 것을 따온 거라 크기도 작고 볼품없이 보였지만, 이 안쪽에 담긴 힘은 대리로 올라선 지금도 쉽게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생명의 열매가 자연석에 반응을 한 거지?’

자연석. 그것도 가장 풍요로운 기운을 머금은 녹색과 공명하는 둘을 보자니, 문득 호기심이 들었다. 그래서 혹시나 싶어서 가까이 가져다 대자, 생명의 열매의 떨림이 더욱 거세졌다.

‘과연. 그런 거였나?’

생명의 열매는 마치, 어머니의 모유를 애타게 찾는 아기처럼 청록의 자연석에게 반응했다.

이미 생명의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녀석일 텐데도,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반응한다는 것은 그만큼 생명의 열매가 대단한 생명력을 머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 줬다.

그 이상으로 생명의 열매가 청록의 자연석에 반응했다는 것은.

‘에덴동산. 그곳에서 가꾸는 생명의 나무와 지혜의 나무는 모두 이 자연석을 이용해 키운 것들이었군.’

아직 제대로 여물지 못한 생명의 열매가 애타게 반응하는 것이 이해가 갔다.

녀석은 청록의 자연석의 기운을 받아서 더욱 성장하길 바라는 거였다.

‘흐음. 이거 어쩌면.’

나는 턱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생명의 열매를 청록의 자연석 옆에 놔뒀다. 그러자 열매는 잘게 떨었고, 자연석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더욱 강해졌다.

“어?”

“이건, 대체…….”

이 광경을 지켜보던 셋은 모두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난데없이 꺼낸 열매와 자연석이 반응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나는 모두에게 생명의 열매와 자연석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해 줬다.

이야기를 들은 백서련과 강혜림은 마냥 신기해했고, 권지아는 깨달은 것이 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랬군. 어째서 성령들이 저렇게 자연석에 목을 매는지, 이유를 알겠어.”

“네. 에덴뿐만이 아닙니다. 어지간한 대성군에서는 생명의 열매와 같은 수준의 영약들이 많죠. 그것을 키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청록의 자연석일 겁니다.”

자연석이 보통 귀한 게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명확한 사용처를 알게 되자 그 가치가 더욱 새롭게 보였다.

‘일단, 청록만큼은 놔둬야겠군. 아니, 나머지 둘도 마찬가지인가?’

이 3개의 자연석은 무려 거대한 뱀 하나를 등천(登天)의 길로 이끌어 용종으로 바꿨을 정도로 대단한 물건이다. 물론, ‘진짜’와 비교하기엔 어폐가 있다. 진짜 자연석은 역사 속 삼색 뱀이 먹어 치웠고, 이것은 그때의 ‘이야기’가 구현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과연 그렇다고 가치가 없을까?

‘성령들이 마냥 모를 리는 없을 텐데도 눈이 휘둥그레진 걸 보면, 아마 진짜와 성능의 차이도 크게 나지 않을지도 모르지.’

횡재한 수준이 아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대박을 쳤다.

물론 자연석의 너무 큰 가치로 인해 이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겠지만, 지금은 순수하게 기뻐하도록 하자.

‘그리고, 생명의 열매도.’

생명의 열매는 청록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중인지, 조금 전의 떨림은 상당히 잦아들었다. 얼핏 보면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생명의 열매가 더 커진 것 같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 자그마한 살구 같은 녀석을 그냥 써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생각이 바뀌었어.’

생명의 열매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차원 상점의 시중에도 잘 풀리지 않는 걸 감안하면, 내 수준에서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것을 아직 제대로 여물지 않은 상태에서 섭취하기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움이 있었다.

‘생명의 열매를 키울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완전히 여문 생명의 열매가 될 때까지 이대로 놔두자.’

거기까지 생각을 끝마친 나는 강혜림과 권지아에게 시선을 향했다.

“두 분. 이번에 사상세계 클리어 하면서 보상받으셨죠? 어떤 이야기와 어떤 스킬을 얻으셨죠?”

“음. 나는 [암석의 형상]이라는 스킬을 얻었다. 아무래도 바위로 이루어진 정령체를 잡은 보상 같군. 능력은 뭐, 신체 능력이 더욱 강건해지는 것이다. 획득한 [이야기]도 마찬가지. [대자연의 기운]이라 해서 자연의 기운을 더욱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됐더군.”

“저는 [수류의 형상]이라는 스킬을 얻었어요. 능력은 움직임이 더욱 부드러워진다고 하네요. 이야기는 지아…… 씨의 것과 동일하고요.”

“그렇군요. 저는 [녹림의 형상]이라는 스킬이었습니다. 질긴 나무와 같은 생명력을 얻게 된다더군요. 이야기도 동일하고요. 아무래도 내부에 존재하는 3개의 속성이 저희에게 각자 나눠서 들어온 것 같네요.”

딱 어울리는 사람에게 적당한 이야기가 깃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게 녹림의 기운이 온 것은 조금 예상 밖이었다. 하지만 숲과 나무와 관련된 스킬이라 그런지, 소유자에게 ‘강인한 자연의 생명력’을 부여해 주는 것은 꽤나 마음에 들었다.

뭐니 뭐니 해도 몸이 튼튼한 것이 최고니까.

“이로써 저희 셋의 전력이 또다시 올랐군요.”

나는 희희낙락하며 말했다.

사상세계에 들어갈 사람(?)이 우리 셋밖에 없기에 셋의 전력이 동시에 올라간 일은 기뻐할 만했다.

물론 나중을 생각하면 아직도 부족했지만, 우리가 달려온 시간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압도적인 성장 속도였다.

특히 기쁜 점을 꼽자면, 역시 눈엣가시처럼 여겨진 황혼의 장막과 한울에 한 방 먹여 준 거려나. 그래도 나름 대한민국 사회에 뿌리를 깊게 박은 두 클랜이라 이번 일로 크게 휘청일지언정 완전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복구하려면 시간을 좀 들여야 할 거야.’

그리고 평소에 힘의 균형을 유지하던 다른 클랜에서 이 두 클랜이 흔들리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다.

클랜이란 결국 서로 경쟁하며 먹고 먹히는 관계.

지금이야 서로 비슷하니까 경계만 하고 움직이지 않았겠지만, 상대방이 약점을 드러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울은 그렇다 쳐도, 특히 황혼의 장막은 더욱 타격이 크겠지. 녀석들도, 그리고 그 뒤에서 몰래 놈들을 움직이려는 펜타그램 부서도.’

그 재수 없는 아가엘이 벌써부터 짜증을 잔뜩 낼 걸 생각하니, 나는 통쾌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 * *

챙그랑!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

아가엘은 자신의 [관조자의 방]에 있는 물건을 집어던졌다. 작고 아기자기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난폭한 행동에, 그녀의 보좌 겸 조수 텔러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아, 아가엘 과장님.”

“왜! 왜!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거냐고!”

평소에 웃으면서 말하는 아가엘이지만, 화가 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물론, 보통 화가 나도 얼굴은 웃는 것이 그녀다. 그런데 이렇게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다는 것은 그만큼 그녀의 분노가 강하다는 소리였다.

그녀의 보좌, 세라간 정사원은 부디, 분노의 화살이 자신을 향하지 않길 빌고 또 빌었다.

그의 전 보좌 진풍이 어떻게 됐는지는 듣지 않아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세라간!”

“네, 네!”

아가엘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세라간은 어깨에 잔뜩 힘을 주며 대답했다.

“대체 어쩌다가 상황이 이렇게 됐는지, 설명해 봐.”

“아, 알겠습니다!”

세라간은 황혼의 장막이 저지른 비리가 들통났으며, 현장에서 상당수 컬렉터가 잡혀간 점에 대해서 차근차근 설명했다.

“저희가 지원하는 황혼의 장막 클랜은 이번 일로 무려 100명에 가까운 인원 손실을 입었습니다. 물론 사망자는 채 20도 되지 않지만, 나머지가 협회에 잡혀간 상황입니다. 다시 꺼내려면, 법적인 절차를 밟아야 하기에 아무리 빨라도 반년은 소모될 거로…….”

“그건 됐고! 감독관은!”

감독관이라 불린 남자는 아가엘이 ‘직접 계약’을 맺은 몇 안 되는 컬렉터 중 하나였다. 마스크도 나름 깔끔하고, 냉철한 성미에 잔혹한 손속은 인간 보기를 물건처럼 보는 아가엘도 나름 ‘쓸 만은 하네.’라는 평가를 내릴 정도였다.

“그, 그자는…… 아무래도 사건의 직접 가담자라 그런지, 힘들 거 같습니다. 심지어 한울 클랜과 벌인 싸움에서 입은 부상도 심각했다고…….”

“결론은?”

“가, 감독관은 포기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녀석들도, 반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이상 버려야 할 거로…….”

“이런 썅!”

아가엘이 욕설을 내뱉자, 세라간은 몸을 움찔 떨었다. 하지만 아가엘은 그에게 화풀이를 하지는 않았다. 결국, 이것은 분통을 참지 못해 어떻게든 화를 표출하기 위한 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차분해진 아가엘은 자신의 덩치보다 훨씬 더 큰 쿠션에 몸을 묻었다.

“아, 아가엘님?”

“세라간. 이만 나가 보셔도 돼요. 저는 지금, 조금 많이 피곤하거든요. 제 말 아셨죠?”

“네, 넵! 알겠습니다.”

세라간은 이때다 싶어서 관조자의 방에서 도망치듯 사라졌다. 아가엘은 그런 세라간을 신경 쓰지 않고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했다.

‘후우.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던 장기 말이 하나 사라진 건 그렇다 쳐도, 우리 펜타그램 부서에서 계약을 맺은 컬렉터 다수를 소실한 것은 너무 타격이 커.’

황혼의 장막은 펜타그램이 가장 이용해 먹기 좋은 하계의 교두보였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황혼의 장막에 각종 이목이 집중되고 온갖 견제를 받게 됐으니, 그걸 활용하는 펜타그램 부서도 피해를 받고 말았다.

‘하아. 짜증나. 안 그래도 엑소도스 녀석들 비위 맞춰 주는 것도 지겨워 죽겠는데.’

이미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었다. 아가엘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훨씬 더 건설적이라는 걸 알았다.

‘찾아야 한다.’

그녀는 쿠션에서 몸을 일으키며 분노를 씹어 삼켰다.

‘우리를 이렇게 만든 그 녀석을 찾아야 해.’

이번 사태는 단순히 운이 없어서 벌어진 것이 아니었다. 외부에서 누군가가 이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금고를 훔치고, 그 안에 담긴 자료를 토대로 협회와 한울 클랜, 그 밖에 언론까지 움직여서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

치가 떨릴 정도로 정교한 시나리오다.

그것을 구상한 녀석은 두말할 것도 없다.

‘현장에서 사상세계를 클리어 한 것으로 추정되는 3명이 있다고 했었어.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그곳에 누군가 있다고 했었지.’

모습과 인기척을 숨기는 아티팩트를 쓴 것일까, 그 귀한 것을? 그것을 3명이 사용했다는 것은 상대방이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누군가가 지원이라도 해 준 걸까?

‘누구지? 황혼의 클랜과 우리, 그리고 한울 클랜까지 손해를 보게 되면 역으로 이득을 얻게 되는 녀석들이?’

물증이 없다면 심증으로 범인을 추론해야 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아가엘은 상당히 열이 오른 상태였다.

그녀의 머릿속으로 온갖 적들이 스쳐 지나갔다. 펜타그램을 견제하는 다른 부서, 황혼의 장막을 싫어하는 타 클랜, 그녀와 개인적으로 원한을 진 텔러들까지.

그러다 문득, 아가엘은 한 존재를 떠올렸다.

‘뭐지?’

어째서일까? 이 순간에 갑자기 그 거슬리던 강유현 텔러가 떠오르는 것은.

‘잠깐만. 그러고 보니, 한울에서는 뭣 때문에 움직였다고 했었지?’

그쪽 텔러와 아직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않아서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한울은 처음부터 황혼의 장막을 노리고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분명, 다른 누군가를 노리고 움직였다가 의도치 않게 황혼의 장막과 충돌했을 뿐이라고 했다.

한울은 왜 기동 3과를 움직였지?

그걸로 대체 뭘 하려고?

그보다 한울에서는 어떻게 그 위치를 알게 됐지?

마치.

누군가가 언질을 주기라도 한 것처럼…….

“……!!!”

아가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는 소름이 등골을 타고 요정의 날개 끝까지 흐르는 걸 느꼈다.

‘확인, 확인해야 해.’

그것은 아가엘이 이 자리까지 올라오면서 쌓아 온 본능적인 위기감이었다.

지금 이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거라고 그녀의 감이 외치고 있었다.

철저하게 이성이 배제된 짐승의 감각.

그러나 그것이, 자기도 모르게 벼랑을 향해 걸어가던 아가엘의 발목을 간신히 붙잡았다.

‘한울과 관련된 그쪽 텔러와 어떻게든 커넥션을 취해야 한다. 이쪽이 숙이고 들어가는 일이 있어도 상관없어. 단서, 아주 작은 단서라도 좋아. 반드시 그걸 찾아야 해.’

그것은 아가엘이 텔러로서 삶 중 처음으로 진지하고, 필사적으로 무언가에 임하는 행동이었다.

정작 그녀는 자신이 이렇게까지 당황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어깨 위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를 희미하게 느낀 순간부터, 피부에 닿은 징그러운 벌레를 필사적으로 떨쳐 내듯 이것을 어떻게든 치워야 한다는 강박증만 들었다.

‘반드시, 찾아야 한다!’

아가엘의 실핏줄이 도드라진 눈동자가 스산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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