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아는 주인공들-120화 (120/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20화

권지아는 바깥에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싸움을 피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바깥에는 협회가 깔려 있으니, 필사적으로 도망을 치려고 해도 어느 정도 충돌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유현은 괜찮다고 말했다. 그 자신감의 원천이 무엇인지 모르던 그녀는 바깥에 나오고 나서 펼쳐진 풍경을 보는 순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을 노리고 곧바로 포위할 거라고 생각했던 권지아의 걱정과 다르게, 사상세계 입구를 향하는 협회의 컬렉터들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바깥쪽, 새롭게 몰려든 황혼의 장막 클랜원들이었다.

유현의 자신감의 원천은 바로 저들이었다.

‘설마, 이 남자는 이렇게 될 줄 미리 알고서…….’

권지아는 유현을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가 지금까지 정말 말도 안 되는 짓들을 자주 일으켰다고 하지만, 그것이 언제까지고 계속 지속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황혼의 장막과 한울 사이에 싸움을 일으켰고, 협회를 불러 놈들을 체포하게 만든 것도 모자라 사상세계의 클리어까지 챙겼다.

그녀는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정말 대단하다 생각했다. 그 누구도 이만한 업적은 세우지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이 남자는 그 이후의 것까지 내다보고 있었다.

경악하는 권지아와 다르게 강혜림은 눈을 빛내며 유현을 힐끔 살폈다.

‘역시, 유현 씨는 대단해!’

최근 그와 함께 다니는 일이 뜸해졌다고 하지만, 유현에게 가장 큰 혜택을 받은 사람을 꼽자면 당연히 강혜림이었다.

그녀도 처음에는 유현의 방식에 대해서 나름의 고민이나 걱정을 품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가 하자고 한 대로 해서 실패한 적이 없다 보니, 이제는 유현이 무슨 작전을 짠다고 하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게 됐다.

특히, 이번에도 유현의 예상이 다 맞아떨어지는 걸 확인한 강혜림은 더더욱 그를 향한 무한한 존경심을 불태웠다.

정작 유현은 두 사람의 그런 생각을 꿈에조차 모른 채, 바깥에 깔린 협회의 사람들과 황혼의 장막 클랜 사람들을 보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놈들이 올 것 같더라니.’

사실, 마지막 것은 거의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협회가 현장에 들이닥치는 것까지는 그의 계획이었지만, 그 이후에 황혼의 장막이 어떻게 행동할지는 확신이 들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모르는 척 관조를 하려 했다면 유현은 이곳에서 협회 사람들에게 포위되어 탈출하기 위해 무력 충돌을 벌여야만 했다. 그렇게 된다면 기껏 숨기려 한 정체가 탄로 날 가능성도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운이 따라줬다고 해야 할까?

일부러 이곳을 지키던 황혼의 장막 클랜원 하나를 남겨 놓은 것이 크게 작용했다.

‘내가 살짝 걱정했던 것은 황혼의 장막 녀석들이 혹시라도 몸을 사리지 않을까 했던 건데, 그럴 필요가 없었군.’

황혼의 장막은 기왕 이렇게 된 거, 협회와 완전히 척을 질 생각인 것 같았다.

저렇게 대놓고 나선 것만 봐도 그랬다. 아마, 이곳 현장을 급습해서 증거를 바로 없애고 난 뒤에 차후 있을 청문회에서 뻔뻔하게 나올 생각이었겠지.

어지간히 미치지 않고서는 하지 않을 발상이었지만, 근본부터 불법으로 성장한 놈들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이걸로 성공이다.’

유현의 도박은 무대의 폐막에 종점을 찍는 것으로 끝맺음했다.

“와아아아아!!”

현장 대부분 사람은 유현을 보지 못했다. 그들이 착용한 모자에 새겨진 각인이 그들의 인지를 저해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상세계의 입구가 사라지는 것은 모두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그 결과물은 누가 뭐래도 유현이 벌인 짓.

황혼의 장막 클랜원이 소리를 지르며 현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막앗!”

협회의 컬렉터들은 그런 황혼의 장막을 막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튑시다!”

그 광경을 본 유현은 권지아와 강혜림에게 말했다. 둘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셋은 바로 뒤를 돌아 바깥으로 도망치려고 들었다.

“어딜!”

물론, 셋을 막아서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입구를 지키는 협회의 팀원 말고도 몇몇은 안쪽에서 유현 일행을 생포하기 위해 대기하던 차였다.

그들은 이 상황의 증인이라 할 수 있는 유현 일행을 놓치려 들지 않았다. 인식이 저해 당하고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 존재감은 미약하게나마 느껴졌다.

하급 따위가 아닌, 나름 수준이 있는 컬렉터라는 소리였다.

“대체 어떤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놓치지 않겠다!”

“그것참 죄송하네요.”

유현은 자신의 멱살을 정확하게 노리며 뻗어진 손을 보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상대방은 나름 실력이 있는 컬렉터지만, 안타깝게도 이쪽의 셋은 저런 자들로도 절대 막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파악!

유현은 고개를 슬쩍 숙이며 상대방의 손길을 피했다. 팔을 뻗어 소매를 붙잡아 뒤로 휘둘렀다. 팔을 내뻗은 상대는 자신이 달려든 힘을 고스란히 이용당해 지면에 메다꽂혔다.

쿠웅!

“크학!”

깔끔한 엎어치기가 작렬하자 협회의 컬렉터는 거칠게 숨을 토하며 기절하고 말았다.

추가로 달려든 몇 명은 곧바로 강혜림과 권지아가 가볍게 제압했다.

셋은 서로 시선을 마주하고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뻥 뚫린 유일한 입구의 반대편, 가림막을 보기 좋게 뚫고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사람들의 시야를 가리기 위한 특수 소재 벽은 컬렉터들을 막기에는 종잇장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제길!”

유성아는 유현의 일행이 도망치는 것을 감각으로 느끼면서도 그들을 쫓을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 황혼의 장막 클랜원들을 막아 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마음 같아서는 뒤쫓고 싶지만, 내가 자리를 비우면 여긴 뚫린다!’

파견된 협회 컬렉터의 숫자는 40명. 황혼의 장막 녀석들은 그 2배에 가까운 80명이나 투입됐다.

수준은 길에 차일 정도로 허접한 놈들이 많았지만, 중간중간 진짜라 불릴 녀석들이 섞여 있는 데다가 숫자가 워낙 많았다.

“야 이 개 같은 자식들아! 너희가 함부로 하도록 우리가 놔둘 줄 알고!”

결국, 유성아는 이를 악물면서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데다가 모습도 보이지 않는 셋을 추격할 것인가, 아니면 최소한 현장의 증거를 지키기 위해 황혼의 장막을 막아 세울 것인지.

불확실한 전자와 그래도 가능성이 넘치는 후자.

그녀가 고른 것은 당연히 후자였다.

파아아앗!

그녀의 몸을 중심으로 붉은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이 유성아의 육신에 스며들어 그녀의 근력을 강화했다.

유성아의 특성의 이름은 [명월부인(明月夫人)]

명월부인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박씨부인.

조선시대 고전소설 박씨부인전의 주인공인 박씨부인의 이야기가 바로 그녀가 지닌 힘이었다.

“다 뒤졌어!”

그녀는 유현 일행을 놓친 만큼의 분노를 눈앞의 적들에게 쏟아부을 생각이었다.

특성의 힘을 끌어낸 것은 어떻게 보면 과잉대응이겠지만, 놈들은 대놓고 공권력에 도전한 무뢰배들이다. 이대로 적당히 봐줄 생각은 없었다.

“덤벼라!”

촤르륵!

그녀의 주위로 거대한 장승이 불쑥 솟아올랐다.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 이제는 사라진 사상세계 입구를 지키듯 막아섰다.

황혼의 장막 쪽에서도 강한 몇 명이 나서며 자신의 특성을 발동했다.

그렇게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공사 현장에서 한 조직의 명운이 걸린 싸움이 벌어졌다.

* * *

다음날, 신문과 뉴스에서는 지난날에 일어난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황혼의 장막 클랜! 정부 몰래 사상세계를 소유하다!]

[법을 무시하는 클랜들의 행태! 이 도를 넘은 행위를 이대로 지켜봐야만 하는가?]

[황혼의 장막 클랜장 도강준. ‘우리는 그런 일 모른다.’]

[현장에서 검거된 클랜, 황혼의 장막 말고도 한울까지?]

그야말로 국가 전체가 시끄러워질 법한 사건이었다.

결국, 황혼의 장막은 현장의 증거를 말소하는 데 실패했다. 협회의 미친개, 유성아의 분투 때문이었다.

사상세계는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존재했던 흔적이 현장에 남게 된다. 그것은 누군가가 없애려고 하지 않는 이상 사라지지 않는다. 황혼의 장막은 그 흔적을 없애려던 것이었다.

‘그런데, 실패했지.’

유현은 속으로 킬킬거리며 웃었다.

황혼의 장막은 결국 자신들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값을 톡톡히 치러야만 했다. 이미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고, 평소에 황혼의 장막에 대해서 이를 갈고 있던 협회는 본격적으로 칼을 뽑아 들었다.

곧바로 세무 조사가 들어갔다. 이번 일은 황혼의 장막 혼자서 벌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과 관련된 일부 정치인들도 있을 것이고, 뒤에서 후원해 준 기업도 얼추 있었을 것이다.

협회는 이 기회에 그들을 뿌리째 뽑을 생각이었다.

‘한울도 만만치 않지.’

황혼의 장막도 문제였지만, 한울도 이곳에 끼여서 고초를 치르고 있었다. 놈들은 남들 몰래 키워 온 기동 3과라는 비밀 부대의 정체가 탄로 나게 됐고, 황혼의 장막과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들키고 말았다.

그쪽 담당자의 말로는 전광석이라는 사람 하나가 독단으로 저지른 일이라고 둘러댔지만, 컬렉터가 아닌 내부 직원이 대체 어떻게 그만한 인원을 이끌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분명, 뒤에서 지시를 내린 사람이 있을 거라는 것이 대다수의 추측이었다.

‘그쪽은 필사적으로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지만, 그렇다 해도 정부 몰래 비밀 팀원을 꾸민 것까지는 커버가 불가능하지.’

황혼의 장막 정도는 아니어도 한울 또한 어느 정도 조사가 들어갈 예정이었다.

게다가 비밀리에 키워 온 컬렉터들 대부분이 사망하거나 잡혀 들어갔으니, 그쪽도 보통 타격을 입은 게 아니었다. 클랜장이 청문회에 불려 가며 추궁까지 받을 걸 생각하면, 부수적인 손해는 계산하기 힘들 정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백서련은 인터넷 기사를 보더니, 자못 후련하다는 표정으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이야! 쌤통이다! 진짜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가라앉는 기분이네. 고마워요. 유현 씨. 다 유현 씨 덕분이에요.”

“제가 뭘요. 다 저를 믿고 따라와 준 여러분들 덕분이죠.”

이이제이에 이어 어부지리까지 취한 유현은 이번에 꽤나 큰 이득을 볼 수 있었다.

각인을 새기느라 소모한 포인트가 3만이 넘었지만, 이번 시화를 통해 벌어들인 부수적인 포인트는 그 이상. 심지어 사상세계 클리어 보상에 이야기, 스킬까지 더해졌으니.

유현이 이번 시화를 통해 얻은 순수 포인트만 15만이었다. 이는 부수적인 것은 아직 계산하지 않은 수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이득이라고 한다면.’

바로, 이번에 얻은 3개의 자연석이리라.

마침 생각나서 유현은 그것을 꺼내 사무실의 중앙 탁자에 놓았다.

“와. 그게 이번에 얻은 자연석이라는 거예요?”

“그렇죠.”

백서련이 자연석을 향해 황홀하다는 시선을 향했다. 일반인이 보기에도 자연석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또 묘한 기품을 뿜어내는 보석이었다.

사무실에 출근한 권지아와 강혜림 또한 자연석에 시선이 떨어질 줄 몰랐다.

“그래서, 유현 씨는 이제 이걸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세요?”

강혜림이 자연석을 어디에 쓸지 궁금해하며 물었다.

“으음. 아직 저도 정한 것은 없습니다. 그냥 팔아도 되고, 저희가 사용해도 되고. 뭐, 용도는 다양하니까요.”

“사용할 수도 있어요?”

“이걸로 무구를 만든다거나, 혹은 기운을 흡수한다거나. 그런데 그냥 하면 역시 안 되겠죠?”

단순하게 사용하자니, 자연석의 가치가 너무 컸다.

자연석 말고도 신경 쓸 것들이 많았다.

안 그래도 지금 알로란 수정 동굴의 부산물로, 온갖 광물과 약초가 유현의 [관조자의 방]구석에 쌓여 있는 상황. 저것들도 최대한 빠르게 처분을 해야 했다.

“성령님들도 저한테 팔아 달라고 아우성이기도 했죠.”

자연석을 본 성령들은 특히 눈이 뒤집혔다. 지금도 유현의 게인 메시지 함에는 이름도 모를 성령들이 제발 팔아 달라고 보내온 메시지가 잔뜩 쌓여 가고 있었다.

‘흐음. 물과 대지, 그리고 식물. 이걸 어떻게 사용해야 잘 썼다고 소문이 날까?’

유현은 문득, 3개의 자연석 중에서 녹색의 자연석이 은근하게 자신에게 빛을 강하게 내뿜는 것을 느꼈다.

‘뭐지?’

그에 반응하듯, 유현의 소모품 중 하나가 격하게 반응했다.

‘설마?’

유현은 ‘그것’을 꺼내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