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117화
뒤늦게 공동에 돌입한 한울 클랜은 눈 앞에 펼쳐진 절경에 시선을 빼앗기면서도 황급히 유현 일행을 찾고자 신경을 곤두세웠다.
“보이지 않는군.”
“설마. 이곳으로 향하는 길은 하나뿐이다. 엇갈렸을 가능성은 없어.”
“그렇다는 것은, 사냥감은 저 안쪽에 있다는 소리인가?”
모두의 시선이 거대한 섬으로 향했다. 거대한 동굴 안쪽에 존재하는 섬. 정체를 알 수 없는 싱그러운 초목들의 사이로 각 속성으로 이루어진 정령 환상체의 모습이 간간이 보였다.
“일단, 저 섬으로 접근한다.”
전광석이 아닌 기동 3과의 리더가 말했다.
‘놈들이 저 섬에 간 건가? 그런 거치고는 어째 조용한데?’
전광석은 마음속으로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전광석은 기동 3과를 이끌 자격이 주어졌지만, 현장의 판단은 그보다도 컬렉터가 훨씬 더 날카롭다. 그렇기에 지금 상황에서 전광석은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유현 일행이 안쪽에 들어갔다면 있어야 할 곳은 저 섬 말고는 없었으니까.
만약.
아주 만약이지만, 그들이 저 안쪽에 가는 척하고 몰래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전광석은 이내 고개를 털어 내며 그 터무니없는 비약을 배제했다.
그들이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 리가 없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기동 3과는 공동의 입구와 섬을 이어 주는 길을 따라 걸으며 섬으로 향했다.
처음 그들의 목적은 겁도 없이 셋이서 움직이는 유현 일행을 몰래 쫓아가, 주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정 동굴의 섬. 그곳에 존재하는 환상체들을 발견한 순간, 기동 3과 컬렉터들의 눈가에는 한 가지 감정이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바로, 탐욕이었다.
“이거, 정령 환상체는 거의 희귀종 아닌가?”
“이놈들 잡으면, 꽤나 좋은 부산물을 줄지도 모르겠는데?”
“포인트도 얻을 수 있겠어.”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기동 3과의 대장에게 향했다. 작전도 작전이지만, 코앞에서 살아 숨 쉬는 황금 덩어리들을 그대로 놔둬도 되겠냐는 물음이었다.
“작전은 속행한다.”
이런 부분에서 대장은 명확한 판단을 내려야 했다.
그의 딱딱한 말에 일부 컬렉터들이 실망감을 내비치려는 순간, 대장의 뒷말이 그들의 마음에 더욱 부채질을 가했다.
“다만, 놈들을 찾으러 가는 ‘도중’에 앞길을 가로막는 환상체의 배제는 필요하겠지.”
“휘유.”
“역시, 대장이라니까.”
모처럼 떨어진 허가다. 기동 3과 부대원들은 그런 대장의 판단에 기뻐하면서 투기를 뿜어 대기 시작했다. 전광석은 그 광경을 보며 자신이 참 든든한 사람들을 이끌고 있구나 하는 환상에 빠져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대장. 뒤에서 누가 옵니다.”
“뭐? 다들 정지! 진형을 갖춰라!”
후방을 감시하는 부하의 말에 모두의 감각이 날카롭게 곤두섰다. 동시에 자신들이 방금 건너왔던 공동의 입구 부분에서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침입자를 없애기 위해 출동한 황혼의 장막 클랜원이었다.
그들은 삽시간에 섬으로 건너와 한울 클랜과 마주 보듯 섰다.
“…….”
“…….”
갑자기 이어지는 무거운 대치 상황. 한울 클랜으로서는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보다 못한 전광석이 앞으로 나섰다. 여기서는 그가 나설 차례였다.
“이봐. 당신들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방해하지 말고 꺼지라고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허공이 번뜩였고 전광석이 자기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서걱!
그리고 그의 왼쪽 팔이 잘려 나가 바닥을 굴렀다.
“끄아아아악!”
신체의 소실과 동봉되는 끔찍한 고통에 전광석은 목이 찢어지라고 비명을 토했다.
아픔 속에 일그러진 얼굴, 눈물이 흘러나오는 눈동자가 자신에게 공격을 가한 남자를 담았다.
“이, 이 미친 새끼들이!”
저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쪽을 공격했다.
이쪽이 적이라는 것에 의심을 하지 않았다.
전광석은 그제야 놈들이 누구인지 눈치챘다.
“크흐흑. 이, 이 새끼들이었어! 이 새끼들이 그 배후에 있던 놈들이었어!”
“저 미친 아저씨는 뭐라 지껄이는 거야?”
황혼의 장막 입장에서는 전광석의 외침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들이 뭐라 하더라도 황혼의 장막이 비밀리에 운용하는 사상세계에 들어온 침입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반드시 없애야 할 놈들이었다.
“적이다! 죽여!”
“덤벼!”
“이 개새끼들!”
대치 상황이 끝났다. 한울 클랜과 황혼의 장막 클랜은 서로를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기동 3과와 감독관이 이끄는 클랜원들이 서로를 향해 동시에 달려들었다.
섬의 외곽, 그곳에서 두 클랜이 한데 뒤엉켜 거친 싸움을 시작했다.
서로를 향한 욕설과 고함, 무기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 * *
“시작했군요.”
[성령들이 벌어진 싸움을 즐겁게 관람합니다.]
[성령들이 역시 구경은 싸움 구경이라고 외칩니다.]
한울 클랜과 황혼의 장막 클랜 사이에서 벌어진 싸움.
서로를 향한 적의와 살의로 똘똘 뭉친 두 집단의 싸움은 치열했다. 숫자는 황혼의 장막이 더 많았지만, 개개인의 수준과 조직의 결합력은 한울이 앞섰다.
그 대신 한울은 아직 실전이 부족해 보였지만, 황혼의 장막은 망설이지 않고 죽이기 위한 공격을 퍼부었다.
그 모든 것을 종합한 결과, 양 진영의 전력은 동등했다.
‘물론, 양 팀의 리더로 보이는 녀석들은 더 강한 것 같지만.’
기동 3과의 대장과 황혼의 장막을 이끄는 감독관.
둘은 당연하게도 싸움터의 중심에서 가장 거칠게 싸우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희희낙락하게 구경하며 팝콘을 씹었다.
[성령들이 즐거워하며 팝콘을 먹습니다.]
성령들의 반응도 좋았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컬렉터들 간에 벌어지는 집단 간 싸움을 내 덕분에 보게 된 것이다. 입장료도 없이 이 희귀한 광경을 보게 됐으니, 기뻐할 수밖에.
물론, 이런 싸움을 조금 불편하게 여기는 자들도 없지는 않았다. 정의롭고 선한 성향의 성령들이 그러했다. 하지만 그들이 내게 직접적으로 뭐라 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 싸우는 저 두 집단이 절대 정의롭지 않기 때문이겠지.
그들은 굳이 따지자면 악인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아무렇지 않게 죽일 수 있는.
모든 당위성은 내가 쥐고 있었다. 나는 그저 이 상황을 즐기기만 하면 됐다.
실제로 강혜림도 나름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는 것 같고.
‘다만, 유일하게 불편함을 비추는 것은 권지아인가.’
나는 조금 전부터 불편함을 필사적으로 삼키고 있는 권지아를 살폈다.
그녀는 작전이 시작했을 때부터 별로 달갑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본디 회귀자라면 이런 일을 가장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녀도 처음에는 승낙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겠지. 그녀는 너무나도 상냥하니까.’
회귀자라는 특성 때문에 마모된 마음이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선하고 상냥한 마음은 그 세월 속에서도 완전히 풍화되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뭔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그런 게 아니다.”
“그런 게 아니면 뭡니까? 표정이 별로 안 좋아 보이시는데. 정 불편하시다면 굳이 보려고 하지 않으셔도…….”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내가 생각하던 게 아니라고?
의아하다는 시선을 보내자,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툴툴거리듯 입을 열었다.
“그냥 궁금했을 뿐이다. 굳이 이런 방식을 취해야만 할 정도의 일이었는가. 전부 그냥 힘으로 찍어 누르면 되지 않았는가. 그대는 나와 같은 미래의 지식을 공유하는 회귀자가 아닌가.”
과연. 그런 거였나.
그녀가 내내 불만을 품고 있는 것은 단순히 내 방식이 악질적이라서 그런 게 아니었다.
나는 착각하고 있었다.
‘이런 방법을 취해야만 할 정도라는 것은, 그대가 그만큼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던 거겠지.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문득 걱정이 든다. 언제까지 이런 방법으로 적들을 상대할 수는 없다.’
이렇게 머리를 써서, 계책을 세우고 적들을 싸우게 만드는 것.
그 자체에 불만을 품고 있는 것이다.
아닌 척, 그러지 않은 척 말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느껴졌다.
‘이건 너무 번거롭다. 네가 들이는 수고스러움도 크지. 분명 좋은 방법이지만, 이것을 위해서 너무 돌아가는 것이 과연 좋은지, 나는 잘 모르겠다.’
때로는 힘으로 다 찍어 누를 필요가 있다. 압도적인 무력으로, 놈들을 처리해야 성령들도 좋아하고 그 자체가 속이 시원하니까.
권지아(회귀자)가 주장하는 것도 바로 그거다.
그냥 번거롭게 하지 말고, 사이다로 찍어 누르자 이거다.
“그렇군요.”
아마, 내가 지금 짠 계획은 권지아가 평소에 한 그것과는 맞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회귀자지만, 나와는 다르다. 나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았고 많이 살았다. 그리고 자기 삶의 방향성을 고정하는 회귀자의 특성까지 있다.
그녀는 분명, 적이 있다면 거침없이 치우는 쪽을 택했을 거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권지아에게 당연히, 나의 방식은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로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겠지.
번거롭고, 머리를 써야 하고, 귀찮다.
분명, 어떻게 보면 그렇게 비출 수도 있었다.
문득, 전생의 기억이 떠오른다. 최도윤 녀석은 내게 그랬었지. 나의 방식은 힘이 없는 떨거지나 할 법한 간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진짜 강자는 힘으로 모든 것을 순식간에 찍어 누르니까.
“지아 씨.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저는 빌드 업이라는 것을 즐깁니다.”
“빌드 업?”
“네. 분명, 지아 씨의 말마따나 시원하게 적들을 깨부수면 분명 쾌감은 크겠죠. 하지만 결국 그것은 순간의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은 너무 순식간의 일이라 기억조차 남지 않게 되죠.”
가령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고 해 보자. 여기의 주인공은 매우 세다. 최고의 먼치킨 물이라고 보면 됐다.
그는 너무 강해서,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뭐든지 다 힘으로 없앴다.
최종 보스도, 작전을 꾸미기도 전에 바로 끝냈다.
이야기는 그렇게 끝난다.
그러면 이 이야기는 대체 무슨 가치가 있지?
아주 강한 주인공 하나가 모든 것을 그저 순식간에 쾅! 하고 해결해 버리면, 그게 무슨 재미인가?
분명 통쾌하기는 할 거다. 하지만 그건 순간의 쾌감일 뿐이다. 과정도, 준비도 필요 없이 그렇게 되는 것은 필연적으로 이야기의 수준과 가치를 떨어뜨리는 양날의 검이다.
나라고 뭐, 저들을 직접 내 손으로 끝내지 못해서 그러는 줄 알겠는가?
“무대라는 것은 말이죠, 결국 메인으로 이끌고 나가야 하는 것이 주인공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주인공 하나만 존재하는 무대는 재미가 없습니다. 아주 강한 주인공이 그저 보이는 대로 적들을 다 때려 부수는 것은 미학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거든요.”
내가 바라는 무대는 절대 그런 것이 아니다.
물론, 주인공이 부각돼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은 주인공 혼자만이 아니다.
저런 배경으로 존재하는 자들, 그리고 필연적으로 주인공을 띄워 줄 수밖에 없는 조연들. 그것을 멀리서 지켜보는 관객들까지.
이 모든 것들이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하나의 기계 장치가 되어 구동해야 한다.
‘그것을 최대한으로 끌어 내고, 차근차근 쌓아 가야죠. 그리고 비로소 하나의 시나리오가 완성되었을 때, 가장 최적의 순간에 펑! 하고 터뜨리는 겁니다.’
빌드 업이라는 것은 결국 그런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미학이다. 본 음식을 먹기 전에 전채(前菜) 요리로 입가심을 하듯, 분명 귀찮고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그 과정 하나하나가 결국, 나중에 나올 메인 디시를 빛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최고의 만찬일 겁니다.”
“…….”
“뭐, 역시 아직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시군요. 이해합니다. 지아 씨는 분명 저와는 다른 방식으로 싸워 오셨을 테니까요. 그러니 저도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언젠가, 저도 지아 씨의 바라는 방식으로 싸우기도 할 테니까요. 다만, 때로는 이런 방식이 있다는 것 정도만 알아 주시면 그걸로 족합니다.”
나의 설득이 먹힌 것일까. 권지아는 입술을 삐쭉 내밀면서도 수긍한 것 같았다.
“……그래. 확실히, 내가 바라는 방식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닐 테니 말이지.”
묘하게 뼈가 있는 그 말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자신을 질책하는 것에 가까운 자아비판처럼 들렸다.
그녀는 잠자코 두 집단의 치열한 싸움으로 시선을 향했다.
나름 내가 바라는 빌드 업의 미학을 이해하고자 애쓰려는 그 모습이 어쩐지 웃기게 느껴져서 나는 소리 없이 웃었다.
그때였다.
샤아아아악──!!!
거대한 동굴의 공동 전체를 울릴 법한 고음의 괴성이 울려 퍼졌다.
서로 치열하게 싸우던 두 클랜의 사람들은 섬 안쪽에서 들려온 소리에 싸움을 멈추고 그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것은 성령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지아 씨. 보십시오. 이제부터가 본방입니다.”
드디어 메인 디시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