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116화
“뭐야. 이런 곳이 있었어?”
전광석은 눈 앞에 펼쳐진 사상세계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이런 현장의 일에 대해서는 별로 많이 알고 있지는 않다지만, 누가 봐도 공사장 안쪽에 사상세계 입구가 있는 것은 비정상적인 일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숨기기라도 한 것처럼.
“그런데, 여기로 들어갔다고?”
백화 매니지먼트가 이곳에 들어갔다는 것은 이 공사장으로 위장한 곳과 연관이 있다는 소리다. 백화 매니지먼트가 이런 짓을 벌였을 리가 없다. 애초에 그런 중소규모 매니지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이러겠는가?
더 크고 더 거대한 어딘가가 끼어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는 것은 백화 매니지먼트는 다른 어딘가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소리가 된다.
“하. 백서련. 요 앙큼한 것.”
한울에서 나가자마자 그런 곳의 후원을 받을 수 있을까? 천만에.
백화에서 이런 곳을 알고 있다는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후원자들과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는 소리다. 그녀가 한울에서 지낼 때부터, 철저하게 이어져 온 관계.
“앞에서는 웃으면서 뒤로는 그렇게 호박씨를 까셨어?”
설마하니, 그녀가 ‘스파이’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것은 전부 전광석의 오해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지금 상황이 이렇게 아귀가 척척 맞아떨어질 리가 없으니까.
“멍청한 것들. 설마, 우리가 이렇게 올 줄은 몰랐겠지.”
사람들의 관심을 지나치게 끌어서, 이번에는 남들의 눈을 피해 사상세계에 들어가면 괜찮을 거라 생각한 걸까? 그것이 오늘 자신들의 목을 졸라맬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까?
전광석은 곧바로 수신호를 보냈다. 돌입을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기동 3과는 각자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 모습을 보니, 전광석은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들어가지.”
원래 전광석이 이곳에 들어가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외부에 그 혼자만 떡하니 남는 것은 혹시 모를 목격자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번 일은 철저하게 비밀로 진행되어야 했다. 당연히 전광석 또한 기동 3과와 함께 움직여야 했고, 사상세계로 들어가야 했다.
전광석은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처음 들어가는 사상세계지만, 기동 3과가 있어서 오히려 안도감만 들었다. 그 이상으로 처음 경험하는 사상세계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기동 3과의 지휘자로 보이는 남자가 나지막이 말했다.
“돌입 개시.”
기동 3과와 전광석은 사상세계 안쪽으로 들어갔다.
* * *
“대충 빠르게 챙길 수 있는 것만 챙기세요. 어차피 진짜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닙니다.”
나는 적당히 약초를 캐면서 둘에게 지시를 내렸다. 솔직히 욕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나씩 다 챙기기에는 매장량이 너무 많은 데다, 뒤에서 곧 따라올 녀석들이 따라잡을 것도 염려해야 했다.
“저희가 가장 우선으로 노리는 것은 안쪽의 자연석과 그리고 이곳 사상세계의 클리어니까요.”
“알겠어요.”
“그러도록 하지.”
둘은 고맙게도 내 말을 잘 따라 줬다. 역시, 평소 행실이 이렇게 중요하다. 그녀들은 내가 이제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기세다.
[얼씨구? 아주 신났네. 신났어.]
‘조용.’
나는 이죽거리는 백련을 침묵시켰다.
[성령들이 갑자기 벌어진 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합니다.]
[성령들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합니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웃는 자 100TP후원!]
[지금 뭐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이 광경을 제삼자로서 지켜보는 성령들.
그들은 이번 시화에 관심을 갖고 들어왔을 텐데, 난데없이 나와 권지아, 강혜림이 빠르게 움직이며 동굴 안쪽에 있는 물건들을 털어먹고 있으니 당황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하. 여러분들. 오랜만입니다. 아니, 그렇게 오랜만은 아닌가?”
실제로는 고작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다들 지금 상황이 많이 당혹스러우실 겁니다.”
[성령들이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성질이 급한 일부 성령들이 어서 빨리 설명해 달라고 보챕니다.]
시청령들이 늘어서 그런가. 서재를 개방하자마자 벌써 5천이 넘는 시청령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평소와 같은 시화를 기대했지만, 갑작스러운 새로운 모습에 당황하면서도 호기심을 품고 있었다.
“성령님들. 오늘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형태의 시화를 보여 주려고 합니다.”
[100TP 후원!]
[다른 형태? 이거 또 벌써부터 군침이 도는데?]
[100TP 후원!]
[아직도 강유현 텔러 안 믿는 흑우 없제?]
내가 은근하게 말하자 성령들은 벌써부터 두근거리는지, 기대감을 잔뜩 드러냈다.
“평소에 저희는 정당하게 사상세계의 클리어에 열을 올리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 저희를 방해하는 사람들이 늘었단 말이죠.”
[성령들이 당신의 말에 한껏 귀를 기울입니다.]
“언제까지고 계속 방해를 받으면 제가 성령님들께 시화를 제대로 보여 드리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성령님들도 느끼셨죠? 나름 마음에 들던 컬렉터가 결국 현실에 순응하고 재미없게 행동하는 거.”
[성령들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저희라고 그렇게 안 될 것도 없죠. 하지만 그래선 안 됩니다. 저는 그래서 오늘 특단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방해하는 녀석들을 모두 치워 버리자고.”
방해꾼을 치운다. 그 폭탄 발언에 성령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시끄러운 메시지 창이 자꾸 울리고, 벌써부터 이후 펼쳐진 이야기를 기대하는 성령들이 포인트를 마구 뿌렸다.
서재 개방 5분도 안 돼서, 벌써 막대한 포인트가 쌓여 가기 시작했다.
나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 펼쳐질 이야기는 이전과는 한껏 다른 형태의 이야기일 겁니다. 몸으로 싸우기보다는 머리를 쓰는 방식으로요.”
나는 눈에 띄는 귀중한 약초를 빠르게 손으로 잡아채 주머니에 넣으며, 손가락으로 저 입구 너머를 가리켰다.
“지금 이곳에 저희를 방해하려는 클랜의 컬렉터 무리가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들 말고도 또 한 곳에서 저희를 어떻게 하려고 찾아오는 불청객들도 있죠. 저는 오늘, 그 둘을 싸움 붙이게 할 겁니다.”
[100TP 후원!]
[아니, 여기서 이이제이를?]
[100TP 후원!]
[아ㅋㅋ 벌써부터 재미있어지려고 하네.]
[100TP 후원!]
[역시 구경은 싸움 구경이지! 가즈아!]
메시지 창은 벌써부터 축제 분위기였다. 좋다. 이로써 성령들은 갑자기 벌어진 이 상황을 따지지 않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잔뜩 기대하게 됐다.
그러니 이제 이쪽은 지금까지 빌드 업을 쌓은 것들을 한꺼번에 해방하듯 보여 주기만 하면 된다.
“지아 씨. 혜림 씨. 따라오세요.”
“네!”
“알겠다.”
심지어 이번에는 무려 권지아와 강혜림 둘과 함께 움직인다. 평소에 항상 한 명씩만 끼고 다녀서 그런지, 성령들은 역시 이번에 벌어질 일이 범상치 않다고 좋아라 했다.
특히 두 명의 미인이 어깨를 맞대고 움직이자, 일부 성령들이 좋다고 포인트를 마구 뿌렸다.
[100TP 후원!]
[눈이, 눈이 너무 즐겁다.]
[100TP 후원!]
[이것이 퍼스트와 세컨드인가. 써드는 누구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요.]
아니, 써드는 아직 나도 모르는데. 뭘 꼭 여자를 뽑을 것처럼 말씀하시네.
나는 따지지 않고 그녀들을 이끌고 수정 동굴의 깊은 곳, 환상체들이 머무는 폭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물론, 가는 길에 아주 귀중한 약초나 광물이 보이면 약간의 시간을 내서 챙기는 것은 잊지 않았다.
기왕이면 다다익선이지.
* * *
수정 동굴 사상세계의 입구.
“……뭐냐?”
부하들을 이끈 감독관이라 불리는 남자는 현장에 찍힌 발자국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때마침 주위에 몸을 숨기고 있던 현장의 경비 인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적들입니다! 놈들이 갑자기 습격했습니다!”
“숫자는?”
“처, 처음에는 셋. 그다음에 약 스무 명이 왔습니다. 착용하고 있던 장비를 보니까 이놈들, 아무래도 작정하고 이곳에 온 것 같았습니다.”
“그런가.”
감독관은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했다. 침입자의 숫자는 약 스물. 그들이 전부 컬렉터라고 생각하면 꽤 큰 전력이다. 게다가 확실하게 준비를 하고 왔다고 하니, 실력도 만만치 않겠지.
‘금고를 훔쳐 갈 배짱이 있는 놈들이 과연 누구인가 했더니, 다른 클랜의 짓이었나.’
상황이 여기까지 왔으면 충돌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클랜과 클랜 간의 충돌은 보통 자그마한 소모전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황혼의 장막을 건드렸다. 어느 한쪽이 완전히 망가질 때까지 끝을 봐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주변에서 그들을 얕보게 된다.
“전원, 준비해라.”
상대의 숫자가 만만치 않았지만, 준비하고 있던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다.
감독관이 이끄는 부하들의 숫자는 25명. 중간중간에 좀 약한 녀석들이 섞여 있지만, 숫자만 놓고 보면 이쪽이 더 유리하다.
그리고 이쪽은 사람을 죽이는 데 망설임이 없는 놈들만 모여 있다.
감독관의 말에 부하들이 이를 씨익 보이며 각자 무기를 꺼내 들었다.
“하. 진짜 겁대가리 상실한 놈들.”
“감히 황혼의 장막을 건드려? 뒈지려고, 아주 발악을 했네.”
“싹 다 영혼까지 털어 주지.”
안 그래도 금고 털이를 잡기 위해서 열이 바짝 오른 그들은 적들이 쳐들어왔다는 말에 잔뜩 분노하고 있었다. 상대가 누구라 하더라도 박살을 내주겠다는 전의가 들끓었고, 감독관은 그 선두에 섰다.
“돌입한다.”
감독관을 포함한 26명의 컬렉터가 사상세계 안으로 들어갔다.
* * *
콰아아아!
희미한 에메랄드색으로 빛나는 물줄기가 거대한 흐름을 자아내며 폭포를 이루었다. 무수히 쏟아지는 수억 개의 물방울들과 기묘한 빛이 어우러져 이루어지는 모습은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드는 장관이었다.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닌, 오랜 세월을 들여 자연이 천천히 만들어 낸 압도적인 걸작.
그 광경에 일부 감수성이 풍부한 성령들은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도착했네요.”
거대한 공동에 돌입한 유현의 일행은 폭포의 근처에 있는 커다란 섬을 발견했다. 바로 저곳이 자연석이 숨겨진 이곳 수정 동굴의 심층부였다.
그곳을 배회하는 환상체를 발견한 권지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정령이로군.”
정령은 자연의 힘이 풍부한 곳에 존재하는 종족이다. 육신이 각 자연의 속성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만약에 싸우게 된다면 상당히 껄끄러운 녀석들이었다.
물론, 직접 싸우게 된다면 말이다.
“이제 저희는 뭘 하면 되죠?”
잔뜩 기대감 어린 시선으로 묻는 강혜림의 모습에 유현은 산뜻하게 대답했다.
“기다립니다.”
“네?”
“기다리면 됩니다. 정확히는 근처에 좀 몸을 숨깁시다. 이제 곧 다른 사람들이 들이닥칠 테니까요.”
공동은 넓었고, 깎아지는 벽면 곳곳에는 기암괴석이 가득했다. 그것 말고도 흐르는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거대한 식물들도 몇 개 보였다.
몸을 숨길 곳은 차고 넘쳤다.
“이걸로 하죠.”
그렇게 유현의 일행이 숨을 장소로 고른 것은 사람 셋이 거뜬히 들어갈 정도로 거대한 연꽃이었다.
마치 안쪽이 침대처럼 이루어진 그 내부에 강혜림이 감탄을 토했고, 권지아는 꽃잎의 틈새로 보이는 바깥의 풍경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현은 혹시 몰라서 연꽃잎에 [각인]까지 새겨 인기척을 없앴다.
“흠. 확실히 이곳이라면 저쪽에서 펼쳐지는 상황을 주시하기에는 안성맞춤이군.”
“그렇죠? 그때 와서 미리 장소를 물색하길 잘했네요. 들킬 위험도 적죠. 이 거대한 공동에 막 들어온 사람들은 물 위에 떠다니는 연꽃보다도 저 안쪽의 섬에 관심을 품을 테니까요.”
이쪽은 이제, 상황이 무르익기 전까지 철저하게 관전만 하면 그만이었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아서 유현은 손을 비볐다. 강혜림은 벌써부터 좋다고 유현의 옆자리를 떡하니 차지하며 기대감 어린 표정을 지었다.
오직 권지아만 이래도 괜찮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그녀도 작전에 동의했기에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조금 묘한 상황에 미묘한 감정을 품으면서도 그녀는 강혜림의 맞은편, 유현의 다른 옆자리를 차지했다.
“드실래요?”
유현이 팝콘을 불쑥 건네 왔다. 권지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뭐지?”
“어차피 아무것도 안 하고 구경하자니, 입이 심심하잖아요. 그래서 가져왔죠.”
“아무리 그래도…….”
“아. 이거 맛있네요.”
강혜림은 이미 팝콘을 받아 들어서 먹고 있었다.
“……조금만 먹지.”
권지아가 그렇게 유현이 건넨 팝콘을 받아드는 순간이었다.
“쉿. 왔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그들이 들어왔던 공동의 입구에 향했다.
그곳에 먼저 들이닥친 한울 클랜 사람들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