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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15화 (115/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15화

한울 클랜의 제2팀 팀장 신동철은 이번에 새로 올라온 보고 건에 상당한 흥미를 품고 있었다.

“천체주식회사의 텔러 강유현이라.”

그의 소문은 익히 들어 봤다. 텔러 주제에 컬렉터들과 함께 사상세계를 싸돌아다니지를 않나, 다른 텔러들이 사람 알기를 뭣같이 알고서 태도도 건방진 것과 다르게 상당히 예의를 차린다고 한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그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 전까지는 진짜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

신동철은 그의 소문이 퍼지기 전부터 이미 유현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전광석 이 녀석이 대체 누구한테 두들겨 맞았나 했더니.’

전광석이 갓 계약한 컬렉터들을 이끌고 자신만만하게 나갔던 날, 그는 구태여 누군가에게 맞고 돌아왔다. 당연히 한울에서 어떻게 조치를 취하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가해자가 텔러였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좀 거슬린다고 생각은 했지만 말이지.’

상대가 텔러라서 이쪽에서도 딱히 건드리거나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 벌어진 성추행 무고 사건이 신동철의 생각을 바꾸게 했다.

‘녀석은 가호가 없는 텔러다. 여타 텔러들과 다르게 괴짜나 다름없지.’

그러니 스스로 검을 쥐고 컬렉터들과 함께 지냈으리라. 어디 그뿐인가. 백서련의 움직임을 주시한 한울에서는 한 가지 사실을 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백화 매니지먼트에 소속된 두 컬렉터, 강혜림과 권지아는 전부 강유현이라는 텔러가 모은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을 보는 눈이 아주 뛰어나. 텔러만의 특권인가?’

신동철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모든 텔러가 저랬으면 우리 클랜과 협약하는 놈들이 저렇게 모자라지는 않겠지. 분명, 녀석이 지닌 재능, 혹은 능력일 터.’

거기까지 알게 되자, 신동철은 강유현이라는 존재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이쪽에 시비를 건 것은 계기일 뿐이다. 진짜 그를 짜증 나게 만드는 것은 그 강유현이라는 텔러가 백화 매니지먼트의 실질적인 지도자이며, 아무도 몰라 인지도가 0에 수렴했던 백화를 순식간에 키워 낸 것이다.

‘뛰어난 수완가다. 머리도 좋고, 검을 쓴다는 것은 싸움에도 능력이 있다는 거지. 심지어 인간이 아닌 텔러라는 입장을 아주 잘 이용해 먹고 있어.’

그가 지금까지 만나 온 텔러와는 근본적으로 무언가가 다른 존재.

신동철은 유현에게 강렬한 경계심을 품었다.

그래서일까. 전광석이 그에게 올린 보고서, 강유현 텔러를 제거해야 한다는 건의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쪽이 거슬리기는 한단 말이지.’

신동철은 자신의 책상을 손끝으로 툭툭 두드렸다.

전광석은 유현에게 개인적인 복수심 때문에 이런 건의를 올렸겠지만, 신동철은 조금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백화 매니지가 성공하면 전 직원이었던 백서련의 위상도 높아지겠지. 그렇게 되면 그녀를 쫓아낸 우리 한울의 이미지에도 타격이 오게 된다. 무엇보다 그 강유현이라는 텔러가 아주 거슬려.’

텔러 따위가 인간의 흉내를 내면서 이쪽의 업계를 조금씩 침범하는 느낌은 썩 좋지 않았다.

그는 컬렉터이며 사업가이다. 필요에 의하면 누군가의 목숨을 배제해야 하는 일쯤이야 쉽게 저지를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한울 클랜의 신동철에게 하나의 자료가 왔다.

‘백화 매니지먼트에서 이번에 남들 모르게 사상세계에 하나를 클리어 한다고?’

자료의 출처는 상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사람이 아닌 ‘텔러’에게서 온 것은 확실했다.

신동철은 처음에 이 자료의 진위를 의심했지만, 텔러들도 강유현을 거슬리게 여긴다는 것을 깨닫고 누군가가 그들을 이용해 일을 처리하려는 걸 깨달았다.

‘비록 다른 사람이 의도한 대로 움직이는 느낌이라 조금 거슬리기는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백화 매니지먼트 녀석들은 고맙게도, 이번 사상세계는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서 몰래 들어갈 속셈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쪽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몸을 사릴 필요가 없었다. 아니, 지금이 아니면 안 됐다.

‘예전이었다면 내가 직접 나섰겠지만, 이제는 자리도 자리인 데다 굳이 번거롭게 움직일 필요는 없지.’

신동철은 곧바로 수화기를 들어 전광석에게 연락을 취했다.

“어. 나다.”

-헛! 네, 넵. 팀장님.

“그래. 올린 보고서 안건은 잘 봤다.”

-그, 그렇습니까?

“그래. 나쁘지는 않더군.”

자기 뜻에 동조해 줬기 때문일까, 전광석은 기쁨에 몸을 떨었다. 수화기 너머였지만, 신동철에게는 그것이 느껴졌다.

단순한 놈.

“그래서 적당히 사람을 보낼까 하는데, 적임자가 하나 필요하다. 그래서 연락했지.”

-저, 정말이십니까? 그리고 적임자라면 누가…….

“기동 3과를 보내지.”

-헉!

전광석이 숨을 삼켰다. 기동 3과는 한울 클랜의 비밀스러운 세력이다. 클랜이 항상 떳떳하고 깨끗한 일만 할 수는 없었고, 기동 3과는 클랜이 양지에서 할 수 없는 더러운 일을 도맡아서 하는 전문 팀이었다.

한울 클랜에서 컬렉터로서 떳떳한 일을 하는 것은 1~5팀.

그 밖에 더러운 일은 1~3과가 처리한다.

그중에서 3과는 가장 최근에 편성된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사업부인 전광석에게 기동 3과의 이름은 무겁게 다가왔다.

“잘할 수 있겠지?”

-여, 여부가 있겠습니까! 제게 맡겨만 주십시오!

전광석은 모처럼 주어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신동철의 라인에 줄을 섰지 않은가. 언젠가 그가 한울을 대표하는 1팀의 팀장이 되길 바라며 필사적으로 그에게 빌붙어 왔다.

오늘 지난 세월의 보답을 받게 된 것이다.

“그래. 믿지.”

신동철에게도 나쁘진 않았다. 기동 3과는 아직 실전을 겪지 못한 녀석들이지만, 훈련은 받아 왔기에 능력은 분명히 있다. 이번 일은 기동 3과의 경험치를 먹여 주는 일도 있거니와, 전광석을 이용한 것이다.

만약 실패하게 됐다면, 이 모든 일의 책임은 그가 지게 될 테니까.

‘물론, 실패할 리가 없지.’

상대는 텔러 하나와 컬렉터 둘.

그들이 아무리 최근 유명세를 탔다 하더라도, 숫자의 우세는 당하지 못할 거다.

‘거슬리는 잡초는 미리 뽑아내야 하는 법. 그리고, 뿌리조차 남겨서는 안 돼.’

그는 그렇게 2팀의 팀장이라는 자리까지 올라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자를 찍어 누르고 넘어와 위를 향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사무실에서 신동철의 눈빛만이 싸늘하게 반짝였다.

* * *

전광석은 기동 3과를 이끌고 클랜을 나섰다.

“…….”

그는 잔뜩 긴장한 기색으로 자신의 뒤에 도열한 사람들을 살폈다. 딱 봐도 평범한 일을 하는 것 같지 않은 자들의 숫자는 무려 15명. 남녀의 구분할 것 없이 통일된 복장을 입었으며 눈빛이 스산하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업으로 삼은 자들만이 보일 수 있는 살기.

가다듬지 못한 그 기운이 전광석을 묘하게 불안하게 만들었다.

“……준비해라.”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겨우 벌리며 그렇게 말했다.

누가 뭐래도 그들은 신동철이 자신에게 맡긴 팀이다. 아무리 무서워도, 그들이 동료라고 생각하니 기세가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때마침 전광석의 폰으로 정보가 하나 도착했다.

백화 매니지먼트, 그들이 움직였다는 보고였다.

‘드디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에게 치욕을 안겨 줬던 유현의 모습을 떠올리자, 전광석은 마음속에 분노의 불길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지금이야말로 그때의 원한을 갚아 줄 때였다.

“가지.”

전광석의 말에 기동 3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기세를 더욱 끌어올려, 미리 준비된 차량에 탑승했다.

소리 없이 조용히 출발하는 여러 대의 검은 차량.

그것을 고공에서 지켜보는 눈빛이 하나 있었다.

하늘을 나는 새하얀 털 뭉치, 백효였다. 그리고 백효가 보는 시선은 고스란히 유현에게 공유됐다.

“놈들이 움직였습니다.”

유현의 말에 강혜림과 권지아는 살짝 놀랐다. 정말로 유현이 말한 대로 한울에서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별거 없습니다. 그저, 셀린 후배에게 시켜서 저희가 오늘 움직일 거라는 정보를 한울에 알려 줬을 뿐이죠.”

유현은 한울이 움직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조심스러워 한다면, 움직이게끔 스스로 판을 깔아 주기까지 했다. 혹시 모를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일부러 텔러인 셀린에게 시키기까지 했다.

“저쪽도 의심은 했겠죠. 그래도 먹잇감이 이렇게까지 탐스러우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

“…….”

권지아는 유현의 계략을 직접 옆에서 보면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무언가를 하려고 했을 때, 이렇게 철저하고도 악랄하게 행동했던 적이 있던가?

‘그는 대체, 전생에 어떤 삶을…….’

그런 경악과 다른 의미로 유현을 바라보는 것은 강혜림이었다.

‘역시, 유현 씨는 대단해!’

그녀는 이 모든 것들이 유현이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자, 그를 향한 경외심이 더욱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사람이라면 역시, 무엇을 하더라도 믿고 따라갈 수 있다고. 강혜림은 그 의지를 오늘 한 번 더 재확인했다.

“저희도 이제 슬슬 준비를 해 볼까요?”

유현을 따라 권지아와 강혜림도 일어섰다. 준비라고 했지만, 이미 그들은 무기를 챙기고 충분한 준비를 갖춘 뒤였다.

그들의 시선의 끝. 사람들이 오가지 않는 한산한 주택 구간 저 너머 공사 현장이 보였다.

느껴지는 기척은 여섯. 이전보다 감시 인원을 늘린 듯했다. 심지어 더 강한 녀석들이 감시를 보고 있었다.

‘그래도 부족하지.’

유현은 씨익 웃으며 앞장섰다.

앞으로 10분 뒤. 한울 클랜의 기동 3과가 이곳에 도착할 것이다. 그러니 적당히 타이밍을 맞춰서 저들을 이끌 필요가 있었다.

“갑시다.”

회귀자, 검후, 그리고 한때는 인간이었던 텔러.

세 명이 처음으로 함께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 * *

“크아악!”

사상세계 입구를 지키던 황혼의 장막 클랜원은 난데없는 습격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3명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셋은 말도 안 되는 전투력으로 이곳을 지키는 6명의 컬렉터를 순식간에 제압했다.

다섯은 중상을 입고 기절해 있었고, 마지막으로 색적 능력을 지닌 그만이 고통 속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너, 너희들 누구야! 누군데 감히……!”

“우리가 누구인 게 그렇게 궁금한가? 황혼의 장막. 설마, 이런 좋은 것을 숨기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세 명 중 리더로 보이는 남자.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성별은 짐작이 갔다.

그의 어둡게 내리깔린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남자는 몸을 잘게 떨었다.

“어, 어디서 보낸 놈들이냐!”

“어디서 보냈는지는 중요하지 않지. 그래도 우리가 뭐, 언제 항상 사이가 좋았던가? 다 경쟁하던 관계였잖아. 그러니 너무 그러지 말라고.”

퍼억!

정체불명의 남자, 유현은 그렇게 말하며 일부러 머리를 살살 내리쳤다.

기절하게 만들려고 때리는 척했지만, 그가 정신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말이다.

“적당히 정리했으니, 슬슬 들어가지. 뒤에 추가로 오는 녀석들한테도 전해.”

“예. 알겠습니다.”

‘뒤에 더 온다고?’

일부러 기절한 척한 남자는, 유현이 의도적으로 흘린 말인지도 모른 채 귀를 쫑긋 세웠다.

‘이, 이건 위험하다! 어서, 연락을 취해야 해!’

마침 신이 도운 것일까. 유현 일행은 곧바로 사상세계 안쪽으로 들어갔다. 혹시 시간 차를 두고 바로 나오지 않을까 눈치를 살폈지만, 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서둘러야 한다!’

기절한 척하던 남자는 조심스레 자신의 허리춤에 걸린 무전기를 손에 쥐었다.

‘멍청한 새끼들! 내가 기절한 줄 알았겠지?’

그가 조금이라도 더 이성적이었다면 왜 적들이 무전기를 부수지 않고 가만히 놔뒀는지에 대해 고민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놔두지 않았다.

너무나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습격에 그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동료들이 다 당하자 어떻게든 이 일을 알려야만 한다는 의무감만 들었다.

그것이 처음부터 유현이 유도했던 것인 줄도 모른 채.

‘감히, 우리 황혼의 장막을 건드려? 상대가 누구라 하더라도, 그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될 거다!’

그는 곧바로 무전기를 켜고, 본부에 연락을 취했다.

“이쪽은…… 베타 식스. 들립니까?”

-무슨 일이지?

“놈들입니다. 침입자가…… 나타났습니다.”

-……알겠다. 곧바로 가지.

무전기가 뚝 끊겼다.

그리고 때마침, 멀리서 검은 차량이 멈춰서며 여러 사람이 내리는 것이 보였다. 방금 남자가 말했던 적들의 증원이었다.

무전을 보낸 컬렉터는 그들을 살기 어린 눈빛으로 노려봤다.

자신이 얼마나 커다란 착각을 한 지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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