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114화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계책을 짜내려는 것이 무색하리만치, 유현은 이미 자신이 생각해 둔 시나리오가 있다고 말했다.
황혼의 장막이 숨겨 놓은 사상세계인 수정 동굴에 들어갔을 때 떠올린 계획이었다.
“황혼의 장막은 사람들이 오가지 않은 곳에 사상세계를 가장 먼저 발견하고, 그곳을 건설 현장으로 위장시켜서 자신들이 이용해 먹으려고 하고 있죠. 오늘 제가 바깥에 나갔다 온 것은 그곳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유현 씨는 그걸 어떻게 아신 건가요?”
“일전에 아는 사람을 만나러 방문했다가, 그곳의 하청 역할을 맡은 조폭들과 시비가 붙었던 적이 있습니다.”
유현은 해당 조폭들을 정리하던 차에, 그들이 컬렉터와 무언가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중요한 자료가 담긴 금고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음을 솔직하게 대답했다.
“영 수상하더군요. 그래서 금고째로 훔쳤죠.”
“네?!”
“미쳤어요?!”
백서련과 강혜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천하의 권지아도 그 부분은 쉴드 치기 힘들었는지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팔짱을 낀 채 유현을 노려봤다.
유현은 걱정하지 말라며 손을 저어 보였다.
“제 정체는 제대로 숨겼습니다. 인식 저해를 걸어 놔서 제가 누구인지 알아차린 사람은 없으니까요. 아무튼 그렇게 금고를 털었는데, 그 안쪽에 재미난 것들이 있었다 이 말이죠.”
유현은 그렇게 말하며 모두의 중심에 있는 테이블의 위로 금고 안에 담겨 있던 서류들을 꺼내 펼쳐 보였다.
“바로 이것들입니다.”
황혼의 장막 치부가 담겨 있는 자료들. 어떻게든 자신들의 비밀을 들키지 않기 위해 그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는 물건이 세 명의 앞에 드러났다.
내용물을 가볍게 훑어본 셋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이, 이렇게 중요한 정보라면…… 협회 쪽에 신고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물론, 서련 씨의 그 말마따나 그것도 방법입니다. 그런데 그냥 신고용으로 사용하자니, 너무 아쉽지 않나요?”
“네? 아쉽다뇨. 또 뭐가 있길래.”
“그냥 이대로 협회에 알린다면 분명, 황혼의 장막 클랜은 여러모로 고초를 겪겠죠. 하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어떻게든 자신들은 그런 적이 없다며 발뺌을 하거나 꼬리를 자르려고 하겠죠. 이것이 그 증거라 하더라도 법적으로 처벌을 받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건 나도 동감한다.”
권지아가 나서며 유현의 말을 두둔했다.
“이런 놈들은 분명 자신들이 이런 것을 들켰을 때를 대비해 탈출구를 여러 개를 파놓았을 거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들통난다고 하더라도 그때까지 상당한 시간을 잡아먹게 되겠지.”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죠?”
어쩔 줄 몰라 하는 강혜림의 질문에 유현이 대신 대답했다.
“이 자료를 이용해 먹는 겁니다.”
“자료를.”
“이용한다?”
“흠. 조금 더 들어 보지.”
“요지는 이겁니다. 황혼의 장막은 금고를 훔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아마, 어떤 방법을 취해서라도 범인을 찾아내 죽일 생각이겠죠. 하지만 그 이상으로 잔뜩 긴장하고 있을 겁니다. 상대방이 이 자료를 지니고도 아직 움직이지 않은 것을 보면, 무슨 꿍꿍이가 있다고 의심해도 이상할 게 없거든요.”
유현은 여기에 착안점을 뒀다.
“녀석들은 당연하게도 사상세계 입구에 감시를 도배해 뒀습니다. 혹시라도 수상한 사람이 접근하면 바로 사람들을 불러올 수 있게요. 저는 이 부분을 노려서, 놈들을 다른 자들과 싸움을 붙이게 할 겁니다.”
“다른 자들이요? 그게 누군데요?”
“한울 클랜.”
유현의 말에 백서련이 뜨악하는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거기는 왜요? 설마, 제 생각을 해서 거기에도 복수를 하겠다는 건 아니겠죠?”
“물론 그것도 있기는 한데,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그 한울에서 조만간 저희에게 손을 쓰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말해 두죠.”
“대체, 왜…… 아.”
걸리는 것이 있는지 백서련이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한울 클랜은 서련 씨가 한때 머무른 곳이기도 했지만, 좋지 않은 이유로 해고한 곳이죠. 그것도 모자라 서련 씨가 매니지를 세웠음에도 일부러 뒤에서 방해 공작을 일삼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부산물 매입장의 일만 봐도 충분했다. 게다가 유현에게 대놓고 시비를 당해 두들겨 맞은 전광석의 일도 있었다.
컬렉터가 아닌 일개 직원과의 트러블이지만, 그래도 한울에서는 자기 클랜 사람을 건드린 유현을 곱게 볼 리가 없었다.
“게다가 서련 씨를 그렇게 쫓아낸 것을 보면, 이 한울도 황혼의 장막과 모종의 커넥션이 있을 겁니다. 협업하는 동료라기보다는 그냥 가끔 서로 돕고, 이득을 챙기는 그런 사이겠죠.”
“그렇다면…….”
“네. 저는 이 두 클랜을 싸움 붙일 겁니다.”
이른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방법이었다.
이쪽의 입장에서 거슬리는 클랜이 2개나 있다면, 이 둘의 싸움을 붙이게 해서 서로 제 살을 깎아 먹게 만들면 그만이었다.
“황혼의 장막은 그렇다 쳐도, 한울에서 움직일까요?”
“움직이게 만들어야죠. 안 그래도 그쪽은 저희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막 얻은 따끈따끈한 정보에 의하면 전광석이라는 사람이 무언가 일을 꾸미고 있다더군요.”
“전광석 그 인간이…….”
재수 없는 전 상사를 떠올린 백서련이 이를 갈았다. 그녀는 뒤늦게 떠올랐다는 듯 유현에게 물었다.
“유현 씨는 그걸 또 어떻게 알고요?”
“맞아요. 저도 궁금해요.”
“흠. 아무리 너의 지식이 있다 한들, 그런 것까지 알 수 있는 건가?”
대체 어떻게 했길래 그런 것까지 아냐는 모두의 시선에 유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비밀입니다. 다만, 제게는 그런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만 알아 주시면 됩니다.”
부엉.
어느덧 유현의 어깨에 앉은 백효가 조금 어처구니없다는 시선으로 자신의 주인을 바라봤다.
유현은 백효의 시선을 무시하며 설명을 이었다.
“황혼의 장막은 어떻게든 자신들이 소유한 사상세계를 지키려고 들 겁니다. 내부에는 정말 어마어마한 부산물들이 있으니까요. 하나의 클랜이 정부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저지르는 짓입니다. 당연히 보통의 것이 아니죠.”
유현은 자신이 본 것들을 전부 설명했다. 약초와 광물, 거기에 더해서 폭포 안쪽에 있는 자연석까지.
“자연석!”
자연석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권지아는 눈을 부릅떴다. 회귀자인 그녀의 지식 속에서도 자연석이라는 것은 절대로 쉽게 구할 수 없는 아주 귀중한 물품이었다.
“황혼의 장막은 상대가 누구라 하더라도, 자신의 사상세계를 건드리려는 순간, 적으로 간주할 겁니다. 상대가 같은 클랜이라도 마찬가지.”
“한울이…… 그 제물이 되는 거군요.”
“한울도 쉽게 당해 주지는 않을 겁니다. 그쪽도 분명히 저항하겠죠. 필연적으로 충돌이 벌어질 겁니다.”
“그렇다면 너는 둘이 싸우는 틈에 사상세계 내부의 것들을 몰래 꿀꺽하겠다는 건가?”
“둘? 아뇨. 틀리죠. 더 있습니다.”
유현의 말에 세 쌍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더 있다니.”
“또 다른 사람이 있는 건가요?”
“딱히, 떠오르지 않는군.”
유현은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 그럴 수도 있겠죠. 자, 보세요. 여기 한울과 황혼의 장막이 있습니다. 둘이 치고받고 싸우면 분명히 큰 사건이 되겠죠. 하지만 과연 그들이 이 사실을 떠벌릴까요?”
“그건…….”
모두가 유현이 뭘 말하려는지 깨달은 것이다.
“자기들끼리 싸워서 제 살을 깎아 먹어도, 그들은 결과적으로 이 일을 없던 것으로 부칠 겁니다. 비밀스러운 사상세계에서 싸운 것을 누구 좋으라고 떠들겠습니까. 어쩌면 중간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서로 협상을 시도하려고 들지도 모르죠. 아무리 경쟁자라 하더라도 동귀어진을 노리는 것은 멍청한 짓이니까요. 그러니 저는 여기에 하나의 조직을 더 추가할 겁니다.”
그것이 바로 컬렉터 협회였다.
클랜과 나름 대적하는 관계지만, 그렇기에 클랜에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정부의 산하 기관.
종말 이후의 세계는 이런 조직이 모두 와해하지만, 그 종말이 오기 전이라면.
협회만큼 확실한 조직은 없다.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뭐?”
“또 있어요?”
이제는 질렸다는 듯이 바라보는 세 사름의 시선이 유현은 기세등등하며 말했다.
“사상세계에 머무는 환상체는 왜 뺍니까? 그쪽 터줏대감인데.”
유현은 백효를 상처 입히려고 했던 그 건방진 뱀 녀석을 잊지 않았다.
“아주 재미있는 4파전이 될 겁니다.”
“…….”
“…….”
“…….”
유현과 절대로 적대하지 않고, 그와 동료가 된 게 정말로 다행이라고.
이 자리에 모인 세 사람은 처음으로 의견을 일치했다.
* * *
작전을 짠 것은 유현이지만,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강혜림과 권지아의 도움이 필요했다.
유현은 우선 셀린에게 시켜서 소문을 하나 퍼뜨리게 했다.
“정말 이 정도만 도와드리면 됩니까?”
“그래. 그거면 충분하다.”
셀린이 퍼뜨린 소문은 바로 ‘어느 클랜이 비밀리에 사상세계를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황혼의 장막을 도발하기 위한 유현의 계책이었고, 실제로 이것은 효과를 발휘했다.
“그런 소문이 돌았다고? 어디서?”
“그게…… 전체적으로 그런 것 같습니다.”
“소문의 진원지를 찾아라. 분명, 녀석이다.”
황혼의 장막에서 이번 사태를 엄중히 여겼기 때문에 중견급 컬렉터들도 다수 파견된 상황이었다. 감독관 역할을 맡던 남자는 본능적으로 지금 떠다니는 희미한 소문이 자신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이쪽에 대해 명확한 정보를 밝히지 않은 게 걸리는군.’
하지만, 겨우 녀석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됐다. 이대로 소문을 퍼뜨린 녀석을 잡으면 금고를 훔쳐 간 범인에 대해서 알게 되리라.
그러던 차에 황혼의 장막을 크게 흔들게 만드는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다음날, 감독관은 자신에게 올라온 보고를 확인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뭐? 우리가 비밀리에 운용하는 사상세계에 침입자가 있어?”
“네.”
부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렇다 대답하며 사건의 경위를 읊었다.
100대가 넘는 CCTV와 네 명의 컬렉터로 돌아가면서 경계를 서는 사상세계를, 상대방이 대체 어떻게 뛰어넘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들어가서 안쪽에 있는 내용물을 다수 털어 갔다는 점이다.
물론 입구 부근의 약초나 광물을 가져간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침입자가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입구를 지킨 녀석들은 대체, 뭘 한 거지?”
“그게, 확인해 본 바로는 실시간으로 색적을 유지했는데도 걸리는 게 없었답니다. 실제로 확인해 보니, 거짓말이나 상황을 모면하려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CCTV는?”
“아무리 확인해도 걸리는 게 없습니다.”
“……놈이군.”
감독관은 침입자가 금고를 털어간 녀석이라 확신했다. 분명, 녀석은 대놓고 보고도 정체를 알 수 없다고 했었다. 그 정도로 인식을 저해시킬 수 있는 놈이라면 모습을 감추는 것 정도는 쉽게 가능할 터.
‘설마, 색적 능력마저 먹히지 않을 줄은 몰랐지만.’
놈이 움직이는 걸 알았으니, 당장 대비를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움직여라. 대신 너무 눈에 띄면 안 되니까 이 일에 특화된 소수 위주로 돌려. 입구에서 대기하던 네 명은 이번 건에 대해서 책임을 묻고. 새로운 녀석들로 교체해라. 더 뛰어난 놈들로 둘 추가해서.”
“알겠습니다.”
겨우 범인의 실마리를 잡게 된 황혼의 장막은 확실하게, 그러나 남들의 시선에 걸리지 않게 은밀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이미 사태의 흐름을 파악한 유현에게는 그 움직임은 손바닥 위를 돌아다니듯 훤히 보였다.
‘분명, 녀석들은 안달이 났겠지.’
사무실 건물의 옥상. 유현은 도시의 풍경을 내려다보며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유현은 강혜림과 권지아를 데리고 수정 동굴에 몰래 숨어들었다. [각인]을 새겨서 정체를 숨겼기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유일한 결점이라면 각인을 새기기 위해서 포인트를 너무 소모했다는 것 정도지만, 그것은 이번 일이 끝나면 충분히 복구하고도 남았다.
‘어찌 됐든 이번에 숨어들어서 상당수 털어 간 것이 녀석들의 경각심을 제대로 심어 준 모양이야.’
이쪽은 이쪽 나름대로 짭짤한 수익을 올려서 기분이 좋은 상태.
하지만, 아직 작전은 끝나지 않았다.
무대는 이제 막이 올랐고, 유현의 시나리오는 이제 막 전개 과정을 열심히 밟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자 다음은,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무대에 올라야겠지.’
다음 목표는 한울 클랜.
유현은 그쪽에 보내진 자료를 생각하며 미소를 지울 수 없었다.